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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남자>의 광대 우두머리 육갑 역 유해진

영화 <왕의 남자>는 광대들의 이야기다. <왕의 남자>는 흥겹고 따뜻하다. 약자들의 고단하고 질척이는 일상을 위로해주는 그 힘은 누구에게서 나올까. 한양의 떠돌이 광대 무리 육갑, 칠득, 팔복에게서다. 장생처럼 대담하지도, 공길처럼 눈부시지도 않은, 일용할 양식을 벌어먹고 살게 해줄 재주밖에 가진 것이 없는 평범한 광대들. 육갑 패거리의 광대짓이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의 삶이다. 유해진, 정석용, 이승훈 등 육갑 패거리를 맡은 세 배우의 연기는 궁색함의 과장이나 잡스런 개인기 없이 걸쭉한 인간미를 주물주물 다듬어낸다.

이들의 우두머리 격인 육갑의 유해진은 2005년에만 5편의 출연작을 냈다. <왕의 남자>를 비롯해 <혈의 누> <강력3반> <이대로, 죽을 순 없다> 그리고 <공공의 적2>. 그는 언제나 기억할 만한 조연이다. 연쇄살인의 희생자이건, 식당 아줌마로 변장하고 범죄 현장을 빠져나가는 마약밀매범이건, 촌스런 패션을 뽐내는 칼잡이이건. <왕의 남자>의 그 비루한 육갑의 얼굴은 유독 오래 기억할 만하다. 차승원 주연의 멜로영화 <국경의 남쪽> 촬영을 이틀 전에 마치고 <왕의 남자> 인터뷰 일정으로 한창 바쁜 그를 삼청동에서 만났다.

[유해진의 광대] “투박하고 거친 토기 같은 느낌을 가지려 노력했다”

유해진은 시범 보여주기를 좋아했다. 육갑의 대사들은 물론이려니와 무려 10여년 전에 했던, 연출가 오태석의 극단 목화 시절의 연극 대사들, 이름 모를 창가, 현대무용 강사의 말투까지도 실감나게, 자신의 이야기를 부연할 수 있는 예라면 다 끌어왔다. 그의 본말과 예시 말이 구분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유해진은 흐르는 물처럼 말씨 하나로 자기 전체를 바꾸고 또 바꿨다. 하얀 사기컵이 놓인 예쁘장한 테이블을 마주 두고 안락한 소파에 깊숙이 들어앉아서 지켜보는 그 같은 변화들이, 매번 극적으로 다가왔다.

-<왕의 남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간첩 리철진>을 하면서 제작사 씨네월드와 친해졌다. 그 연으로 <달마야, 서울가자>를 했고 다시 이번 작품을 하게 됐다.

-광대 역할이니만큼 사전 훈련을 받았을 텐데. =사물놀이나 마당놀이 몸동작 등을 두달 정도 배웠다. 한여름에 건물 지하에서. 극단 목화에 있을 때 사극 <춘풍의 처>에서 춘풍 역을 했었는데, 그때 경험이 육갑의 대사를 할 때 도움이 됐다. 우리나라 말에 있는 3·4조, 4·4조, 아니리조 같은 운율을 배웠는데, (쥐도 새도 모르게 시범 시작) 아, 내가 그랬는디, 평양명기 추월의 얼굴 모습 한번 들어보거라. 사채를 방기하고 녹의홍상 두르고 천연~히 앉았으니 영광은 18세라. (다시 쥐도 새도 모르게 본래 말투로 돌아와) 하지만 기술적인 것보다 느낌을 가져오는 게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서울예대 다닐 때 <오구>에서 박수무당을 하면서도 소리를 안 배우고 비디오 보면서 느낌만 알아냈다. 소리에 너무 매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느낌을 가져오면 대사가 어떻게 달라지나. =애드리브를 하더라도 느낌이 있는 상태에서 하지 않으면 소리가 날로 나온다. (또다시 슬쩍 시범) 어이구, 그라니까 지는 육갑이유. 쟈는, 저, 칠득이구, 고 옆이 팔복이여. 이걸 생활대사로 한다 치면, 안녕하세요, 저는 육갑이고요, 쟤는 칠득이에요. 쟤는 팔복이고요. 맛깔스럽지 않은 말이 나온다. 창을 하시는 분들은 전라도 출신이 아니더라도, 아, 그란디, 나는 당최 모르것고, 아이구, 관두쇼, 이런 식으로 평상시에도 말한다. 그런 걸 짧은 시간에 따라잡으려면 기술적인 것보다 냄새, 느낌이 중요했던 것 같다. 육갑이가 광대로 살았으면 평생 거친 말만 하고 거칠게 살아왔을 거다. 그러니까 말을 해도 투박하고 거칠게, 유약 묻히지 않은 토기 같은 느낌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장생과 공길이 한양에서 판을 벌여 번 돈을 육갑이 도박으로 다 날리고 나서 “형님이라 해도 되것죠?”라며 아부를 한다. 그때 장생이 “그럼 내가 하잔 대로 할 거야?” 되물으니까 “바로 말을 놓으시네”라고 하는데, 애드리브인지. =애드리브다. 그렇게 함으로서 육갑에게 친근감을 갖게 하는 거다. 거기서 얼굴이 확 굳어진다든지, 애드리브 없이 바로 “근데 어떤 방법이라도 있소?” 한다면 인물이 무거워진다. 육갑은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어떻게든 장생하고 같이 가야 할 사람이고, 또 어떻게 보면 그게 그들의 사는 방식이기도 한 거다. 그들은 말 그대로 먹고살려고 그렇게 사는 거지, 사치를 누려보려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게 참 아니꼽긴 하지만, 그래두 뭐, 예, 알았어유, 하는 말의 다른 표현인 거다. ‘산다’라는 것을 많이 생각했다. 왕 앞에서의 소극도, 잘 못 하면 죽으니까 애절한 거고, 간절히 하는 거고, 제정신으로는 못한다는 거다. 그래서 북채 놓치는 설정도 들어간 거고.

-그 소극 시퀀스 촬영 때 테이크는 얼마나 갔는지. =이준익 감독님이 테이크를 많이 가는 편이 아니다. 많아야 세 테이크 정도.

-리허설을 많이 했나. =리허설보다도 아침에 현장 나오면 그날 찍을 것에 대해 토의를 먼저 했다. 시나리오는 아무래도 글이다보니 그대로 하면 재미없는 것도 많고. 나는 이렇게 하고, 너는 이렇게 하고, 육칠팔(육갑, 칠득, 팔복)끼리 의견을 주고받고, 물론 최종 판단은 감독님이 하셨다.

-경극 시퀀스에서의 육갑은 특히 인상적이다. 분장도 그렇고, 하는 말들도 그렇고. “말을 해라∼ 이년들아∼.” =그건 시나리오에 있는 대사다. 내가 한 분장도 원래 경극에 있는 분장이다. 개인적으로 그 분장이 맘에 들더라. 힘이 느껴지고, 언제 또 이런 분장을 다시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해서 그 장면의 스틸을 확대해서 집에 걸어놨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부분은 “요망하고, 요망한 년” 이러면서 “사약을 들라!” 할 때. 평소의 육갑과 또 다른 경극 속의 육갑이고 그 안에서도 진지한 육갑이기 때문에 또 다른 연기의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유해진의 기술] “나는 애드리브의 ‘아’자까지 생각하는 사람이다”

실제로 만난 유해진은 피부가 희고 맑은 사람이었다. 오전에 마사지 받고 나온 거 아니냐는 물음에 그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피부가 의외로 좋다며 놀란다”고 했다. 영화를 볼 땐 그의 피부에 관심을 둘 겨를이 없었다. 그의 외모는 늘 성격이 분명했으니까. 햇볕에 그을러 얼굴이 까칠해진 서민이거나(<왕의 남자> <혈의 누> <무사> 등), 촌스러운 감각을 내뿜고 사는 깡패 혹 양아치이거나(<공공의 적> <신라의 달밤> <달마야, 서울가자>). 화면 안에서 그는 커다란 사람의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디테일한 차림새, 눈빛, 동작이 화면 안에 꽉 차 있었다. 실제로 만난 유해진은 키도 그닥 큰 편이 아니었다.

-오래된 얘기지만 <신라의 달밤>에서의 파마머리나 <공공의 적> 때 입고 나온 화이트 양복 패션은 인상적인 디테일이었다. 극중 설명이 별로 없는 캐릭터를 한번에 보여주니까. =화이트 앤드 블랙 앤드 플라워. (웃음) 짝퉁 앙드레. 뭐, 좋다고 샀겠지. 와, 멋있다 이러면서 자랑도 하고 다녔겠고. 그땐 양수리 시장 가서 싸구려 금도금 반지 사오고, 용가리가 칼잽이니까 손에 이상한 밴드도 하나 사서 붙였다. 튀어보이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그 인물이게끔 하는 것들을 생각했다. 조연한테 할당되는 시간은 정해져 있고 대본은 친절하지 않다. <신라의 달밤> 때 파마머리 생각해내느라 경주를 하루 종일 돌아다녔다. 논바닥 지나서 불국사 넘어서. 뭐가 있을까, 뭐가 있을까.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데 생각해내기까지는 쉽지가 않다.

-역할에 대한 사전 준비가 치밀하다. =신경을 곤두세우는 편이다. 굉장히 예민해진다. 예전에 설경구씨가 “쟤는 애드리브의 ‘아’자까지 생각하는 애야” 했었는데, 그 정도로 매일 밤 잠을 못 잤다. ‘아’가 맞나, ‘요’가 맞나. ‘의외로 겁많소’가 맞나, 용가리가 무식한 애니까 ‘예외로 겁많소’가 더 잘 어울리나. 그런 식으로 준비를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 그러다보니 현장에서 사고가 오픈되지 못하고 놓치고 가는 부분도 있는 것 같더라. 장단점이 있겠지만 요즘은 조금씩 긴장을 놓고, 사고도 열어두는 편이다.

-지금 말한 단점 때문에 내 연기가 정말 아니다, 싶었던 순간도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애드리브를 많이 하는 편인가. =필요할 때만 한다. 매끄럽게 못 넘어가겠다, 윤활유가 필요하다 생각되면. 다 알겠지만, 웃기고 재미있겠다고만 하면 애드리브가 아니다. 앞뒤 상황을 생각해서 이게 지금 이 사람에게 맞는 건지 판단하고 써야 하기 때문에 사실 애드리브만큼 힘든 게 없다. 이렇게 하면 확 먹히겠지, 가 아니라 꼭 필요하겠다 싶어서 하는 거다.

-지난해 방영한 드라마 <토지>의 김두수는 건조하고 지독한 악인이었다. 본인이 지금까지 영화에서 했던 인물들과 많이 다르기 때문에 카메라 앞에서 신선한 자극이 되었을 것 같다. =우선 아버지와 아들을 모두 연기한다는 1인2역에 대한 매력이 있었다. 김두수는 시놉시스상으로도 정말 동정이 가는 인물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칼 차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그럴 만한 환경 때문에 나쁜 사람이 되는 거지. 악역이지만 그 인물에게 그럴 만한 사정을 생각하려는 건 다른 작품을 할 때와 똑같다. 그리고 김두수는 오히려 슬픈 인물이다. 어렸을 때 자기 아버지가 돈 있는 최씨 집안에 의해 억울하게 처형당하고 엄마는 목매달아 죽는 일을 겪었다.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본다면 그것은 엄청난 충격이다. 그 사회나 사람들이 정말 혐오스러웠을 것이다. 독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 당시 PD님한테 얘기했다. 어린 두수의 시선으로 꼭 좀 동네사람들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치밀하게 준비하는 성격인데, 급박한 드라마 현장에 익숙해지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센 역할이라 에너지 소비도 컸을 것이다. =따라잡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사람을 바짝 긴장하게 만들더라. 게다가 한국어 하나 하기도 힘든데 일본어, 중국어까지 하느라 힘들었다. 그만큼 보람은 있었다. 후유증도 심했다. 너무 오래 찍기도 했고 그 긴 촬영기간 동안 그 인물의 복수심을 담고 살다보니…. 잊느라 일부러 여행갔다왔다. 역할 때문에 후유증을 겪은 게 <무사> 이후 처음이었다.

[유해진의 인생] “순리, 인연. 나이 들면서 그런 말들을 점차 믿게 된다”

유해진은, 연극평론가 안치운이 ‘우리시대의 광대’라 표현했던 연극인 고 추송웅의 모노드라마 <우리들의 영웅>을 보고 배우를 꿈꾸기 시작했다. 고2 때 덜컥 고향 청주의 기성극단인 청년극장에 입단하고, 의상디자인학과 졸업 뒤 대학졸업자 대상 특별전형을 통해 뒤늦게 서울예대에 들어간 그는 연극연출가 오태석이 이끄는 극단 목화에서 3년 정도 무대를 누볐다. 목화 입단 해인 1997년 <블랙잭>으로 영화 데뷔도 간소하게 치렀다. <무사> <신라의 달밤> 이후 충무로에서 바쁜 날을 보내면서도 2003년 한해는 그리운 무대로 돌아가 동료배우 정은표와 <이발사 박봉구>를 공연했다. 그는, 욕심을 늘리기보다 페이스를 잃고 싶지 않은 듯했다.

-배우가 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고 했다. 지금은 뭐라고 하시는지. =<토지> 보고 나서야 좋아하시더라. 원래 나이드신 분들은 영화를 잘 안 보시니까. 예전엔 아들내미가 뭘 하긴 하는가본데 뭐하는지는 모르고 계셨다가 <토지> 하고 나니까 주변 분들한테도 할 말이 생기셨나보더라.

-4남2녀 중 막내이면 부모님 연세가 꽤 많으실 텐데. =그래서 어머님은 <토지>를 못 보고 돌아가셨다. 어머님이 보면 정말 좋아하셨을 거다.

-코미디 연기가 뛰어난 배우들을 보면, 쇼맨십이 강한 만큼 좌중을 휘어잡으려는 욕심이 강하게 드러난다. 카리스마도 느껴지고. 본인은 어떤 편인가. =이제는 안 그러는데,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시절까지는 되게 강했다.

-언제 강한 모습이 깨졌나. =서울예대 다니면서 많이 없어진 것 같다. 철드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이런 게 사는 거지, 라는 생각. 누구 위에 있은들.

-고등학교 2학년 때 대뜸 기성 극단에 들어갔다. 첫 작업이 기억나는지. =(당연하다는 듯) 청소. 아아, 작품? (웃음) 도종환 선생님이 쓰신 <울타리꽃>에서 포졸을 했다. 청주연극제인가 전국연극제인가 그랬는데, 심장 터지는 줄 알았다. 창 들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하면 되는데, 창 부들부들 떨리고…. 그때가 열정이 넘칠 때였다. 아무것도 모르니까 무조건 열심히 했다. 서울예대 들어가서도 열심히 했다. 졸업할 때 올 A 받고, (계면쩍다는 듯이) 흐흐흐흐, ‘예술의 빛’이라는 상도 탔다. 돈도 없었고, 학교식당 청소해주고 쌀 날아주고, 점심 시간 때 밥 얻어먹고 그럴 때였다.

-서울예대 가기 전에, 청주에서 의상디자인학과를 전공했다는 것은 의외다. =현대무용도 3년 배웠다. 안 어울리는 것들이 좀 많다. (웃음) 의상, 현대무용. 근데 사실 난 “안 어울린다”는 고정관념이 싫다. 청개구리처럼 안 어울리는 것들을 더 해보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보신탕은 안 먹는다. 으레 먹는 줄 알고 있을 거다. 대학 다 떨어졌을 때 나를 쏟아놓을 무언가가 필요해서 무용을 배웠던 건데, 연기 대신 무용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그것도 차암…. 이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하지 않고서는. (웃음)

-목화에 입단했을 때 나이가 어떻게 됐나. =스물아홉 정도?

-일찍 들어간 편은 아니다. =나이 먹고 들어간 거다. 게다가 거기 되게 엄하다. 다른 선배들에 비해 오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빡세게 공연했다. 오태석 선생님이 예뻐해주신 것도 있고…. 들어간 지 얼마 안 돼서 좋은 역도 많이 하고 좋은 작품도 많이 했다. 많이 배웠다. 그래서 지금도 선생님을 뵙기가 죄송스럽다.

-무엇을 가장 크게 배웠다고 생각하나. =선생님은 살아 있는 연기를 계속 원하셨던 것 같다. 누구나 다 공감하면서도 어떻게 저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지? 하고 묻게 만드는 연기. 항상 의심하라고 하신다. 무대 올라가기 전까지. 사실 연습을 어느 정도 하고 나면, 이건 이거겠지, 하게 되는 게 있다. 선생님은 그런 걸 항상 체크하신다. 목화의 연극들은 장기 공연을 간다치면 초반 공연과 후반 공연이 다르다. 이야기 자체가 바뀌는 경우도 있고. 달궈진 프라이팬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무대 위에서 머리가 펄떡펄떡 뛰어야 된다라는 거다.

-좋은 극단에서 연기를 배웠고, 출연작들이 대부분 좋은 흥행성적을 냈고, 본인의 캐릭터와 연기에 대한 평가도 좋았다. 영화배우로서 이제 다른 것을 보여줄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것 같다. =<왕의 남자>를 보고 몇 사람이 그러더라. 예전에 연극무대에서 나를 볼 때가 좋았는데 이번 영화에서의 모습이 그때 목화에서 보던 해진씨 모습인 것 같아 좋았다고. 날 아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했다. 주연할 때 되지 않았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위적이면 다 부작용이 있다고 생각하고, 나에겐 아직 때가 오지 않은 거라고 생각한다. 순리, 인연. 나이 들면서 그런 말들을 점차 믿게 된다. 나태해지지 않으면서 무리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까지 걸어온 것도 힘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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