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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장소 바꾼다고 악동들이 달라지나요

다운타운에서 링컨센터로 자리 옮긴 2010 뉴욕아시안필름페스티벌

2010년 뉴욕아시안필름페스티벌(NYAFF)이 한창인 링컨센터 월터 리드 시어터를 찾았다. 한산한 로비에서 커피와 빵을 손에 든 한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점심 먹었어요? 커피 마실래요?” 얼굴을 쳐다보니 그는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홍콩 배우 임달화다. 당황한 나머지 그의 출연작 <세월신투>를 볼 예정이라고 동문서답을 하니, “꼭 손수건 들고 들어가”라며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너스레를 떤다. 관객으로 통신원으로, 거의 10여년간 지켜본 NYAFF의 분위기가 바로 이런 거다. 영화제를 꾸리는 ‘서브웨이 시네마’ 멤버들이나 매년 변함없이 이들을 찾는 열성 관객, 이런 팬들을 직접 만나기 위해 뉴욕을 찾는 영화인들. 이들 모두가 자유롭고 여유롭게 영화제를 즐긴다.

지난해 소지섭과 공효진에 이어 올해 스타 아시아 어워즈 수상자로 초청된 홍금보(평생 공로상)와 임달화 덕분에 이들이 출연한 많은 작품들이 매진됐다. 특히 홍금보의 87년작 <동방독응> 상영 뒤에는 관객 모두가 기립박수를 오랫동안 쳤다. 이 밖에도 <크레이지 레이서>의 황발과 <여배우들>의 이재용 감독 등 다양한 아시아 영화인들이 초청돼 6월25일부터 7월8일까지 뉴욕 영화팬들과 직접 만남의 시간을 갖는다.

오랫동안 뉴욕 다운타운의 상징적인 영화제로 자리를 잡아왔던 NYAFF는 올해부터 맨해튼 어퍼웨스트사이드로 자리를 옮겨 새로운 관객층 확보를 시도하고 있다(다운타운은 젊은 대안 문화, 업타운은 좀더 고지식한 문화계를 상징하는 장소들이다). NYAFF가 조금 딱딱한 예술영화를 상영해온 링컨센터로 옮긴다는 사실에 영화제의 오랜 팬들의 반발도 뒤따랐다. 링컨센터가 자리한 어퍼웨스트사이드라는 동네 역시 NYAFF의 일반 관객보다 연령층이 높기 때문에 약간의 거부 반응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가 NYAFF에 대한 기사를 크게 보도해준 덕에 링컨센터의 필름 소사이어티 멤버들도 눈에 종종 띄었다.

영화제쪽에 따르면 링컨센터는 컬트부터 핑크영화까지 장르에 상관없이 재미있는 작품을 소개해온 NYAFF의 아이덴티티를 지키는 데 큰 도움을 줬다고 한다. 영화제 관계자는 “처음에 우리는 관객층이 달라지는 걸 예상해 작품성 위주로 라인업을 구상했다. 그러나 링컨센터쪽에서는 과격하거나 야한 영화라고 링컨센터에서 상영하지 않는다면 영화제 자체를 취소할 거라고 말해줘 오히려 흐뭇했다”고 말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NYAFF는 프로페셔널한 영화제 관계자라기보다 영화를 사랑하는 고지식한 악동들의 모임인 ‘서브웨이 시네마’가 선사하는 선물이다.

한편 올해 영화제에 초대된 한국 작품으로는 폐막작인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을 비롯해 <여배우들> <김씨표류기> <차우> <작은연못> <과속스캔들> <의형제> 등이 있다.

<작은연못> 반응이 예상외로 뜨겁다

집행위원장 그레이디 헨드릭스 인터뷰

-그간 페스티벌 장소가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늘 맨해튼 다운타운이었다. 올해 링컨센터로 옮긴 것은 상당히 의외다. =링컨센터에서 내는 잡지 <필름 코멘트>의 개빈 스미스가 2000년 첫 영화제부터 찾아왔었다. 처음에는 누군지 몰랐는데 메일링 리스트에 올린 뒤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다. 이후 자신이 알고 있는 기자나 필름 커뮤니티에 있는 친구, 가족까지 데리고 찾아와줬다. 정말 고마운 친구다. (웃음) 그러다가 지난해 “업타운으로 갈 생각 없느냐?”고 물어보더라. 10년간 영화제를 하면서 늘 우리 서브웨이 시네마 멤버 4명이 대부분의 일을 처리해야 했기 때문에 올해 링컨센터 관계자들의 지원은 무척 큰 도움이 됐다.

-티켓 판매율은 어떤가. =이미 <엽문2> <동방독응> <8인: 최후의 결사단> <세월신투> 등은 매진됐고, 이외 작품들도 티켓 75~80%가 판매된 상태다. 기대했던 것보다 성과가 좋다. 링컨센터쪽에서도 새로운 관객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라고 본다. 개빈 스미스가 관객에게 물어봤는데 3분의 1 정도가 링컨센터는 처음이라고 했단다. 오랜 역사를 가진 링컨센터도 서서히 새로운 관객을 찾기 위해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거다.

-한국 작품 중 재미 한인들이 접하기 힘든 <작은연못>이 있어 반가웠다. =<작은연못>에 대해서는 멤버들 의견이 반반으로 나뉘었다. 나는 좋았는데…. (웃음) 너무 늦게 결정돼 주중 낮 1회밖에 상영하지 못하게 됐다. 그런데 여기 미디어에서 난리가 난 거다. <빌리지 보이스>가 <작은연못>을 이번 페스티벌에서 ‘베스트 필름’이라고 극찬을 해주고 말이다. 반응이 좋아서 기쁘긴 하지만 전혀 기대하지 못했다.

-매년 영화제를 찾는 감독이나 배우들이 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영화제에 대한 소문을 들은 감독이나 배우들이 방문을 원하고 있다. 올해도 홍금보를 통해 우리 영화제의 이야기를 들은 임달화가 방문을 결정해줬다. 또 <크레이지 레이서>에 출연한 황발 역시 초청했는데, 뉴욕은 처음이라더라. 지금도 관광 중일 거다. 타임스스퀘어에 간다던데. (웃음) 이밖에도 <여배우들>의 이재용 감독과 <김씨 표류기>의 이해준 감독 등 많은 영화인들이 찾을 예정이다.

-초대작 중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한국영화가 있다면. =<김씨표류기>가 좋았다.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한 <의형제>도 좋았는데, 남북관계 때문에 관객이 더 호기심을 가져줬으면 한다. <차우>도 무척 재미있었다. 아주 잘된 공포영화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즐거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