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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더스FNH] 지금은 솔루션 개발 중!
이영진 2008-03-13

무리수인가, 돌파구인가. 중소 투자·배급사 이상 규모의 거대 제작사 싸이더스FNH의 최근 성적이 신통치 않은 것을 두고 갖가지 추측들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동토로 변한 한국 영화시장에 배급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5편의 영화제작에 들어간 싸이더스FNH는 <용의주도 미스신> <라듸오 데이즈>가 연달아 무너지면서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반면 일각에서는 질적 퀄리티를 담보한 영화들을 내놓기만 한다면 기존 투자·배급사들의 꿈쩍하지 않는 구도를 흔들 수도 있다고 반론한다. 이동통신사 KT와 한 이불을 덮은 지 2년여. 콘텐츠를 움켜쥔 싸이더스FNH는 과연 날개를 달 수 있을 것인가.

자본과 콘텐츠의 행복한 결합은 불가능한 꿈인가. 안정적인 제작시스템 구축은 요원한 것인가. 당사자들이야 이런 비교가 불편하고 또 탐탁지 않겠지만, 올해 초 MK픽쳐스와 싸이더스FNH는 극명하게 대조적인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명필름 시절로 돌아갈래!”라며 지난해 강원방송에 보유주식 전량을 넘기고, 한동안 유지할 것으로 보였던 배급 및 매니지먼트 사업까지 정리한 뒤에 제작에 올인한 MK픽쳐스는 현재 4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고 있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보란 듯이 스타트를 끊었다. 반면, 380억원대의 초대형 펀드를 결성하고 지난해 연말부터 배급업에까지 진출한 싸이더스FNH는 <용의주도 미스신> <라듸오 데이즈>의 잇단 흥행실패로 쓴맛을 봐야 했다.

수익률 악화로 인한 자본 경색이 좀처럼 풀리지 않고, 극장 외에 뚜렷한 부가판권이 없는데다 해외시장의 판로까지 대폭 줄어든 한국영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국영화의 크리에이티브에 관한 문제제기까지 일었고, 급기야 관객의 한국영화 선호도가 급속하게 추락한 위기의 한복판이다. 이러한 지형 아래서 10년 넘게 명가로 이름을 떨친 두 제작사가, 한국영화의 폭발적 상승을 선두에서 일궜던 ‘선수’들이, 서로 다른 길을 택했다는 것은 곱씹어볼 일이다. 1990년대 말 우노필름 시절부터 안정적인 제작시스템 확보를 위해 끊임없이 자본을 끌어들여 기업화를 시도했던 대형 제작사 싸이더스FNH의 행보는 특히 관심 대상이다. 어떤 결과를 낳든지 향후 한국영화 제작부문에 상당한 파장을 미칠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영화사끼리 합병, 그리고 주식시장 진입을 통한 재원 확보라는 측면에서 볼 때 MK픽쳐스와 싸이더스FNH의 지난 몇년은 크게 다르지 않다. 명필름과 강제규 필름이 손잡고 코스닥 상장사 세신버팔로와 합병을 시도했던 것이 2004년 1월. 거의 동시에 당시 싸이더스픽쳐스 또한 시큐리콥의 자회사가 됐다. 이후 2005년 11월에 MK픽쳐스는 세신버팔로를 분리한 뒤 투자·배급업 진출을 선언했다. “단기 차익을 노린 자본이 아니라 꾸준이 영화계에 남을 자본이라는 매력이 있었고, 서로의 자본을 결합해 새로운 사업영역을 돌파하자는 의지”에 따라 이동통신사와 끊임없이 교신하던 싸이더스 또한 “회사 덩치가 커지면 아무래도 컨텐츠를 만들어내는게 수월할 것”이라는 판단을 하던 좋은영화와 합병을 이룬 뒤 곧이어 2005년 9월 끊임없이 영화계 &#51902;에 관심을 보여왔던 이동통신사 KT를 파트너로 삼게 된다.

그렇다면 지난 2년 동안 싸이더스FNH의 실적은 어떨까. 2006년 싸이더스FNH가 내놓은 영화는 모두 13편. 같은 해 한국영화 개봉작 108편 중 독립영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를 제외하면 전체 개봉작 수는 90여편. 전체 편수 중 15%에 가까운 영화가 싸이더스FNH 표식을 달았다. 이 정도면 거대 공룡 제작사의 탄생을 입증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내실은 썩 좋지 않았다. 전국관객 684만7777명을 기록한 <타짜>와 저예산영화임에도 228만6745명(전국 기준)을 불러들인 <달콤, 살벌한 연인>을 제외하면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200만명 이상 관객을 동원한 작품은 <비열한 거리> 1편에 불과했다. <국경의 남쪽> <사랑 따윈 필요없어> <열혈남아> 등 스타를 앞세운 영화들까지 외면을 당했다.

한편, 2007년은 숨고르기였다. 400억원 가까운 펀드를 굴리는 상황이 됐지만, 상반기에는 새로 제작에 들어간 작품이 없었다. 차승재 싸이더스FNH 대표 또한 당시 “자금을 믿고 너무 자신감있게 영화를 만들다가 퍽퍽퍽 깨지더라. 그런 것을 내가 똑같이 할 필요는 없잖나”라고 말했다. 하지만 하반기에 들어서 영화공장 싸이더스FNH는 달라졌다. 상반기에 캐스팅 난항 등을 이유로 제작을 미뤘던 작품들이 한꺼번에 촬영에 들어간 것이다. 편수를 줄이자는 시장의 요구를 따르기에 싸이더스FNH는 너무 덩치가 컸던 것일까. 이미 선보인 <용의주도 미스신> <라듸오 데이즈> 외에도 <트럭> <킬 미> <1724 기방난동사건> 등 5편의 영화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촬영을 시작했다. 연말께부터는 “체력이 될 때까지” 유보하겠다던 배급사업 또한 시작했다.

싸이더스FNH가 투자·배급 부문으로까지 영역을 확장한 건 사실 당연한 수순이다. KT로 인수된 다음 여러번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왜 “엄혹하기 짝이 없는” 국면을 택해서 출사표를 던졌을까. 2006년 하반기부터 메이저 투자·배급사들이 위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메인투자 비율을 30% 선으로 낮췄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반면 CJ, 쇼박스, 롯데 등 극장을 보유한 투자·배급사들은 배급수수료를 최대 12% 선으로 올렸다. “우리가 봉이냐”고 울먹이던 부분투자자들은 뒷짐을 지고 배수진을 쳤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파이낸싱 갭이 발생했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제작사로 넘겨졌다. 제작자가 직접 부담을 떠안는 사례도 비일비재했다. 촬영을 끝낸 뒤에도 개봉이 연기되거나 관객을 만나는 것조차 불투명해진 작품들이 대거 늘어났다. 제작사들로서는 수익을 기대하기는커녕 빚을 걱정해야 하는 구조가 점점 고착화됐다.

부디 한국영화의 4번타자가 되어 주길

싸이더스FNH가 결심을 굳힌 데는 이러한 배경이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우려 또한 존재한다. 투자가 완료될 때까지 좀더 돌다리를 두드렸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10편 중 3편만 되면 된다”는 편한 계산이나 “전체 제작비의 50% 정도만을 확보하면 촬영부터 들어가는” 융통성을 발휘했다간 ‘꼼짝없이 독박 쓸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투자자의 말이다. “<라듸오 데이즈>의 실패는 시장이 좋다면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사소한 판단의 착오라고 할지라도 엄청난 부정적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이미 개봉한 2편은 그렇다 치자. 나머지 3편의 결과가 싸이더스FNH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싸이더스FNH의 성패가 한국영화의 그것과 궤를 같이 해왔음을 염두에 둔다면 귀를 세우지 않을 수 없다.

KT, 싸이더스FNH, 스카이라이프 등이 모여서 실제 300억원 규모로 시작했던 싸이더스FNH 베넥스 영상투자조합 1호 펀드의 경우, 현재 가용자본이 50억, 60억원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 여름까지 선보일 3편의 영화가 모두 수익을 거둔다고 해도 하반기가 되어서야 자금이 들어올 것이므로 당장 쓸 수 있는 제작비가 많지 않다. 추가로 펀드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재계 6위 KT의 방호막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한껏 움츠러든 시장에서 신규 펀드 구성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배급 또한 “하반기에는 주로 대행을 할 것 같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프로젝트 진행 상태로 보면 하반기에 싸이더스FNH 자체 제작 작품 중 촬영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장준환 감독의 <타짜2> 정도다.

싸이더스FNH의 내부 움직임 또한 심상치 않다. KT는 2008년 들어 프리프로덕션을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 중 진행이 더딘 작품들을 직접 덜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 제작 결정 여부를 정하는 것도 KT의 의사를 반영하는 전략기획실에서 행사할지 아니면 기존의 방식대로 맡길지 논의 중이라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소문까지 흘러나온다. 한 내부 관계자는 “뭐라고 말할 수 없으나 어떤 식으로든지 KT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두 공동대표가 프로젝트에 착수하려면 어떻게든 KT의 동의를 받아내거나 아니면 직접 돈을 구하기 위해 뛰어야 하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일각에서는 설 연휴가 끝난 뒤 차승재, 김미희 두 공동대표가 각각 해외 출장길에 오른 데는 신규 펀드 조성을 위한 목적도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물론 이 같은 전망이 기우라는 말도 있다. 과거 싸이더스에 몸담았던 한 제작자는 “우노필름의 경우를 보자. 싸이더스로 몸집을 불린 다음에 <화산고>부터 <킬리만자로>까지 잇따라 7연패했다. 그런데 2003년에 <살인의 추억> <싱글즈> 그리고 이듬해 <범죄의 재구성> 등으로 다시 서지 않았나. 외형을 불린 지 얼마 안 됐고, 시행착오를 크게 볼 필요는 없다. 어차피 콘텐츠는 업 앤드 다운이 있는 것 아닌가.” 또 다른 제작자 또한 “싸이더스FNH의 성적이 다른 회사들에 비해 특별히 나쁘다고 말할 근거는 없는 것 같다”고 전한다. 비관론이 우세한 투자쪽에 비해 제작쪽은 싸이더스FNH가 일종의 대항마로 기능했으면 하는 바람까지 갖고 있다. 또 한 제작자는 “자체 제작에까지 손을 댄 기존 투자·배급사의 횡포를 감안하면 싸이더스FNH의 역할이나 책임이 적지 않다”고 기대했다.

낙관이든 비관이든, 어느 쪽에 서든 한 가지는 분명하다. 뻔한 소리 같지만 싸이더스FNH가 “질적으로 월등한 퀄리티의 작품들을 끊임없이” 내놓지 않으면 언제든 기로에 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어보자. “언제나 저항선이 존재하되 의미있는 2등 영화를 내놓았던” 싸이더스와 “트렌드를 선점한 뒤 흥행작을 곧잘 터트리던” 좋은영화의 시너지가 지난 2년 동안 제대로 발휘된 것일까. 합병을 통해 편수를 늘리는 데는 성공했으나 제작 명가로서의 브랜드 명성은 외려 실추된 것 아닌가. 흔히 두 회사가 몸을 섞은 뒤로 “색깔이 없어졌다”고 한다. 김미희 싸이더스FNH 공동대표 또한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차승재 대표 또한 여러 차례 프로듀서로서 과거처럼 작품을 가다듬을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해왔다.

이뿐일까. 합병 전후로 양 회사, 그리고 양 회사의 인력들이 적지 않은 갈등을 빚어왔던 게 사실이다. 여기에 KT라는 자본이 결합하면서 “오너와 직접 담판을 짓고서 속전속결로 업무를 처리하는 구조” 또한 불가능해졌다.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감독과 프로듀서, 그리고 마케팅 인력들이 새 둥지를 차리거나 찾아서 떠났다. 계측할 수는 없으나 인력 누수 및 교체로 인해 과거보다 월등한 퀄리티의 작품들을 내놓지 못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현재 콘텐츠 강화를 위해 싸이더스FNH가 구상하는 바가 없진 않다. 차승재 대표가 한 인터뷰에서 공동제작을 강화할 것이라고 한 바 있고, 김미희 대표 또한 올해 내부 감독들에게 큰 프로젝트를 맡기기 전에 5억원 규모의 저예산영화 연출 5편을 제안할 계획이다. 이 두 가지 구상은 함께 맞물려서 진행 중이기도 한데, 결과물은 KT의 디지털 콘텐츠 유통을 위한 콘텐츠로도 사용될 전망이다.

한 투자자는 같은 맥락이되 조금 다른 추가 주문을 내놓는다. “싸이더스FNH 안의 인력들이 과거보다 노하우나 재능이 떨어진다고 보진 않는다. 좀더 중요한 건 시스템이다. 조직이 커지면 서로 자극이 필요하고, 견제가 필요하다. 그런데 싸이더스FNH를 보면 그 안에 견제장치가 없다. 공동대표로 나뉘어져 있는 것 그 자체를 문제삼고 싶진 않다. 한때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들었으니까. 그런데 2개의 라인이 존재한다고 하면, 다들 자신 혹은 자신의 프로젝트에 화살이 되어 돌아올까봐 작품 개발 과정 등에서 서로 침묵하는 것 아닌가 싶다. 그 말이 맞다면, 실무적인 제작시스템이야 선도적으로 쌓아왔기 때문에 많은 편수를 내놓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만 이른바 물건을 쉬지 않고 내놓기란 좀 어려운 듯하다.”

제작사들이 이제는 “초심으로 돌아가서 콘텐츠에 집중해야 한다”고 외치는 시점에 그렇다고 싸이더스FNH까지 산업화 모델을 팽개치기를 바라는 이는 많지 않은 듯하다. 잠깐 언급했듯이 싸이더스FNH를 향한 우려와 믿음, 그 밑바탕에는 싸이더스FNH가 한국영화 제작사의 상징 그 이상의 집합이라는 교감이 있다. 과연 싸이더스FNH는 안정적인 콘텐츠 생산 모델을 충무로에 안착시킬 수 있을 것인가. 자본과 콘텐츠의 만족스러운 동거를 밑천 삼아 영세 딱지를 뗀 영화가 뉴미디어 영역에서 위세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싸이더스FNH가 그 해묵은 숙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싸이더스FNH가 한국영화의 4번타자가 될지, 위기론에 빠진 한국영화에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을지 주목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