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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911 311 416
주성철 2016-10-14

“3월11일의 전과 후, 나의 눈앞에 펼쳐진 세계는 과거도 포함해 그 의미가 크게 바뀌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자신의 에세이집 <걷는 듯 천천히>에서 “영화가 감독의 인간관이나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라면, 나의 변화는 당연히 작품도 바꿀 것이다. 그렇다면 이 대지진도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 리 없다”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동일본 대지진이 “지금까지 우리가 중요한 것을 외면하고 잊은 척하며 내달려온 문명을 근본부터 되묻는 사건”이라고도 덧붙였다. 몇주 전 <립반윙클의 신부> 홍보차 방한해 <씨네21>과 인터뷰를 가졌던(1074호) 이와이 슌지 감독도 “3·11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까지 일본에서 더이상 실사영화를 만들지 않고 해외 활동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진과 원전사고로 내가 태어난 나라가 큰 상처를 입게 됐다. 그렇게 상처입은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씨네21>이 만난 여러 일본 감독들도 ‘동일본 대지진 이후’에 대해 비슷한 얘기를 꺼냈다. <유레루> <우리 의사 선생님> 등을 만들었던 니시카와 미와 감독은 이번에 초청받은 작품 <아주 긴 변명>에 대해 “3·11 대지진으로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져내리는 걸 목격했다”며 “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 중에는 그날 아침 크게 싸우고 집을 나섰다든지, 꼬인 관계를 제대로 풀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을 거다. 그런 사람들이 사고 이후 더 큰 후회를 하게 되지 않을까. 바로 거기서부터 출발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실락원> <도쿄 타워> 등의 배우로 유명한 구로키 히토미도 감독 데뷔작 <얄미운 여자>로 부산을 찾아서는 “소설을 읽던 때가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2011년 3월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의 소중함을 느꼈다. 삶이란 참 좋은 것이구나, 앞을 향해 계속 나아가야겠구나, 하는 감정들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다”고 했다. “감독이 되고 싶다는 생각보다 <얄미운 여자>를 영화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였다”는 말에 비춰보건대 동일본 대지진이 감독의 데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재난영화라는 측면에서 직접적으로 연상 작용을 일으키는 <신고질라>의 히구치 신지 감독도 ‘영화가 다루는 재난, 그리고 고지라의 습격 앞에서 허둥지둥하는 일본 정부 시스템’을 묘사하는 데 동일본 대지진이 의미심장한 모티브를 줬다고 했다.

창작자들의 세계관을 변화시킨 사건으로서 2001년 9월11일 미국 9·11 테러, 2011년 3월11일 동일본 3·11 대지진은 지금까지도 중요하게 언급된다. 한달 전 <씨네21>도 특집으로 다뤘듯(1070호) 2014년 4월16일 세월호 4·16 참사 이후의 한국영화 또한 새로운 국면을 끌어안았다. 부산을 찾은 일본 감독들이 너나 할 것 없이 5년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는 사실에서 어쩔 수 없이 그 기억이 소환되었다. 어떤 기억은 잊으려 할수록 더 또렷해진다. 이처럼 부산국제영화제는 해마다 의미 있는 고민거리를 던져준 영화제였고, 물론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올해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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