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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자단] 이제 액션의 고수는 ‘견자단’이다
주성철 사진 오계옥 2009-04-23

<엽문>으로 돌아온 중화 무협영화의 마지막 전설, 그는 누구인가

견자단이 <엽문>으로 돌아왔다. 견자단이 성룡과 이연걸의 뒤를 잇는 차세대 최고수인 건 맞지만, (실제로는 1963년생으로 이연걸과 동갑) 이제 거기에 좀더 다른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이제 그는 중화권 무협영화 시장의 마지막 남은 전설이면서, 그들 중 거의 유일하게 홍콩에 뿌리를 박은 고참 영화인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그는 홍콩 현지에서 해마다 각종 영화 시상식의 액션 부문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건 당연지사고, 이제 액션스타 그 이상으로 중화권 영화시장을 대표하는 맏형이 된 것이다. 이제는 정말 그를 홍콩영화계의 ‘더 원’이라 불러도 틀리지 않다. <엽문> 홍보차 한국을 찾은 그를 들뜬 마음으로 만났다.

견자단과 엽위신 감독이 또 만났다. 견자단은 엽위신 감독과 함께했던 <살파랑>(2005), <용호문>(2006), <도화선>(2007) 3부작을 거치며 확고한 ‘액션 지존’의 자리에 올라섰다. 그의 실력이 대단했던 것은 뭐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그가 엽위신과 함께하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게 된 것만은 확실하다. 그 사이 성룡과 이연걸은 홍콩과 할리우드를 오가면서 그 성과와 별개로 급속도로 노쇠했다. 성룡이야 그보다 10살 가까이 많은 사람이지만, 이연걸과 동갑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견자단이 얼마나 자기관리는 물론 액션 그 자체에 대한 비전이 확고하고 철저한지를 짐작할 수 있다. 성룡이 당계례 감독과 함께, 주성치가 유진위나 이력지 감독과 함께하면서도 늘 자신의 스타일대로 ‘성룡 영화’와 ‘주성치 영화’를 만들었듯 견자단 역시도 ‘견자단 영화’라는 자기만의 견고한 브랜드를 만들었다. 성룡이 다른 형사들에서도 종종 <폴리스 스토리> 시절의 ‘진 형사’라는 애칭을 그대로 사용했던 것처럼 견자단 역시 <살파랑>에 이어 <도화선>에서도 ‘마 형사’로 등장했다. 또한 견자단의 액션 스타일이 그 누구보다 속도감 넘친다는 것은 매번 기대를 갖게 만드는 전매특허이기도 하다. 성룡이나 주성치처럼 일찌감치 성공가도를 달려온 사람과 비교하자면 견자단처럼 악역을 괘념치 않고 꽤 오랫동안 주연과 조연을 번갈아 활동해온 사람으로서 그 자리에 가 닿은 것은 정말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이다.

견자단은 성룡과 이연걸 이후 사실상 홍콩영화계 최고의 고수다. 과거 이소룡이 창시했던 절권도처럼 그 역시 세계 각국 격투기들의 장점을 한데 모아 소화해내려 했던 액션의 스페셜리스트다. 그의 액션은 늘 남보다 빨랐고 강했으며 특별한 룰이 없어 보였다. 그 스타일의 극점이라 할 수 있는 <도화선>(2007)은 ‘액션 기계’ 견자단이 종합격투기(MMA)까지 끌어들여 보여준 종합선물세트 같은 영화였다. 재빨리 그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다음 영화들을 떠올려보라. <황비홍2>(1992)의 좁은 골목 라스트신에서 황비홍(이연걸)과 황홀한 대결을 펼쳤던 악당으로 나왔고, <영웅>(2002)에서 초반부에 장발의 고수로 나와 역시 이연걸과 환상적인 일대일 대결을 펼쳤고, <칠검>(2005)에서 다소 어색한 느낌의 한국말을 쓰는 고려인 무사로 나왔고, <연의 황후>(2008)에서는 공주 연비아(진혜림)를 사모하면서도 선뜻 그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는 대장군 ‘설호’로 나왔고, <엽문> 이전 작품인 <화피>(2008)에서 역시 최고 무사 ‘방용’으로 나왔던 배우다. 위 작품들과 별개로 액션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 <살파랑>(2005)은 불법 다운로드 최고 화제작이기도 했다. 더불어 견자단이 특별히 주연을 맡은 적이 없는 과거라 생소할지는 몰라도 <특경도룡>(1988)과 <철마류>(1993) 같은 작품들도 ‘필견’의 영화였다. 이렇게 1년에 2, 3편씩 주연을 도맡아 하는 배우임에도 국내에서의 인기는 불가사의라고 할 만큼 기대에 못 미친다는 사실이 의아하다. 바야흐로 그는 이제 성실과 재능 면에서 홍콩영화계의 중심배우이기 때문이다.

발군의 스피드, 변칙적인 무술이 특징

중국 광둥 지방에서 태어났지만 미국 보스턴에서 ‘거친’ 청년기를 보낸 견자단은 무술인 가족 출신이다. 특히 무예를 깊이 수련할 수 있었던 데는 실제 태극권의 고수였던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한다. 그러다 당시 원화평 감독의 <소태극>(1984)에 오디션을 보러 홍콩으로 오면서 그의 배우 인생이 열리게 됐다. 원화평이 실력에 반해 단번에 발탁했던 그는 국내에서는 출연과 무술지도를 겸한 <특경도룡>의 컬트적인 인기에 힘입어 처음 알려졌고, 한참 시간이 흘러 <신용문객잔>(1992)의 악역으로 새로운 모습을 선보였으며, <철마류>를 통해 북미시장에서도 인지도를 높였다. <전랑전설>(1997)로 감독 데뷔했으며 연출과 배우를 겸하던 그는 <황비홍2>와 <영웅>의 인상적 액션 이후 <샹하이 나이츠>(2003)에서도 역시 악역으로 성룡과 대결을 벌였다. 2000년대 들어서는 <하이랜더: 엔드게임>(2000)을 시작으로 <블레이드2>(2002)의 무술감독을 맡는 등 국제적인 무술감독으로도 맹활약했다.

특히 <블레이드2>에서 웨슬리 스나입스가 보여준 무술 연기는 <매트릭스>의 키아누 리브스처럼 단지 ‘영화를 위해 몇 개월 수련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줬는데 그것 역시 견자단의 힘이었다. 거기서 보여준 웨슬리 스나입스의 절도있고 군더더기 없는 스피디한 동작은 영락없이 견자단의 그것이었다. 그렇게 지금껏 견자단이 보여준 액션은 이소룡의 그것처럼 하나의 계통으로 정리하기 힘들 만큼 박진감 넘친다. 상대를 압도하는 발군의 스피드는 말할 것도 없다. 변칙적인 스타일이 자연스레 정통과 화합했다는 점에서 굳이 홍콩뿐만 아니라 아시아를 비롯한 전세계 무술 영화인들이 첫손에 꼽는 사람이 바로 그다. 말 그대로 그는 당대 세계 액션영화계의 라스트 액션 히어로다.

호전적인 액션, <엽문>에서 자제한 이유

<엽문>은 여러모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견자단이 이소룡의 열렬한 팬이고 엽문이 이소룡의 스승이라는 사실은 이미 유명한 일화다. 이전 견자단의 스타일을 떠올려보면 하나의 공통된 지점이 늘 ‘호전적’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선한 역할이건 악한 역할이건 시쳇말로 늘 ‘선빵’을 날리던 사람이었다. 거의 상대를 초죽음이 될 때까지 몰아붙이는 저돌적인 스타일은 그를 규정짓는 중요한 시선이기도 했다. 견자단 스스로 자기 액션의 ‘극점’이라고 말했던 <도화선>(2007)에서 보여준, 말 그대로 서서도(스탠딩) 누워서도(그라운드) 싸우는 ‘종합 격투기’ MMA(Mixed Martial Arts) 스타일을 떠올려보면 <엽문>은 상당히 고요하다.

과장된 사운드 효과 위에서 상당한 속도로 상대를 가격하는 몇몇 신들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엽문>에서의 그는 언제나 상대를 기다린다. 상대를 향해 언제나 맹수처럼 달려드는 그 매서운 눈빛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상대와 눈빛조차 마주치려 하지 않는 <엽문> 초반의 그는 다소 어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엽문>의 그를 향한 궁금증은 거기서 시작됐다. 그리고 그는 <엽문>이 자신의 이전작들과 가장 다른 점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라 했다. “언제나 영화를 처음 시작할 때 캐릭터부터 연구한다. 그리고 가족과 시대 등 배경을 고려하면서 캐릭터의 방향을 잡는다. 엽문은 일단 무언가에 휩쓸려서 운명이 흘러간 사람이었다. 영화 속에서 그가 택한 운명은 외부의 영향이지 그 스스로 개척해간 것이 아니다. 그에게 무술은 철저히 내면을 닦고 통제하는 것이었지 공격하는 수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엽문> 초반에서 내가 보여준 방어적 스타일은 바로 거기서 기인한다. 그래서 초반에는 몸이 좀 근질근질했다고나 할까? (웃음)”

엽위신 감독으로서도 견자단과의 네 번째 협업이라는 것 이상으로 시대극이라는 사실이 큰 난점으로 작용했다. 더군다나 이것은 실존인물에 관한 영화였다. 그런 점에서 견자단은 “아마 다른 영화를 할 때보다 캐릭터 분석하는 시간이 몇배는 더 들었던 것 같다”며 “엽위신 감독과도 많은 대화와 토론을 나눈 영화였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견자단 스스로 얘기하듯 현대물을 만들 때 최고의 파트너십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홍콩 누아르의 새로운 세대가 도착했음을 알렸던 <폭열형경>(1999) 이후 엽위신은 견자단과 조우하면서 <살파랑>이라는 ‘사건’을 만들어냈다. <살파랑>의 압권이라면 후반부 견자단과 오경이 골목길에서 펼치는 액션신인데, 단검을 든 오경과 호신용 3단봉을 든 견자단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감을 긴장하게 만드는 스피드와 박력으로 거의 실전에 가까운 짜릿한 쾌감을 줬다. 그처럼 <엽문>은 두 사람 모두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이에 대해 그는 “엽위신 감독과 함께했던 이전 세 작품 모두 각기 다른 개성이 있다. <엽문>은 그저 다른 정도가 아니라 새로운 발상과 접근법을 요구한 영화였다. 구체적인 사실이 있고 또 거기에 허구를 가미해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중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이라는 거대한 테마 안에 그것을 녹여야 했다. 어떻게 보면 두 사람 모두에게 썩 자유롭지 못한 작업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엽문’이라고 하는 캐릭터 그 자체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엽문2>는 이소룡과 엽문의 만남 될 것

<엽문>의 견자단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두편의 영화는 그의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원화평의 <강호영패>(1993)와 <영춘권>(1994)이다. 먼저 <영춘권>은 견자단이 실제로 출연했을뿐더러 엽문이 널리 전파한 영춘권의 시조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중국 명나라 말, 청나라의 압박을 피해 후난마을로 피신한 소림의 오매선사는 동네 건달에게 결혼을 강요당하고 있던 두부장수 딸 엄영춘을 돕기 위해 여성의 신체에 적합한 무술동작을 가르쳤고, 무술에 타고난 재능을 가진 영춘은 이 무술을 직선적이고 간결한 호신무술로 승화해 자신의 이름을 딴 ‘영춘권’으로 탄생시켰다. <엽문>에서 불한당 금산조(번소황)가 엽문에게 도전하면서 그를 도발하기 위해 “계집애 같은 무술을 구사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런 점 때문이었을 게다. 양자경이 연기한 엄영춘에 관한 이야기가 바로 <영춘권>이며, 여기서 견자단은 영춘과 힘을 합해 산적을 물리치는 남자로 나왔다. 그것은 이후 전수가 계속돼 엽문에 의해 대중화됐고 이소룡 역시 그의 제자였다. <영춘권>에 대해 견자단은 “공동 무술감독으로 참여하기도 했던 작품이라 <엽문>을 준비하면서 <영춘권>의 기억이 새롭게 떠올랐다”며 “그래도 <영춘권>은 실제를 바탕으로 하되 허구적이고 코미디적인 요소가 많은 영화여서 <엽문>과 정서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원제가 <소걸아>인 <강호영패>의 경우 견자단은 중반까지 황비홍과 대립하는 젊은 소걸아로 출연했다. 영화에서 아편에 중독됐다 고려인삼의 효능으로 아편을 끊기도 하는 소걸아는 견자단이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들 중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인물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나는 착한 역할을 맡더라도 늘 강하고 말이 없고 고통을 안으로 삭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소걸아는 그 반대였다. 거지들과도 허물없이 친하고 쾌활하고 밝은 성격이었다. <엽문>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밝고 온화한 사람이었다”는 게 그의 얘기다. 그만큼 <엽문>을 끝내고 만난 견자단은 인터뷰 내내 ‘나는 이전과 다른 새로운 인물을 연기했다’는 강한 자의식을 내비쳤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엽문>의 견자단을 설명할 수 있는 핵심일 것이다.

끝으로 그에게 똑같이 엽문을 소재로 촬영 준비 중인 왕가위의 <일대종사>에 대해 물었다. 양조위 외에도 임청하, 주걸륜 등이 캐스팅된 상태다. <일대종사>에서 엽문은 양조위가 연기하게 되며 양조위 역시 견자단처럼 엽문의 아들 엽준 선사로부터 짧은 기간이나마 영춘권을 수련했다(이후 엽준 선사가 견자단을 더 칭찬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엽위신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그에 대해 “엽문은 흡연을 즐겼는데 양조위는 담배 피우는 모습이 너무 멋진 배우다. 나도 보통 관객처럼 그런 장면들을 상상하고 있다”고 기대를 내비치기도 했다. 역시 <엽문2>를 준비하는 견자단 또한 명쾌한 대답을 내놓았다. “왕가위와 엽위신이 다르고, 나와 양조위가 다른 것처럼 두 영화는 다를 것”이라며 “같은 인물을 다룬 영화가 서로 다른 시선으로 동시에 만들어지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예전에도 황비홍, 방세옥, 홍희관 같은 인물들은 이런 일이 흔했다. 정말 많이 만들어졌다. 그때처럼 오히려 홍콩영화계가 살아나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현재 견자단은 진덕삼 감독의 <십월위성>을 준비한다. 실존인물 쑨원과 그의 암살을 막으려는 8명의 경호원에 관한 이야기로 임달화, 여명, 사정봉 등과 함께 그 경호원들 중 하나로 등장할 예정이다. 5월경 촬영에 들어갈 예정으로 올해 크랭크인하는 중화권 영화들 중 최고 제작비를 기록하게 될 작품이다. 그 다음은 드디어 다시 엽위신과 함께 8월부터 촬영에 들어갈 <엽문2>다. 팬들 사이에서는 드디어 엽문과 이소룡이 만나는 장면이 등장할 것이라 하여 벌써부터 화제다. 그렇게 견자단은 여전히 거친 숨을 내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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