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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영화 <헨젤과 그레텔> 준비 중인 임필성 감독
문석 사진 이혜정 2006-11-22

관객과 화해하며, 밝게 갈 생각이다

지난 10월 부산에서 열린 아시안필름마켓에서는 뜬금없는(?) 발표가 있었다. 임필성 감독의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호러영화가 시놉시스만으로 프랑스와 타이에 사전 판매됐다는 소식이었다. 김지운, 한재림 감독과 함께하는 옴니버스영화 <인류멸망보고서>에서 <멋진 신세계>라는 40분짜리 중편영화를 찍는다는 근황을 들은 게 엊그제 같은데 이미 그는 새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려 5년이라는 시간을 투여했던 <남극일기>가 지난해 흥행에서 실패해 한동안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였건만, 임필성 감독은 오히려 3개의 프로젝트를 굴리며 의욕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영화동지’인 봉준호 감독의 강권으로 <괴물>에서 ‘뚱게바라’라는 역할로 출연하면서 ‘연기력’까지 보여준 그는 이제 <헨젤과 그레텔>의 본격 프리 프로덕션에 들어갔고, <멋진 신세계>의 촬영을 마무리하고 있다. 게다가 이들 프로젝트를 끝낸 뒤에는 팜므파탈이 등장하는 스릴러 <악의 꽃>을 제작해야 한다. <헨젤과 그레텔> 시나리오를 끝내느라 수염 정리를 못해 더더욱 (과거의)피터 잭슨과 비슷해 보이는 임필성 감독을 사무실에서 만났다.

-<헨젤과 그레텔>은 어떤 영화인가. 그냥 호러영화 정도로만 알고 있다. =전형적인 호러영화가 아니라 조금은 새롭고 특이한 면이 있는 호러다.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근래에 나온 한국 호러영화들에 관객이 아쉬워하지 않았나. 그런 점에서는 좀 다른 면이 많은 영화가 될 것이다. 이제 막 시나리오를 끝냈고, 여름 안에 개봉할 계획이라 늦어도 내년 1월 말이나 2월 초에는 촬영에 들어갈 것이다.

-원안은 다른 사람이 쓴 것인가. =김민숙 작가라고, <호로비츠를 위하여>를 쓰신 분이다. 동화작가로도 활동 중이고 애니메이션 대본도 쓰신 분인데, 이야기꾼인 것 같다. 처음 받았던 원안은 두 시간 안에 압축하기 어려울 정도로 풍성하고 아이디어가 많아서 내가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많은 것을 압축하거나 밀도를 강화했다.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제목이 연상시키는 게 있는데 그것과 일치하나. =동화 <헨젤과 그레텔>이 모티브이긴 하다. 그 이야기와 그림동화가 갖고 있는 원형적인 주제와 공포감이 들어갈 것이다. 애들이 마녀를 죽인다든지, 어른들이 자신의 안위를 위해 아이들을 버린다든지 하는. 그런데 그건 모티브일 뿐이고 나머지는 완전히 다르다. 물론 핵심적인 주제는 이어지는 게 있는 것 같다.

-어떤 이야기인지 설명해줄 수 있나. =너무나 아름답고 깊은 숲속에 예쁜 집이 있는데 그곳에 어린 3남매가 살고 있다. 이 아이들은 숲에서 길 잃은 어른들을 데려와 엄마와 아빠로 삼는다. 얘들은 엄마와 아빠에게 잘 보이고 싶고 잘해주려 하지만, 어른들은 당연히 여기서 벗어나려고 한다. 하지만 숲의 길은 아이들밖에 모른다. 그렇게 시작되는 이야기다. 그러다가 20대 남자가 그 숲으로 우연히 들어와 사고를 당하고 아이들에게 구조된다. 그 뒤 그가 모든 것을 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공포스러운 점은 무엇인가. =<남극일기>를 하기 전에도 중학생이 안 된 아이들이 나오는 호러를 많이 생각했었다. 아이들은 귀엽고 순진한 듯 보이지만, 어른들의 잘못이건 다른 요인에서건 그 가치가 훼손됐을 때 터지는 분노를 보여주면 재밌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사실 애들이 순진무구하기 때문에 무서운 것 아니냐. 선악에 대한 구분도 없잖나. 그런 점이 주는 이상스럽고 공포스러운 부분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비주얼 스타일도 고민할 것 같다. =고딕호러 스타일로 만들 생각이다. 콘트라스트가 매우 강한 화면을 구상 중이다. 미술을 류성희 감독이 책임지는데 잘 맞는 것 같다. 실내공간은 <장화, 홍련>이 만들어낸 트렌드처럼 예쁜 벽지를 쓰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아키라>라든지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원색적이고 애들이 보면 혹하는, 이를테면 곰돌이와 하늘나라가 그려졌는데 무서워질 수 있는 요소를 넣은 벽지를 쓴다든지 할 것이다. 다만 영화 속 무대가 겨울이고 실제로도 겨울에 찍기 때문에 류 감독에겐 고생스러울 것이다. <꽃섬> 찍을 때 너무 고생해서 눈과 추위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더라. 나야 눈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는 너무나 잘 알고 있고…. (웃음)

-어린이들이 주인공인 영화라면 배우가 관건이겠다. =사실이다. 굉장히 잘 알려지고 연기력이 검증된 아역배우를 써야 할지, 연기 경력이 없는 친구를 써야 할지. 현재로선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확실한 건 새로운 아역을 발견해야 할 것 같다. 아이들에게 양식화된 연기는 시키고 싶지 않고, <아무도 모른다>처럼 애들다운 느낌을 주면서도 순간순간 나오는 서늘한 느낌을 잘 캐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아이가 13살 정도인데, 빨리 선발해서 서로 친숙해지고 영화 속에 빠져들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다.

-호러를 좋아하는 것으로 아는데, 영화광의 영화라서 오히려 대중성이 떨어지지는 않을까. =이번 영화에서는 그런 과도한 취향을 자제하려 한다. 그동안 너무 느낌표가 많은 영화를 했다면, 이번에는 장르를 즐기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편안하게 전달하는 화법을 해볼까 한다. 그런 점에서 중편영화 <멋진 신세계>가 도움이 된 것 같다. 호러와 코미디가 함께 있는 영화를 하면서 ‘이렇게 하니까 더 재밌는 부분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고, 경직돼 있고 날카로워져 있던 부분이 다듬어진 것 같다. 사실, 호러 장르만큼 한국적인 상황에 걸맞은 영화가 없는 것 같다. 신문기사만 봐도 안다. 호러영화의 모티브가 될 만한 일들이 매일 일어나는 나라잖나. <헨젤과 그레텔>도 사실은 굉장히 현실적인, 일상적인 비극의 모티브가 있는 영화다.

-8살짜리 아이의 아버지로서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호러영화를 만드는 게 부담스럽지는 않나. =조금 있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면서도 느끼는 게 아이들의 환경이나 조건이 결코 예전보다 좋아지는 것 같지는 않다. 요즘 애들은 무시무시한 것들에 노출돼 있다. 인터넷이라든지 환경재앙이라든지. 감독들끼리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런 얘기가 나온다. 따뜻한 영화 좀 생각하고 싶다. 그런데 전혀 소스가 없다. 정말이지 대나무 밭에서 뽀뽀하는 영화를 찍고 싶은데 그런 생각이 나지도 않고 현실이 그렇지도 않다고. 감독들이란 현실적인 상황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아이디어를 찾아내는데, 지금 여기서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란 불가능하다.

-옴니버스영화 <인류멸망보고서>의 <멋진 신세계>는 아직 못 끝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러 가지 현실적인 상황 때문에 잠깐 멈춰 있는 상태인데 촬영은 3번밖에 안 남았다. 후반작업이 만만치는 않겠지만. 김지운 감독님의 <천상의 피조물>은 촬영과 편집이 끝나 CG와 믹싱을 하는 중이고, 한재림 감독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우아한 세계>가 끝나야 착수하게 된다.

-<멋진 신세계>에 관해서는 류승범, 김은주가 출연하는 좀비영화라는 정도밖에 아는 게 없다. 어떤 영화인가. =우리가 일상적으로 흔히 저지르는 굉장히 사소한 실수나 무관심 때문에 인류가 멸망까지 한다는 이야기다. 초·중반은 이상한 코미디처럼 진행되다가 점점 분위기가 무서워진다. 좀 상세히 말하면, 좀비는 바이러스 때문에 생기는데, 그게 음식물 쓰레기를 잘못 버렸기 때문이다. 처음 생각할 때는 감기 때문에 세계가 멸망한다는 이야기였다. (웃음)

-좀비영화는 한국에 없는 장르인데, 한국화하는 작업은 하고 있나. =좀비가 되는 모티브가 너무나 한국적인 상황이다. 특히 내가 생각했던 것은 36시간 동안 PC방에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나 새벽 5시에 홍대 부근에 있는 사람들도 좀비 아닌가. 실제로 새벽에 홍대 앞에서 만취한 취객이 지나가는 모습을 찍기도 했는데 다 좀비더라. (웃음)

-좀비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힘든 점은. =특수분장은 성공적이라고 본다. 대신 걸음걸이를 연습시키는 게 힘들었다. 좀비영화마다 걸음걸이가 다른데, 내가 생각한 것은 똥 마려운데 참는 듯한 느낌 또는 참다 못해 바지 안에 실례해서 당황했을 때의 느낌이었다. (웃음) 100여명이 동시에 나오는 몹신이 있었는데 걸음걸이를 서로 약간씩 달리 만드는 게 어려웠다.

-결국 지구는 멸망하나. =그렇다. 후반부로 가면서 정말 무시무시한 상황이 계속된다.

-그동안의 영화를 보면 인간과 세상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오늘도 와이프가 내게 그러더라. ‘넌 너무 부정적이야’라고. 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결국 외로운 존재이고, 행복해질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통해 희망과 즐거움을 얻고자 하지만, 모두가 낙관적인 전망만은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런데 <헨젤과 그레텔>은 약간 다르다. <멋진 신세계>에서 지구까지 멸망시켰기 때문에(웃음) 이번에는 아이들 얘기를 통해 아이를 가진 부모나 조카를 둔 삼촌과 이모, 어린 동생이 있는 형과 누나에게 ‘애들에게 잘해줘야겠구나, 그렇지 않으면 무시무시한 일이 생기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끔 하려는 의도가 들어 있다. <헨젤과 그레텔>은 단편, 중편, 장편까지 모두 합쳐서 내 7번째 연출작인데 가장 밝은 결말의 영화이다.

-소년성 또는 성장이라는 요소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내가 철이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성장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많다. 사실 완성된 인격이나 사람은 없잖나. 영화적으로 관심있는 게 어떤 사람이 순수성을 잃어버리는 순간이다. 눈의 총기가 사라지는 어떤 순간 말이다. <소년기>에는 살인을 통해서 성장하는 아이의 이야기를, 박해일이 출연한 <모빌>이라는 단편에서는 부모를 토막살해한 명문대생의 실제 이야기를 참조했다. <남극일기>에서도 아버지를 죽여야 성장하는 유지태의 모티브가 있었고, <멋진 신세계>나 <헨젤과 그레텔>에도 그런 게 좀 있다. 나는 중·고등학교 때 거의 적응을 못했다. 만날 꼴찌했었다. 그때부터 느낀 것인데 내가 기존의 권위적인 가치관을 못 견딘다는 것이다. 영화도 모두가 좋아하는 아카데믹한 영화는 좋아하지 않았고, 그래서 호러라든지 그런 B급영화를 좋아했었다. 굉장한 아이러니는 스물세살 때 내가 처음 작업한 시나리오의 감독님이 배창호 감독님이었다는 점이다. 그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는 것 같다.

-상업영화와는 화해하기 어려운 가치관인 것 같다. =얼마 전 김태용 감독을 만나 다음 영화는 뭘 생각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일단 네 글자인 영화를 할 거다’라고 하더라. 그게 ‘상업영화’란다. ‘다섯 글자로도 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건 ‘블록버스터’라고 하더라. 얼마 전에 만난 이해준 감독도 고통스러워하더라. 사실 작품의 밀도나 새로움 또는 영화적인 도전은 평가되지 않고 모든 게 흥행 스코어로만 평가되는 풍토가 있지 않나. 그런 감독이 의욕을 잃고 도전하지 않으면 발전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을 결정적으로 보여준 한 예가 <괴물>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 점에서 잘 화해하는 방법도 찾아나가야 할 것 같다. <헨젤과 그레텔>에서는 화해를 많이 하려고 한다. (웃음)

-애초에는 <인류멸망보고서>의 <멋진 신세계>가 끝나면 <악의 꽃>이라는 영화에 들어간다고 들었는데. =그러려고 했다. <악의 꽃>도 열심히 준비하면 올해나 내년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헨젤과 그레텔>은 다른 사람이 건드리면 할 수 없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서 먼저 하게 됐다. <악의 꽃>은 한국에서 가장 사악한 여자 캐릭터를 만들어보겠다고 시작했던 프로젝트다. 정말 악녀 같은 여자, 그러나 모든 남자가 빠져드는 여자에 관한 이야기다.

-<남극일기>에 관해서는 마음속의 정리가 끝났나. =이제는 편해진 것 같다. 일단 도전이나 새로움에 대한 열망은 컸지만 관객에게 사랑받아야 한다는 욕망은 상대적으로 작았던 것 같다. 그리고 또 관객을 정말 잘 몰랐던 것 같다. 따지고 보면 그 영화가 120만 정도 들었는데 흥행에 대실패한 요즘 대작에 비해서는 선방한 셈이고. 해외에도 200만달러 이상 팔렸으니 아주 나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가장 큰 교훈은 무거운 주제를 무겁게 전달해서는 지금의 관객에게는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게 봉준호, 박찬욱 감독님이 잘하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아주 무거운 주제를 경쾌하게 잘 운반하잖나. 최소한 운반이라도 그렇게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인터넷 별점에 불만이 많다고 들었다. =<남극일기> 때 충격을 많이 받았는데, 그 뒤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나 <다세포 소녀>도 그렇고 상당수 예술영화도 그렇고 별점의 융단폭격을 맞더라. 예전 내가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뭐야, 이게’ 했지만, 동시에 ‘이 의미는 뭘까’ 하면서 신문도 읽게 되고 그 사람의 다른 영화도 봤던 것 같다. 지금은 자기가 봐서 재미없고 이해가 안 가면 한큐에 쓰레기이거나 별 한개짜리 영화로 급매도된다. 모든 반응이 일률적이고 단선적이기 때문에 걱정이다. 또 하나는 배급 상황과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모든 영화가 2~3일 내에 승부를 내야 하는 와이드 릴리즈 시스템에서 상영되는 탓에 설명하기 복잡한 영화는 오해를 살 수 있는 방식으로 마케팅되는 것 같다.

-개인적인 인지도가 높아진 계기는 아마도 <괴물>의 ‘뚱게바라’ 역할이었던 것 같다. =나름 재밌었던 것 같다. 출연 분량이 6회 정도밖에 안 되는데도 6~7개월에 나눠 찍었던 게 고생이었지만. 하여간 개인적으로는 도움이 많이 됐다. 카메라 뒤에만 있다가 앞에 있으면서 배우들이 가지는 느낌을 구체적이고 절실하게 배운 것 같다. 그게 1300만명이 본 영화잖나. 수염을 깎고 다니다 보면 가끔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다. 언젠가 홍대 앞에서 나오는데 어떤 사람이 사인을 해달라면서 사진도 찍자고 하더라. 어떤 사람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를 한참 보더니 깔깔 웃었다. 어떤 사람은 ‘카드빚이 6천~7천…’ 하면서 대사를 읊더라. (웃음) 하여간 다음 영화에 봉준호 감독을 보복캐스팅할 생각이다. (웃음)

-굳이 그러려는 이유가 있나. =내가 그때 다이어트를 했어야 하는 상황이었데, 봉 감독님은 만날 때마다 고기를 사주면서 ‘살 빼면 안 된다’고 했다. (웃음) 분장할 때도 굳이 눈밑에 다크서클을 만들어야 한다고…. (웃음) 봉 감독님이 곱슬머리잖냐. 그래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준호 형 머리를 스트레이트로 펴서 출연시킨다’고 얘기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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