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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멘젤 3부작의 완결편 <거지의 오페라>
오정연 2007-05-23

풍자극의 고전, 욕망과 웃음의 거장을 만나다

비참한 삶에서, 건강한 욕망을 찬양하고 웃음으로 거짓 정치를 비웃는 체코의 거장 이리 멘젤 걸작 3부작의 완결편. <가까이서 본 기차>와 <줄 위의 종달새>가 일주일 간격으로 개봉했고, 1991년작 <거지의 오페라>가 마지막으로 관객을 찾는다. 앞선 두 작품이 체코의 대표적인 현대작가 보흐밀 흐라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면 <거지의 오페라>는 극작가이자 벨벳혁명을 주도한 끝에 체제 붕괴 뒤 대통령으로 취임했고, 이후 체코공화국의 초대 대통령까지 역임했던 바츨라프 하벨의 희곡을 스크린에 옮긴 결과물이다. 거지들의 왕국을 지배하는 대도(大盜)와 그가 결탁한 권력자와 정부(情婦)들의 이야기 <거지의 오페라>는 18세기 초 런던에서 초연된 동명의 대중 오페라가 기원이며, 브레히트가 <서푼짜리 오페라>로 각색한 풍자극의 고전이기도 하다.

값비싼 보석부터 값을 매길 수 없는 여인의 마음까지, 무엇이든 손에 넣을 수 있는 매키스는 암흑세계를 지배하는 기업형 도둑 피첨의 천적으로 떠오른다. 피첨은 매키스를 몰락시키기 위해 딸 폴리를 앞세우지만 폴리는 곧 매키스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그의 사주를 받은 경찰서장 역시 딸 루시를 동원하여 매키스를 체포하는데 성공하지만, 아버지 몰래 감옥으로 찾아온 루시는 일찌감치 매키스와 결혼한 상태. 아버지와 애인 사이에서 고민하는 폴리와 바람둥이 남편 때문에 일희일비하는 루시, “여자는 환상 속에 살아. 말 한마디만 잘하면 돼”라고 믿는 실용적인 바람둥이 매키스의 서로 다른 욕망, 그리고 경찰서장과 피첨의 또다른 속셈이 얽혀들고, 언제나처럼 한줌의 권력과 욕망이 관건이다.

채플린도 말했듯이, 인간의 어리석음을 웃어넘기는 데는 클로즈업보다는 풀숏이 제격이다. 전체를 조망하고 인물과의 거리를 통해 풍자의 시선을 만들어내는 이리 멘젤은 한편으로 버스터 키튼과 채플린의 후예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의 영화에서 종종 무성영화의 여유와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쌍둥이 형제와 하수구 청소부와 창녀의 화장실까지 동원하는 매키스의 기상천외한 도둑질 행태를 보여주는 첫번째 시퀀스 등 단조로운 피아노 선율 속에 펼쳐지는 일련의 장면들에서는 소박한 카메라 움직임이 포착한 소박한 연기와 리듬감 있는 편집이 펼쳐진다. 현대영화가 오랫동안 잊고 있던 미덕을 곱씹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이리 멘젤을 존경했다는 제레미 아이언스의 능청스러운 카메오 죄수 연기도 놓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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