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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보고] 익숙함 속에서 빛나는 영화 길어올리기
장영엽 취재지원 이승은 2013-05-23

제66회 칸국제영화제 현지보고, 코언 형제, 스티븐 소더버그, 로만 폴란스키 등 경쟁부문에

지난해 황금종려상을 가져간 미하엘 하네케의 <아무르>(‘사랑’이라는 뜻)가 영감이라도 제공한 걸까. 5월15일 개막한 제66회 칸영화제는 핑크빛 무드로 가득하다. 시각적으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사랑의 이미지는 영화제가 열리는 팔레 드 페스티벌 외벽을 둘러싼 공식 포스터다.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입을 맞추는 포스터 속 두 남녀는 칸이 사랑한 미국인 배우 부부, 폴 뉴먼과 조앤 우드워드다. <뉴 카인드 오브 러브>(1963)의 현장 사진을 기반으로 한 이 포스터가 우연히 만들어진 것 같지는 않다. 올해 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인 스티븐 스필버그를 비롯해 수많은 미국 감독들이 프랑스의 작은 소도시 칸의 품에 안길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 작가주의 감독의 귀환

66회 영화제 개막에 앞서 칸을 뜨겁게 달군 이슈는 미국 작가주의 감독들의 화려한 귀환이었다. 코언 형제, 스티븐 소더버그, 제임스 그레이, 알렉산더 페인, 짐 자무시 등 다섯 미국 감독들의 신작이 올해 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이러한 경향이 새삼스럽진 않다. 지난해에도 제프 니콜스의 <머드>, 앤드루 도미닉의 <킬링 뎀 소프틀리> 등 다섯편의 미국영화가 경쟁부문에서 자웅을 겨뤘으니까. 하지만 올해의 이름들이 훨씬 더 묵직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난해 영화제가 독립 제작사를 주축으로 경쟁부문에 처음으로 진입한 미국 인디 감독들의 신작을 선보였다면, 올해는 파라마운트, 웨인스타인 등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손길을 거친 노련한 미국 작가들의 영화들이 경쟁부문에 포진해 있다. 과연 “올해의 경쟁부문은 아메리칸 시네마의 강렬한 힘을 보여줄 것”이라는 예술감독 티에리 프리모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더불어 66회 영화제의 개막작인 <위대한 개츠비>(바즈 루어만)와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의 개막작 <더 블링 링>(소피아 코폴라)이 미국영화라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된다. 칸과 오스카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 두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와 리안이 올해 영화제의 심사위원을 맡았다는 점도 미국에 열렬한 러브콜을 보낸 올해 칸의 면모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현지 언론과 미국 매체들은 앞다투어 칸과 할리우드의 밀월 관계가 본격적으로 재개됐다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미국 작가들이 황금종려상에 한발 더 다가섰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들과 더불어 경쟁부문에 무게감을 더할 이름있는 감독들이 이번 영화제엔 가득하기 때문이다. <모피를 입은 비너스>의 로만 폴란스키, <천주정>의 지아장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등이 칸 경쟁부문에 이름을 아로새겼다. 그런데 바꾸어 말하면 올해 칸의 경쟁부문은 대개 익숙한 감독들의 차지다. 19명의 경쟁작 감독 중 13명이 이미 같은 부문에 이름을 올린 적이 있으며, 그중 세명- 코언과 소더버그, 그리고 폴란스키- 은 황금종려상 수상자다. 이외의 감독들도 신선하다고 보긴 어렵다. 칸의 다른 부문에 초청돼 이미 영화제와 인연을 맺은 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카이에 뒤 시네마>의 편집장 스테판 들로름은 칸영화제 특별판 에디토리얼을 통해 올해 경쟁부문에 저예산영화와 젊은 감독들이 부재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무엇이 작가영화의 입지를 어렵게 만드나? 우리의 삶을 주시하고, 열정적이고 섬세한, 어느 감독의 첫 영화 혹은 저예산영화는 대중의 관심을 끌 수는 없는 걸까? 왜 이런 영화들은 칸 경쟁작에 출품할 수 없나?” 그의 말대로 확실히 올해 칸의 경쟁부문은 새로운 발견보다 안정적인 이름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미 자신의 세계를 확립한 감독들이 고유의 자장 안에서 어떻게 자신의 세계를 변주해나가는지에 주목하는 것도 오래전부터 칸이 해왔던 역할이다.

<모피를 입은 비너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성과 가족, 관계에 대한 드라마의 강세

개막 이틀째를 맞이한 영화제의 메인 거리인 크루아제의 분위기는 차분한 편이다. 마치 영화제가 열리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갑자기 퍼붓는 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올해의 칸엔 극장에서 뛰쳐나가 구호를 외치고 싶은 충동을 유발하는, 사회/정치적 메시지로 가득한 영화가 없다. 오히려 극장 의자에 몸을 맡긴 채 영화 속으로 끝없이 침잠해 들어가고픈 내밀한 테마의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마조히즘과 성의 역학 관계를 다룬 동명 소설이 원작인 폴란스키의 <모피를 입은 비너스>, 10대의 성을 다룬 프랑수아 오종의 <영 앤드 뷰티풀>과 압델라티브 케시시의 <라이프 오브 아델>, 미국 뮤지션 리버레이스와 동성 연인의 삶을 조명한 스티븐 소더버그의 <비하인드 더 칸델라브라> 등이 그런 작품들이다. 하지만 티에리 프리모는 이들 영화 중에서 올해 칸에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킬 작품이 반드시 있으리라고 장담한다. 몇몇 작품의 감독들은 “섹슈얼리티라는 테마를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지” 실험하는 듯 보인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올해의 경쟁작들을 가로지르는 또 다른 테마는 ‘가족’이다. 약속이라도 한 듯 많은 감독들이 혈연으로 이어진 관계의 이면을 탐구하려 한다.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오직 신만이 용서한다>는 가족의 죽음에 복수를 다짐하는 모자의 이야기고, ‘어반 웨스턴’을 표방하는 미이케 다카시의 <짚의 방패>는 손녀딸을 죽인 남자의 머리에 어마어마한 상금을 거는 백만장자 아버지에 대한 영화다. 알렉산더 페인의 로드무비 <네브래스카>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카메라를 놓는다. 전반적으로 2013년의 칸영화제는 관계에 대한 드라마들이 강세를 보인다.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나 테렌스 맬릭의 <트리 오브 라이프>처럼 추상적이고 거대한 개념을 좇는 영화들은 올해 경쟁부문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아마 2013년 칸에 당도한 예술가들은 우주와 지구의 섭리보다는 인간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데 더 관심이 있는 것 같다.

황금종려상의 향방을 점치는 이들의 의견이 올해만큼 분분했던 적도 없다. 무엇보다 심사위원 아홉명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고 달라 도무지 그 속을 가늠할 길이 없다. 역사드라마부터 장르물까지 드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다양한 스타일의 영화에 관심을 표해온 스필버그의 한표는 어느 작품으로 향할 것인가. 진지한 루마니아 감독 크리스티안 문주와 쉽게 타협하지 않는 일본 감독 가와세 나오미, 예리한 감각을 지닌 영국 감독 린 램지의 선택은 어떻고. 프랑스 잡지 <텔레라마>와의 인터뷰에서 스필버그는 “민주주의!”라는 말로 심사위원장으로서 자신의 나아갈 길을 설명했지만 역시 부담을 느끼는 모양인지 심사위원 기자회견에서는 “마지막 결정의 날을 준비하며 시드니 루멧의 <12명의 성난 사람들>(살인사건에 판결을 내리는 배심원들의 이야기다-편집자)을 봐야겠다”는 말로 기자들을 웃게 만들었다. 이렇게 성대한 영화 축제의 막이 올랐다. 지금은 극장으로 들어가야 할 시간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제66회 칸영화제 심사위원 기자회견

“영화제, 경쟁은 없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게 된 소감, 그리고 심사의 기준을 말해달라. =크리스티안 문주_영화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건 정말 힘들다. 나는 감독이 진솔함과 용기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볼 거다. 감독으로서의 첫 의무는 그가 원하는 걸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다. 두 번째는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고. 리안_진솔함은 정말 필수다. 그 점을 본 뒤 우리는 의심의 여지없이 미학과 정치, 사회적인 관점에 대한 숙고를 거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말도 못 이을 만큼 마음에 와닿는 작품이 있을 거다.

-스필버그에게 묻겠다. 당신이 <E.T.> 등의 영화로 칸을 찾았을 때 주로 비경쟁부문에 초청됐다. 경쟁부문 심사위원으로 참가하며 느낀 소감을 말해달라. =스티븐 스필버그_나는 우리가 판단을 내리고, 영화에 대해 개인적으로 평가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관객의 이목을 끄는 좋은 경쟁이 존재한다는 점을 안다. 엄선된 관객의 취향을 놓고 경쟁하는 영화들도 있다. 그러나 사과와 오렌지의 차이점을 말하는 건 나에게 허용되지 않았다. 나는 영화제를 경쟁으로 보지 않는다. 이건 영화를 축하하는 2주간의 행사지 한 영화를 다른 영화들과 비교하며 경쟁하는 2주가 아니다.

-스필버그와 리안에게 묻는다. 당신 둘은 올해 오스카를 앞두고 <링컨>과 <라이프 오브 파이>로 캠페인을 벌인 라이벌이었다. 칸영화제 심사위원으로 다시 만난 소감을 말해달라. =리안_스티븐과 나는 좋은 친구다. 그가 날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를 존경한다. 그는 나의 영웅이다. 스티븐 스필버그_우리는 경쟁자였던 적이 없다. 우리는 항상 동료였다. 나는 <라이프 오브 파이>를 높이 평가하는 것처럼 리안도 존경한다. 칸의 심사위원이 되어 좋은 점 중 하나는 여기에 캠페인 같은 건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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