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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이 선정한 올해의 감독, 배우
문석 강병진 김민경 2007-01-02

올해의 감독_<괴물>의 봉준호

장르영화와 비판적 이성이 만났을 때

봉준호 감독은 올해의 한국영화 1위 작품을 만든 감독이 아닌데도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됐다. 2002년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이 올해의 영화로, <오아시스>를 만든 이창동 감독이 올해의 감독으로 뽑힌 뒤 4년 만의 일이다. 그가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된 것은 물론 ‘나눠먹기’식 배려의 결과가 아니다. 설문 대상 34명 중 올해의 감독 설문에 응한 참가자는 모두 32명. 그중 14명이 봉준호 감독을 선택했다. 공동 2위인 홍상수, 김태용 감독이 각각 5표씩 얻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압도적인 지지라고 할 수 있다. “누가 뭐래도 올해는 <괴물>의 해”(신윤동욱), 또는 “<괴물>로 대작영화의 흥행공식을 새로 썼다”(김은형)는 답만으로 충분한 설명이 안 된다면, 영화평론가 변성찬이 쓴 다음의 추천사를 읽어보라. “올해 봉준호는 <괴물> 한편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내는 괴력을 보여줬다. 밉지 않은 유머와 위트, 소수적인 것에 대한 깊은 애정, 그리고 유연하지만 깊이있는 정치적 감수성과 세계관에 이르기까지….” 결국 봉준호 감독이 평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은 그가 <괴물>을 통해 감독으로서의 자아를 확실하게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는 점을 입증한다.

<살인의 추억>에서 연쇄살인을 다룬 스릴러영화를 80년대 한국이라는 시공간 안으로 끌어들였던 봉준호 감독은 <괴물>에서 지극히 할리우드적인 괴수영화 장르를 한국의 정치·사회의 자장 안에서 변주해냈다. 그가 <괴물>을 통해 일군 중요한 성과는 “마이너 장르인 괴수영화를 1천만 관객을 넘어서는 블록버스터로 만들어냈다”(김봉석)는 것뿐 아니라 ‘한국적 장르영화’ 또는 ‘장르영화의 한국화’를 성공적으로 개척했다는 사실이다. “봉준호 감독은 큰 틀에서 보면 할리우드 장르에 의존하면서도 그것을 그대로 차용하기보다 조금씩 비틀면서 새로운 표현의 관습을 창조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관습이 단순한 영화적 차원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사회적 탐구 의식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안시환)

<괴물> 개봉 이후에도 해외 개봉과 영화제 참가 등으로 바쁜 일정을 보냈던 봉준호 감독은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에 “영광”이라며 말을 꺼낸 뒤 “우리 가족 수가 많아서 그런지 고아성양을 제외하곤 다른 시상식에서 후보에 못 올라 아쉬웠는데 송강호 선배가 올해의 남자배우로 뽑혀 기분 좋네요”라고 말했다. 얼마 전 김기영 감독 회고전을 위해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찾았던 그는 오랜만에 영화보기의 즐거움에 빠져 있다. “거기에서 김기영 감독님 영화를 비롯해 동시에 열리고 있는 다른 회고전들을 봤어요. 그 습관이 남아서인지 지금도 하루에 영화를 서너편씩 보고 있죠. 어제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랑페르>를 보고 알랭 들롱 회고전을 들렀다니까요.” 하지만 그의 휴식은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내년 1월 중에 차기작을 결정하고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차차기작인 <설국열차>에 대한 고민 또한 그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그런 무거운 고민을 내심 품고 있어서 그랬는지, 차기작에 관한 애타는 질문에 “…그냥 정하면 보세요”라고만 야속하게 답하던 그는 “거창하게 말한다면 미학적인 면에만 집중할 수 있는 영화가 될 거예요”라고 말해준다. “집에 가면 펠리니, 구로사와 아키라 같은 분의 흑백영화를 DVD로 다시 보느라 바쁘다”는 그의 이야기가 차기작에 대한 힌트일지는 한달 뒤에나 알 수 있을 것 같다.

올해의 배우_<괴물>의 송강호

평범함을 명품으로 끌어올리는 직관

박빙이었다. <씨네21> 필진들은 백윤식과 김윤석, 조승우와 송강호를 놓고 고민을 거듭한 끝에 송강호를 올해의 배우로 선정했다. 그가 <남극일기> 이후 1년 만에 출연한 <괴물>의 박강두는 동전이 눌어붙을 만큼 개기름을 흘리며 자다가도 ‘아빠!’ 소리를 반기는 아버지다. 괴물의 피가 묻었다며 곧이곧대로 신고했다가 병원에 격리되는가 하면, 딸의 생존소식을 듣고서도 경찰 앞에서는 말도 제대로 못하는 소시민이기도 하다. 전작들에서 관객의 얼굴을 대변하는 연기로 진한 페이소스를 선사했던 송강호에겐 더할 나위 없는 배역일 듯. 덕분에 “새끼 잃은 부모의 속 타는 냄새”는 스크린 밖으로 진동했고, <괴물>을 접한 관객은 송강호 외에 다른 강두를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괴물>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는 단지 자연스러움의 정점에만 달한 것은 아니었다. <괴물>의 절정부에서 “너 누구야? 너 현서 알아? 현서랑 있었어?”라고 내뱉는 장면에선 송강호만의 직관적인 감정과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평범한 대사조차 명대사로 만드는 그의 능력을 갈망하는 감독들은 2007년에도 줄을 서고 있다. 얼마 전 촬영을 끝낸 한재림 감독의 <우아한 세계>에서는 우아한 소망을 위해 우울한 일상을 견뎌야 하는 조폭 가장을 연기했고, 현재는 이창동 감독의 <밀양>에서 사랑하는 여자의 주위를 맴돌며 묵묵히 지켜보는 카센터 사장 종찬 역을 맡아 열연 중이다. 전도연과 함께 출연하는 이 영화의 크랭크업 이후에도 송강호가 쉴 틈은 없어 보인다. 김지운 감독의 신작과 박찬욱 감독의 <박쥐>도 그를 맞이할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올해의 배우_<타짜>의 김혜수

캐릭터마저 패션화시킨 에너지

김혜수는 천생 여주인공이었다. “김혜수 한명이면 그 영화의 에스트로겐 정량이 꽉 찬다”(김혜리)는 지적처럼, 그가 등장하는 영화에 다른 여주인공은 필요치 않았다. 20년간 누군가의 여인으로 화면의 한쪽을 독점했던 그는 <타짜>에서도 역시 스크린을 장악하는 압도적 존재감을 증명했다. 정 마담의 탄생은 이미 조금씩 예고되고 있었다. 밝고 건강한 에너지로 충만했던 십수년의 필모그래피 위에서, 그는 서두르지 않고 품속의 카드를 한장씩 꺼내 보이며 묘하게 그늘진 캐릭터를 추가했다. 그리고 <타짜>에서 자신의 타고난 화려함에 들끓는 욕망과 복잡한 내면을 꽉꽉 채워넣어 정 마담을 완성시켰다. 본인은 정 마담이 자신과 너무 달라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했다지만, 최동훈 감독은 김혜수를 만나고 나서야 정 마담의 캐릭터를 구체화할 수 있었다고 한다. 감독에게 정 마담은 ‘김혜수처럼 걷고 말하는, 한마디로 태가 멋진 여자’였다. 영화에서 패션 화보 같은 기운을 느낀다는 말은 보통 좋은 평가가 아니지만 그에게는 정반대다. 그가 걸친 옷은 마치 그 캐릭터가 아니면 입을 수 없는 옷이 되고, 복도를 걸어올 땐 또각또각 소리와 배경까지 그 캐릭터의 일부로 고스란히 끌려온다.

내년엔 세편의 영화에서 김혜수의 변신을 만날 수 있다. 정윤철 감독(<말아톤>)의 <좋지 아니한가>에서 늘어난 ‘추리닝’ 차림의 백수 무협소설가로, 김진성 감독(<거칠마루>)의 <열한번째 엄마>에서 성매매 여성으로 출연한다. 곧 개봉할 <바람피기 좋은 날>에선 윤진서와 나란히 출연해 바람난 주부를 연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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