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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일제시대, 거 참 민감하군

<역도산> <청연> 등 역사적 인물의 전기영화는 왜 성공을 못했나

<역도산>

역사적 인물을 다룬 전기영화는 한국 박스오피스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예를 들면 <역도산> <청연> <챔피언> 같은 영화들이다. 전기영화는 역사적 시간, 공간, 사건을 재구성해야 하는 돈이 많이 드는 장르이기 때문에 흥행 여부는 큰 문제가 된다.

중국에서는 최근 두편의 전기영화가 흥행에 성공했다. <매란방>은 전설적인 중국 경극 배우 매란방에 대한 영화고 <엽문>은 이소룡의 스승이기도 한 거목 무술인 엽문에 대한 영화다. 두편 다 유족들의 공식적인 인정을 받았지만 역사적 정확성보다 오락을 앞세우며 실제 사실을 슬쩍 지나쳐버리거나 무시했다.

<매란방>의 처음 5분간은 여성적인 주인공이 잠재적 후원자의 무릎을 거절하는 것을 통해 그가 게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관객에게 주지시킨다. 장쯔이가 연기한 정부와의 연애에서도 성적인 관계는 암시되지 않는다. 물론 매란방의 약물 사용에 대해 영화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엽문>에서 우리의 영웅은 가라테 유단자인 장군이 마지막에 나타날 때까지 10명의 일본군을 동시에 상대한다. 엽문이 열댓명의 일본 군인들은커녕 일본 군인 단 한명과 싸웠다는 역사적 기록도 전혀 없다. 영화는 그가 일본 점령기에 경찰이었다거나 반공산주의 국민당의 지지자였다는 데 대해 조금도 언급하지 않는다.

두 영화의 민족주의의 중심에는 일본과의 협력을 거부하는 역사적 인물만 있을 뿐이다. 이런 부분은 설명이 많이 필요하더라도 최소한 사실에는 기초해야 한다. 한편 흥미롭게도, 두 영화 모두 일본에 대한 부정적 편견에 안주하는 반면, 최소한 주요 일본인 역이나 동조적인 일본인 역할에는 잘생긴 스타를 기용했다. 이런 민족적 영웅의 최근 모델로는 3년 전 중국 설 시즌에 개봉한 이연걸의 <무인 곽원갑>이 있다. 이 전기영화는 <영웅>이나 <와호장룡>처럼 미국 흥행에 성공하지는 않았지만 프로듀서 빌 콩이 중국에서 거둔 가장 큰 흥행작이었다. 이번에도 빌 콩은 트렌드세터로서 그의 능력을 입증했다.

두 영화는 전기영화로 실패작이면서 오락영화로도 여러 결점들을 안고 있다. <엽문>은 재미있지만 액션장면에는 아무 서스펜스가 없다. 그가 10명의 군인들을 해치운 뒤 20명이 다시 그에게 덤벼들지만, 혹 100명이 더 달려든다 해도 엽문이 패배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엽문과 미우라 장군의 마지막 결투에서도 미우라는 몇초 안에 나가떨어진다. 중국 영웅이 일본 악마에게 맞지 않을까 하는 걱정 따위는 할 필요가 없다. 이건 감독들이 그 예쁜 얼굴에 흠집이라도 날까 두려워 영화상에서 정우성이 연기하는 역을 모두 천하무적으로 만드는 ‘정우성 효과’와 버금간다.

한국 감독들은 흥행을 위해 역사적 사실들을 좀더 유연하게 다룰 필요가 있었던 것일까? 나는 <고고70>과 <신기전>을 무척 재밌게 봤다. 그들이 흥행에 어느 정도 성공한 것은 이야기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역사적 정확성을 다소 희생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청연>의 여항공사 박경원이 홀로 일본 함대를 폭격하거나 <역도산>에서 천황 히로히토와 목숨을 건 역도산의 레슬링 매치를 보고 싶은 건 아니다. 내 생각에 이 영화들이 역사적 상상력 면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특정한 역사적 시기와 관련이 있다. 이들 영화가 한국 (그리고 일본) 관객에게 아직도 예민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 시기를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번역=이서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