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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하고 과감한 패러디와 유희 정신 <다찌마와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주성철 2008-08-13

외국어 유창함 지수 ★★★★ 해외 로케이션 지수 ★★★★★ 원활한 대사 리스닝 지수 ★★☆

노인을 위한 영화가 아니다. <다찌마와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이하 <다찌마와리>)의 전략은 좀더 젊은 감각의 뻔뻔하고 과감한 패러디와 유희 정신이다. ‘더러운 죄악에 종지부를 찍을 내 주먹을 사라’, ‘조국과의 사랑을 배신한 그녀는 간통죄’, ‘당신은 내 마음의 세입자’ 같은 대사들을 그저 듣기만 하면 웃기긴 한데 머리가 지끈거리기도 하며 하여간 도대체 뭔 영화인가 싶다. 그건 마치 저 멀리 할리우드의 포복절도 코미디 ZAZ사단으로 시작해 총알탄 사나이와 악수하고 패럴리 형제와 어깨동무하며 가까운 이웃 주성치에게 눈길 한번 주면서 바로 우리 세대의 ‘디씨갤’로 귀환하기까지, 오직 웃음 하나만 보고 질주하는 거대하고 호방한 농담의 세계다. 오리지널이기도 한 류승완 감독의 이전 인터넷 버전의 중편 <다찌마와리>(2000)로 예습한 감각이 남아 있다면 기꺼이 이번 열차에 승차하는 게 그리 힘들지만은 않을 것이다. 류승완은 100% 후시녹음으로 태연하게 문어체 대사들을 늘어놓는 이전 다찌마와리 캐릭터를 그대로 둔 채, 홍콩과 도쿄를 오가며(종종 직접 가지 않고 홍콩과 도쿄의 자료화면만 가져다 썼던) 60∼70년대 반짝 인기를 끌었던 한국형 첩보액션영화와 ‘일본놈’을 공공의 적으로 삼아 만주를 무대로 했던(사실은 한강 둔치) 이른바 ‘만주 웨스턴’의 스케일을 덧씌웠다. 뱅글뱅글 돌며 외팔이의 원심력을 이용한 액션의 정점을 보여줬던 <서극의 칼>에 오마주를 바친다는 류승완 개인의 액션 연출도 꽤 근사하게 목적지에 다다랐다.

1940년, 특수요원들의 명단이 담긴 일급 기밀문서와 여성 비밀요원 금연자(공효진)가 작전 수행 도중 사라진다. 이에 임시정부의 수장들은 비장의 병기 다찌마와리(임원희)를 부른다. 최고의 무기 개발자 남 박사(김영인)를 통해 신무기를 지원받은 다찌마와리는 관능적 스파이 마리(박시연)를 새로운 파트너로 맞이한 뒤 사건의 단서를 찾아나간다. 하지만 그 와중에 다찌마와리는 불한당 중의 불한당 국경 살쾡이(류승범)가 끼고 왕 서방(김병옥)이 이끄는 마적단의 공격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려 위기를 맞이한다. 하지만 이름없는 한 소녀(황보라)의 도움으로 절대 무공을 익혀 마적단을 소탕한 그는 신출귀몰하는 일본쪽 첩보 브로커 다마네기(김수현)를 쫓아 상하이와 만주는 물론 일본과 스위스를 오가는 본격 첩보전을 펼치기 시작한다.

<다찌마와리>는 2000년 버전과 전략은 같되 계속 장소를 이동하는 로드무비의 구조로 승부를 건다. 대관령 어디로 보이는 스키장을 스위스의 설원이라 우기는데 거기에는 스위스은행 축협지점이 당당하게 고액의 수수료를 받으며 영업 중이고, 김구 선생처럼 보이는 분께서는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의 아리수가 흐르는 압록강과 두만강에서 애교머리를 길게 휘날리며 모든 사자성어를 총동원해 조국의 안위를 걱정하며, 미국 프린스턴 대학생들은 영어회화 테이프를 그대로 재생시키는 것 같은 교과서 대화만을 나누며 단조로운 캠퍼스 생활을 만끽하고 있다. 사실 이것은 최근 한국 코미디영화에서 상황의 코미디 혹은 캐릭터의 코미디를 넘어 모든 금기와 권위를 조롱하는 혁신적 감각이다.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모든 것의 뻔뻔한 집합체이면서도 사실은 그 어디에도 정붙이지 않고 낄낄대는 노련함이라고나 할까. 해외 로케이션의 블록버스터처럼 보이려는 귀여운 눈속임부터, 번역자막을 읽지 않아도 뻔히 들리는 외국어들을 굳이 자막으로 처리하는 <개그콘서트>식 속도 개그까지 <다찌마와리>는 무질서한 듯하면서도 사실은 굉장히 정련되고 세련된 유희로 나아간다. 웃길까 말까 망설이는 것 같은 후반부 설원 봅슬레이 액션의 성격만 명확하게 했었어도 이 로드무비는 꽤 완벽한 여행으로 끝났을 것 같다.

tip/2000년에 만들어진 <다찌마와리>의 기억을 떠올려보자. 무술연기에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은 무척 화려하다. 먼저 무술감독이자 영화 속 ‘동방의 무적자’(안길강) 대역을 맡았던 신재명은 이후 <친구>(2001)를 시작으로 충무로의 잘나가는 무술감독이 된다. 다찌마와리 임원희 대역을 맡았던 유상섭 역시 <열혈남아>(2006) 등 현재 주목받는 무술감독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동방의 무적자를 호위하던 ‘어깨’들 중 하나였던 주영민 역시 <황산벌>(2003)과 <야수>(2005) 등의 무술감독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2008년 다찌마와리의 대역을 맡은 인물은 바로 <강철중>에도 참여했던 강영묵 무술감독이다.

류승완 사단이라 불러주오

임원희를 비롯해 예전 <다찌마와리>에 참여했던 안길강, 류승범 등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번 <다찌마와리>에는 지금껏 그와 오래도록 함께 작업하며 ‘류승완 사단’이라 불러 마땅할 친구들이 대거 참여했다. 안길강, 류승범, 김수현 등은 류승완 감독 왈, “내가 새 영화 들어간다고 하면 이미 체육관 다니면서 몸 만들며 ‘이번에는 무슨 역할이야?’라고 묻는 사람들”이다. 마적단 두목 왕 서방으로 나온 김병옥은 <올드보이>의 짧은 백발머리의 유지태 심복으로 이름을 알린 이후 <짝패>에 순박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청년회장 역으로 출연했고, 첩보 브로커 다마네기 역의 김수현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시작으로 특이하게도 인터넷 중편 <다찌마와리>를 제외하고는 류승완 영화에 완전 ‘개근’했으며, 류승완의 인권영화 프로젝트 <남자니까 아시잖아요?>에서는 단독 주연으로 활약했다. ‘진상6호’ 안길강은 류승완 사단의 최고 인상파로 역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시작으로 작은 역할이라도 거의 모든 류승완 영화에 출연했다.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는 류승범에게 모욕감을 안겨주던 동네 깡패로, <짝패>에서는 의문을 죽음을 당한 친구들의 리더 ‘왕재’로 나왔다. 최근엔 <무적의 낙하산 요원> <일지매> 등 TV드라마로 활발히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왕의 남자>의 광대 칠득이로 사랑받기 시작한 ‘진상8호’ 정석용은 <짝패>에서 영화 속 류승완의 안 풀리는 형으로 출연했다. 일본군 대장으로 출연한 정우는 <짝패>에서 어린 시절의 왕재를 연기한 친구이며, 다다미방에 앉아 있는 또 다른 놈 ‘일본놈’ 이정헌은 <주먹이 운다>의 교도소장, <남자니까 아시잖아요?>의 친구들 중 한명으로 출연한 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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