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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고 또 달린다
주성철 2011-07-27

<해운대>의 ‘젊은 피’가 뭉쳐 만든 순수 오락영화 <퀵>

<>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2009년 1천만 관객을 돌파했던, 한국영화 역대흥행 4위 <해운대>의 ‘젊은 피’가 뭉쳤다는 점이다. <해운대>에서 커플로 호흡을 맞췄던 이민기와 강예원은 이제 오토바이 한대 위에서 거의 한몸으로 움직이고, <해운대>에서 사사건건 이상한 일에만 얽히던 김인권이 이번에도 악전고투를 거듭한다. <해운대>의 신화를 일군 윤제균 감독이 제작자 겸 각색자로 이름을 올렸으니 둘의 연관성을 되짚는 것은 꽤 흥미로운 작업이다. <>은 일단 저지르고 보는, 억지 부리지 않는 순수 오락영화다. 아니, 너무 억지를 부려서 신선한 액션코미디영화이기도 하다. <뚝방전설> 이후 전혀 다른 컨셉과 스타일의 <>으로 돌아온 조범구 감독을 만났다.

<>은 ‘한국판 <스피드> 혹은 <택시>’다. 시속 50마일 이하로 속도가 떨어지면 폭발하는 <스피드>(1994)의 버스는 주인공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10m 이상 떨어지거나 30분 안에 배달을 완수하지 못하면 폭발하는 헬멧으로 바뀌었고, 프랑스에서 가장 빠른 피자 배달부로 추앙받다 스피드건도 추적하지 못하는 시속 220km의 총알 택시기사로 전업한 <택시>(1998)의 다니엘은 왕년의 폭주족 생활을 청산하고 청담에서 상암까지 무려 20분 만에 주파하는 최고 퀵서비스맨의 몸으로 빙의됐다. 말하자면 <>의 쾌감은 제어할 수 없는 그 속도감에서 온다. 영화가 시작하고 인물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끝난 뒤 곧장 폭탄이 내장된 헬멧을 쓴다. 잡다한 설정과 주변 인물들을 과감히 생략하고 일단 달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모처럼 질주와 추격만 거듭하는 순도 높은 오락영화의 등장이다.

충무로의 뜨거운 이름, 윤제균과의 만남

무대는 명동과 인천공항철도를 비롯해 서울, 경기 일대의 모든 도로다. 왕년의 폭주족이었던 기수(이민기)는 어느 날 아이돌 가수 아롬(강예원)을 태우고 이동한다. 사실 아롬은 ‘춘심’이라는 본명을 지닌 기수의 옛 여자친구다. 하지만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괴전화가 걸려와 아롬의 헬멧에 폭탄이 장착돼 있다는 전화를 받는다. 살기 위해서는 그가 시키는 대로 서울 이곳저곳에 폭탄을 배달해야 한다. 강남대로에서의 폭발, 명동 상가에서의 추격전 등 서울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기수와 아롬은 졸지에 범죄자로 몰린다. 이에 교통경찰이자 과거 아롬을 사모했던 명식(김인권)이 옛 폭주족 친구들을 소집해 그들을 추격한다. 이제 기수와 아롬은 경찰의 포위망을 뚫으면서 괴전화를 거는 남자의 정체까지 밝혀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은 조범구 감독의 전작 <양아치어조>(2004)와 <뚝방전설>(2006)을 떠올려본다면 별다른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영화다. 두 영화 모두 강북에 사는 고교 양아치들의 나른한 일상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 그러니까 감독 자신의 경험과 자의식이 짙게 반영된 청춘영화였다. 굳이 기수와 비슷한 캐릭터를 찾자면 <양아치어조>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스배달을 하는 ‘떡팔이’ 정도다. 그러다 제작비가 수직상승하여 싸이더스에서 만들고 야심차게 박건형, 이천희, MC몽을 캐스팅한 <뚝방전설>의 흥행 실패가 부담이었을까. 상업영화시장에서 대중의 호응이야말로 영화감독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절대적인 기준이라는 생각은 조범구 감독의 어깨에 힘을 빼게 했다. 그 사이 순제작비 20억원 정도의 블랙코미디를 준비하며 배우 캐스팅까지 끝냈다가 불발된 경험도 있다. 하지만 영화진흥위원회 등 여러 곳에서 진행하던 제작지원 프로그램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 “왠지 상업영화를 하는 사람이 그런 데 응모하면 반칙”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꿔 말해, 이번에는 순도 높고 꽉 찬 상업영화로 관객과 만나고 싶다는 바람이기도 했다. 게다가 “어차피 그럴 바엔 덩치를 키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도 나아갔다. 더 많은 관객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12세 관람가 영화’를 목표로 하게 했다(결과적으로 <>은 ‘15세 관람가’를 받았다). 그런 그에게 윤제균 감독은 더없이 좋은 파트너였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난색을 표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오토바이로 뛰어넘고, 인파가 밀집한 명동 상가 중심거리를 수십대의 오토바이가 질주하며, 고속도로에서 자동차가 거대한 철판으로 두 동강난다는 설정을 구체적인 ‘영상’으로 인지하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양아치어조>와 <뚝방전설>을 함께한 오랜 친구인 박수진 작가의 시나리오를 받고서 제일 먼저 고개를 갸우뚱한 사람도 조범구 감독 자신이었으니까. 그런 모두의 마음속 생각은 한결같았다. ‘이게 가능해?’ 오세영 무술감독 역시 제의를 받고서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거절했다. 결국 제작자이기도 한 JK필름의 윤제균 감독의 지속적인 접촉과 조범구 감독이 직접 만든 레퍼런스 무비 영상을 통해 투자자와 스탭들을 설득해 나갔다. 그와 동시에 액션스릴러적인 면이 강했던 애초의 시나리오도 윤제균 감독이 각색에 참여하며 코미디를 강화했다. 조범구와 박수진이 드라마에 강한 사람들이라면 윤제균은 코미디에 집중했다. 그러면서 간결한 구조를 유지했다. <해운대>(2009)가 해운대를 둘러싼 각기 다른 세 커플의 이야기였다면, 그러니까 쓰나미가 닥치기 전까지 그 안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중요해 많은 인물이 필요했다면, <>은 시작부터 달리기로 했다. 오토바이에 최대한 올라탈 수 있는 사람은 두 사람밖에 되지 않으니까. 그렇게 ‘속도감을 줄이지 말자’는 게 가장 중요한 모토였다.

<해운대>를 시작으로 <>을 지나 곧 개봉할 <7광구>까지 이어지는 JK필름의 행보는 의미심장하다. 각기 다른 스타일의 대작 장르영화들을 차례로 만들어내는 그 대담함과 이후의 결과에 대해 오히려 여타 영화인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거기에는 윤제균이라는 존재가 있다. 이른바 ‘한국형 블록버스터’ 시장에서 매번 성공을 거둔 이는 <쉬리>(1999), <태극기 휘날리며>(2004)의 강제규 감독이 유일하기에(강우석 감독도 <실미도>(2003)는 성공했지만 <한반도>(2006)는 실패를 맛봤다) 감독은 물론 제작자로서도 블록버스터 시장에 도전하는 윤제균은 현재 충무로에서 가장 뜨거운 이름이다. 아마도 두 영화가 거두는 성적표에 따라, <씨네21>이 다시 ‘한국영화계 파워 50인’ 설문을 벌인다면 짧은 시간에 가장 수직상승한 영화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액션과 코미디의 명쾌한 분배

<>에는 <해운대>와 윤제균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해운대>의 주역 중 이민기, 강예원, 김인권 등 ‘젊은 피’들만 뭉친 <>은 윤제균의 이름까지 더해 마치 <해운대>의 ‘스핀 오프’처럼 느껴진다. 이민기와 강예원이 여전히 연인으로 등장하는 가운데 김인권의 변함없는 입담에 고참형사 역에 고창석까지 새로 가세했다. 오히려 배우 캐스팅을 끝낸 다음 조범구 감독이 가장 나중에 감독 제의를 받았다. 무엇보다 <해운대>가 전에 없던 ‘해양 블록버스터’에 대한 도전이었다면 <>은 믿기 힘든 로케이션 촬영의 ‘추격 블록버스터’를 지향하고 있다. 할리우드 주요 액션영화들을 촬영한, 그러니까 2km 정도 떨어진 곳에서도 촬영이 가능한 리모트 컨트롤 촬영장비 ‘도기캠 스패로 200’을 아시아 최초로 도입했고, 그 도기캠을 장착한 바이크를 무술감독이 직접 운전하기까지 했다. 기존 그 어떤 한국영화들과 비교해도 고속질주 장면과 폭파장면의 물량은 가히 최고 수준이다. 바이크 액션과 대형 폭파장면의 생생함을 위해 90% 이상 후시녹음으로 진행됐다. 그런 속도감 아래 30여대의 오토바이까지 포함해 무려 100여대의 차량이 희생됐다.

제작 초기만 해도 모두가 반신반의하던 <해운대>를 완성시킨 윤제균 감독의 저력은 제작자의 위치에서도 <>의 곳곳에서 드러난다. 실제로 조범구 감독은 “이전 내 영화들이 드라마 중심이었다면 <>은 코미디가 중요했다”며 “윤제균 감독의 순발력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의 두 가지 키워드가 액션과 코미디라면 후자에 거의 공동연출이라 해도 좋을 만큼 윤제균 감독의 역량이 상당부분 반영됐다는 것. 명동 도심과 고속도로에서의 촬영 등이 가능했던 것도 어려운 여건을 뚫고 <해운대>를 성공시킨 그의 자신감과 노하우가 충분히 반영됐으리라 짐작해볼 수 있다. 가령 고속도로 위 트럭에서 수십개의 가스통이 굴러떨어지며 자동차들을 박살내는 장면은 <해운대>의 하늘에서 쏟아지던 컨테이너 박스신을 직접적으로 연상시킨다. 그렇게 배우들을 비롯해 특수효과 액션신과의 연계라는 측면에서 <해운대>를 연상하며 관람하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따지고 보면 주인공 이민기가 <해운대>에 이어 계속 경상도 사투리를 그냥 대놓고 쓰게 만든 것도 윤제균 감독의 고집이자 뚝심이다. 서울을 배경으로 한 장르영화에서 주인공이 특정 지역 방언을 직접 썼던 영화가 있었나 떠올려보면 <>이 유일하다.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늘 애매한 성공은 없었다. <태극기 휘날리며>와 <해운대> 같은 ‘천만 신화’의 영화들 아니면 야심과 결과가 따로 놀았던 <2009 로스트 메모리즈>(2002)나 <내츄럴 시티>(2003), 혹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처럼 ‘재앙’으로 기록된 영화마저 있었다. <>처럼 순수 오락영화를 지향한 영화들이라면 테마파크를 무대로 한 <아 유 레디?>(2002), 통제 불능의 지하철을 소재로 한 <튜브>(2003)가 떠오르지만 <>은 그와 궤를 달리한다. <>은 액션과 코미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명쾌한 분배가 돋보인다. 주인공들의 과거를 둘러싼 다소 과한 설정은 있으되 꼼꼼히 다듬은 시나리오는 간결하고 군더더기가 없으며, 휴식을 모르는 젊은 배우들이 처한 상황은 그 자체로 코미디다. 더불어 특수효과로만 점철된 것 같은 이 영화에서 진짜 백미는 명동 상가 추격신에서 보듯, 그리고 마지막의 NG장면 모둠에서 보듯 제작진의 땀냄새가 먼저 진동한다는 점에 있다. 모처럼 느끼하지 않은, 이런저런 과도한 치장으로 허세 부리지 않는 순수 오락영화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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