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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식] “지금, 미치도록 연기가 하고 싶다”

<마을금고연쇄습격사건>으로 돌아온 이문식

오랜만인 줄 착각했다. 이문식은 올해 1월 개봉한 <마파도2>에도 나왔고, 드라마 <쩐의 전쟁>에도 특별출연으로 등장했다. 그가 일상생활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은 고작해야 10개월 정도. 그런데도 그의 얼굴이 오랜만이라고 느꼈던 것은 아마도 그의 2006년이 매우 떠들썩했기 때문일 것이다. <공필두>로 생애 첫 주연작을 맡았고, <구타유발자들>로 이전에 보여준 코믹 조연배우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연기를 보여주었는가 하면, 이준기와 함께 출연한 <플라이 대디>에서는 17kg을 감량하며 신체의 한계에 도전했다. 드라마 <101번째 프로포즈>도 그의 2006년을 바쁘게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한 여자를 향한 애달픈 사랑을 가꾸던 달재는 이문식 자신도 “이 얼굴로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이라니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을 정도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인물이었다. 하지만 모든 작품들은 “장렬히 전사했고”, 그 탓에 많은 언론들은 그가 연기생활의 기로에 놓였다고 서둘러 말했다. 2007년이 그에게 한가한 해였던 데에는 그런 영향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오히려 가족과 함께 보낸 지난 10개월이 전화위복의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자빠진 김에 쉬어간다고, 나에게는 충전하는 시간이 된 것 같다. 연기도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날 때 하는 것과 지칠 때 하는 것이 매우 다르다. 지금은 그 어느때보다 미치도록 연기가 하고 싶은 시기다. (웃음)” 그는 오는 11월15일 개봉하는 <마을금고연쇄습격사건>을 시작으로 다시 바쁜 생활로 돌아갈 예정이다. SBS 드라마 <일지매>에서는 극중 이준기가 연기하는 일지매의 아버지를 연기하고, 내년에 촬영할 2, 3편의 영화가 준비 중이다. 2008년을 위해 부단히 몸을 만들고 있는 그의 새로운 다짐을 들어봤다.

-머리를 기른 모습은 처음 본다. =영화 때문에 길렀다. <시실리 2km>의 속편이 계획되어 있는데, 촬영이 좀 늦어져서. 이렇게 길러본 게 난생처음인데, 평소에는 봐주기가 정말 힘들더라. 그나마 오늘은 미용실에 가서 만지고 왔으니 조금 나아 보이는 거고. (웃음) 집에서 이런 머리를 관리하는 건 정말 힘들더라.

-<마을금고연쇄습격사건>의 촬영이 올해 2월에 끝났고, <마파도2>도 2월에 개봉했다. 그동안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겠다. 주로 어떤 일로 보냈나. =애들이랑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다. 요즘 애들을 공동육아시설에 보내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과천에 일종의 대안학교가 여러 군데 있다. 일반 유치원과 다르게 부모들이 출자금을 내고 한곳에서 아이들을 같이 키우는 거지. 그 학교에 아빠들 모임이 있는데, 거기에 어울리면서 미끄럼틀도 만들도 잡초도 제거하며 지냈다. 그러다 시간나면 산에도 가고. 예전에는 바빠서 생각도 못했던 일들이었는데, 나름 가정에도 충실할 수 있는 시간이었지.

-술을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자주 마실 시간은 없었겠다. =공동육아모임에서 다른 아빠들이랑 자주 마셨다. (웃음) 그런데 이분들하고는 술을 마셔도 정말 건전하게 놀 수밖에 없다. 과천 시내는 10시가 넘으면 유흥가가 모두 문을 닫아버린다. 학교 터에 앉아서 고기 굽고 막걸리 마시는 게 다였지 뭐. 그러다보니 아내도 좋아하더라. 자기가 지켜보는 곳에서 술을 마시니까. (웃음)

-<마을금고연쇄습격사건>의 시나리오는 어떻게 봤나. =<플라이 대디>랑 비슷하게 딸을 둔 아버지의 이야기다. 연달아 아버지 역이 들어오니까 내가 벌써 그 정도 나이가 됐나 싶더라. 아직 멜로도 제대로 안 해봤는데 말이지. (웃음) 그래도 주인공인 배기로라는 남자에게 다양한 모습이 보였다. 아무래도 애를 키우는 입장에서 죽어가는 딸을 살리려는 아버지의 고통이라는 게 공감이 되기도 했고. 또 박상준 감독이 나와 백윤식 선생님을 모델로 했다고 하더라.

-<플라이 대디> 당시 인터뷰에서 “세상을 꿋꿋하게 버티며 살아가는 인물”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이번의 배기로도 영락없이 근성으로 버티는 소시민이다. =내가 살아온 세월이 그래서 끌리는 것도 있다. 어차피 사람은 살아온 만큼의 시각을 갖게 되지 않나. 인생에서 우여곡절을 많이 겪다보면 세상을 보는 시각이 깊고 넓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본다면 나는 매우 험난하게 살아왔지만, 배우로서 복받은 게 아닌가 싶다. 어차피 한세상 살다가 가는 건데, 어느 정도 득은 있어야지.

-<범죄의 재구성>이 많이 생각나지는 않았나? 은행강도라는 소재도 그렇고, 함께 출연한 백윤식이나 김상호도 <범죄의 재구성>에서 함께했던 배우들인데. =그렇지는 않았다. <범죄의 재구성>의 얼매와 배기로는 매우 다른 인물이다. 배기로는 딸과의 관계 이외에 친구랑 만나 술 한잔 마시는 등의 일상생활이 전혀 없는 남자다. 어떻게 보면 정말 답답한 사람인거지. 그에 비하면 얼매는 마약까지 하면서 나름대로 자기 인생을 즐기는 사람이 아닌가. (웃음) 물론 그때 함께했던 배우들을 다시 만난다는 게 어느 정도는 위험요소가 될 수도 있다고는 생각했다. 만약 <범죄의 재구성>과 비슷한 캐릭터로 구축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영화가 될 테니까. 하지만 배기로의 캐릭터에 집중하다 보면 <범죄의 재구성>은 크게 떠올릴 일이 없었다.

-답답한 남자라는 면에서 배기로는 드라마 <101번째 프로포즈>의 달재와 비슷해 보였다. 달재의 일상에서도 가장 많은 부분은 잠자리에 누워 수정을 생각하는 시간이다. 영화에 출연했던 문성근보다는 그 캐릭터에 훨씬 어울려 보이더라. =칭찬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네. (웃음) 나는 달재도 답답한 면이 많아 보였다. 달재가 주도적으로 사랑을 풀어가지 못하지 않나. 물론 어떤 측면에서는 나랑 비슷하기도 하지만, 왜 이렇게 풀어야 하는 걸까 생각을 많이 했다. 사실 이전에 맡았던 배역들은 나도 신나서 연기했던 게 많았다. 주로 외향적인 인물들 아닌가. 나는 평소에도 말을 많이 못하면 우울해지거든. (웃음) 그래서 <마을금고연쇄습격사건> 때는 일부러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았다. 일단 사람들이 있으면 말이 많아지니까. (웃음) 그냥 혼자서 매일 밤 과메기에다가 복분자주 2잔 마시고 자버렸지.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지금껏 연기한 인물들 가운데 <황산벌>의 거시기가 가장 신나지 않았을까 싶다. 말도 많지만, 욕도 원없이 하는 캐릭터 아닌가. =일단 몸으로 부딪히면서 연기를 해야 뭔가 열심히 일한 것 같은 느낌이다. 거시기가 그런 캐릭터였지.

-만약 배기로가 처한 상황에 실제로 놓인다면 받아들이는 방식도 다르겠다. =술에 빠져 살지 않았을까? (웃음) 배기로는 바라볼 게 딸밖에 없는데다가 다른 낙도 없는 남자다. 촬영하면서 감독님한테, 도대체 이 남자는 왜 이러고 사냐고, 하다못해 동네 친구라도 만나서 술 한잔 먹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물론 술로 고통을 푸는 건 어디까지나 내 방식인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훨씬 많겠지.

-이번 영화에서는 코믹 연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코믹스러워 보이려는 기색도 없어서 의외였다. =사실 현장에서 많이 고민했던 부분이다. 아무래도 관객은 어느 정도 코믹하고 재밌는 걸 원할 테니까. 하지만 애가 아파서 수술비를 마련하려고 사채를 끌어다쓰고, 그것까지 도루묵이 돼버린 남자가 과연 코믹해질 수 있을까 싶더라. 나도 애를 키우다보니 느낀 건데, 정말 아이와 관련된 문제에서는 가벼워 질 수가 없다.

-배기로는 지금껏 해왔던 역할처럼 역시 현실에 상처받는 억울한 소시민이다. 그런 이미지로 배우생활의 전성기를 가졌지만, 오히려 그렇게 각인되버리는 것에 대해 아쉬움도 있을 것 같다. =당연히 아쉬운 게 많다. 하지만 일단 그외 다른 배역이 들어오지 않는다. <구타유발자들>이 유독 특이한 케이스였던 거지. 항상 시나리오를 받아 읽어보면 나에게 주어진 역할보다는 다른 배역이 눈에 들어오곤 한다. 아무래도 감독들은 나한테 <황산벌>의 거시기 같은 모습을 강하게 느끼는 것 같다. 일단 잡초가 연상되는 인물들 아닌가. 밟아도 밟아도 기어이 올라오는…. (웃음) 그런 만큼 선택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었지.

-<구타유발자들>에서는 직접 옷을 벗고 찬물에 들어가는 장면을 제안했었다. 그때는 그런 변화에 대한 욕구가 강하게 치밀어올랐던 건가. =배우의 카타르시스라고 해야 하나. 사람이면 누구나 잠재되어 있는 악이 있다. 때로는 차를 몰고 가다가 화가 나서 누구를 때리고 싶기도 하고, 살인을 하고 싶거나 돈을 훔치고 싶은 충동도 있다. <구타유발자들> 이전에 연기한 캐릭터들이 외면으로 드러나는 이문식을 보여준 것이었다면 <구타유발자들>의 봉연은 내 안에 있는 더러운 모습들을 드러낸 거였지. 그래서 정말 많은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순박한 캐릭터를 도맡았던 배우가 했기 때문에 봉연의 캐릭터가 더욱 생생해 보인 것 같은데. =그래서 관객이 많이 당황했지. 그 때문에 영화가 흥행에 실패했을 테고. (웃음)

-<마파도2>가 흥행에 실패했을 때는, ‘흥행보증수표, 왜 이러냐’는 식의 이야기가 많았다. 이미 2006년에 <공필두> <구타유발자들> <플라이 대디> <101번째 프로포즈가>가 모두 흥행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첫 단독 주연작이 생겼고, 멜로드라마의 남자주인공까지 한 만큼 2006년이 매우 인상적인 해였을 텐데. =사실 욕심도 많이 있었다. 자기가 참여한 영화가 흥행하는 걸 바라는 거야 인지상정 아닌가. 그때 언론들이 그렇게 이야기한 게 정말 아프기도 했다. 부담도 많이 됐고, 많이 외로웠다. “기로에 선 이문식, 그래서 배기로를 연기하나?” 이런 기사도 있었다니까. (웃음) 하지만 연기생활의 한 부분으로 봤을 때는 이런 시기도 있는 게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어차피 나는 연기를 계속할 거니까. 사실 <마을금고연쇄습격사건>도 흥행이 잘 안 되거나, 비난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할 몫은 영화를 촬영하는 과정에서 이미 녹아들어갔다. 그외의 것은 그저 달게 받아야 하는 것이겠지.

-그때는 어느 출판사로부터 에세이집을 내자는 제의까지 받았다고 하던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내가 그럴 만한 역량이 되는 사람이 아니지 않나. 만약 한 여든살쯤 되면 또 모르겠는데, 지금 내가 남들에게 이렇게 살아왔다고 이야기하는 건 터무니없는 짓이다. 물론 지금껏 살아오면서 남들이 겪지 않는 특이한 일들을 많이 만났으니까 나는 재밌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독자들이 볼 때 뜬금없는 책이지 않겠나. (웃음)

-하지만 당시에는 조금 공중에 떠 있는 기분도 있었을 것 같다. =사람이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아 있으면 눕고 싶은 거 아닌가. <마파도>가 흥행했을 때만 해도 기분이 좀 달랐다. 이문식이 흥행배우다, 출연만 하면 대박이고, 코믹 연기의 귀재 이런 식으로 사람을 띄워주는 게, 사실 그게 달콤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공필두>가 안 됐을 때 심하게 충격을 받았지. 거기에 <플라이 대디>로 한대를 더 맞고, 드라마까지 안 되면서 도대체 원인이 뭘까 생각하게 되더라. 내 스스로도 초심을 잃고 살았던 게 아닌가 싶었다. 한때는 연기 자체에 희열을 느끼고 살았지만, 영화를 하면서 사람들이 알아주고 그러니까 다리품을 빼려고 한 게 아니었을까. 이제는 나를 더욱 제어해야 할 시기인 것 같다. 앞으로는 연기 잘하는 배우에 방점을 찍고 살아야지.

-돌이켜보면 코믹 연기로 인기를 얻은 조연배우들이 같은 캐릭터로 연명하다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주연으로 올라가도 빛을 보지 못하고, 되려 조연자리까지 잃는 배우도 있다. 본인도 그런 상황을 경계하지는 않나. =물론 있다. 사실 나는 운이 좋았던 면이 큰 배우다. <달마야 놀자> <공공의 적>에 출연하면서 많은 관객이 좋아해준 덕분에 이후에도 연기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다. 게다가 <마파도>는 흥행도 했다. 물론 지난해는 외적으로 실패한 영화들이 많았지만, 배우로서는 그런 영화들에 출연하면서 노력했던 과정이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구타유발자들>은 물론이고 <플라이 대디>에서는 다른 건 빼더라도 살을 빼면서 신체적인 한계에 도전해보기도 했다. 설령 이번 영화가 잘 안 된다고 하더라도, 이런 영화를 찍으면서 무엇을 해봤다는 것에 방점을 찍고 싶다. 물론 내가 하는 영화가 다 흥행이 잘됐다면 이런 생각을 안 하겠지. 잘 가고 있는데. 뭐 하러 그런 고민을 하겠나. 하지만 한번씩 아프게 얻어맞다보면 이런 반성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물론 꽤 아픈 한해였기는 했지만. (웃음)

-드라마 <일지매>에서 일지매의 아버지로 나온다고 하던데, 어떤 캐릭터인가. =원래는 광대로 세상을 떠돌던 남자인데, 양반집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양반한테 당해서 임신을 한 여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게 된다. 사랑이 있는 게 아니라, 양반집 패거리들이 여자를 죽이려고 하는데 내가 발견하고는 데려와서 같이 사는 거지. 그러다보니 여자는 나한테 애정이 없다. 심지어 여자가 낳은 애도 원래 아들과 양반집 아들뿐이고, 나와의 사이에서 낳은 애는 없다. 그래서 감독님한테 이 두 사람이 몇년씩이나 같이 살면서 한번도 잠자리를 안 한 거냐고 묻기도 했다. (웃음) 어쨌든 이번에도 그쪽은 알아주지 않고 일방적으로만 사랑하는 남자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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