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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왔다! [4] - 감독 곽경택

감독 곽경택을 중심으로 살펴본 <태풍>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태풍>은 곽경택의 ‘6번째’ 연출작이다. 굳이 ‘6번째’임을 강조하는 것은, 그간의 그의 연출 순서에 일종의 진자 운동과도 같은 리듬이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장편 데뷔작 <억수탕>(1997)을 포함한 그의 ‘홀수’ 영화들(<친구>(2001), <똥개>(2003))의 공통점은 뚜렷하다. 그것들은 아주 강한 의미에서 ‘지역 영화’들이다. 감독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부산-경남을 배경으로 하는 그 영화들에는, 단순히 공간적인 ‘배경’에 머물지 않는 ‘지역성’이 있었다. 그곳에는 진한 경상도 사투리가 있었고, 그 사투리 속에 배어 있는 강한 지역의 정서가 있었고, 그 정서를 바탕으로 밀도있게 그려지는 지역의 문화와 정치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구수한 사투리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 그 남자, 곽경택이 있었다. 말하자면 그 영화들에는 직접적인 체험과 밀도있는 관찰에 바탕을 둔 흡인력과 설득력이 있었다. 그것이 곽경택만의 색깔이었고, 그의 이야기의 힘이었다. 그 색깔과 힘은 그 영화들을 기성의 장르 문법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밖을 향해 꿈틀대게 하는 생명력이기도 했다. 그 영화들은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보여주고 싶은 그림이 하나로 응집되는 밀도를 지니고 있었고, 그럼으로써 스스로 새로이 ‘장르화’ 과정을 밟아가고 있었다.

홀수 영화의 생명력, 짝수 영화에선 없었다

반면, 그의 ‘짝수’ 영화들(<닥터 K>(1999)(1998), <챔피언>(2002))에서는 그러한 밀도와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대체적으로 그 영화들은 이야기와 그림이 따로 논다.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 익숙한 그림들은 있지만, 그 그림들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이야기의 밀도는 없었다. 이상한 것은, 이 영화들 역시 그 출발점에는 개인의 체험과 지속적인 관심이 있었고(의대생으로서의 체험과 <닥터 K>,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 있는 김득구의 죽음), 그 관심의 정도에 못지않게 치밀한 사전 준비를 통해 마련된 디테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장르적으로 세공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챔피언>의 경우가 그러하고, 그래서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사실 나는 <챔피언>을 통해서 기억도 가물가물한 권투선수 김득구의 죽음을 새로운 의미와 충격으로 되새기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영화 <챔피언>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 영화에 대한 감독 곽경택의 발언을 통해서였다. 그에 따르면 김득구의 죽음은 마지막 한방에 의한 우연한 사고라기보다는 누적된 피로에 의해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챔피언>은 개인 김득구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70, 80년대를 살아낸 권투선수들에 대한 영화였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 <챔피언>은 계속되는 권투경기 장면들이 있었을 뿐, 그들의 팍팍한 생활과 삶은 충분히 담겨 있지 않았다.

곽경택 짝수 징크스의 극대화 <태풍>

그의 6번째 영화 <태풍>은 곽경택의 ‘짝수’ 징크스를 극대화하고 있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그 징크스의 확대재생산이 그 어느 때보다 공들인 ‘장르적 세공술’의 결과로 보인다는 점이다. <태풍>에는 블록버스터라는 이름에 값할 만한 멋진 그림들과 장면들이 있고, 그 그림들을 이어나가는 잘 설계된 서사의 논리적 구조(영화 속 사건들의 현실적 배경)가 있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공허하다. 마음을 움직일 만한 생명력이 없고, 무엇보다 그 남자, 곽경택이 그곳에 없다. 그는 영화 <태풍>의 출발점이 ‘탈북자 가족의 사진 속에서 보게 된 한 꼬마의 불안한 눈’이었다고 말한다. 문제는 그 아이가 자라서 ‘원한을 가진 해적이 된다면’이라는 가정법에 있다. 하필이면 그가 ‘해적’이 되었을 때, <태풍>은 이미 ‘탈북자 영화’가 될 수 없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그간의 곽경택 영화가 지니고 있던 소중한 모든 것을 일거에 날려버릴 ‘태풍의 눈’이 되어버린 셈이다.

이쯤에서 궁금해지는 것은, 곽경택의 다음 ‘홀수’ 영화이다. 그 영화는 다시 한번 ‘지역 영화’가 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진로를 그릴 것인가? 개인적으로 부디 전자이기를 바란다. 진정한 ‘지역성’(locality)은 한국영화가 갖추어나가야 할 소중한 자산 중 하나라고 믿기 때문이다. 지역의 지방화(서울 콤플렉스)는, 한국사회의 병적 징후의 하나인 ‘태평양 콤플렉스’(그 영화적 판본인 ‘할리우드 콤플렉스’)의 내부 투사이고, 그 결과이자 원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성은 이 시대의 불모화된 다수성에 저항하는 ‘소수성‘의 한 영역이 되어야 한다. 적어도 문화와 예술은, 따라서 영화는 그 소수성 안에서 새로운 창작의 동력과 생명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감독 곽경택은 그 새로운 지역 영화를 감당할 만한 체질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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