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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별한 청춘에 대한 이야기,<화장실, 어디에요?>
2002-11-26

■ Story

동동(아베 쓰요시)은 어려서 베이징의 한 공중화장실에 버려졌다가 할머니에게 발견되었다. 이후 ‘화장실의 신’이라는 별명을 얻은 동동은 장암선고를 받은 할머니를 위해 명약을 찾아 길을 떠난다. 동동의 친구들 역시 인도로 향한다. 동동은 부산에 도착한 뒤 김선박(장혁)을 우연히 만난다. 선박은 자신이 바다생물이라고 주장하는 한 소녀의 치료를 위해 한의원에 들렀다가 다시 동동과 재회한다. 동동은 뉴욕으로 향하고 소녀는 자취를 감춘다. 김선박의 친구인 조(조인성)는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베이징으로 떠난다. 뉴욕에 온 동동은 샘(이찬삼)을 만나는데 그는 살인청부업자다. 샘은 여자친구를 위해 마지막 살인을 하려던 참. 샘은 살인장면을 비디오카메라에 담아줄 것을 동동에게 청하지만 엉뚱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 Review

현대인은 의외로 화장실이라는 공간을 선호한다. 개인이 타인과 완전히 분리될 수 있으며 고요한 장소라는 게 중요한 이유라고 한다. 영화 <화장실, 어디에요>에서 우리는 많은 화장실을 구경하게 된다. 베이징의 공중화장실은 영화 첫 에피소드에 등장한다. 이곳은 칸막이가 없으며 사람들이 횡으로 줄지어 앉아 볼일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과거의 중국 여성들은 그곳에서 아이를 낳곤 했다. 여성들의 힘이 미약했던 시대다. 한국의 화장실도 소개된다. 부산 바닷가에 위치한 이동식 화장실이다. 해변에 있어 파도소리를 들으며 볼일 보기 딱 좋다. 이 밖에도 영화는 아시아 각 지역의 화장실을 스케치한다. 그렇다면 ‘변태영화’인가 그런 예상은 잠시 접어놓는 것이 좋다. <화장실, 어디에요>는 영국영화 <트레인스포팅>(1997)의 끔찍한 화장실 문화, 그리고 변기를 통해 신세계로 탈출하는 몽환적 이미지를 기억하는 이라면 흥미로울 것이다.

<화장실, 어디에요>는 줄거리를 정리하기 쉽지 않다. 영화엔 여러 등장인물이 얼굴을 비춘다. 각기 국적이 다르고 살고 있는 장소도 천차만별이다. 베이징의 동동은 외국인 친구들과 노닥거리다가 가족이 병들자 마음을 고쳐먹고 한국으로 여행을 떠난다. 부산의 김선박은 역시 별볼일 없는 젊은이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성과 데이트를 즐긴다. 그의 친구는 동동이 떠난 베이징을 향해 길을 재촉한다. 이들이 경험하는 일은 일반적인 상식과는 관련이 없다. 영화엔 환자, 즉 암을 앓는 아이, 혼수상태의 노인, 그리고 누워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는 사람 등이 그림자처럼 존재한다. 동동과 김선박 등은 환자의 완치를 위해 방법을 모색하다가 명약을 찾을 결심을 한다. 명약의 종류는 여러 가지다. 베이징에선 소변이 몸에 좋다는 소문이 퍼져 화장실 도난사건이 발생하고 인삼의 효험에 대한 어느 한의사의 일장연설도 곁들여진다. 배설과 섭취, 그리고 생로병사의 모티브가 어지럽게 얽혀 있는 것이다.

<화장실, 어디에요>는 프루트 챈 감독의 영화다. 프루트 챈 감독은 <메이드 인 홍콩>(1997)과 <리틀 청>(1999) 등 ‘홍콩반환’ 3부작을 만든 적 있다. 아마도 그의 전작을 한편쯤 챙겨봤다면 이번 신작은 낯설게 보이진 않을 것 같다. 프루트 챈 감독은 전형적인 내러티브영화의 문법을 완곡하게 따르면서 극의 플롯을 모자이크 수준으로 잘게 쪼개는 연출 스타일을 지녔다. <화장실, 어디에요>에서 극의 분절은 전작에 비해 눈에 띄게 세밀해졌다. 베이징의 거리를 카메라로 비추다가 부산과 뉴욕 등으로 갑자기 공간이 이동한다. 이는 영화가 지역성, 특히 아시아의 지역성을 부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의 넓은 평원에서 대도시의 풍경으로 훌쩍 이동하는 쾌감은 절반 정도 다큐멘터리처럼 촬영된 이 영화를 지탱하는 주요한 장치로 기능한다. 여기엔 각 지역의 전설과 신비로운 이야기가 끼어들기도 한다. 몰래 아기를 낳는 여성에서 무당에 관한 에피소드까지. ‘홍콩반환’ 3부작 시절에 비해 프루트 챈 감독의 관심은 사실주의로부터 판타지의 영역으로 슬그머니 경계를 확장하고 있다.

<메이드 인 홍콩> 이후 프루트 챈 감독에겐 청춘의 존재가 각별하다. 그는 무료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뒷골목 청춘들의 일상을 빠른 호흡의 영화로 포착하는 데 일가견이 있다. <화장실, 어디에요>에서도 젊음의 비상과 몰락, 그리고 성장은 적지 않은 무게감을 지닌다. 부산의 김선박이라는 캐릭터는 유독 관심을 끈다. 그는 바다의 생물임을 주장하는 여성을 만나고 그녀를 좋아하게 되며 흠모하게 된다. 이 여성은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으면 신체에 아무런 ‘뼈’가 없다는 결과가 나온다. 김선박은 바닷가의 이동식 화장실에서 여성과 대화한다. 둘이 함께 화장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김선박이 말을 걸면 바다와 연결된 변기를 통해 여자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화장실이라는 공간을 일방적인 배설이 아니라 소통의 공간으로 사고할 수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다시 말해 <화장실, 어디에요> 속 청춘들이 배설의 의미를 기성세대와 다르게 사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더이상, 화장실은 화장실이 아니다.

(왼쪽부터 차례로)♣ 부산의 젊은이 김선박은 자신이 바다생물이라고 말하는 이상한 소녀를 만난다.♣ 여자친구를 위해 마지막 살인을 하려는 샘은 동동에게 그 현장을 카메라로 기록해달라고 청한다. 바다에서 왔다는 소녀는 이동화장실을 통해 김선박과 대화한다.

<화장실, 어디에요>는 디지털과 합작영화의 키워드를 새삼 인식하게 한다. 프루트 챈 감독은 초점이 약간 흐린 사진 같은 화면으로 아시아 곳곳의 풍경을 담아낸다. 그것은 인상적인 여행사진의 연속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소니에서 만든 디지털카메라로 촬영되었다. 합작이라는 견지에서 영화는 자본과 배우, 연출자가 서로 다른 국적이 뒤섞여 있음에도 큰 혼란을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아시아적인 시선, 이라는 견지에서 <화장실, 어디에요>는 합작영화의 중요성이 부각될 때마다 재론할 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다. 프루트 챈 감독은 쉼없이 공간이동을 벌이는 이 쾌속 영화를 통해 생명과 오염의 주제, 그러니까 생물학에서 출발해 인류학적 고찰에 이르는 여행을 제안한다. 그것은 TV다큐멘터리 <동물의 왕국> 주인공이 갑자기 ‘인간’이 되어버리는 진기한 체험이다. 올해 베니스영화제 특별언급 부문 수상작.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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