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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비주얼, 강종익 [2] - 빅 프로젝트2

우린 오직 영화만 한다

CG맨들이 으레 그렇듯이 강종익 또한 미대 출신이다. 홍익대 광고디자인학과 89학번인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만 하더라도 미술은 그저 취미로만 생각했다”. 미술 선생님으로부터 “미대에 진학하는 게 어떻겠냐”는 권유를 받고서야 그는 자신의 ‘재능’을 깨달았다. 돌이켜보면, 남다른 손재주는 순전히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초등학교 때에도 그는 방학숙제로 언덕의 경사도를 재는 각도기나 사제총을 만들어갔다. 그런 아들을 아버지는 항상 끼고 살았다. “집에 가면 아버지 군 시절 앨범이 있는데 그 안에 직접 그렸다는 그림들을 보면 재능을 물려받은 것 같긴 하다. 하여튼 어렸을 적에 놀러가고 싶어도 아버지는 나를 붙잡고 보일러 수리든 도배든 보조일을 시켰다.”

그래서인가. 미대에 진학하기로 했지만 그는 순수예술에 대한 동경이 별로 없었다. “회화보다 좀더 많은 사람에게 보이고, 나누는 디자인이 좋았다.” 그가 영화 CG 작업에 빠져들어 멈추지 않았던 것 또한 “지우개로 판 도장으로 위조 입장권 만들어 극장을 수시로 들락거리고, <스타워즈> 관련 기사를 스크랩하는 재미에 넋을 잃던” 유년 시절의 추억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1995년이었던가. 임권택 감독님이 직접 찾아오신 적이 있다. <축제>를 준비하시던 땐데. 나한테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가능하지 않은지 설명을 들으러 오셨다. 내 설명을 유심히 듣고 있던 감독님의 얼굴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데, 그동안 원하는 이미지를 카메라에 담지 못할 때의 아쉬움과 갑갑함이 느껴졌다.”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는 원초적인 기쁨은 다들 충무로를 떠나던 시절 그의 발목을 붙잡았을 것이다.

딴 데 관심 두지 않고 “오직 영화만 한다”는 강종익의 첫 번째 철칙도 그렇게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인사이트 비주얼 앞에 ‘디지털 필름 스튜디오’라는 말이 따라붙는데 괜한 말이 아니다. “하는 일에 비해 대가가 크지 않지만” 영화에 올인한다는 원칙은 지난 8년 동안 한번도 어기지 않았다. “주위에서들 그런다. 광고도 해야 돈 버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3, 4명이 광고 1편 하느니 그 인원으로 영화쪽 퀄리티를 더 높이는 게 장기적으로 회사에도 좋다고 본다.” <청연> <태풍> 두 작품에만 매진하고 있는 인사이트 비주얼의 경우, 최근에도 다른 제작사들의 제의를 받았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다작 또한 금물이다. 이러한 원칙이 인사이트 비주얼에 대한 신뢰를 높였을 것이다.

인사이트 비주얼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이펙트가 아니라 드라마’라는 점도 특이하다. 좋은영화 김미희 대표는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경우, 캐릭터에 맞는 액션을 미리 설정할 만큼 치밀하다”면서 “화려한 한 장면을 만드는 데 주력하지 않고 전체 드라마의 강약을 고려해 각 장면의 효과를 조절한다”고 말한다. 실제 인사이트 비주얼에서는 편집본을 기준으로 앞뒤 장면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주된 작업이다. 가능하다면 해당 장면에 쓰일 음악도 듣길 원한다. “전체 흐름을 보지 못하면 때론 오버를 저지르는 일도 발생하기 때문.” 반대로 <태극기 휘날리며>의 중공군이 밀려내려오는 경우, 너무 많은 디지털 캐릭터를 심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지만, 강종익은 이어지는 1·4 후퇴 장면을 고려하면 그것이 더 적절하다고 봤다.

인력, 장비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는 것도 장점이다. 인사이트 비주얼은 장비 구입에만 지금까지 20억원 이상을 쏟아부었다. 2명으로 시작했던 인력 또한 32명으로 늘었다. 일례로 <태극기 휘날리며>를 앞두고 그는 강남의 아파트 한채 값인 7억원 상당의 돈을 들여 디지털 색보정 장비를 들여왔다. “가끔 밑빠진 독에 물붓기 아닌가 싶을 때가 있지만 새로운 걸 위해선 끊임없이 투자를 할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강종익은 몇번 위기를 맞기도 했다. 3년 전엔 한 영화의 잔금을 받지 못해 물건을 사들여온 거래처로부터 압력을 받기도 했다. “은행에 갔는데 데스크의 여직원이 대출이 안 된다고 해서 돌아온 적 있다. 하는 수 없이 차도 팔고 누나가 오랫동안 부은 적금을 깨서 겨우 마련했다. 이런 일 하다보면 내가 꼭 이래야 하나 싶기도 하다.”

마우스 휘날리며 바다 건너로

<태극기 휘날리며>

강종익이 지난해 말부터 또 다른 궁리를 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광고의 경우, 초당 250만원에서 300만원까지 작업비를 받는다. 또 장비 편집은 8시간 기준으로 작업비를 따로 계산한다. 반면, “영화쪽에 그런 식으로 요구하면 천문학적인 계산이 나온다. 다뤄야 하는 데이터의 사이즈가 광고보다 크고, 퀄리티도 높아야 하고, 인력이나 장비도 더 넉넉해야 하지만, 단가가 그걸 못 따라간다. 어느 정도 우리가 안고 갈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일본에서 <태극기 휘날리며>의 CG 작업 사례 발표를 하기도 한 강종익은 앞으로 인사이트 비주얼의 파트너를 국내에 국한하지 않을 생각이다. “한국시장만 갖고선 불가능하다. 지난해 말부터 해외쪽을 염두에 두고 비즈니스를 진행 중이다.” 일본의 한 회사로부터 포스트 프로덕션 제의를 받은 강종익은 그쪽의 요구로 자세한 사항을 밝힐 수 없지만 올해 말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될 것 같다고 말한다.

“<청연> 촬영을 앞두고 미국에 갔을 때 <태극기 휘날리며> 데모 테이프를 보여줬더니 한 할리우드 스탭이 질문을 연달아 하더라. 그래서 40명이, 3개월 동안, 540컷을 만들었다고 했더니 기겁하더라.” 강종익과 인사이트 비주얼의 목표는 그러나 적은 예산에도 불구하고 괴력을 발휘하는 괴물 노릇이 아니다. <태극기 휘날리며>에 이어 <청연> <태풍>까지, 육해공을 섭렵하면 남은 건 지구 바깥 아니냐고 했더니 강종익은 “우주로 한번 가긴 가야죠”라고 웃으면서도, “무엇보다 회사가 체계적인 인프라와 시스템을 갖춘 스튜디오의 꼴을 갖췄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말한다. 할리우드와도 진정한 경쟁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고 싶다는 그의 꿈은 단지 한 개인과 한 업체의 소망에 그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꿈을 위해 8년 전 그러했던 것처럼 강종익과 인사이트 비주얼은 다시 스타트 지점에 서서 뛰어나갈 채비를 하는 중이다.

인사이트 비주얼의 빅 프로젝트 2

하늘과 공간, 솔기없이 잇기_ <청연>

START 강종익씨는 <청연>의 시나리오를 읽기 전부터 복엽기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프라모델 수집은 물론이거니와 2층 작업실 천장에도 커다란 모형을 달아놨을 정도다. “프로펠러가 푸덕푸덕 돌아가고, 지켜볼 수 있을 만한 속도로 날아가고, 캐노피 없이 사람이 직접 바람을 맞으며 비행하고. 슉, 하고 지나는 전투기에 대한 관심은 없었지만 이상하게 복엽기에는 끌렸다.” 그렇다고 단순한 애호가적 관심 때문에 “프로덕션 기간 중에 생일을 세번이나 맞게 된” 대장정을 기꺼이 수락한 건 아니다. “(한국 최초의 여자비행사였던) 박경원이라는 실제 인물의 삶이 드라마틱하다. 시나리오를 읽고 박경원이 추락해 사망한 장소에 가봤는데 정상에서 겨우 70, 80m쯤 떨어진 곳이었다. 저기만 넘었으면 되는 건데. 일본인들이 세워놓은 기념비를 보면서 불운한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었구나, 지금 태어났으면 여장부로서 이름을 날렸을 텐데 싶더라.”

IMAGE & POINT 주배경인 다치가와 비행장의 경우, 미국, 중국, 일본, 한국 등 무려 4개국에서 찍었다. 이를 한 공간의 느낌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인사이트 비주얼의 첫 번째 미션이다. “하늘도 다르고, 공기도 다르다. 그걸 하나로 묶어주는 게 관건이다.” 또 하나는 비행장을 규모있게 묘사하는 것이다. “윤종찬 감독님이 실제 비행장 사진을 보여주면서 스케일이 돋보여야 한다고 했는데. 거대한 격납고에 비행기가 쭉 서 있고 사진만으로도 엄청나게 크다는 걸 알겠더라.” 아무래도 가장 많은 관심이 쏠리는 건 복엽기의 비행일 터. “디테일이 중요하다. 사전 테스트부터 바람을 가르는 떨림, 턴할 때 꼬리날개의 움직임, 속도에 따른 프로펠러의 모양 변화, 불시착할 때의 덜컹거림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했다.” 현재는 800컷 되는 CG장면들을 숏 바이 숏으로 나누어 대입하는 일이 남았다. “비행기 말고도 신경쓸 게 많다. 비행대회 장면에선 <태극기 휘날리며>의 중공군만큼은 아니겠지만 엄청나게 많은 디지털 캐릭터가 등장한다.”

REFERENCE “복엽기가 나오는 영화가 많지 않았다. <진주만> 같은 경우 비행기가 다르고 나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적용하기 어려웠다. 다만, 묘사된 하늘은 조금 참고할 수 있었다.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동구권 영화가 한편 있는데, <진주만>보다 아날로그한 이펙트를 사용한 터라 도움이 됐다. 조종할 때 배경이 움직이는 느낌 등은 비행기 시뮬레이션 게임을 레퍼런스로 삼았다.”

바다와의 뜨거운 싸움_ <태풍>

START 강종익씨가 <태풍>을 선택한 데는 곽경택 감독(<닥터K> <친구> <챔피언> 작업)과의 오랜 인연 때문만은 아니다. 추측이지만, <태풍>은 <유령>이 보여줬던 물의 이미지를 넘어서고자 하는 그의 의욕이 이끈 선택이다. <퇴마록> 이후 한국영화 CG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영화 중 하나로 <유령>을 꼽는 그가 “<태풍>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비주얼에 대한 의욕이 솟아났다”고 말하는 걸 보면 그렇게 짐작할 수 있다. “바다에는 양보할 게 없어요. 어떤 요소를 더하거나 뺄 수 없으니까. 그 자체로의 자연을 묘사해야 하는 거죠.” 욕심만큼 부담도 만만치 않다. “지금까지 물속을 표현한 영화는 많지만 물 표면을 표현한 영화는 없었다”는 그는 촬영현장을 둘러보고서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구나” 실감했다. “<태풍>은 시각효과가 잘못 나오면 다른 부분이 아무리 좋아도 영화 자체가 흔들릴 수 있죠. 곽경택 감독님도 끊임없이 부담을 주지만, 스스로도 몇번이고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려고 해요.”

IMAGE & POINT 현대판 해적을 소재로 한 <태풍>에서 인사이트 비주얼을 괴롭히고 있는 건 물, 그 자체다. 그러다보니 “전장이 100m는 되는 큰 화물선인 태풍호가 바다의 표면에 부딪혔을 때의 움직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아직 촬영이 종료되지 않아 사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그는 제작진에 내려진 함구령 때문에 자세하게 털어놓진 않지만 몇번의 현장 방문을 통해 ‘태풍’의 윤곽을 상당 부분 잡아놓은 눈치다. “현장은 실제로도 물바다다. 8t의 물이 한꺼번에 쏟아지고, 물대포를 날리고, 여기에 비까지 뿌린다. 그런 상황에서도 배우들은 자신들의 연기에 몰두하고 있더라.” 그런 아수라 현장의 느낌이 그를 인도한 것일까. 그는 “주인공의 친구이자 적인” 태풍을 적절하게 묘사하려면 무엇보다 드라마의 흐름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떻게 묘사의 수위를 안배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드라마의 굴곡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작업을 진행할 생각이다. 효과가 감정을 압도해선 안 되고, 배경이 배우를 가려서도 안 된다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있다.”

REFERENCE “<퍼펙트 스톰>이나 <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 정도인데. 두 영화 모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비교하면 <퍼펙트 스톰>의 태풍이 그나마 참조할 만한 수준이다. <투모로우>의 경우, 해일이 밀려오는 장면이 있긴 한데 너무 짧고. 게다가 <퍼펙스 스톰>에 나오는 배가 고깃배 아닌가. 육중한 느낌을 줄 수가 없었다. 계속 고민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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