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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왕의 영화
고경태 2009-02-20

MB는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동안 한편의 영화도 보지 않았다. 이 글을 쓰는 2월12일 저녁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된 관람 기록은 없다. 하지만 그가 정말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고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청와대 시사실에서 비공식적인 관람 일정이 있기 때문이다. MB는 영화를 좋아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오히려 부인 김윤옥씨가 영화를 더 즐긴다는 말도 들린다. 부부가 DVD를 감상하며 여가를 보내는지도 모른다.

MB는 대통령 후보와 당선자 시절에 몇편의 영화를 공개적으로 보았다. 2007년엔 <마파도2>와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2008년 1월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관람했다. <마파도2> 때문엔 설화도 입었다. 벤처기업협회 사무실에서 이런 말을 스스럼없이 해서다. “돈 적게 들이고 돈 버는 것, 이런 것이 벤처 아이디어지… 아마 공짜로 나오라고 해도 다 나올 배우들을 데리고 말이야.” 당사자인 노장 여배우들이 문제삼지 않아서 그냥 넘어간 게 다행이었다.

요즘 MB에게는 어떤 영화를 추천해주면 좋을까. 개봉작 중에서 몇 가지를 추려보자.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체인질링>을 보라고 한다면 정치적 공세라며 일축할 것만 같다.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는 결국 사퇴했지만, MB는 용산 철거민들에 대한 경찰의 무모한 진압을 아직도 당당하게 여긴다. 영화 속 LA 경찰을 오늘의 상황과 아무리 연결시켜봤자 턱도 없는 비유라는 답만 돌아올 것이다. 그렇다면 박희순과 박용하, 김민정이 나오는 <작전>은 어떤가. MB에게 이 영화의 리뷰 기사를 맡기고 싶은 욕심마저 든다. 그가 허락한다면 ‘글 이명박/ 대통령’ 크레딧이 들어가는 감상문을 <씨네21>에 큼지막하게 싣고 싶다. 그는 LKeBank라는 투자자문회사의 대표이사였다. 영화 속 상황 설정과 디테일에 관해 인상적인 코멘트를 해줄 거다. 주가조작을 했던 BBK에 연루되어 대통령에 오르지 못할 뻔한 아찔한 기억까지 버무려 글을 써준다면 금상첨화일 텐데, 말도 못 붙이게 할 가능성이 높다.

전임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왕의 남자>와 <길> <밀양> <화려한 휴가>를 공식 관람했다. 관객이 몰린 흥행작이거나 국제적인 영화제에서 큰 상을 받았거나 독특한 예술영화이거나 셋 중 하나였다. 그 기준에 따른다면 MB는 지금 <워낭소리>나 <과속스캔들>을 보는 게 적당하다. 내가 MB라면 먼저 <워낭소리>를 택하겠다. 한데 이 영화는 MB의 국정철학과는 거리가 멀다. 끝내 소를 팔지 않거나 소가 잘못될까봐 밭에 농약도 치지 않는 주인공 할아버지의 고집은 개발지상주의자인 MB의 그것과 정면으로 어긋난다. 고집이 세다는 점만 MB와 닮았다. 영감님의 옹고집을 통해 MB가 자신의 모자란 부분을 채우는 영감을 받았으면 좋겠지만,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