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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는 피보다 진하다’ <고령화가족>

영화감독 인모(박해일)의 인생은 엉망진창이다. 데뷔작은 크게 실패했고 돈이라고는 한푼도 없으며 아내와의 관계도 거의 풍비박산이 났다. 그런 그가 죽어버리려고 목을 매다가 엄마(윤여정)의 전화를 받고 살기로 한다. 아니, 엄마 집에 들어가 얹혀살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이 집에는 큰아들 한모(윤제문)가 이미 더부살이 중이다. 한모는 한눈에도 주먹은 좀 쓰고 돈은 한푼도 없는 동네 불량배로 보인다. 마흔이 넘은 두 아들은 엄마 집에 들러붙어 산다는 걸 제외하면 어찌나 서로 다른지 사사건건 으르렁거린다. 그런데 여기 두 사람이 더 가세한다. 이 집의 딸이자 결혼과 이혼을 밥 먹듯이 하는 미연(공효진)이 되바라진 중학생 딸(진지희) 민경을 데리고 들어온다. 늙은 자식들은 늘 말썽만 부리지만 그래도 엄마는 그 자식들이 너무 예뻐 매일 저녁 밥상에 고기반찬을 올린다.

영화 <고령화가족>은 천명관의 동명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한국문학계의 이야기꾼으로 불리는 천명관은 원작의 주인공을 영화감독으로 정했는데, 거기에는 영화와 맺었던 자신의 지난 관심과 이력이 얼마간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천명관은 연출부 스탭으로, 각본가로 활동했다. 최근에는 윤제문이 출연한 <이웃집 남자>의 각본도 썼다). 감독 송해성은 <파이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 이어 소설을 영화로 옮기는 작업을 다시 한번 시도했는데, 화자인 인모를 넘어서 인물들의 개별 캐릭터에 매력을 고루 나눠주는 쪽을 택했다.

박해일, 윤제문, 공효진, 윤여정, 그리고 아역배우 진지희까지 배우와 배역이 제대로 연결됐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니 그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를 첫손에 꼽을 수 있다. 자신들의 지나왔던 배역들을 다소 상기시키는 경향이 있지만 그럼에도 무언가 조금씩 새로 빼고 더하는 기술로 각자 신선한 방점들을 갖추고 있다. 이 인물들을 통해 전하려는 영화의 주제는 비교적 명확해 보인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이다. 아니,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 말은 수정된다. ‘의리는 피보다 진하다’가 <고령화가족>의 주제다. 그리고 이 가족들은 의리로 묶여 있다.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 놓인 몇개의 비밀이 아이러니한 그 주제로 생각을 이끈다. 웃음짓게 하거나 눈물짓게 하는 재미난 세부들이 여기저기 많이 배치되어 있는데, 유독 초반장면에 더 많다. 반면에 영화가 본론의 궤도에 올랐을 때는 그 세부의 힘들이 다소 약해지는 면모가 있다. <고령화가족>은 가족의 초상에 관한 아이러니한 뒤집기를 시도하는가 하면 보편적 정서도 함께 갖고 싶어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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