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내 인생의 영화
위로가 필요해,<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2003-07-10

중학교 2학년인가 3학년 때였다. 시험이 끝나면 학교에서 단체로 영화관람을 가던 시절이었다. 일종의 위문공연이랄까. 중간고사가 끝나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고 온 다음날, 교실은 비비안 리의 가는 허리와 클라크 게이블의 콧수염의 매력을 상기하는 아이들로 여느 때보다 부쩍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영화평론가를 꿈꾸던 나는, 아이들의 반응이 그리 마뜩찮았다. 결국 클라크 게이블의 열렬한 팬이던 한 친구와 논쟁이 벌어졌다.

별로 대단치 않은 영화에 뭐 그리 수선이냐는 나와, 그 정도면 대단하지 뭘 더 바라느냐는 친구의 입씨름은, 마침내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귀착되었다.(아, 용감한 청춘들이여!) 영화가 뭐냐? 친구 왈, 영화는 오락이다. 나 왈, 영화는 교훈이다. 그렇다. 열다섯살에 친구와 나는 영화라는 주제를 통해 자신의 인생관을 피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찍이 <워터프론트>와 <젊은 사자들>과 <분노의 포도>를 통해 영화의 사회적 가치를 온몸으로 체득한 나는, 영화를 오락으로 격하시키는 친구의 발언에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친구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친구는 교훈을 얻느라 지친 인생에, 영화마저 교훈의 도구여야 한다면 도대체 우리의 삶은 어디서 위로를 얻고 웃음을 찾을 수 있는가, 물었다. 대부분의 논쟁이 그렇듯이, 승자도 패자도 없이 토론은 끝났다. 어쩌면 20여년이 흐른 지금도 그날의 풍경을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나의 쓰디쓴 패배로 끝났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성공보다는 실패에 집착하는 법이니까. 아무튼 우리는 서로를 승복시키지 못했다. 나는 그뒤로도 오랫동안 영화는 교훈이라고 믿었다. 당연히 영화를 보면서 존다거나 팝콘을 먹는다거나 어둠을 틈타 옆사람과 손장난을 한다거나 하는 ‘짓거리’는 용납할 수 없었다. 이만하면 가히 영화의 잔다르크라 할 만하지 않은가. 하나 이 순수의 결의를 속절없이 무너뜨린 것이 있으니, 그것은 세월이다. 그리고 무너짐을 부추긴 또 하나의 세력이 있었다. 바로 VTR이라는 흉물스런 기계의 등장이었다.

VTR의 발명이야말로 영화를 세속화시킨 가장 큰 전범이라 할 수 있다. 도대체 ‘다시 돌려보기’가 가능한 마당에 영화에서 더이상 어떤 긴장감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일요일 아침, 단잠을 뿌리치고 일찌감치 길을 나서 조조할인의 보너스와 함께 극장 한켠에 자리를 잡았을 때, 영화는 오직 그 순간 내 눈앞에서 단 한번의 설렘으로 다가온다. 운이 좋아 앉은 자리에서 내처 2회까지 본다 해도, 그것은 이미 조금 전의 영화와는 다른 새로운 발견과 감흥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단언컨대 이 말이 뭔 소린지 모르겠다는 사람은 영화를 한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것이니, 어디 가서 취미가 영화감상이니 하고 떠드는 일은 없어야 하리라.

그러나 VTR은 내 이런 도덕적 엄격함을 송두리째 앗아가고 말았다. VTR를 장만한 이후 더이상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한다. 소파 위에 비스듬히 누워서 VTR의 ‘재생’ 버튼을 누른다. 언제라도 ‘정지’ 버튼을 누를 수 있도록 리모컨은 배 밑에 깔고, 손 닿는 곳에 과자 봉지도 잊지 않는다. 화장실엘 다녀오기도 하고, ‘빨리감기’를 누르며 본전 생각을 하기도 한다. 최근엔 잠도 잔다. 이제야 나는, 삶은 위로가 필요하다는 친구의 역설을 이해하게 되었다. 영화는 교훈이 아니다. 나는 열다섯의 믿음을 마흔이 되어 배반한다. 그러나 마흔의 내 안엔 아직도 열다섯의 내가 숨어 있다. 섣부른 위로는 차라리 모욕이 된다고 믿는 내가 있다. 삶은 아직도 내겐 엄숙한 것이어서, 영화도 아직은 완전히 오락이 되지 못하는가 보다.

그런데 오락도 교훈도 어느 편에도 속하지 못한 내 영화, 내 인생이 이즈음 한 소식을 만났다. 일요일 대낮에 우연히 만난 찰리 채플린은 내가 세웠던 모든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돌아봄을 거부하고 오직 나아감만을 생각했던 채플린. 그 떠돌이의 어설프지만 당당한 발걸음에서 나는 내 인생의 영화를 꿈꾼다. 교훈과 오락이 행복하게 해후하는 그의 영화가, 고작 마흔의 나이에 본전 생각이나 하는 나를 일깨운다. 채플린이 일갈했듯, 죽을 때까지 우리는 모두 아마추어이니 무엇을 두려워하랴, 오직 나아감만을 믿을 뿐. 그렇다. 내 영화는 아직 진행 중이다. 레디 액션!

관련영화

김혜경/ 도서출판 서해문집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