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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자리를 놓고 벌이는 숨바꼭질,<실미도>
이른바 ‘과욕의 승부사’가 ‘한국형 블록버스터’로 다시 다듬어 내놓은 <해안선>.

영화가 시작되면 우리는 어둠이 내려앉은 숲을 가로질러 빠르게 이동하는 한 무리의 사내들을 보게 된다. 이들은 바로 “박정희 모가지 따러” 내려온 북한특수부대원들이다. 그 시간 월북한 ‘빨갱이’ 아버지를 둔 주인공 인찬은 누군가를 칼로 살해한 뒤 쫓기는 중이다. <실미도>의 오프닝은 서로 다른 공간에서 벌어진 이 두개의 사건을 서로 병치시켜 보여준다. 아주 상투적이기 짝이 없지만 그런대로 효과적인 교차편집을 통해서 말이다. 영화 <실미도>의 이 이상한 오프닝은 영화 전체를 요약해 보여주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곧이어 우리는 남파된 북한특수부대원들이 달성하지 못한 목적이 그 방향을 바꾸어 삼류인생 인찬의 간절한 소망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지켜보아야 한다. 따라서 <실미도> 오프닝에 묘사된 침투장면은 인찬이 끝내 이루지 못할 그 기괴한 소망- 주석궁에 침투해 김일성의 모가지를 따는 것- 을 거울처럼 뒤집어 반영하고 있는 상상적 이미지들의 연쇄에 다름 아니다.

<실미도>는 역사극이라기보다는 국가의 자리를 놓고 벌이는 숨바꼭질에 가까운 영화다.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절대 가시화되지는 않지만 가장 강력하게 텍스트를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기에 684부대의 31명의 훈련병들, 그들을 훈육하는 교관들, 그리고 중앙정보부의 기관원들 가운데 그 어느 누구도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이라 불릴 수 없다. <실미도>의 떠들썩한 이미지들과 그에 질세라 (어울리건 말건) 언제나 과잉으로 넘쳐나는 사운드 및 음악 뒤에 숨은 진정한 주인공은 바로 국가이다. 그것은 인격화되기를 거부하고 계속 그 정체를 바꾸어가며 ‘기능’하는 국가이다.

누가 뭐래도 <실미도>의 (좀 길다 싶은) 전반부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섬에 끌려온 일군의 남성들이 어떻게 마초적 동지애를 형성해가는가에 관한 장광설이다. 이때 훈련과정을 그토록 상세하게 묘사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이상하게도 그것은 큐브릭의 <풀 메탈 자켓>의 전반부처럼 훈련의 비인간적 속성을 고발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차라리 684부대원들이 진정 김일성을 암살할 수도 있었을 만큼 탁월한 인간병기였음을 입증하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한편 (좀 짧다 싶은) 후반부는 국가를 찾아나선 일군의 돈키호테들에 관한 로드무비이다.

기괴한 것은 강우석이 여기서 텅 빈 국가의 자리를 마련해두고 거기에 인물들을 차례로 대입하는 방식이다. 교육대장(안성기)이 그 자리에 놓여 있는 동안 국가는 하나의 통일된 인격을 지닌 존재로 구체화되지만, 그 자리가 중앙정보부의 관료에 의해 다시 채워지는 순간 국가는 하나의 허구가 된다. 따라서 684부대는 잠시 실체의 탈을 썼던 허구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허구가 될 수밖에 없다. 적어도 여기까지는 옳다. 그런데 별안간 조 중사(허준호)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면서 ‘못다 이룬 꿈’이 부서져가는 것을 애도하고 애석해하는 끔찍한 국가가 허깨비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 까닭에 <실미도>는 이중, 또는 삼중의 욕망으로 들끓는다. 그 하나는 국가에 의해 희생당하고 역사 속에 묻혀버린 비운의 684부대원들을 애도하고자 하는 것일 게다. 물론 이는 그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짭짤한’ 상업영화를 만들어보고자 하는 텍스트 외적인 욕망과 단단히 결부되어 있다. 그리고 가장 위험한 욕망인 동시에 오늘날 한국영화의 가장 이상하고 뒤틀린 욕망이 <실미도>를 단단히 사로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숨바꼭질하는 국가를 빌미로 죽음을 스펙터클화하려는 도착적인 욕망이다. 결국 <실미도>는 이루지 못한 강요된 꿈을 지닌, 국가에 의해 버려진 낙오자들이 벌이는 자해극에 다름 아니다.

영화 말미에 삽입된 자막을 통해 ‘조국’ 운운할 때는 어안이 벙벙해진다. 하지만 그보다 더 기괴한 것은 고무보트를 타고 북으로 향하다 김일성 암살계획의 취소소식을 전해 듣고는 안타까움에 절규하는 684부대원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것은 불필요할 뿐더러 용납되기 힘든 장면이다(차라리 그냥 훌쩍 건너뛰어 암살계획이 좌절된 뒤 무료하게 시간을 죽이고 있는 부대원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이 장면을 보면서도 <실미도>를 ‘국가가 개인에게 자행한 폭력이 초래한 비극에 관한 영화’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조 중사가 쏘아대는 기관총을 피해 파도 일렁이는 바닷물 속으로 뛰어든 부대원들은 그 와중에도 간절하게 제발 북으로 보내달라고 외친다. 이 장면은 거의 강요라 해도 좋을 만큼 우리로 하여금 그 부대원들의 감정에 가까이 다가가도록 만들고자 한다. 의도했건 아니건 간에 여기서의 메시지는 아주 노골적이다. 만일 국가가 일관성 있는 실체였다면, 우리는 진짜로 김일성이의 모가지를 딸 수도 있었을 텐데.

:: 684부대는 누구인가

임무는 김일성 암살, 작전명 '오소리'

실미도에 관한 이야기는 백동호의 책, 시사 다큐멘터리나 텔레비전 드라마, 그리고 영화 <실미도> 제작과정 중 그와 관련하여 언론에 실린 기사들을 통해 이제는 꽤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여하간 한번쯤 다시 실미도 부대원들에 대한 몇몇 역사적 사실들을 정리하고 영화를 보는 것도 나름대로 흥미로운 일이 될 것 같다.

먼저 실미도에 있었던 684부대의 공식명칭은 공군 제7069부대 소속 2325전대 209파견대이다. 684부대라는 명칭은 그것이 1968년 4월에 창설- 684부대의 창설에 빌미를 제공한 김신조 일당의 침투사건은 1968년 1월21일에 일어났다- 된 데서 유래한 것이다. 사형수, 무기수 및 일반재소자들로 구성되어 있던 이 특수부대의 임무는 김일성 암살 및 주석궁 폭파였으며 작전명은 오소리였다. 훈련병은 김신조가 이끈 남파특수부대원들의 수와 동일한 31명으로 구성되었으나, 훈련 도중에 사고로 죽거나 탈출하고 처형되기도 하여 최후까지 남은 것은 24명뿐이었다. 684부대가 최초로 북파를 시도한 것은 부대창설 이후 고작 4개월이 지난 뒤였으니, 그동안의 훈련의 강도가 어떠했는가를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계획은 취소되었고 훈련병들은 다시 실미도로 돌아와 새로운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러다 훈련병들이 부대의 기간병들 및 부대장을 몰살하고 섬을 탈출한 사건이 일어난 것은 1971년 8월23일이었다. 교육대장을 포함한 총 18명의 교관 및 기간병이 사살당하거나 익사했고 6명만이 살아남았다. 같은 날 오전 인천에 상륙한 24명의 훈련병들은 버스를 탈취해 서울쪽으로 향했고 그들을 막는 과정에서 군인들과 경찰관이 부상당하거나 사살되기도 했다. 그들은 서울로 진입하기에 이르렀으나 결국 교전 끝에 수류탄을 터뜨려 자폭하고 4명만이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1972년 3월10일, 살아 있던 4명의 훈련병들에게도 사형이 집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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