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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얗게 도배된 천국과 불꽃놀이의 허무한 흔적, <천국의 책방>

오케스트라에서 쫓겨난 피아니스트 겐타(다마야마 데쓰지)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술에 취해 정신을 잃는다. 눈을 뜬 겐타는 자신이 천국의 책방에 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책방 주인은 그가 천국에 온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잠시 불려온 것이라고 말한다. ‘아직 죽지 않은’ 겐타는 혼란한 가운데, ‘이미 죽은’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준다. 그리고 죽기 전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였던 쇼코(다케우치 유코)를 만나 그녀의 미완성 악보를 보게 된다.

영화는 두축으로 진행된다. 두축에는 죽어서 천국에 온 쇼코와 지상에 사는 쇼코의 조카 카나코를 동시에 연기하는 ‘다케우치 유코’(<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그녀)가 있다. 비극적인 사고로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천국에 온 쇼코 그리고 그 비극을 뒤늦게 애도하고 치유하려는 카나코. 마치 한 사람인 것 같은 이 두 여성 주변에도 상처 입은 두 남자가 존재한다.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좌절한 채 천국에 잠시 들른 겐타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지옥 같은 삶을 살아가는 지상의 타키모토. 영화는 이처럼 천국과 지상, 두 남자와 두 여자를 오가며 이들이 서로의 도움으로 상처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여기에 ‘영원한’ 사랑이라는 모티브를 중심으로 아름다운 음악과 화려한 불꽃놀이의 향연이 펼쳐진다.

사실 이것이 이 영화의 전부이다. 서로 다른 두 시공간이 교차로 등장함에도 영화는 입체적이지 않다. 멜로라고 하기에는 이야기 구조나 인물들의 관계가 지나치게 예상 가능하고, 그렇다고 보는 이의 감정을 얄팍하게라도 건드리지 못한다. 오로지 기억에 남는 것은 시종일관 뽀얀 이미지로 도배되는 천국과 지나치게 공들인 불꽃놀이의 허무한 흔적이다. 그런데 영원, 운명, 인연 등의 고리타분한 사랑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 왜 굳이 천국까지 가야 했을까. 자고로 지상에서 입은 사랑의 상처는 천국으로 도피하지 말고 지상에서 해결할 일이다. 간단한 내용으로 압축될 수 있는 이야기를 지나치게 긴 시간으로 늘린 탓에 영화의 중간 중간이 허술하게 부유하는 느낌이다. 차라리 30분짜리 드라마로 만들었어야 어울렸을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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