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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통해 소통하다, 제2회 재외동포영화제
정재혁 2006-10-18

10월20부터 22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려

‘영화를 소통의 장으로!’ 재외동포의 인권과 상호교류를 위해 힘써온 지구촌동포연대와 재외동포영화제실행위원회가 10월20일부터 22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재외동포영화제를 연다. 올해로 2회째를 맞는 이 영화제는 재외동포의 삶을 다룬 영상작품의 상영을 통해 재외동포의 당당한 지위를 확보하고 동포영화인들의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취지를 갖고 있다. 이번 영화제의 슬로건 ‘조선·고려·꼬레아·코리아 소통하다’는 재외동포들이 서로 다른 이름의 조국을 갖고 살아가지만, 영상을 통해 함께 만나고 화합할 수 있다는 희망을 뜻한다.

<건국학교>

영화제 상영작은 총 4개 부문으로 이뤄져 있다. 각 나라에 살고 있는 동포들의 역사와 문화를 다룬 ‘700만의 발자국’, 타지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 질문하는 ‘월드 코리안의 목소리’, 한국 내부에 존재하는 이주 외국인 문제를 담은 ‘인사이드 코리안’, 남북한 동포의 문제와 통일에 카메라를 들이댄 ‘통일, 기억과 구상’이 그것이다. ‘700만의 발자국’에는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조감독을 거친 오덕수 감독의 <전후재일 50년사-재일>과 고인봉 감독의 <건국학교> 등이 포함되어 있다. <전후재일 50년사-재일>은 전후 50년간 재일동포들의 삶을 고스란히 담은 작품이다. 전반부는 당시 미국연합군 총사령부 담당관들의 증언으로, 후반부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된 재일동포 6인의 일상으로 전후 일본의 공기를 전한다. 1998년 <키네마준보> 상을 수상했다. <건국학교>는 해방 직후 일본에 최초로 세워진 민족학교 오사카 건국학교의 일상을 기록한 영화다. 당시 영어 교사였던 양건묵씨가 촬영한 자료들이 건국학교 재학생과 졸업생들의 손으로 다시 태어났다. 미군 정부의 압수 단속에도 불구하고 보관돼온 희귀 자료다.

가장 많은 상영작이 포함된 ‘월드 코리안의 목소리’ 섹션에는 이미 국내에서 개봉된 장률 감독의 <망종>과 2005년 서울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상영된 <왕후심청>을 비롯해 총 9작품이 올라 있다. 이중 <내 마음은 조롱박>은 독일에서 회화를 전공한 뒤 영화 작업에 뛰어든 송현숙 감독의 다큐멘터리다. 간호사로 독일에 건너갔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독일에서 바라본 한국인의 삶을 솔직하게 그려낸다. 역시 독일을 배경으로 한 영화로 최선주 감독의 <나를 속여라>가 있다. 독일에 불법 체류 중인 13살 소녀의 고민을 통해 국적과 현실의 문제를 제기한다.

세 번째 섹션인 ‘인사이드 코리안’에는 황병국 감독의 <나의 결혼원정기>, 김선민 감독의 <가리베가스>, 김동원 감독의 <종로, 겨울>이 상영된다. 인권영화프로젝트 <다섯개의 시선> 중 하나이기도 한 <종로, 겨울>은 2003년 12월9일 새벽, 서울의 한 거리에서 동사한 중국 동포의 하루를 재구성한 작품. 동포문제에 대한 한국사회의 무관심을 지적한다. <가리베가스>는 구로공단이라는 공간을 통해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성찰하는 작품이다. ‘통일, 기억과 구상’ 부문에는 우선 비전향 장기수의 문제를 담은 두 작품인 <선택>과 <송환>이 눈에 띈다. 두 작품 모두 국내에서 개봉했지만 남북한 문제가 아직 유효한 만큼 다시 보기의 의미가 있는 영화들이다.

이 밖에도 재외동포영화제는 2005년 상영작 중 고 조은령 감독의 추모영화 <하나를 위하여>와 아르헨티나 재외동포의 삶을 다룬 <아르헨티나, 나를 위해 울어주나요?>를 다시 상영한다. 또 10월23일에는 국회의원회관에서 장영수 감독의 <세명의 다른 이세 교포>를 상영하고 ‘재외동포 영화인 네트워크 구축과 활성화’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연다. 티켓은 편당 3천원이고 영화제 홈페이지에서 예매 가능하다.

상영작 소개

<비무장지대를 넘어서> Beyond DMZ 박혜정 | 미국 | 2005년 | 56분

“현재 재미동포 중 3분의 1은 북한에 가족을 두고 있다.” “천만명의 사람들이 북과 남을 경계로 떨어져 살고 있다.” <비무장지대를 넘어서>는 한국과 북한, 그리고 미국과 전쟁의 문제를 가족이라는 단위에서 제기한다. “북한이 적이라고 배웠는데, 나의 가족은 북한에 있다. 어떻게 가족이 적이지?”라는 극중 대사처럼 미국 동포들은 남북한 문제를 나의 문제, 내 가족의 문제로 고민한다. 따라서 이들에게 남북한이 분단되어 있다는 사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다. 북한의 존재는 스스로의 긍정과도 같다. 이번 영화제의 개막작이기도 한 이 영화는 분단 현실을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성찰한다. 그리고 이는 개인의 입을 통해 이뤄진다. 이는 영화가 그리고 있는 대상이 미국 동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남북한 문제에서 미국이 중요한 대상이라는 점을 인식할 때, 이는 새로우면서 시도해볼 만한 접근이다. 전쟁과 이념, 사회·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질적인 논쟁들이 동포 2세들의 입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된다.

<세계의 한국 입양인-사이버 리얼리티 쇼> Korean@dopteesWorldwide: A cyberspace reality show 사라 리 먼로 | 미국 | 2005년 | 35분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인들의 이야기. 사라 리 먼로 감독은 인터넷상에서 미국의 한국인 입양 커뮤니티를 알게 된다. 처음엔 사이버상의 쪽지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직접 만나고 싶어진다. 오프라인 모임이 성사되고, 미국의 한국 입양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어색한 만남을 갖는다. 자신의 실제 엄마와 길러준 엄마, 그리고 어떤 엄마도 없던 시절의 이야기. 키보드에서 시작된 내적인 농밀한 사연들이 비슷한 아픔과 현실을 갖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비교적 편안하게 내뱉어진다. ‘사이버 리얼리티 쇼’라는 부제를 달고 있지만, 여기서 사이버란 현실관계 이전의 워밍업이다. 선뜻 오프라인으로 나서지 못했던 이들은 사이버란 공간의 자유스러움을 안식처 삼아 좀더 큰 한발을 내딛게 된다. 사라 리 먼로 감독이 연출한 2003년작 <컨페션>은 미국독립영화제 최우수 각본상을 수상한 바 있다.

<원 슛> One Shoot 박 루슬란 | 유즈베키스탄 | 2006년 | 13분

<나의 결혼원정기>에 연출부로 참여했던 박 루슬란 감독의 단편. 이민의 삶을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표현했다. 4살 꼬마는 우즈베키스탄이라는 새로운 환경이 낯설기만 하다. 말도 통하지 않고, 친구도 없다. 스스로 친구를 찾아나서보지만 잘되지 않는다. 굴러온 축구공을 발로 차 건네주며 친구가 되보려 하지만, 우연히 지나가던 차 바퀴에 펑크가 난 축구공은 꼬마의 수고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린다. 피부색도 눈빛도 다른 동네 아이들은 화가 나 쳐다보고, 꼬마는 겁이나 도망가 버린다. 교차로 편집된 부모의 싸움 장면은 어린 아이의 일상 속으로 파고들고, 복잡한 현실의 그림자는 꼬마의 발걸음을 뒤덮는다. 재외동포의 문제를 동심과 우정이라는 색다른 키워드로 바라본 작품. 혼자 노는 아이의 모습을 적막하지만 코믹한 리듬으로 잡아낸 장면들이 신선하다. 하지만 박 루슬란 감독은 다소 작위적인 설정의 연출로 메시지 과잉의 결과를 초래한다. 연출 의도에는 동의하지만 감정이입에는 실패하게 된다.

<우토로> ウトロ 다케다 도모카즈 | 일본 | 2002년 | 58분

이번 영화제 폐막작. 일본 교토부 우지시의 우토로 51번지. 이곳은 2차 세계대전 중인 1941년, 일본이 교토 군비행장을 건설하면서 강제로 징용한 조선인 노동자들의 합숙소가 지어진 곳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5년, 일본이 전쟁에서 패하자 군비행장 건설은 중단되고 우토로로 끌려온 조선인들은 할 일도, 갈 곳도 잃는다. 영화는 다나카 가족과 이웃의 이야기를 통해 우토로에 남겨진 한국인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일본 정부의 아무런 도움없이 방치된 한국인들은 학교를 짓고 마을을 꾸려나간다. 이들은 대부분 공사판 막노동으로 끼니를 이어가고, 처음엔 사람이 살 수도 없을 것 같았던 불모지 우토로를 조금씩 변화시킨다. 하지만 우토로의 토지 소유권은 실제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서일본식산에 매각되고, 이들은 주민들에게 퇴거를 강요한다. 다케다 도모카즈 감독은 퇴거 명령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자신의 터전을 지키며 살고 있는 한국인들의 모습에서 생존력과 의지를 읽어낸다. 수도가 끊겨 12년간 지하수로 생활하면서도 이들은 한국식 제사를 올리고 여름 축제의 오프닝을 농악으로 장식한다. 특히 우토로 2세, 3세들이 국적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을 때, 우토로는 주거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일본 감독으로서 논쟁의 소지가 다분한 영화적 소재를 제3자의 입장에서 거리를 갖고 바라보는 연출이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