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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8가지 감상 키워드
송경원 2016-09-28

직접 메가폰을 잡은 건 4년 만이다.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이하 <미스 페레그린>)은 원작이 따로 있다는 게 의아할 만큼 팀 버튼의 판타지 세계에 정확히 부합하는 작품이다. 자신의 상상을 스크린에서 현실로 구현하는 영상시인 팀 버튼의 진면목이 어떻게 구현될 것인지 그 면면을 미리 짚어봤다. 늘 그래왔듯 이번에도 팀 버튼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1. 팀 버튼이 사랑한 원작

한동안 연출보다는 제작, 기획에 힘을 쏟은 팀 버튼이 단번에 마음을 빼앗긴 원작이 있다. 2011년 출간된 랜섬 릭스의 첫 소설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을 본 후 팀 버튼은 이 소설을 반드시 자신이 영화화하기로 마음먹었다. “원작 작가가 사진을 바탕으로 썼다는 이야기는 몽환적이고 강렬하고 신비롭다.” 팀 버튼의 영화 앞에 흔히 붙는 수식어가 소설을 읽은 팀 버튼의 입에서 절로 나왔다고 한다. 벼룩시장에서 오래된 물건을 구입하는 게 취미였던 작가 랜섬 릭스는 자신이 수집한 사진들을 이용해 무서운 사진집을 내려는 구상을 했다. 아이디어를 들은 쿼크 북스(<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출간) 출판사는 거꾸로 랜섬 릭스에게 사진을 활용해 소설을 써보자고 제안을 했다. “한 소년이 벌에 둘러싸인 흥미로운 사진이 있다. 그 사진을 본 순간 이 소년에게 어떤 사연이 있을지 궁금해졌다”는 랜섬 릭스는 신비한 능력을 지닌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써내려갔고 작가의 상상력은 3부작의 소설로 구체화됐다. 첫 소설인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은 3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오랫동안 베스트셀러로 사랑을 받았다. 처닌 엔터테인먼트의 제노 타핑의 손을 거쳐 팀 버튼에게 영화화의 판권이 넘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기뻐한 사람은 원작자 랜섬 릭스였다고 한다. “내 책을 영화로 각색하는 수술 작업을 팀 버튼이 맡았다는 소식을 듣고 모든 걱정이 사라졌다”고. 하긴 한장의 사진에서 출발한 이야기, 신비한 능력을 지닌 아이들에 관한 숨은 사연은 설정만 들어도 딱 팀 버튼을 위한 영화가 아닌가. 이제껏 팀 버튼의 모든 영화가 유사한 세계관 속에서 작동해왔으니 말이다.

2. 어두운 버전의 메리 포핀스 미스 페레그린

미스 페레그린은 크립토사피엔스들을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존재다. 보통 인류와는 다른 개성을 지닌 아이들을 돌보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그녀와 같은 이들은 속칭 ‘임브린’으로 불린다. 새로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임브린들에게는 또 하나의 특별한 능력이 있는데 바로 시간을 조종하는 힘이다. 임브린은 어느 특정한 하루를 골라 무한히 반복되는 시간의 고리를 만들 수 있다.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타임루프는 시간 밖에 있는 존재들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한다. 물론 루프 안에 있는 아이들은 육체적으로 나이를 먹지 않지만 기억과 경험은 연속되기 때문에 아이의 몸으로 긴 세월을 살고 있는 셈이다. 얼핏 영원한 아이들의 낙원인 피터팬의 원더랜드를 연상시키는 설정이지만 늙지 않아도 나이는 먹고 있는 아이들을 우리가 알고 있는 어린이라고 볼 수 있는지 생각해볼 문제다. <미스 페레그린>의 흥미로운 드라마들은 아이의 몸에 미성숙한 영혼과 한정된 체험이라는 모순되고 비틀린 상황 속에서 발생한다. 크립토사피엔스들에게는 한없이 인자한 엄마와 다름없지만 아이들을 위협하는 존재에게는 무시무시한 일면을 드러내는 미스 페레그린 역에는 에바 그린이 캐스팅됐다. 다양하게 변신하는 임브린들 중에서도 페레그린은 이름 그대로 강인한 매로 변신한다(주디 덴치가 연기한 미스 애버셋은 겁이 많은 새 애버셋-되부리장다리물떼새로 변한다). 원작보다 훨씬 화사하면서도 차가운 이미지를 지닌 에바 그린은 이 역할을 “어두운 버전의 메리 포핀스”라고 해석했다. 아이들을 위해 석궁을 잡는 것도 서슴지 않는, 전사와 같은 유모라는 설명. 강인하고 미스터리한 분위기의 미스 페레그린을 표현하는 데 이보다 적절한 캐스팅도 없을 것 같다.

3. 크립토사피엔스와 코얼포크

특별한 능력을 지닌 아이들이 있다. 불을 만들고 허공을 떠다니며 공기를 자유자재로 다룬다. 투명해지는 친구도 있고 어마어마한 괴력의 소유자도 있다. 얼핏 들으면 멋져 보이는 힘이지만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에 대한 공포감을 떨치지 못한다. 특별한 힘을 지닌 이들은 시대에 따라 주술사, 영적 리더로 추앙받기도 하고 때론 마녀, 악마로 매도되며 대중의 질시를 받기도 했다. 어찌보면 <엑스맨>의 세계관과 비슷해 보이는 <미스 페레그린>의 이야기는 차이와 다름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반응으로부터 시작된 서사다. 평범한 인류인 ‘코얼포크’와는 달리 ‘크립토사피엔스’(숨은 종족) 혹은 ‘이상한 영혼’이라고 불리는 이 능력자들은 축복이자 저주라고 해도 좋은 힘을 지닌 탓에 언제 사냥당할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숨어서 살아간다. 게다가 이들의 능력은 자식에게 고스란히 되물림되는 것이 아니라 몇대를 뛰어넘어 격세유전되기도 하기 때문에 자신들만의 사회를 형성하기도 어렵다. 이러한 설정이 스스로를 조금 ‘다른’ 아이로 여기며 쓸쓸한 유년 시절을 보냈던 팀 버튼 감독을 자극했는지도 모른다. 특별한 능력 때문에 주변으로부터 질시와 배척을 받는 아이의 심리를 팀 버튼만큼 제대로 이해하는 이도 드물 것이다. 본인이 그러했고 자신의 영화 속 주인공들이 항상 그러했으니 말이다. 가령 <가위손>의 주인공 에드워드의 가위손은 누구와도 다른 특별한 능력이자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 쉬운 미완의 저주다. 원작자 랜섬 릭스는 장애와 능력은 입장에 따라 얼마든지 해석이 바뀔 수 있는 종이 한장의 차이라고 말한다. <미스 페레그린> 속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을 위협하는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켜야만 했던 아이들의 심정은 마냥 해맑고 행복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팀 버튼의 손길은 바로 그 특별하고 신비한 어둠을 건드린다.

4. 어둠의 사냥꾼 할로게스트

크립토사피엔스들을 위협하는 건 인류만이 아니다. 이른바 할로게스트들은 크립토사피엔스를 적극적으로 사냥하는 존재들이다. 그중에서도 새뮤얼 L. 잭슨이 맡은 바론은 특별하다. 할로게스트의 진화한 형태라고 할 수 있는 그는 모습을 자유자재로 바꾸며 보이지 않는 습격을 준비한다. 바론은 크립토사피엔스들, 그중에서도 특히 임브린인 미스 페레그린을 사냥하면 자신이 불멸의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불멸을 얻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힌 이들은 결국 괴물이 되고 말았는데, 이들은 아이들을 사냥함으로써 잃어버린 자신들의 인간성을 되찾을 수 있다는 망상에 빠져 있다. 다만 팀 버튼 감독은 영화 속 바론이 원작 소설과는 다소 다르게 그려질 것이라고 말한다. 새뮤얼 L. 잭슨과 꼭 함께 작업해보고 싶었다는 팀 버튼은 이 역할이 단순한 악역에 그치길 원치 않았다. “바론은 이미지적으로 이미 충분히 무섭다. 날카로운 이빨과 뿌연 눈동자를 가진 그가 그저 무서운 느낌만을 부각시키는 쪽으로 가지 않길 바랐다”는 새뮤얼 L.잭슨의 설명도 이와 일치한다. 단순히 선악을 나누기 모호한 팀 버튼의 세계에서는 악역이라고 해서 그저 기능적으로 소모시키지 않는다. 그건 이상한 능력을 지닌 아이들을 낯설다고 배척하는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행동이기 때문이 아닐까. 악역에 흥미로운 사연을 더할수록 영화도 한층 다채로워진다.

5. 팀 버튼 버전의 <엑스맨>

팀 버튼 버전의 <엑스맨>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미스 페레그린>의 또 하나의 볼거리는 아이들의 신기한 능력들이다. 엘라 퍼넬이 연기한 엠마는 공기를 자유자재로 다룬다. 덕분에 몸이 항상 공중에 뜨는데 이를 막기 위해 늘 납으로 된 무거운 신발을 신고 다닌다. 이상한 아이들의 집에서 가장 연장자인 에녹(핀레이 맥밀란)은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능력이 있다. <유령신부>와 같은 스톱모션의 특수효과를 기대할 만한 부분이다. 올리브(로렌 매크로스티)는 손끝에서 불을 뿜어낸다. 닿는 것마다 불타버리기 때문에 항상 검은 장갑을 끼고 있다. 가장 어리지만 괴력을 소유한 브로닌(픽시 데이비스)은 캐릭터의 반전을 보여주기에 적절한 역할이다. 그 밖에 식물의 성장을 조종하는 피오나(조지아 펨버튼), 예지몽을 꾸는 호레이스(헤이든 킬러-스톤), 투명인간 밀라드(카메론 킹), 뱃속에 벌을 키우는 소년 휴(마일러 파커), 뒤통수에 입이 달린 소녀 클레어(라피엘라 채프먼)는 각자의 개성을 뽐내며 우리를 신기한 세계로 데려다줄 것이다. 아이들 중에서도 가장 미스터리한 쌍둥이(토머스, 조셉 오드웰)의 능력은 영화의 히든카드라고 하니 기대해봐도 좋다.

6. 이방인의 서사

팀 버튼은 언제나 “순수하지 못한 방식으로 순수한” 존재들의 이야기에 끌려왔다. 선악 이전의 순수, 그래서 미성숙하고 위험한 순수다. 그가 이제껏 스크린에 현실화한 피위, 비틀쥬스, 에드워드, 배트맨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자신의 유년 시절을 버티게 해줬던 B급 호러영화 속 이형의 친구들, 예를 들면 “토르 존슨, 뱀 파이라, 버니 브레킨리지, 에드 우드, 벨라 루고시처럼 어떻게 보면 이제는 사라져버린 순수한 인물들”은 감독의 특별한 비전을 거쳐 상상 속 캐릭터로 되살아난다. 이들의 이야기는 바깥으로 밀려난 이방인들의 서사이며 차이와 다름을 받아들이는 포용의 과정이고 소년이 순수의 의미를 되새기는 일종의 성장담이다. <미스 페레그린>은 이제껏 팀 버튼이 걸어왔고 매료되어온 세계와 놀랍도록 일치하는 셈이다. 에바 그린은 <미스 페레그린> 에 “남과 다른 모습을 받아들이고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담겼다”고 말한다. 이는 팀 버튼이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자 자신을 닮은 수많은 순수한 존재들에게 바치는 헌사라 할 만하다.

7. 컨셉아트와 장면화

팀 버튼은 이야기에 강한 감독은 아니다. 그의 영화는 서사의 논리적 정합성에 따른다기보다는 한장의 이미지를 구체화해나가는 쪽에 가깝다. 애니메이션학과를 졸업한 걸 봐도 알 수 있듯 근본적으로 팀 버튼은 스토리텔러라기보다는 일러스트레이터의 경향을 짙게 타고났다. 그의 작품들은 언제나 본인이 직접 그린 이미지들을 현실로 바꾸는 작업의 일환이었고 <비틀쥬스>의 연출을 허락받을 수 있었던 것도 꼼꼼한 일러스트들이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팀 버튼의 장기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발휘된다. 촬영현장을 꼭 방문하고 싶었다는 원작자의 요청에 팀 버튼은 흔쾌히 자신의 옆자리를 허락했다. 꽤 오랜 촬영을 함께한 랜섬 릭스는 소중한 체험을 이렇게 소회했다. “책과 영화가 똑같지 않다는 사실에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상상했던 것과 달라서가 아니다. 커다란 세트와 배우들을 보니 책에서 나온 장면들이 그대로 현실화된 것 같아 신기했다. 실제 촬영을 보면서 ‘책에서 저런 생각을 했더라면!’이란 마음이 들었던 것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러고보면 한장의 사진에서 출발한 원작 소설과 한장의 그림에서 출발한 팀 버튼의 영화 세계는 닮은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머릿속 상상을 그림으로 옮기고 이것을 다시 현실로 바꾸는 것. 게다가 이번에는 이미지의 홍수에 휩쓸리지 않도록 단단한 이야기가 받쳐주고 있으니 믿어볼 만하다.

8. 상상을 본다는 것 팀 버튼의 미술과 색감

팀 버튼의 세계엔 중간이 없다. 침울하고 어두운 흑백과 비현실적으로 밝고 화사한 색감, 양극단의 콘트라스트가 팀 버튼 특유의 비주얼 쇼크의 비결이다. 적대적인 세상에서 도리어 안전하고 긍정적인 느낌을 받기도 한다는 그에게 고딕의 디자인과 어두운 색감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가위손> <슬리피 할로우> <프랑켄 위니> 등 전작을 통해 이미 증명된 흑백과 어둠에 대한 애정은 어쩌면 <비틀쥬스> <찰리와 초콜릿 공장> 등 총 천연색 세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바탕인지도 모르겠다. <미스 페레그린> 역시 양쪽의 극단적인 대비를 적절히 활용한다. 제이크(아사 버터필드)가 속한 현실의 공간과 미스 페레그린이 창조한 타임루프 세계의 온도 차는 우리가 환상의 세계를 체험하고 있다는 시각적 신호이기도 하다. 주요 공간인 미스 페레그린 저택을 그려내기 위해 벨기에 앤트워프 인근 토렌호프 성에서 진행된 촬영은 고딕 스타일을 사랑하는 감독의 취향을 한껏 드러낸다. 규모가 커지고 CG를 적극 활용한 최근 팀 버튼 영화보다 아날로그 감성의 <비틀쥬스>나 <빅 피쉬>를 더 사랑하는 팬들도 있지만 그는 담담하게 말한다. “어느 방향으로 가든 결국 같은 문제로 흔들리기 마련이다. 영화란 원래 그렇게 멍청한 작업이니까. 어떤 사람들은 컴퓨터로 통제하는 게 불가능하다고도 하는데 한편으론 통제 불가능한 사고들이 영화의 매력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일은 바로 거기에 있다.” 세계를 창조한다는 점에서 팀 버튼의 작업만큼 미술과 공간이 중요한 영화도 드문데 <미스 페레그린> 역시 그 통제 불가능한 장면들까지 충실히 재현한 작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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