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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한국 퀴어영화 역사상 흥미로운 해가 될 2016년

<아가씨>

내가 퀴어 퍼레이드를 준비 중인 서울광장 잔디밭 한가운데에 앉아 확성기를 통해 울려퍼지는 저주 소리를 들으며 이 원고를 쓰는 동안, 세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스미스>를 각색한 박찬욱의 <아가씨>는 300만 관객을 향해 질주 중이다. 동성애 혐오세력이 이 영화의 상영을 막으려 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항의 시위도 없다. 완벽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대자본 퀴어영화가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데도 여기에 대한 어떤 반발도 감지되지 않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것은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와 박찬욱의 힘인가? 아니면 여성 동성애자들은 이렇게 대놓고 깃발을 흔들어도 보이지 않고 위험하지도 않은 존재인가?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2016년은 한국 퀴어영화 역사상 흥미로운 해가 될 것이다. 우선 <아가씨>의 흥행 성공이 있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여성동성애를 다룬 이현주 감독의 장편 <연애담>이 한국경쟁 대상을 받았으며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아가씨>는 개봉 1주를 조금 넘겼고 <연애담>은 아직 영화제를 도는 중이지만 두편 모두 막강한 팬덤을 과시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 개봉예정인 <소녀의 세계>와 올해 초에 나온 <수상한 언니들>까지 여기에 포함시킨다면 최소한 네편의 여성 동성애영화가 개봉되는 셈이다. 단편영화로 가도 최근 몇년 동안 여성 동성애를 다룬 작품들이 꾸준히 늘어나는 것이 보인다.

세계 여성 퀴어영화의 흐름

여기서부터 이를 한국 퀴어영화의 흐름을 통해 보느냐, 아니면 세계 여성 퀴어영화의 흐름을 통해 보느냐의 선택을 해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후자가 맞는 것 같다. <아가씨>와 <연애담>은 모두 <가장 따뜻한 색, 블루>(2014)와 <캐롤>(2015)로 이어지는 칸영화제발 여성 동성애영화의 영향권 안에 속해 있다.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아가씨>는 심지어 그 흐름의 일부이기도 하다. <아가씨>와 <연애담>의 감독들이 언급하는 것도 국내의 퀴어영화들이 아니라 <가장 따뜻한 색, 블루>와 <캐롤>이다. 이 두 영화는 달력이기도 하고 기준점이기도 하다. <연애담>이 개봉될 무렵엔 <아가씨> 역시 또 다른 기준점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아가씨> 이전에 여성 동성애자들을 다룬 한국 장편영화가 없다고 말하면 그건 거짓말이 될 것이다. 일단 지금 한국에서 이 주제로 영화를 만들려는 감독이라면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1999)가 있다. 김수현 감독의 <창피해>(2011)와 같은 독특한 소품도 있었고 역시 칸을 거치고 온 정주리 감독의 <도희야>(2014) 같은 영화도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한국 남성 동성애영화들이 갖고 있는 흐름과 분명한 정체성이 없다. 남성 동성애영화에는 커밍아웃한 감독과 그들의 입장과 주장을 중간매개체 없이 반영하는 작품들 그리고 이들을 장르물처럼 소비하는 관객이 있고 이들은 지난 1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당연시되었다. 한국 여성 동성애영화의 경우 이 어느 것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상태이다. 당연히 수도 적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이건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여성 동성애영화에 대한 일반적인 선입견은 얼마 있지도 않으면서 질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형편없는 레즈비언영화’에 대한 농담과 불평은 커뮤니티 안에 흔해빠졌다. 이들 중 상당수는 질과 상관없이 의무감으로 감상되고 페스티벌용 땔감으로 소비된다. 이는 당사자들을 일차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여성감독의 부족 그리고 고정관객에 대한 확신의 결여가 원인일 것이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와 <캐롤>의 비평적, 상업적 성공은 이 선입견에 대한 반박이다. 무엇보다 두 영화 모두 안정적인 관객과 팬덤을 확보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적인 선입견과 달리 좋은 작품만 확보된다면 이 영역에 속한 영화들을 감상할 잠재적인 고정관객의 폭이 생각보다 넓었다. 보기보다는 해볼 만한 게임인 것이다.

이들 작품들이 꼭 퀴어영화로만 소비되지 않았다는 점 역시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중에서도 <캐롤>은 관객에게 1940년대 미국 ‘여성영화’와 비슷한 방식으로 감상되었다. 동성애 로맨스의 스토리는 여전히 중요했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여자배우의 가능성과 장점을 최대한으로 뽑아내고 활용한, 여자들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었다. 가뜩이나 비중과 역할이 줄어가는 여자배우들 입장에서 <캐롤>이 관심의 대상이 된 것도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 대해 조금 더 파보면 흥미로운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대부분 한국 남자배우들에게 동성애자 역할은 기피의 대상이다. 하지만 수많은 여자배우들에게 동성애 연기는 도전의 대상이거나 희망사항이다. 여성 동성애영화는 이들에게 더 큰 역과 공정한 평가에 대한 기회, 그리고 충성스러운 팬덤을 동시에 제공해준다. 그러고 보니 <아가씨>의 주연배우인 김민희도 몇년 전 출연한 <여배우들>에서 동성애 연기에 대한 기대를 보여주었다. 그 영화를 보고 나면 <아가씨>의 캐스팅은 그 결과물처럼 보인다.

갇혀있던 소재가 주류화 되어가는 과정

이들 칸영화제 영화에는 한계가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이 세편이 여성작가들의 원작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모두 남성감독의 관점을 통과한다는 것이다. 감독이 동성애자 남성인 <캐롤>의 경우는 그런 비난에서 교묘하게 비껴갔다. 여기엔 지금까지 프로젝트를 끌어왔던 각본가와 제작자팀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따뜻한 색, 블루>와 <아가씨>는 모두 메일 게이즈(male gaze: 남성적 시선)라는 익숙한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이 역시 지나치게 단순화된 비판일 수 있다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카메라를 통해 섹스를 하는 두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과연 메일 게이즈라는 한 카테고리 안에 모두 통합될 수 있을까? <가장 따뜻한 색, 블루>와 <아가씨>만 해도 비슷한 것 같아 보이면서도 전혀 다른 내용의, 전혀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물론 이들은 이현주 감독이 <연애담>에서 보여준 지극히 사실적인 섹스 신과는 종류가 전혀 다르다. 하지만 이는 감독의 성별에 기원한 차이라고 보는 건 너무 단순하다. <아가씨>의 섹스 신에 불만을 제기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또 당연한 일이지만 모든 섹스 신이 <연애담> 같을 수는 없다.

2016년에 나왔거나 나올 예정인 네편의 여성 동성애영화는 이 소재로 갈 수 있는 네개의 방향을 대표한다. 주류 멜로드라마, 정체성 문제에 집중하는 퀴어영화, 선정적인 성인영화 그리고 소위 ‘백합물’. 물론 경계선은 분명하지 않고 어느 쪽에 속해 있다고 해서 쉽게 정의를 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결과물이 어떻게 나왔건, 이 네편의 영화 중 가장 노골적인 여성주의 메시지를 들고 나온 작품은 엉뚱하게도 성인영화인 <수상한 언니들>이다). 우리가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이 지금까지 게토 속에 갇혀 있던 소재가 주류화되어가는 과정의 일부이며, 이 과정을 제대로 따라가려면 지금까지 단순한 몇몇 개념 속에 갇혀 있던 비평의 눈을 예민하게 다듬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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