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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울리는 성장드라마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
최하나 2007-02-14

CG의 향연과는 거리가 먼, 나직하게 가슴을 울리는 성장드라마

예고편과 포스터에 현혹되지 말 것.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는 스펙터클을 앞세운 판타지영화가 아니다. <반지의 제왕>의 웨타 스튜디오가 참여했음을 대대적으로 부각시킨 홍보 문구가 무색하게, <비밀의 숲…>에 등장하는 CG 분량은 절대적으로 적을 뿐 아니라 그나마도 움직이는 나무 거인과 다람쥐 괴물 정도다. 섣불리 ‘할리우드 판타지’를 기대했다가는 배신감을 느끼며 돌아서기 십상이다. 뉴베리상을 수상한 캐서린 패터슨의 동화를 영화화한 <비밀의 숲…>은 <해리 포터> <나니아 연대기>가 아닌 <스탠 바이 미> <마이걸> 옆에 나란히 놓일 성장드라마다. 애니메이션 <러그래츠> 시리즈의 제작자로 이름을 알린 가보 크수포가 메가폰을 잡았다.

12살 소년 제시(조시 허처슨)의 하루는 고난의 연속이다. 경제난에 허덕이는 부모님은 집안일을 시키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고, 학교의 아이들은 허름한 차림새의 제시를 왕따 취급한다. 그의 탈출구라고는 힘껏 들판을 달리거나,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전부다. 어느 날 같은 반에 레슬리(안나소피아 롭)라는 소녀가 전학을 오고, 단짝이 된 둘은 숲속에 자기들만의 비밀 기지를 꾸민다. 아이들의 상상 속에서 평범한 숲은 ‘테라비시아’라는 이름의 왕국으로 변화한다.

<비밀의 숲…>의 현실과 환상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아이들은 옷장을 통해 마법의 세계에 들어서거나 빗자루를 타고 허공을 질주하는 대신 일상의 짐을 어깨에 잔뜩 짊어진 채 숲으로 향한다.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과 선생님을 괴물로 만들어 혼내주는 등 제시와 레슬리는 상상의 힘을 빌려 잠시나마 짐을 내려놓으려 하는 것이다. 하나의 도피처로 존재하던 테라비시아는 그러나, 서서히 성장의 돋움대로 발전한다. 언제나 움츠린 채 눈에 띄지 않기만을 바라던 제시는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익히고, 자기주장만을 내세우던 레슬리는 타인의 상처를 보듬는 법을 배운다. 아이들의 환상을 하나둘 천천히 펼쳐 보이던 영화는 이윽고 작은 세계를 한번에 무너뜨릴 비극을 던져놓고, 아픔을 극복하며 소년이 성장해가는 과정을 담담한 시선으로 뒤쫓는다. <비밀의 숲…>이 아름다운 것은 현실의 그림자를 드리우면서도, 꿈의 세계를 부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눈을 감고 마음을 열면 나타나는 테라비시아처럼, <비밀의 숲…>은 엄혹한 현실의 대지 위에 상상의 싹을 틔운 성장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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