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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미소로 이겨내는 ‘순정’ 영화, <금발의 초원>

슬픔을 미소로 이겨내는 ‘순정’ 영화

<금발의 초원>은 순서상 가장 먼저 만났어야 했던 이누도 잇신의 영화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메종 드 히미코>의 잔잔한 성공은 2000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를 한국 관객 앞에 불러왔다. 그래서 관객은 이 영화를 통해 시간을 거슬러가 연약해 보이지만 단단한 소녀 ‘조제’ 역을 맡았던 이케와키 지즈루의 앳된 얼굴과 만나게 된다. ‘장애’와 ‘동성애’에 대한 경쾌하지만 가볍지 않은 통찰을 보여줬던 두편과 마찬가지로 <금발의 초원>은 ‘치매노인’과 소녀의 사랑을 순정만화처럼 펼쳐 보인다. 그것은 감독 스스로 갖고 있는 감수성의 발현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가 오시마 유미코의 만화를 원작으로 삼고 있다는 데도 그 이유가 있다. 10대 시절부터 오시마 유미코 팬이었던 감독은 대학 시절 이미 그녀의 작품을 원작으로 <빨간 수박, 노란 수박>을 만들었으며, <메종 드 히미코>가 태어나게 된 배경에도 그녀의 만화 <넝쿨장미>가 존재하고 있다.

18살의 나리스(이케와키 지즈루)는 치매노인의 수발을 드는 가사 도우미를 직업으로 택하면서 80살 노인 닛포리(이세야 유스케)를 만나게 된다. 닛포리의 까다로운 성품에 대해 익히 들어 긴장한 나리스를 그는 수줍은 미소로 응대한다. 닛포리는 현재 자신의 20대에 머물러 있는 중인데, 나리스를 그가 흠모해 마지않았던 ‘마돈나’- 이 영화에서 마돈나는 특정 가수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동경의 대상이라는 의미-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마돈나가 밥을 차려주고 빨래를 해주며 자신의 집을 매일 방문한다는 사실에 매우 감격하며 행복감에 젖는다. 하지만 그의 마돈나 나리스는 피를 나누지 않은 의붓동생 마루오에 대한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아 상심에 젖는다. 자신을 ‘마돈나’로 여기는 닛포리와 자신을 누나로밖에 여기지 않는 마루오 사이에서 나리스는 행복하지만 슬프고, 함께 있지만 외롭다.

심장판막증이라는 지병 때문에 사랑, 학업, 전쟁, 그 어떤 것도 닛포리 노인의 삶을 관통할 수 없었다. 그 스스로 작성한 삶의 연대기는 오로지 ‘심장 아직도 멈추지 않았음’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의 팔십년 인생은 심장의 물리적인 박동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정서적 자극을 거부하는 데만 오로지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던 그에게 삶을 잊게 해준 치매는 오히려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로 다가온다. 사랑을 감춰두기만 하던 나리스는 자신에게 끊임없이 구애하는 닛포리를 보면서 자신이 불행이 무서워 행복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80대 노인 속에서 살아난 20대 청년을 보면서 18살 소녀는 자신 속에 살고 있는 노인을 발견하는 셈이다.

‘금발의 초원’은 닛포리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풍경이다. 거의 전 생애를 집안에서 보내야 했던 그는 상상 속에서 배를 타고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나는데, 그 배가 도착하는 바다가 바로 노을로 물든 ‘금발의 초원’이다. 닛포리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바다와 배는 점차 나리스의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어쩌면 사랑은 타인의 판타지를 공유하고자 하는 데서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남자로 사랑했던 마루오가 친구 마키코와 연애를 시작하자 큰 상심에 빠진 나리스는 닛포리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마루오와 마키코는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동정이라며 그녀를 만류한다. 나리스가 닛포리에게 ‘동정’(同情)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때 ‘동정’은 단순히 불쌍히 여긴다는 뜻이 아닌, 타인의 마음과 같아진다(同)는 의미를 내포한다. 나리스는 사랑을 잃고 방황하면서 삶의 기억을 잃은, 또 실제로 심장병 때문에 자신의 생을 잃어버린 닛포리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나리스가 닛포리의 마음과 통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닛포리는 스스로 작성한 연표를 보고 자신이 꿈과 현실 사이에서 길을 잃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금발의 초원>은 80살 노인 속에 살고 있는 20대 청년의 내면을 시각화하기 위해 한번도 노인 닛포리를 보여주지 않는다. 닛포리는 영화 속에서 20대의 이세야 유스케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임권택 감독의 <축제>도 치매를 다루면서 점점 어린애로 돌아가 노인의 모습을 형상화했었다. 그러나 그 작품에서 치매노인이 ‘효’라는 가치(?) 자신의 설 곳을 찾았다면 이 작품은 사랑과 꿈속에 닛포리를 세워둔다. 전자가 가족과 전통을 중시하는 세대와 문화의 반영이라면, 후자는 개인과 현재를 중시하는 세대와 문화를 투사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누도 잇신은 80대 노인 속에 숨어 있는 ‘순정’의 판타지를 포착해내지만 그것을 절대화하지는 않는다. 시종일관 닛포리를 ‘영감탱이’라고 불렀던 옆집 꼬마가 그를 더이상 노인으로 보지 않게 된 것은 그 판타지에 현실이 개입하는 순간이라는 점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닛포리는 현실과 이상 둘 중 무엇을 향해 비상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이미 만났던 두편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누도 잇신은 이 영화에서도 민감한 문제들을 다루되 어떤 시각과 태도를 견지할 것인가에 대해서 절대로 설교하지 않는, 특유의 재기발랄한 연출력을 뽐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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