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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군 투덜양] 제목도 리콜이 되나요, <돈 컴 노킹>

투덜군, <돈 컴 노킹>처럼 한글로 썼지만 뜻을 알 수 없는 외화 제목 번역에 당황하다

<돈 컴 노킹>

외화 제목 번역의 유파는 크게 ①번역파 ②창작파, 그리고 ③이두향찰파의 세 가지로 구분된다. 그 첫 번째인 번역파는 별다른 꺾기없이 온건하게 제목을 번역하는 유파로서, <브로드웨이를 쏴라>(<Bullets over Broadway>),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Something’s gotta give)> 등이 그들이다. 두 번째 ‘창작파’는 원제목의 형체를 전혀 알아볼 수 없도록 갈아 만드는 유파로서,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부터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High Fidelity>)까지에 이르는 다수의 유명 제목이 이들 유파의 소속이다.

세 번째 ‘이두향찰파’는 말 그대로 영문 제목을 소리나는 대로 적는 유파로서, ‘직독직해 1분 완성’을 핵심 모토로 내세운 이들은 결국 생산성의 극대화를 실현해 외화 제목계를 빠르게 장악해나가고 있다. 현재 개봉 중인 영화들만 봐도 <쏘우2> <파이어월> <언더월드2: 에볼루션> <자투라: 스페이스 어드벤쳐> 등 거의 90% 이상의 외화가 당 이두향찰파 소속인 바 전문가들은 이러한 추세라면 2010년께에는 외화 번역 무인자동화 시스템 도입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전망마저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 지는 않으나, 여하튼 <콜래트럴 데미지> <데블스 에드버킷> 등등 한글임에도 불구하고 해독이 안 되는 외계어적 영화 제목들을 배출하고 있는 이두향찰파의 무분별한 창궐은 매우 안 바람직한 현상임에 틀림없다.

뭐, 물론 이두향찰적 번역이 불가피한 영화들도 있을 게다. <브로크백 마운틴>을 <척추골절산>으로 번역해놓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Don’t Come Knocking’을 굳이 ‘돈’에 생략부호까지 찍어가며 <돈’ 컴 노킹>이라고 번역할 이유는 도대체가 없었다. ‘노크하지 마세요’라고 곧이곧대로 번역하자는 얘긴 아니다. 그런 상냥스러운 필은, 빔 벤더스의 무표정한, 그리고 샘 셰퍼드의 무뚝뚝한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필자가 호소하는 바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불조심 표어 쓰기 숙제하는 정도의 노력만 가미하자는 것이다. 그랬다면 ‘돈 컴 노킹’이라는, 무슨 이탈리아 오페라 같은 제목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왕년, 우리나라 외화 제목은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 <애수>(<Waterloo Bridge>) 등과 같이 일본의 번역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리고 지금은, 대체 뭔 소린지 잘 알아먹을 수도 없는 이두향찰 영문 제목들이 난무하고 있다. 어디 이래서야 되겠는가. ‘문화주권’과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말이 나와야 한다면, 차라리 이런 대목에서다. 평소엔 세계화는커녕 국내의 ‘문화적 다양성’을 위해서 목소리를 높인 적도 없는 ‘영화인’들이, 오로지 유사시에만 부르짖는 비장무쌍한 구호가 아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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