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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챌린저스’, 페로몬과 스태미나간 지칠 줄 모르는 관능의 듀스
정재현 2024-04-24

2019년 8월 여름, 미국 뉴욕주의 뉴로셸에서 US오픈 진출을 위한 테니스 챌린저 대회의 결승전이 열린다. 코트에 선 두 선수는 패트릭 즈바이크(조시 오코너)와 아트 도날드슨(마이크 파이스트). 아트의 코치인 타시 덩컨(젠데이아)은 초조한 표정으로 관중석에 앉아 둘의 접전을 지켜본다. 셋의 내막은 얽히고설켜 있다. 타시와 아트는 코치와 선수 관계인 동시에 딸 하나를 둔 부부 사이다. 아트는 부상 이후 슬럼프에 빠져 있고 아내 타시와의 관계도 권태기에 접어들었다. 타시는 코치로서 이번 테니스 챌린저 대회가 아트가 선수로서 재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판단해 무력한 남편을 채근한다. 한편 대회 참여 전날 경기장 근처 숙소에 묵을 자금조차 없는 빈털터리 패트릭은 챌린저 대회의 참가 수당 수령이라도 절박한 상황이다. 승부욕에 불타는 패트릭은 사실 테니스 학교 시절부터 아트와 룸메이트로 지내온 죽마고우‘였’다. 청소년기 내내 단식 선수이자 복식팀으로 활약하며 ‘불과 얼음’ 콤비로 통했던 두 단짝은 고등학교 시절 한 테니스 대회에서 모두를 매혹하는 테니스 신동 타시와 처음 만난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동시에 타시와 사랑에 빠진 두 남자는 경기 후 이어진 애프터 파티에서 타시와 대화할 기회를 어떻게든 틈타 구애한다. 그날 이후 영화의 현재 시점인 2019년까지, 세 남녀는 아슬아슬한 삼각관계를 이어간다.

한여름에 벌어지는 터질 듯한 욕망과 숨 막히는 관능을 루카 구아다니노만큼 일관되게 탐구해온 감독이 21세기에 존재할까. <챌린저스>는 감독의 이름을 확인하지 않고 극장에 들어갔다 하더라도 구아다니노의 인장이 선명하게 내리쬐는 영화다. 그가 <아이 엠 러브>(2009), <비거 스플래쉬>(2015) 등에서 보여준 은밀하고 서늘한 육욕,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과 <서스페리아>(2018) 혹은 <본즈 앤 올>(2022) 등에서 표출한 청춘의 육체를 향한 탐미가 <챌린저스>에선 세 남녀의 삼각관계로 확대된다. 서로를 갈망하는 남녀 사이엔 헤테로섹슈얼의 유혹은 물론 호모섹슈얼의 투기까지 팽팽하다.

<챌린저스>는 루카 구아다니노의 영화에 쉬이 예측 가능한 ‘감각의 제국’을 가뿐히 넘어서는 역작이다. <챌린저스>엔 구아다니노에게 기대해본 적 없는 영화적 박력이 존재한다. 경기 세트별로 다양한 시간대를 오가는 플롯 트위스트와 편집, 타시의 시선에 따라 역동하는 카메라 그리고 캐릭터들의 정념을 남김없이 충동질하는 스코어가 숨 쉴 틈 없는 영화에 박진감을 더한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에 급히 전환되는 어떤 POV숏이 <챌린저스>의 충격에 방점을 찍는다. 요컨대 <챌린저스>는 페로몬과 스태미나가 서로 지칠 줄 모르고 내내 마찰하는 관능의 듀스다.

“ 테니스는 관계야.”

어떻게든 타시의 환심을 사려는 두 수컷에게 타시가 처음 건네는 조언. 타시는 선수간 역학의 본질을 꿰뚫고 경기에 돌입하는 타고난 플레이어다. 타시는 영화 속 등장인물 중 자신이 원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모두 파악하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코트 안팎에서 관계의 주도권을 쥘 수밖에 없는 천성이다.

CHECK POINT

<매치 포인트> 감독 우디 앨런, 2005

테니스는 영화화하기 좋은 구기 스포츠다. 선수도 단출한 데다 공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어 촬영이 효율적이다. 라켓과 공의 무게는 배드민턴보다 무거워 서브와 리시브만으로 긴박한 편집 속도와 육중한 스릴을 동시에 만들 수 있다. 무엇보다 테니스웨어는 그 어떤 운동복보다 배우의 태를 한껏 살릴 수 있다. 절로 아찔한 스포츠인 테니스에 삼각관계의 치정이 뒤엉킨 <매치 포인트>는 우디 앨런이 21세기에 선보인 몇 안되는 음험하고 서늘한 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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