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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소년과 시골 소녀의 만남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

무공해 웰빙 시각만족 지수 ★★★★☆ 아기자기 감칠맛 지수 ★★★★ 애정 폭력 공포 기타 등등 자극 지수 ☆

무료한 학교 생활에서 최고의 이벤트 중 하나는 전학생의 등장이다. 한반 급우들이 40~50명에 달하고 전교생이 수천명인 학교를 다녀도 그럴진대 초·중등을 합쳐 전교생 달랑 6명인 시골의 분교에서 그 신선함이란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영화는 전학생을 맞느라 분주한 학교 풍경으로 시작된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달랑 여섯뿐인 이 시골분교의 맏언니 격인 소요(가호)는 설레는 마음으로 첫인사를 연습하며 전학생의 등장을 기다린다. 그러나 도쿄에서 온 동급생 히로미(오카다 마사키)는 샤방샤방 꽃가루 날리는 외모와 달리 싸가지없는 멘트를 거침없이 날리며 소요의 부푼 마음을 단박에 실망으로 가득 채운다. 그러나 소요가 히로미가 단골 과일트럭 할아버지의 손자라는 사실과 귀향한 속사정을 알게 되면서 마음을 풀고, 여기에 히로미의 돌발적인 대시가 이어지면서 둘 사이엔 풋풋한 첫사랑 전선이 형성된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더이상 순수하게만은 묘사되지 않는 십대의 사랑이지만 이 작품에서 이들의 사랑이 무공해 청정상태로 유지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히로미와 소요를 언제나 지켜보고 있는 귀여운 동생들 때문이다. 아직 소변을 가리는 것조차 익숙하지 않은 일학년 사치코, 소꿉장난은 유치해서 더이상 안 하겠다는 3학년 카츠요, 소요의 남동생인 코타로 그리고 쌍둥이처럼 붙어다니는 중학교 1학년생인 이부치랑 아츠코. 다른 생김새, 다른 학년만큼 개성 넘치는 아역배우들의 빛나는 연기는 영화에 탱글탱글한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 누구도 과장된 캐릭터가 없음에도 영화가 끝날 때쯤이면 각각의 인물의 특징이 마치 동네 꼬마 녀석들처럼 생생하게 각인되는 것은 극적인 사건이 없으면서도 충분히 흥미로운 이 영화의 서사구조와 닮은 구석이 있다.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은 전작 <린다 린다 린다>에서 어른도 아이도 아닌 청소년기의 결정적인 장면을 자극적인 에피소드 없이 담백하고 신선한 방식으로 포착해낸 것처럼 이 작품에서도 도시 소년과 시골 소녀의 만남이라는 다소 익숙한 뼈대에 진부함이 스며들 틈이 없이 이야기의 살을 붙여나간다. 소요와 히로미의 첫사랑을 원색 그대로 지켜주는 또 다른 요인은 그들을 든든하게 지키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전형적인 농촌에 산과 바다까지 골고루 갖춘 마을의 풍광은 죽음, 불륜과 같은 꺼림칙한 인간사들까지도 어느새 고요한 자연의 기운 속으로 빨아들이고 만다. 이 영화는 심지어 거대한 빌딩 속에서 산을 발견하고 ‘너희들(복잡한 도심의 풍경)하고도 언젠가 친해질 날이 올지도 몰라’라고 읊조리는 소요의 모습을 통해 도쿄의 산만한 풍경조차 담담히 끌어안는다. 보통의 전원드라마들이 도시 공간에 적대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과 달리 이 작품에서는 그저 아직은 낯선, 조금은 정신없는 공간으로 묘사될 뿐 특별히 비판적인 시선으로 비추지 않는 것이 특징적이다.

구라모치 후사코의 만화 <천연 꼬꼬댁>을 영화화한 야마시타 노부히로의 작품에 붙인 한글 제목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은 정말 이 영화에 딱 들어맞는다. 원제가 자기 마을 외에는 너무 낯설기만 한 순진하고 어수룩한 소요의 캐릭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한글 제목은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살고 있던 소요와 그를 둘러싼 크고 작은 사건들, 그리고 그것들이 관객의 마음속에 잔잔하게 불러일으키는 신선한 감정적 동요를 잘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산들바람은 거센 폭풍우처럼 모든 것을 한꺼번에 바꿔놓지는 않지만 미세한 파장을 일으키며 소녀와 소년이 조금씩 자라날 수 있는 자양분을 실어 나른다.

Tip/ 순정만화 같은 스토리와 더불어 이 작품이 여성관객의 마음을 휘젓는 주된 이유는 히로미 역의 배우 오카다 마사키 때문이다. 소요 역의 가호도 참한 매력을 발산하지만 ‘차세대 쓰마부키 사토시’로 불리는 오카다 마사키는 동년배뿐 아니라 누나 팬들에게 강하게 어필하는 마스크와 아우라의 소유자로 CF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맹활약을 하고 있다.

만화가 영화로 탄생하기까지

영화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은 순정만화계의 대가 구라모치 후사코가 원작 <천연 꼬꼬댁>을 제공하고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메종 드 히미코>의 각본가인 와타나베 아야가 각색하고 <린다 린다 린다>의 젊은 감독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이 메가폰을 잡음으로써 완성되었다. 와타나베는 원작 만화의 열렬한 팬으로 영화화가 결정되기도 전부터 이 작품의 무대가 된 장소에서 로케이션 헌팅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구라모치는 자신의 작품이 영화화되는 조건으로 원래의 배경인 하마다가 촬영지가 되어야 한다고 내걸었는데, 그곳은 그녀가 실제로 유년 시절 사촌 여동생과 매년 방학을 보내던 곳이었다.

1990년대에 나온 만화가 2007년 영화로 탄생하기까지 십여년의 세월이 걸린 데는 나름의 어려움이 산재해 있었기 때문인데 영화의 프로듀서인 네기시 히로유키는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압축하여 설명한다. 하나는 만화인 원작이 실사화될 때의 이질감, 또 하나는 원작 속의 평범한 여중생 미기타 소요가 스타영화로 포장될 것에 대한 우려였다. 마지막으로는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아름다운 자연인데 자연이 전면에 등장하려면 극단적인 자연다큐나 SF가 아니고서는 크랭크인이 불가능한 제작여건이었다.

영화는 그런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시마네현의 하마다- 불행하게도 우리에게는 독도문제로 악명이 높은 지명이 되었지만- 에서 평화롭게 촬영되었다. 영화를 아름답게 수놓았던 세트들은 크랭크업과 동시에 사라졌다. 하지만 구라모치의 말대로 ‘예전에 존재했던 그 세계는 기억 속에서 빛’나며 다행히도 이 ‘영화에는 그 빛이 모두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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