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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하지 않은 삼십대의 연애 <산타바바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천천히 가는 게 더 좋다고 주장하는 남자가 있다. 낙천적 성격의 음악감독 정우(이상윤)가 바로 그다. 우연치 않은 기회에 광고 기획자 수경(윤진서)과 일하게 된 정우는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그녀와 상반된 성향임을 확인한다. “인생은 어차피 혼자 달리는 단독 레이스가 아니다”라는 자신의 주장과 다르게, 수경은 “혼자라도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게 더 좋다”고 말하는 타입이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연인이 된다. ‘불안정한 가족사’가 던진 화두가 서로를 묶어주고, 또다시 ‘와인’이란 공통분모가 둘의 취향을 엮는다. 그렇게 친해진 두 사람은 미국에서의 광고 프로젝트에 동행하게 되고, 이윽고 본격적 연애를 시작한다. 그렇지만 둘의 로맨스가 꽃피우려는 찰나, 예상치 못했던 훼방꾼이 등장해서 그들을 방해한다. 5년 만에 미국에서 만난 정우의 여동생 소영(이솜)이 오빠의 곁을 지키는 수경을 질투한 것이다.

<산타바바라>는 2010년에 개봉한 <맛있는 인생> 이후 부지런히 작품활동을 해온 조성규 감독의 네 번째 작품이다. 이제는 ‘영화사 조제의 대표’란 호칭보다 ‘연출자’란 칭호가 더 어울리는 그의 이번 작품은 전작들처럼 로맨틱 드라마의 연장선상에 놓인다. 강렬하지 않은 삼십대의 연애가 감독 특유의 차분한 시선 속에서 펼쳐진다. 주인공들은 평범하지만 예민한 심성을 지녔으며, 딱 예상 가능한 만큼 특이하고 사랑스럽다. 제목이 힌트를 주는 것처럼 ‘산타바바라 와이너리’ 장면이 가장 아름답다. 영화 <사이드웨이>의 배경을 답습하는 둘의 모습은 흡사 <사랑을 카피하다>나 <로마 위드 러브> 속 커플처럼 설레고 이색적이다. 영화의 대사가 말하듯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무언가, 그 기타로만 연주할 수 있는 곡”을 듣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유명한 와인 산지를 스크린에서 만나는 것도 즐겁지만, 연기를 업으로 삼지 않는 유명인들의 열연을 지켜보는 것도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닭 광고를 찍는 영화감독 역의 가수 ‘백현진’은 <경주>에 이어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이고, 영화평론가 ‘달시 파켓’은 <돈의 맛>에서와 비슷한 비중의 역할을 무리 없이 소화해낸다. 이 밖에 배우 김태우와 신동미, 박해일 등 특별 출연자들의 모습을 직접 확인하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엔딩 크레딧 이후 공개되는 깜짝영상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강렬한 반전은 아니더라도 영화는 끝까지 본연의 따스한 온도를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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