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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영화가 몰려온다 [1]
김현정 이종도 2005-06-21

형사영화 제작 러쉬, 그 이유와 현황을 알려주마

꿇어! 우형사, 강형사 납신다

안녕하십니까. 전국 방방곡곡에 널리 퍼질러 앉아 계신 독자 여러분. 한국 영화현장의 속살을 낱낱이 실시간으로 까발려드리는 충무로 사건 25시입니다. 오늘은 한국 영화사들이 형사들을 집중 양성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4년 전 조직폭력배들을 음성적으로 길러 큰 재미를 본 충무로 영화사들, 이제 경찰을 길러 전성기를 다시 누려보겠다는 건데요. 어째 4년 전 12월에 저희들이 무협지로 재구성한 조폭영화 프로그램을 재연하는 느낌입니다. 벌써 10군데에서 형사들을 양성하겠다고 나섰는데요. 양아치 출신 형사도 있고 30대 여성 강력반장도 훈련 중이라는군요. 벌써 다섯편은 실전 훈련 중이고 다섯편은 양성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는 겁니다. 아니, 왜 갑자기 지금 형사들을 기를까요. <투캅스>를 비롯해서 <살인의 추억>까지 훌륭한 경찰영화로 충무로는 벌써 단맛을 본 적이 있는데요. 경찰청 산하 경찰들이 잡지 못하는 범인, 충무로가 배출한 형사들이 잡아줄 수 있을까요. 청년실업이다, 구조조정이다 갑갑한 현실을 이 형사들이 조금이라도 풀어줬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경찰영화들이 많은데 자기들끼리 치고받지는 말고 말이죠. 그럼 잔소리 줄이고, 지금 시각이 새벽 2시30분, 오밤중에도 숨가쁘게 현장을 누비고 있는 기자들을 불러보겠습니다. 형사를 교육 중인 10군데를 다 둘러보고 정리를 했다죠. 그리고 형사 교육현장을 일선에서 지휘하고 있는 감독 인터뷰도 땄다고 합니다. 네, 좀처럼 현장이 연결 안 되네요. 지금 술마시며 회의하고 있다고요? 취재하러 보냈더니 술마시고 있는 거야~ 그런 거야?

범인 검거 작전 도중 로또복권을 맞춰보는 형사(<형사 이기동>), 삥이나 뜯고 다니는 한심한 형사(<사생결단>), 뇌물수수, 직권남용, 공문서 위조를 눈도 깜짝하지 않고 하는 비리 형사(<이대로, 죽을 순 없다>), 젊은 형사는 형사질보다는 연애질에 더 관심이 많고 베테랑 형사는 수갑이나 잃어버리고 다니는 건망증 환자인 어수룩한 강력반(<강력3반>), 행색은 경찰보다는 난봉꾼에 가까운 홀아비 형사(<용서할 수 없다>), 범인을 잡느라 중앙선을 넘어 역주행도 마다않는 열혈 형사(<야수>) 등등.

이들은 현재 촬영 중이거나 곧 촬영에 들어갈 경찰영화들의 캐릭터 면면이다. 후줄근하고 서민적이며 성격은 불같은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지만 이들에겐 한 가닥 불타는 사명감과 그것을 도와줄 총이 있다. <투캅스>에서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거쳐 <공공의 적>, 그리고 <살인의 추억>과 <와일드 카드>를 거치며 한국형 경찰영화가 장르로 정착하는 듯한 모습이다. 코미디와 버디무비에 액션영화적 코드를 장착하고 서민적인 형사를 앞세워 부패를 척결하는 한국형 경찰영화는 다른 장르와의 놀라운 친화력을 보여주며 다채로운 변주도 보여주고 있다.

성장영화, 히치콕식 미스터리 누아르, 그리고 여성형사의 기용 등이 그 변주의 모습이다. 성장영화의 형식을 빌려 날건달이 강력반 형사가 되는 과정을 그린 <미스터 소크라테스>, 그리고 지하철 빈자리와 유명 브랜드 할인제품만 보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생활력 강한 여형사를 내세운 <6월의 일기>, 교환살인을 계획하는 살인마와 이를 저지하려는 형사의 이야기를 다룬 누아르 <교환살인>, 부산의 마약시장을 현미경 들여다보듯 미시적으로 훑어나가며 마약상과 강력반 사이의 관계를 그린 <사생결단>까지 더하면 벌써 10개 작품이 올해 아니면 내년에 관객을 만날 것이다. 진행 중인 다섯 작품은 개봉시기를 달리 가야 하는 숙제가 생겼고, 시나리오 작업 중인 다섯 작품은 캐스팅이 쉽지 않을 것이다. 조폭영화의 흥망성쇠가 재연될 수도 있다. 1993년 나온 <투캅스>를 발원지로 삼아 2005년 수많은 지류로 나뉘어 흐르고 있는 한국형 경찰영화를 다섯개의 한자로 정리했다.

1. 폭(暴)

욕설과 고문, 그리고 비합법적인 폭력으로 관객의 카타르시스를 얻어내는 영화. 전근대적 폭력을 합법적이고 근대적인 테두리 안에서 그린다. 조폭영화와 마주 보며 서로를 가리키고 있는 장르.

대표작 | <공공의 적>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제작 중 | <야수> <미스터 소크라테스>

그런데 왜 갑자기 경찰영화일까. <친구> 이후 조폭영화가 4∼5년 전 갑작스레 주류로 떠오르며 충무로를 득세하던 때를 상기해보는 것은 어떨까. 조폭영화가 학교와 절, 여자 조폭으로 반경을 넓히다가 결국 자기복제를 하면서 소멸된 과정을 떠올려보면 지금 형사영화의 행보를 점칠 수도 있을 것이다. 경찰영화와 조폭영화가 담고 있는 함의는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많이 닮았다. “조폭 장르에 대한 관객의 호응은 현대 한국사회의 속성이 근본에서 조폭과 마찬가지이며 특히 신뢰할 만한 정치적 지도력이 없다는 사실에 대한 심리적 공명인 것으로 보인다. 조폭영화는 그 해결책으로 남성적인 힘의 지배를 소망한다. 권위있는 남성권력을 열망하면서도 그것의 성취 불가능성을 아울러 토로하는 조폭영화는 황량한 한국인들의 내면적 혼란과 모순, 실존적인 방향상실을 지시하는 하나의 의미있는 징후가 아니겠는지.” (<씨네21> 332호, 김소희, 2001.12.19)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강력3반>

“권위있는 남성권력을 열망하면서도 그것의 성취 불가능성을 토로하는” 조폭영화의 내재적 한계를 경찰영화는 합법적인 남성권력에 기대어 뛰어넘는다. 합법적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행동반경이 더 넓어졌고, 관객이 더러 가질 수도 있는 죄의식마저 말끔하게 미리 걷어냄으로써 남성적인 힘의 지배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는데, 이것이 <인정사정 볼 것 없다>와 <공공의 적> 등 개별 영화의 높은 영화적 완성도, 그리고 <투캅스> 이후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정착되어온 경찰영화 장르의 안정성과 결합되고 높은 흥행수치까지 기록함으로써 경찰영화들이 대량 생산되는 물적 토대를 만들어주었다.

평론가 심영섭은 “총을 사용할 수 있는 갱스터 누아르에 대한 욕망”이라는 말로 형사영화 붐을 설명한다. 폭력 구현에 대한 강박관념이 주먹에서 칼로, 칼에서 총으로 도구를 옮겨잡고 있다는 것이다. 칼을 맞은 형사는 죽거나, 현장에서 뛰길 두려워 하니(<와일드 카드>) 이들에게 범인을 제압할 총을 주자는 게 요즘 충무로 경찰 영화의 논리인 것이다. 폭력의 도구는 현대화되고, 폭력은 합법과 탈법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행사된다. 그러니 말도 안 되는 것이지만, <야수>의 장도영(권상우)이 조사실에서 밥을 먹는 조폭의 가슴을 발로 내지르는 것은 정의를 위해 의분을 참지 못하는 형사의 열혈기질로 이해받을 수 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나무곤봉에 꿰여서 고문을 당하는 박상면이 웃음을 자아내는 것처럼.

<이대로, 죽을 순 없다>의 이영은 감독 인터뷰

“이대로 형사는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사람”

<이대로, 죽을 순 없다>는 죽어야만 하는 형사의 이야기다. 혼자 딸을 키우는 형사 이대로(이범수)는 위험한 현장에 동료를 혼자 보내고 범인을 놓아주는 대가로 돈을 챙기는 부패한 경찰이다. 그는 갑자기 뇌종양 선고를 받고선 어린 딸에게 보험금이라도 남겨주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죽기도 쉽지 않다. 사지로 뛰어들 때마다 뜻하지 않게 영웅이 되는 이대로. 신인 이영은 감독이 휴먼코미디라고 요약하는 <이대로, 죽을 순 없다>는 삶의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진짜 형사, 진짜 사람이 되는 한 남자의 웃기고도 서글픈 몇달을 담고 있다.

-죽고자 애를 쓰는 강력반 형사라는 모티브가 독특하다. 어떻게 이 이야기를 떠올리게 됐는가.

=이 영화는 죽어가는 남자가 TV 인터뷰를 하면서 애타게 아이 엄마를 찾는 장면에서 시작됐다. 아이가 혼자 남게 됐으니 돌아와달라고. 그리고 그가 어떻게 인터뷰를 하기에 이르렀는지 거슬러올라가서 구성했다. 보험금을 타야 하므로 사고로 죽어야 한다거나 하는 것 같은. 실제 영화에선 인터뷰 장면이 후반부에 등장한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영화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그 영화를 찾아보긴 했지만, 결말을 정해두고 시작했기 때문에, 크게 마음쓰진 않는다.

-왜 형사라는 직업을 택했는가.

=처음엔 택시기사나 포클레인 기사로 설정해보기도 했다. 형사는 총을 가질 수 있고, 위험한 일에 뛰어들어야 하는 직업이어서, 영화가 주는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특별히 현장 취재를 하진 않았다. 아버지와 딸의 관계가 중심이니까. 그저 일반적인 인터뷰를 통해 얄미운 형사의 모습을 그린 정도였다. 그리고 이대로 같은 인물은 굳이 형사가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사람일 거다.

-이대로는 부패한 형사이고 실수로 영웅이 되지만 조금씩 진심을 드러낸다. 그가 변할 수 있는 단서를 심어두어야 했을 텐데, 어떤 점이었을까.

=이대로는 형사로서는 얄미운 모습을 보여주지만 딸과의 관계는 매우 끈끈하다. 나도 다섯살짜리 딸을 키우고 있다. 딸을 사랑하는 사람은 정말 나쁜 사람은 아닐 듯했고, 어떤 계기만 만난다면 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보니 자동차 추격전 준비 장면이 다소 황량하게 느껴졌다. 실제 완성된 영화의 톤도 그런 느낌일까.

=효과를 많이 주려고 한다. 이대로가 딸과 함께 있을 때의 느낌과 형사로 일할 때의 느낌이 다르도록. 이대로가 형사로 등장하는 대목에선 일부러 남루하고 어두운 배경을 고르기도 했다.

-슬픈 이야기이면서 코미디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이런 정조로 만들고 싶었던 건가.

=코미디는 연출을 잘하는 감독이 만들어야 한다고 믿고 있어서(웃음) 부담스럽긴 하다. 하지만 데뷔작으로 신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이대로는 어쩌면 내 모습이기도 했다. 팀 버튼을 좋아하는데, 그만의 괴팍한 느낌 같은 것이, 내 영화에도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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