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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석] 연기는 앙상블, 어느 지점에서 나를 죽여야 한다
강병진 사진 백종헌 2012-02-02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마동석

연봉 300만원과 치킨집을 경영하는 악바리 아내, 아빠보다 선동열을 좋아하는 아들을 가진 <퍼펙트 게임>의 박만수가 홈런을 때렸다. 홈런볼이 그리는 포물선에서 또 다른 남자들의 얼굴이 스쳐갔다. 드라마 <히트>의 ‘미키성식’ 이후 <비스티 보이즈> <심야의 FM> <부당거래> <통증>에서 마동석을 통해 현신한 남자들이다. 현실의 무게와 소심한 내성에 짓눌려 있는 그들은 폭력적일 때도 절박해 보였다. 특히 여성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덩치 큰 남자의 뒷모습이 짠했다. 그간에 억눌려 쌓였던 감정의 무게가 박만수를 통해 터져나왔고, 그래서 박만수는 마동석이 연기한 남자들의 결정판이 됐다. <퍼펙트 게임> 이후 마동석의 다음 타석은 빨리 돌아왔다. 그는 현재 2012년 1월과 2월의 한국영화를 잇는 키워드 중 하나다. 지난해에서 넘어온 <퍼펙트 게임>은 물론이고 우정출연으로 등장한 <댄싱퀸>과 <네버엔딩 스토리>, 그리고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이하 <범죄와의 전쟁>)까지. 개봉 시기로 보면 거의 매주 새로운 영화에서 그와 만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지경이다. 이쯤 되면 ‘마동석의 전성시대’라 할 만하지 않을까? 배우로서, 남자로서 마동석이 하고 있는 생각들이 궁금해졌다.

-지금 한국영화 관객은 거의 매주 당신의 얼굴을 보고 있다. =시기가 그렇게 됐다. <퍼펙트 게임>이 <범죄와의 전쟁>이랑 붙어서 나오더니, 잠깐 나온 <댄싱퀸>이랑 <네버엔딩 스토리>까지 겹치더라. 예전에 <심야의 FM>과 <부당거래>가 비슷한 시기에 붙었을 때도 당황스러웠다.

-그만큼 출연 제의를 받는 작품들이 많아진 거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지난해부터 조금씩 많아졌다. 여자주인공 옆에서 같이 사건을 끌고 가다 배신한다든지 그녀를 끝까지 지켜주는 역할들이 더러 있다. 그런데 작품 선택에 있어서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적당한 분량의 영화도 있고, 주연인 영화도 있는데 주연은 여전히 조심스럽다. 그만큼 책임감이 더 크니까.

-<범죄와의 전쟁>에서 맡은 배역은 특별한 이름이 없다. 시나리오상 쓰인 게 ‘김서방’인데, 오히려 인상적이었다. =그 느낌이 나도 좋더라. 나중에는 극중에서 소개하는 장면에서 이름을 뭐로 할까를 두고 감독이랑 의논하기도 했다. 여자 이름으로 할까 하다가 김용식으로 정했다. 운동선수 이름 같지 않나.

-<범죄와의 전쟁>의 김서방은 <퍼펙트 게임>의 박만수와 통하는 감정이 있다. 가족 때문에 약해질 수밖에 없는 남자랄까. =그만큼 리얼하다. 윤종빈 감독과 통하는 것도 리얼한 걸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윤 감독은 유치원 다닐 때 크리스마스날 온 산타클로스 수염을 뜯었다가 애들을 다 울렸다고 하더라. 그만큼 가짜를 싫어하는 거다. 나로선 그가 쓰는 대사들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부산 출신 동료들이 극중의 사투리 연기가 가장 사실적이라고 하더라. =많이 부족하다. 사투리라는 게 신경 쓸수록 원래 느낌을 주기가 어렵더라. 다행히 영화에 부산 출신 배우들도 많았고, 윤 감독도 부산 태생이다. <퍼펙트 게임>을 할 때도 광주 출신 배우들에게 물어보면서 연기했는데, <범죄와의 전쟁>도 마찬가지였다. <통증>에서는 강원도 영월 사투리를 했고, <천군>에서는 이북 사투리를 했는데, 주위에서 대체 언제 서울말로 연기할 거냐고 그런다. (웃음) 정작 사람들은 내가 미국에서 살다왔다고 얘기한 뒤 영어 잘한다고 하면 깜짝 놀란다. 다들 강원도 출신인 줄 안다.

-지금까지 연기한 캐릭터의 대부분과도 통하는 이야기다. 흔히 미국에서 살거나 활동하고 온 사람이라면 은근히 유학파 느낌을 기대하는데, 지금까지 연기에 줄곧 지역적인 정서가 묻어나 있었다. =살면서 봐온 사람들도 있고, 아버지나 형도 있었으니까. 남자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성이지 않나. 그래서 그런 느낌을 표현하는 게 더 조심스럽다.

-연기한 캐릭터만 보면 배우 마동석은 남자로서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가치관이 확실하지 않을까 싶다. =어느 정도는 있을 거다. 연기를 시작했을 때도, 남자라면 하고 싶은 일은 해봐야 한다거나, 일단 했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가봐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어릴 때는 없던 거였다. 10년간 운동하면서 생활력을 쌓다보니 끈기가 생긴 거다. 나는 내가 실력이 있거나 타고난 능력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연기하거나, 연극영화과를 나온 것도 아니고 연극 무대에 선 것도 아니지 않나. 그런데 이종격투기 보면 400번 싸워서 400승 했다고 무조건 이기는 것도 아니다. 2전 2승하는 친구가 이기는 경우도 있다. 어떤 식으로 캐릭터를 분석하고 소화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는 거 같다.

-캐릭터를 선택할 때, 마음에 드는 남자들의 영향이 있나. =그건 배제한다. 내가 추구하는 게 있으면 그렇지 않은 캐릭터에 매력을 못 느낀다. 연기에 지장도 생기는 것 같다. 연기는 하나를 끝내고 노하우가 쌓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다른 연기를 할 때는 또 비워내고 해야만 한다.

-하지만 어찌됐든 지금까지 해온 캐릭터들은 본인이 좋아하는 남자들과 비슷하다. =투박한 이미지 때문에 그런 게 많이 오더라. 지금은 폭이 넓어졌다. 그리고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인물과 몇번 나와서 포인트만 소화하는 인물이랑 확실히 다르다. 가끔 우정출연도 한다. <댄싱퀸> 같은 게 너무 어렵다. 몇달 전부터 머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다른 영화들은 수많은 대화가 오가고 캐릭터가 잡히고 나면 현장에 몸만 가도 되는 게 있다. 카메오는 광범위한 선에서 이 장면을 재밌게 만들어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너무 골치 아프다.

-평소 연기를 준비하는 방식과 태도와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애드리브 같으면서도 애드리브 같지 않은 연기가 많다. =애드리브를 많이 한다. 영화에 나오는 대사 중에 애드리브가 많다. 곽경택 감독님이 애드리브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지만, <통증>에서도 많이 했다. 시나리오랑 콘티가 아무리 정확해도 촬영을 하다보면 연결이 안되는 부분이 생긴다. 그거 때문에 연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 있는데, 나 스스로 그걸 못 견딘다. 물론 <퍼펙트 게임>처럼 많이 하면 안되는 역할도 있다.

-보기와 달리 예민한 면이 있을 것 같다. =준비할 때는 많이 예민하다. 원래 성격은 단순무식한데 말이다. 운동할 때는 머리를 비우는 시간이 많았다. 생각이 많으면 힘들다.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나, 하는 순 간 몸이 견디지를 못하는 거다.

-오는 기회를 무조건 잡아야 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거절해야 하는 상황이다. 선택의 기준은 무엇인가. =일단 영화 전체가 기준이다. 그 다음이 캐릭터다. 예전에는 내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캐릭터를 선택했다. 물론 그렇게 선택해도 촬영 전까지 안 풀리는 경우도 있었다. <심야의 FM>은 약간 발달장애가 있는 인물인데, 착하면서도 자기가 집착하는 것을 기억하는 천재성도 있는 캐릭터를 연기해야 했다. 가상의 선을 그어놓고 그 경계를 타야 하는데, 어떤 때에는 진짜 같지 않은 연기를 해야 할 때도 있다. 나는 그것을 잘 못한다. 요즘은 약간 도전정신이 생기는 것에 끌린다. 내가 한 캐릭터와 비슷하지만 뭔가 다른 점이 있다든지. 전혀 해보지 않았지만 내가 하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한 캐릭터라든지.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내가 형사나 조폭 전문 배우인 줄 안다. 사실 세번씩밖에 안 했는데…. <부당거래> 출연할 때는 주위에서 이번이 류승완 감독이랑 몇번째 같이 하는 거냐고 묻더라. 첫 작품인데, 으레 같이 해온 배우라고 생각하는 거다. (웃음)

-지금까지 연기하면서 스스로 짜릿했던 순간이 있었다면 어떤 순간이었나. 일단 <퍼펙트 게임>은 제외하자. =다 기억하지는 못하겠다. 그게 맞는지 모르겠는데, 닭살이 돋는 순간은 있었다. <부당거래>에서 마대호의 마지막이 그랬다. 촬영은 끊어가니까, 감정이 깨지기는 하지만 뭐랄까, 나도 제어할 수 없는 간절함이 있었다. <통증>에서 권상우를 공사현장으로 보내는 장면도 그랬다. 폐건물이 가득한 곳이었는데, 사람들이 소리지르고 불지르고 돌이 날아오고 하니까, 정말 이 친구가 죽으러 가는 것 같은 느낌이 있더라. 사실 그건 쾌감이라기보다는 울컥한 순간이다. 내가 이 영화에 완전히 붙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배우로서의 커리어에서 <부당거래>와 <퍼펙트 게임>은 멀지만 가까운 영화로 보인다. 한쪽은 비극적인 인물이고, 다른 한쪽은 한방의 감동을 일으키지만 결국 둘 다 영화적인 캐릭터다. =그렇다. 물론 연기로만 가능한 건 아니다. <퍼펙트 게임>은 일단 박희곤 감독이 박만수의 홈런에서 관객의 마음을 흔들어놓게 구성한 거고, 나는 그에 맞춰 연기한 것뿐이다. 다만 내가 지금까지 운동을 하고 영화를 해오면서 느꼈던 열망이 있었다. 박만수의 억눌림과 정열이 한방에 터지는 순간, 영화를 보는 나에게도 해소되는 게 있었다.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배우의 보람이 느껴지더라. <부당거래>는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머릿속의 그림이 명확했다. 평소 형사들과 교류가 많아서 베테랑 데스크를 잘 알고 있었다. 데스크가 뭐냐면 반장 바로 아래의 고참형사다. 기본적인 성향이 있다. 나름 베테랑이고 너무 잘 알지만, 반장 앞에서는 모르는 척도 하고 아래와 위를 연결해준다고 할까? 그래서 오히려 덜 터프하려고 노력했다.

-<히트>를 하면서 친해진 형사들이었나. =<히트> 직전에 광역수사대에 있는 사람을 만나서 형, 동생이 됐다. 그 친구가 강력계부터 여러 부서를 옮겨가다보니 다른 형사들도 만났고, 결국 모임이 생긴 거지. 한달에 한번씩 모이는 산악회인데, 산은 잘 안 간다. 그냥 술 먹는다. 그 모임에 류승완 감독도 있다. <부당거래> 때 내가 감독님을 연결해줬다.

-<퍼펙트 게임>이나 <부당거래> <범죄와의 전쟁>은 남자들 틈 속에 있는 영화들이다. 그런데 사실 마동석의 캐릭터가 빛을 발할 때는 여배우와 붙는 장면 같다. =주로 여자 앞에서 위축돼 있는 순간이 많다. (웃음) 워낙 거친 인상의 남자가 그러니까 좋아하시는 것 같더라. 나처럼 생긴 남자가 아내를 때리고 그러면 얼마나 재미없겠나. 나름 그때마다 쑥스럽게 해야 하는지, 귀염성이 있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곧 여자에게 함부로 하는 역할을 맡을 거 같다.

-10여년이 넘는 운동 경험이 연기할 때 장점으로 발휘할 때가 있나? 일단 몸을 키우고 줄이는 건 쉬울 것 같은데. =나이를 먹는지 요즘에는 힘들다. 옛날에는 정확한 식이요법으로 몸을 키우고 줄였다. 이제는 시간에 쫓겨서 그렇게 못한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끝내고 <비스티 보이즈>로 갈 때, 6주 만에 17kg을 뺐다. 그냥 운동 줄이고 음식량을 줄여서 뺀 거다. 말하자면 근육량을 줄이는 거지. 키울 때는 또 운동하고 먹는다. 몸이라는 게 메모리가 있다. 예전에 커졌던 만큼 조금만 하면 사이즈가 나온다. 요즘에는 운동을 덜하는 편이다. 일주일에 한번씩 몸 풀기 하듯 웨이트를 하는 정도다.

-운동과 연기가 통하는 부분은 없던가. =몸으로 하는 이상, 감각적으로는 비슷할 거다. 가장 공통되는 건 끈기다. 지구력이지. 힘을 빼고 견디는 게 아니라, 계속 당겨야 한다. 하지만 기반은 다른 것 같다. 운동을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승부욕이었다. 혼자 하는 운동이어도 누군가를 이겨야 하는 게 있는데, 연기는 앙상블이지 않나. 나를 어느 지점에서 죽여야 하는 게 있다. 나에게 실망하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에 연기를 해온 게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연기한 캐릭터 가운데, 딱히 코미디 연기는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제안은 많았을 거다. =예전에 연극을 하는 어떤 형이 그러더라. 연기를 오래 하고 싶은데, 소모될 수밖에 없다고. 영화에 한번 나와서 웃음만 주면 그다음에 줄곧 그런 역할만 하게 되더라고. 그 이야기를 새겨들었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주저한 게 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많이 무거워진 게 아닌가 싶더라. <댄싱퀸>이나 <네버엔딩 스토리>나 인간관계 때문에 잠깐 출연한 거지만 사실은 나를 좀 편하게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평소 연기를 하지 않는 시간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 =아까 말한 산악회에서 술 마신다. 친구 중에 영화 일을 하는 애들이 있는데, 그 친구들과 술 마시며 영화 이야기 하고 그런다. 그게 아니면 운동한다. 술을 잘 마시는 것도 아니다. 어렸을 때는 하루에 소주 8병씩 먹기도 했는데, 이제는 맥주만 마시고 어느 정도 취하면 피곤해진다.

-운동이 취미라고 할 때, 일반적으로 웨이트 운동을 취미라고 하지는 않는다. 다른 운동은 안 하나. =사실 하는 게 없다. 웨이트도 그냥 밥 먹는 것처럼 하는 거지, 운동이라고 해서 하는 게 아니다. 재미없는 인간이다. 여가활동이 있어야 하는데, 등산 가면 힘들고 다른 레저스포츠는 즐길 줄을 모른다.

-나름 여성 팬이 많을 것 같다. =투박하게 생겼는데, 감성적인 역할을 많이 한 덕분인지. (웃음) 나를 좋아하는 팬들을 보면 나이와 상관없이 순수함이 있는 것 같다. 그래도 남자 팬들이 많다. 팬카페 운영하는 분도 나랑 비슷한 체격의 해병대 출신 남자더라. 얇은 마니아층이 있다고 보면 된다.

-실제 연애를 할 때는 어떤 남자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는 연기를 해왔다. =재미없는 사람이지만 잘해주려는 노력은 많이 한다. 그렇다고 트렁크에 풍선 채우는 식의 이벤트를 하는 건 아니다. 나름 생일도 챙기려 노력하고, 맛있는 것도 사주려고 하는데, 요즘 여성분들은 디테일을 좋아하지 않나. 연기에만 섬세하면 안되겠더라.

-혹시 지금 연애하나. =만나는 친구가 있다.

-어떤 남편, 혹은 어떤 아빠가 되고 싶은가. =머릿속에 생각해둔 게 있지만 배우인 이상 지방에 몇달씩 가 있는 일이 많은데 그게 지켜질까 의문이다.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건 애정 표현이 많은 가정이다. 자상한 남편, 아빠이고 싶다. 어떻게든 가족을 지키고픈 마음은 크다.

-캐릭터와 실제 원하는 생각이 많이 비슷하다. =그럴 거다. 일단 내가 연기하면서 느낀 건 뭔가 전투적으로 목이 말라서 밀고 가다 보면 놓치는 게 있다는 거였다. 잠시 뒤돌아보면 보이는 데 말이다. 그런 생각을 늘 가지려고 한다. 사람도 가족도 놓치지 말자. 연기를 하다보면 가족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후회하지 않으려면 잘 챙겨야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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