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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치있게 관객을 자극해내기,<매치스틱 맨>
김현정 2003-10-15
■ Story

로이(니콜라스 케이지)는 광장공포증과 결벽증이 있는 사기꾼이다. 젊은 파트너 프랭크(샘 록웰)의 소개로 새 정신과 의사를 만난 로이는 상담을 하면서 14년 전에 헤어진 아내를 떠올리게 된다. 그녀는 그때 아이를 가지고 있었다. 문득 태어났을지도 모르는 아이의 안부가 궁금해진 로이. 그는 정신과 의사에게 부탁해 14년 만에 딸 안젤라(앨리슨 로만)를 만나고, 갑자기 집으로 쳐들어온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안젤라는 집안을 마구 헝클어뜨리지만, 로이는 불량소녀 같은 딸에게 애정을 느끼기에 이른다. 그리고 로이는 변하기 시작한다.

■ Review

작가 에릭 가르시아는 “우리는 괴물에게 매혹되듯 사기꾼들에게 매혹당한다. 다만 허구이기만 하다면”이라고 말했다. 가르시아가 맞았다. 심약한 사기꾼을 소재로 삼은 그의 소설 <매치스틱 맨>은 명성 높은 출판사 랜덤하우스를 포획했고, 출판되기도 전에 젊은 프로듀서 숀 베일리를 눈멀게 했으며, <글래디에이터> <블랙 호크 다운>을 만들면서 스펙터클에 몰두하던 리들리 스콧을 드라마의 마당으로 유혹했다. “하나, 둘, 셋”을 세면서 숨을 고르고서야 문을 열 수 있고, 장인의 솜씨로 사기를 치다가도 쏟아지는 햇빛에 세상 전부가 휘청거리는 듯한 충격을 받는 로이. <매치스틱 맨>은 대담해야만 하는 사기꾼을 이처럼 나약한 인간으로 만드는 모순을 자초함으로써 할리우드 최고의 재능을 사로잡은 것이다. 가르시아가 짜낸 이 촘촘한 바탕을 펼쳐놓은 <매치스틱 맨>은, 다양한 장르 사이를 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자체가 사기꾼인 것처럼 교묘하게 이야기들을 누비는 솜씨를 과시하는 영화로 태어났다.

잊고 있던 아이가 찾아온다는 설정 때문에 <매치스틱 맨>은 <키드>(브루스 윌리스의 <키드>)처럼 감상적인 영화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 평론가 로저 에버트도 <매치스틱 맨>을 평하면서 “영화 세편을 만들기에도 충분한 이야기”라고 운을 뗐을 정도다. 중년의 위기에 처한 남자, 신경증을 앓는 사기꾼과 그를 스승으로 여기는 파트너, 14년 만에 처음 만난 부녀가 이 복잡한 이야기를 떠받치는 세개의 기둥일 것이다. 그러나 <매치스틱 맨>은 사기꾼 영화라는 전제를 놓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매우 재치있는 방식으로 간간이 관객을 자극한다. <매치스틱 맨>의 작가는 니콜라스와 테드 그리핀 형제. 이중에서 테드 그리핀은 유머있고 기발한 영화 <오션스 일레븐>의 시나리오를 썼던 사람이다. 그가 다시 손을 댔으므로, <매치스틱 맨>은 부정(父情)에 눈뜨는 로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다가도, 조그맣고 귀여운 사기 한 토막을 자연스럽게 끼워넣을 수 있었다. 안젤라가 로이를 졸라 사기 수법을 배우고 시험해보는 이 에피소드는 <스팅> 못지않은 사기꾼 커플이 태어나리라고 예고하는 듯도 하다. 지겨워지기 직전 농담을 하고, 과하다 싶으면 물러난다. 형제는 리들리 스콧이 “매우 드라이한 유머”라고 만족해한 시나리오를 써냈다. 그리고 여기에는 밝혀서는 안 되는 반전도 한 가지 있다.

<매치스틱 맨>은 그 반전 때문에 또 한번 <키드> 같은 디즈니 영화로부터 멀어진다. 리들리 스콧은 성숙한 남자다. 그는 <글래디에이터>에서 모든 것을 잃은 남자를 애통해했고, <블레이드 러너>에서 한정된 수명에 몸부림치는 리플리컨트들에게 비를 뿌렸다. 그런 리들리 스콧은 천진한 아이가 나타난다고 해서 마음 밑바닥 착한 심성이 불쑥 들고 일어난다는 판타지 같은 건 모른다. 로이는 늙고 소박하고 순진한 사람들에게서 돈을 뜯는 나쁜 놈이고, 몇백달러씩 사기친 돈을 착실하게 모아 집을 장만하는 소심한 놈이며, 그러면서도 가책을 받아 온갖 노이로제에 시달리는 사기꾼답지 못한 놈이다. 로이가 변한다면 그건 비로소 그 자신을 인정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사기술을 유산으로 물려주고 싶어하지 않는 로이는, 아이를 얻음으로써 아이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는 이제야 충격을 견딜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할 뿐이다. <매치스틱 맨>은 반전을 겪으면서 환상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냉소한다.

그러나 쉰을 넘은 스콧은 성숙을 넘어 노쇠의 단계로 다가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비정한 <매치스틱 맨>은 ‘1년 뒤’라는 자막과 함께 부드럽고 온화한 결말을 맺는다. 호평한 평론가들이 하나같이 아쉬워하는 그 결말은 단호한 리들리 스콧과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리둥절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동정과 공감, 한층 강인해진 성정이 깃든 니콜라스 케이지의 눈길은 이 영화에 리들리 스콧말고도 또 한명의 장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일깨운다. 카펫에 떨어진 빵가루가 자신을 덮치는 것처럼 겁을 먹는, 전화기를 낚아채 뻔뻔한 거짓말을 쏟아내는, 혼자 커버린 딸에게 몰래 웃어주는, 니콜라스 케이지는 액션영화의 총알처럼 소모되어서는 안 될 배우다. 리들리 스콧은 “니콜라스 케이지는 캐릭터에 여러 층의 깊이를 부여한다”고 말했다. <매치스틱 맨>은 감독과 작가, 배우, 원작자, 음악 어느 하나라도 빠졌다면 무척 서운했을 보기 드문 합작품이다.

:: 조연 배우들

귀여운 안젤라, 사실은 투투(22)랍니다

<매치스틱 맨>은 조연들에게도 넓은 품을 내어주는 영화다. 감독의 지원에 힘입어 빛을 발하는 이 배우들은 <매치스틱 맨>에 결코 적지 않은 쾌감을 더한다. 프랭크를 연기한 샘 록웰은 뒤늦게 관심을 받고 있는 대기만성형 배우다. 부모가 모두 배우였던 록웰은 꼬마였을 때부터 연극이나 TV시리즈에 출연했지만, 데뷔하고 십년이 넘도록 <미녀 삼총사> <갤럭시 퀘스트> 등의 조연에 머물렀다. 그에게 결정타가 된 영화는 조지 클루니가 감독한 <컨페션>. 그는 비열하지만 동정이 가는, 어쩌면 사기꾼이었을지도 모르는 실존인물 척 배리스를 연기했고, 니콜라스 케이지의 파트너로 등극했다. 리들리 스콧은 그를 “정직하고, 조용하고, 시끄럽고, 분노에 찬 인물을 한꺼번에 연기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조그맣고 깡마른 열네살 소녀 안젤라로 출연한 앨리슨 로만은 놀랍게도 스물두살 먹은 성인이다. 앨리슨 로만은 <애니> <사운드 오브 뮤직> 등에 출연한, 뮤지컬 배우로 먼저 각광받은 신인. 최근에는 미셸 파이퍼와 함께 <화이트 올랜더>에 출연했다. 낯익다 싶을 배우인 브루스 맥길은 <알리>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 <금발이 너무해2> 등에 출연해왔다. 샘 록웰과는 비평가들에게 환영받은 영화 <론 독>에서 먼저 인연을 맺은 사이. 부유하고 여유로운 사업가에서 난폭하게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로 변신하는 넓은 파장의 연기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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