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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정의 발견 [2] - 인터뷰

강혜정이 말하는 나의 연기, 나의 미래

“주연만 해야지, 그런 생각은 마흔 가서나 할 거다”

능청스럽다. 촬영 소품으로 컵을 하나 내밀자 유심히 살피더니 “이거…, 컵 닦으신 거죠? 뭐, 얼룩도 있고…” 한다. 촬영장소로 이동할 때 이미 “저랑은 처음이신 거 같은데… 어쩌다 저처럼 말 못하는 배우랑 인터뷰하게 되셨어요” 하는 농담을 거리낌없이 던졌더랬다. 까만 유리컵에는 ‘no more war’라는 문구가 하얀 글씨로 씌어 있었다. “참 의미있는 잔이네요, 노 모어 워…. 이게 보여야 될 거 같아.” 촬영은 모 기자가 거주하는 오피스텔에서 이뤄졌다. 홈 스튜디오 안이 너무 조용하다고 느껴졌는지, 카메라를 의식하는 듯 안 하는 듯 묘한 태도로 촬영에 임하던 강혜정이 또 입을 열었다. “저, 이 집이 음악도 나오는 시스템인가요?”

이 정도 되는 능청스러움은 노련한 30대 배우들, 그것도 남자배우들한테서나 보게 마련이다. 자신이 대놓고 자리를 주도해도 전혀 무리가 없다는 태도는 연기경력 10년을 넘는 여배우들도 잘 보여주지 않는다. 강혜정은 자신감을 절대 감추지 않는다. 끼니를 함께 때우면서 인터뷰했다. 강혜정은 밥도 먹고, 질문에 대답도 하고, 옆에 앉은 매니저도 신경 써주고 했다. 그러고는 “오늘 하루 재밌게 놀았어요” 하는 표정으로, 4시간 반의 일정을 끝내고 쾌활하게 돌아갔다.

-올해 얼굴을 내민 영화만(<남극일기>의 조연 출연과 <친절한 금자씨>의 카메오 출연까지 포함해) 5편이다. 촬영 스케줄이 만만찮았을 것 같다.

=하루 걸러 하루 촬영이 있었으니까. <보이지 않는 물결> 같은 경우는 <연애의 목적> 끝내고 딱 하루 쉬고 바로 시작했다. <웰컴 투 동막골>과 <연애의 목적>은 한달 정도 겹쳤다. <연애의 목적>을 먼저 선택했는데 영화사에서 상대 배우를 캐스팅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근데 그 시간이 중간에 한 작품을 해도 될 만큼의 시간이다, 그러더라. 그때 마침, 불행 중 다행인지 다행 중 불행인지(웃음) <웰컴 투 동막골> 시나리오를 받아보고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싸이더스에서도 오케이해서 하게 됐다.

-중간에 다른 영화를 한편 해도 되는 긴 시간을 기다리자고 결심할 만큼 <연애의 목적>을 하려고 한 까닭이 궁금하다.

=일단 심하게 고민하고 고른 시나리오가 아니다. 음, 뭐라 그러지, (양 검지손가락을 맞대더니) 이게 맞아서, 코드가 맞아서 재밌게 읽었던 거 같다. <연애의 목적> 시나리오는 어떻게 읽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매우 불쾌해질 수도 있고, 또 매우 유쾌해질 수도 있는데, 결과적으로 남는 감정은 마냥 긍정적이거나 유쾌하지만은 않다. 특히 여성의 심리나 연애감정에 있어서 이런 감정은 느끼고 싶지 않아, 하는 외면하고 싶은 감정들이 나오더라. 그런 건 과거 한국영화에서는 잘 다뤄지지 않았던 것 같다.

-조금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구린 거지(웃음). 홍이가 죽 끌고오는 감정들이 그렇지 않나. 드러나진 않지만, 유쾌한 듯 보이지만, 마지막에 가서 이 영화가 마냥 유쾌한 것만은 아니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홍이란 캐릭터를 통해 통쾌한 감정을 느꼈다는 건가.

=그런 것도 있었다. 그 여자의 의도가 그랬다기보다는 표현법이. 남자한테 말려들면서도 말려들지 않는 느낌. 분명하진 않지만 뭔가 심리적으로 유인한 것 같은 느낌.

-<웰컴 투 동막골>의 여일은 홍이와 전혀 다른 종류의 여자인데, 비슷한 시기에 그 영화는 어떻게 선택하게 됐나.

=사람들이 가진 내면이라는 게 한 가지가 아니고 여러 가지인데, 내 안에 숨겨진 여러 자아들, 페르소나‘들’이 내가 어떤 사람들을 만나서 어떤 얘기를 하고 있고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나온다. 근데 여일이 갖고 있는 성격은 내가 추구하고 싶은 성격이었다.

-어떤 면에서 그런가.

=나는 그렇게 일상 자체가 극단적으로 순수하진 않으니까. 어느 정도 세상과 타협도 보고. 근데 최홍이나 여일이나 아주 상반되면서도 나와 교감을 이루는 캐릭터들인데 어떤 게 나에게 더 가깝다란 얘기는 사실 못하겠다. 다만 이런 자아들을 보면 슬프고, 이런 자아들을 보면 기쁘고 행복하다.

-두 영화의 촬영 일정이 겹치던 시기에, 한 캐릭터에 몰입했다 분리되고 또 다른 다른 캐릭터에 다시 몰입했다 분리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웰컴 투 동막골> 현장 가는 차 안에서는 졸려 죽겠는데도 의도적으로 들뜨려고 노력했고 <연애의 목적> 갈 때는 의도적으로 이렇게(두팔을 가슴 앞에 끌어모으고 침울한 표정) 하고 있었다. 준비작업을 하는 데에서부터 나 자신을 이완시키는 과정이 달랐다.

-물리적인 이동도 힘들었을 것이다.

=잠을 못 자는 게 가장 힘들었다. 모 배우가 어떤 인터뷰에서 그런 얘길 했더라. 나는 다 좋다. 내가 여름에 겨울옷 입어야 하고 겨울에 여름옷 입어야 하는 건 내 직업적 숙명이라고 생각하는데, 다 좋은데, 충분히 잠잘 시간만 달라. 그럼 최선을 다해 연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인터뷰 기사를 꽤 오래전에 봤다. 처음에 봤을 때는 아, 그런가 보다 싶었는데 정말, 그래! 나는 잠만 자면 최선을 다해 연기할 수 있어!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충분한 수면만큼 큰 에너지가 없더라. 잠을 많이 재우는 영화일수록 배우의 연기는 좋다.

-여일의 목소리가 특이하다. 본인이 만든 설정인가.

=강원도 사투리가 탁음으로 내는 소리라 원래 걸걸한 느낌이 난다더라. 감독님께서는 내가 너무 리얼하게 강원도 사투리를 쫓아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강원도 사투리를 했을 때 거부감이 안 들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덜 걸걸하게 한 거다.

-여일이의 캐릭터가 본인의 어릴 적 실제 에피소드를 반영한 거라고 하던데.

=캐스팅도 결정되기 전에 감독님 만나서 했던 얘기다. 시나리오를 읽고 어릴 때 생각이 나서 좋았다고 하면서 내가 했던 얘긴데, 어렸을 때 비 맞는 걸 워낙 좋아하고 그걸 삶처럼 생각했다. 우산 쓰는 법을 몰랐다. 게다가 걷는 것도 좋아했으니까 비 맞고 걷는 게 일상이었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땐가 비가 엄청나게 와서 눈을 못 뜨겠더라. 그래서 양말을 벗어갖고 쭉 짜서 (얼굴을) 닦은 거다. 비도 오고, (양말이) 깨끗해서, 빗물에 빨아서 썼다.

-학창 시절은 어땠는지.

=<은실이> 할 때, 그때가 고등학교 2학년 땐데, 가장 생소했던 게 그거다. 같이 연기하던 친구들 얘기 들어보면 자기네들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한다 그러더라. 연예인이고 하다보면, (괴롭히는 아이의 목소리, 표정 흉내내면서) ‘야, 네가 그렇게 예뻐?’ (웃음) 난 그런 경험이 없다고 했다. 날 적으로 두는 친구는 없었다. 학교라는 게 체질적으로 나한테 안 맞는 데였는데도 고등학교 때는 학교가 가고 싶었다.

-연예활동이 힘들어서 상대적으로 학교가 편했던 건 아닌가.

=학교가 너무 좋아서 연예활동하기가 싫었다. 재미있어서. 한번은 학교에서 수련회를 갔는데 아버지가 수련회장까지 쫓아오셔서 잡지 표지 찍으러 가야 한다고 날 데리고 가셨던 적이 있다. 당신은 아버지도 아니라며 막 엉엉 울었다. (웃음) 준비를 너무 많이 했단 말이다. 야, 다른 애들은 기껏해봤자 뭐, 김치볶음밥? 찌개? 우린 그런 거 취급 안 해. 곱창 구워먹자! 그래서 곱창이랑 양념장이랑 뻑적지근하게 준비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새벽 네시에 일어나서 텐트까지 짊어지고 간 야유횐데, 아니 수련횐데, 딱 하룻밤 자고 다음날 레크리에이션까지 끝내고 그날 저녁에 곱창 구우려고 하니까 아버지 딱 오셔가지고 혜정아, <에꼴> 표지가…. (웃음)

-그땐 아버지가 매니지먼트해주셨나.

=아니, 그건 아닌데…, (딴청부리다 씩 웃더니) 내가 삐삐를 씹으니까…. (일동 웃음)

-<올드보이>를 끝낸 뒤 시나리오가 갑자기 밀려들었을 텐데, 주로 어떤 장르의 영화, 어떤 종류의 캐릭터가 들어왔나.

=나조차 이해할 수 없는 작가주의영화라든가, (웃음) 아주 상당한 노출을 원하는 그런 영환데 대한민국의 웬만한 여배우들이 하기에는 부대끼는, 내가 신인이 아니고서야, 내가 완전히 몸을 던지지 않고서야 하기 불가능한 그런 작품들이 있었고, 그리고 요새 많이 나오는 발랄한 로맨틱코미디류.

-그중에서 <연애의 목적>을 선택한 건데, 작은 부분일지는 몰라도 <올드보이>나 <연애의 목적> 모두 노출 면에서 여배우가 어려워할 요소를 갖고 있다. 본인 스스로 아직 그런 것을 연기의 장애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신조 같은 걸 갖고 있는 게 아닌지 궁금하다.

=일단 내가 맘먹고 이 작품을 하기로 했는데, 정사신 때문에 이 작품을 하고 싶지가 않다고 생각하는 것과 이 작품에서 정사신이 주는 임팩트와 의미 등을 생각해봤을 때 <올드보이>에서의 정사신은 꼭 필요한 거였다. 그래서 감독님이 심의에 걸린다고 하셨을 때도 나는 일단 찍었으면 좋겠다, 나중에 빼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연애의 목적> 때는 조금 과장된 부분이 없잖아 있긴 한데, 내 욕심일 수도 있겠고, 홍과 유림의 관계가 단지 스치듯 하는 모습으로만 비치면, 뭐라고 해야 되나, 입에 단것만 먹고 간달까, 맨 마지막에 터뜨려줄 수 있는 감정을 극소화하는 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매번 매순간 그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작업한 거였다. 불필요한 정사신은 나도 원치 않고, 이게 멋이다라는 생각으로 다가가고 싶지도 않다.

-촬영현장에서는 실질적인 문제들과 부딪쳐야 한다. 현장에서 마음의 균형을 잡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도 필요할 것 같다.

=그럴 때일수록 추스르면 추해진다. 뭐 하나 감추려고 하고 덜 보이려고 하면 부자연스러워지고 그런 내 자신을 발견했을 땐 불쾌하다. 후회도 되고. 여기서 현장의 환경 전체를 잡고 있는 게 나라고 생각했다. 대부분 이런 신을 찍을 땐 여배우들이 예민해진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남자배우들이 더 예민해진다. 여배우들이 감정을 다칠까봐, 기분을 다칠까봐. 촬영 들어가기 전에 남자배우들이 그런다. 너 원하는 거 있으면 다 얘기해, 감독님한테, 아니면 내가 얘기해줄게, 네가 얘기하기 어려우면. 그것은 고로 당신이 나보다 더 예민해 있다는 얘기거든. 그런 걸 많이 덜어주고 싶었다. 내가 꼭 이 신을 찍어야하는 입장에서, 나에 대한 배려는 감사하지만 상대가 아주 예민해지는 상황을 내가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면 내 자신이 되게 못났다는 생각이 들더라.

-<웰컴 투 동막골>의 여일은 조연이다. <올드보이>를 하고 나서 많은 관심을 받게 됐고 사람들이 강혜정이란 존재를 다른 식으로 기억하게 됐고 <연애의 목적>에 주연 캐스팅이 된 이후다. 아직 주, 조연을 가릴 때가 아니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건가.

=나한테는 배역이 있지 주, 조연이 있는 게 아니니까.

-보통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 생각은 마흔에 하려고. (웃음) 나는 주연만 해야지, 하는 건 마흔 돼서. 민식 선배님 또래가 호흡을 이끌어가는 영화나 고두심 선배님이 주연하시는 것처럼, 내가 그 나이 되면 주연만 할 거다. 그때는 개런티도 많이 받을 거다. (웃음)

-<나비>부터 <웰컴 투 동막골>까지, 본인 나이에 맞는 평범한 감성의 캐릭터를 연기한 적은 없는 듯하다.

=재미있는 점이, 내가 나이가 없는 것 같다. 물론 내가 30대의 어떤 역할은 소화하기 힘들겠지만 적어도 내가 선택하는 캐릭터는 나이가 없는 것 같은 거다. <쓰리, 몬스터>에서는 보톡스 잔뜩 맞은 30대 주부였고, <연애의 목적>에서는 스물일고여덟쯤 됐고 <웰컴 투 동막골>의 여일은 나이를 짐작할 수 없다. <친절한 금자씨>의 카메오 역할은 심지어 열여섯 정도밖에 안 됐다. 그러니까 나이가 없는 거지.

-타이영화 <보이지 않는 물결>에 출연한 경위는 어떻게 되나.

=누군가가 감독에게 추천했고, 감독도 <올드보이>의 걔라면 해볼 만하지 했다더라. 나도 내 비중은 별로 높지 않다는 거 알고 시나리오를 읽어봤는데, 참 영화 괴짜스럽고 웃겼다. 모호하고 괴짜스럽고 어떤 냄새를 계속 맡고 있는 듯한 느낌이 나고. 어, 재밌겠네, 게다가 애 엄마로 나오네? 진짜 재밌겠네? 해서 하게 됐다. (웃음) 아사노 다다노부라는 배우와 크리스토퍼 도일이라는 촬영감독과 그리고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라타나루앙 감독도 실력파 감독이라기에 좋은 기회다, 해서 하기로 했다.

-영어로 연기하는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대사 까먹을까봐. 감독도 편하게 해라, 니가 네이티브 스피커 아니고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거 사람들이 다 아니까 편하게 해라 했다. 한번은 NG를 냈는데, 내가 잠수복을 입고 있다가 (상대방한테) “나 옷부터 먼저 갈아입고”라는 대사를 하는 거였다. 근데 그 문장을 까먹은 거다. 그 신의 마지막 대사였다. 앞의 대사 다 하고 그거 딱 하나 남았는데 그걸 까먹었다. 눈앞이 새하얘. 그래서 배우를 딱 쳐다보고, 그냥 “You know?” 했다. 그랬더니 감독이 저기서 춤을 추고 있는 거다. 뷰티풀! 원더풀! 이러면서. 난 감독이 진짜 화 많이 났구나 싶었는데, 알고봤더니 그 어색한 느낌이 영화 속 상황하고 자연스럽게 어울렸다고 하더라.

-드라마는 안 하나.

=<나비> 이후에 <논스톱3>에서 시행착오를 했지. (웃음) 그래서 길가다가 누군가가 날 <논스톱3>로 알아보면 속상하다. 동생이에요…. (일동 웃음) 정말로 그런 적도 있다. 내가 항상 욕심을 부리는 건 좋은 작가고, 좋은 감독이고. 근데 이게 영화에만 한정된 게 아니고 내가 원하는 작가가 드라마에서 활동한다면 나는 죽을 때까지 드라마는 안 해라고는 말 못한다. 고로 나는 죽을 때까지 영화만 한다고도 말 못하겠다.

-CF도 잘 안 찍는 것 같다.

=CF에 목맨 적은 없지만, 글쎄, 연락을 안 주네. (웃음)

-센 역할을 많이 한 까닭도 있을 것이다.

=정말 그런 것도 있다. 대중의 인지도라는 것도 무시는 못하겠지만 상품의 이미지랑 매치가 돼야 하는데 그런 게 참 힘들다더라. 근데, 상품의 이미지 맞추자고 영화 찍고 싶지는 않다. (웃음)

-스물네살이면 한창 때다. 게다가 요즘은 배우로서 만개한 시기인 거 같고, 개인으로서는 모두에게 알려진 것처럼 좋은 연애를 하고 있고, 정말 행복한 시기인 듯하다. 근데 사람이 너무 행복하다보면 이 행복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또는 어떻게 하면 이 행복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문득문득 하게 될 때가 있을 것 같다.

=내가 지금 이 순간 행복하다는 생각은 꽤 오래전부터 했다. 그 생각을 처음 한 계기가 내가 불행하다고 느꼈을 때였다. 내 불행에 집착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마음을 바꿨다. 반대로 내 행복이 유지되길 바라고 고민하다보면 더 놓치기 쉬울 거라고 생각한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둬야 할 것 같다. 일은 (매니저를 가리키며) 이분 손에 달렸고, 삶은 (반대쪽 허공을 찌르며) 그분 손에 달렸다. (호탕한 웃음)

-연기를 업으로 삼을 생각인가.

=늙은 배우가 돼보고 싶다. 그런데 죽을 때까지 연기할 거예요라는 얘기는 못하겠다.

-어떤 이유에서.

=글쎄, 너무 오랜 기간을 약속해야 하는 거라…. 그냥 꾸준히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계속 욕심이 나고, 3개월 쉬는데도 벌써 이렇게 몸이 근질근질한데 어떻게 30년을 쉴 수 있겠나. 근데 죽는 날까지 할 수 있을 거 같아요라는 말은 못하겠다. 늙은 배우는 되고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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