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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①] <누군가 이름을 부른다면> 김보현 작가, “소녀를 주인공으로, 좀비물이자 성장담인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이다혜 사진 오계옥 2018-02-26

“어떻게 오셨어요? 문예지와 교류도 없었는데.” 인터뷰를 위해 마주 앉자 김보현 작가가 던진 첫 질문이었다. 그다음에는, 같은 이유로 “어떻게 책을 읽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2011년 계간 <자음과모음>에 단편소설 <고니>로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김보현 작가는 장편 <누군가 이름을 부른다면>을 발표하기까지 6년여 시간을 소설 쓰는 사람들보다는 영상을 만드는 사람들과 가깝게 보냈다. 등단을 한 뒤 문예지에 단편을 발표하며 소설집으로 묶거나 장편을 연재한 뒤 단행본으로 내는 활동이 없었던 셈. 대신, 김보현 작가는 영화나 드라마, 만화, 소설 등으로 발전시킬 작품을 찾는다는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에서 2013년에 <올빼미 소년>으로, 2015년 <팽: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로 두 차례 우수상을 받았다. 그때 상을 받은 작품들이 어떤 이야기였는지,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쓴 이야기들이라면 얼마나 진행이 되었는지부터 물었다.

-작가 이름으로 검색해보니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 수상 이력이 두번 뜨더라. 그때 우수상을 받은 작품들은 영화로 만들기 위해 썼나.

=그렇다. 둘 다 사극이고. <올빼미 소년>은 시나리고를 2고까지 써서 넘긴 상태인데, 언제 영화화가 될지는 모르겠다. 주맹증이라고, 낮에는 볼 수 없고 밤에는 볼 수 있는 소년이 주인공이다. 조선시대, 사람을 여럿 죽였다는 사이코패스 왕자의 가상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다. <팽: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는 <올빼미 소년> 때 찾아둔 자료들 중 두 가지 소재를 엮어서 냈다. 조선시대의 조직폭력배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실존했던 형벌에 대한 이야기와 두 남자를 엮었다. 나중에 들었는데, 작품 읽고는 남자 작가인 줄 알았다고 하더라. 두 번째 수상 뒤 멘토링을 받기 위해 출판사 매칭을 하다가 은행나무 출판사 편집자를 만나게 됐다. 편집자가 소설로 내보자고 했는데 아직 못 쓰고 있다. 대신 내가 갖고 있는 장편소설 원고가 하나 있는데 봐줄 수 있냐고 물었고, 그게 바로 <누군가 이름을 부른다면>이다.

-<누군가 이름을 부른다면>은 처음부터 소설로 썼나.

=한국콘텐츠진흥원에 창의인재동반사업이라는 게 있다. 2011년에 등단은 했는데 뭘 해야 할지 막막한 와중에 창의인재동반사업에 한번 참여해보라고 등단지 편집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달에 일정액의 월급을 받는 데다 멘토를 만나서 조언을 받을 수 있다고. 거기서 양우석 감독을 만나게 되어, 같이 이 소설을 기획했다. 그때는 양우석 감독도 <변호인>(2013)을 쓰던 때였고, 나는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러다 양우석 감독이 좀비 얘기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아마 내가 여자고 어리니까, 하이틴 로맨스 같은 분위기의 좀비물을 쓰리라 기대한 것 같다. 10대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 <웜 바디스>(2012) 같은. 나는 잘 못 쓰겠더라고. 조율을 해가면서 좀비물을 보고, 모니터를 받는 과정을 통해 2013년 즈음 다 썼던 것 같다.

-책 출간까지 시간이 꽤 걸린 셈이다.

=사정이 생겨 원고가 붕 뜨게 된 데다가, 양우석 감독이 2차 판권을 가져가기로 하고 받은 돈으로 한동안 생활을 했는데, 나중에 보니 출판사와는 2차 판권 없이는 계약이 어렵더라. 콘텐츠진흥원에서 출판에 대한 강의를 하는데, 출판사와는 출판 계약만 하고 2차 판권은 작가가 갖고 있는 거라고 강의를 한다. 그래야 하는 게 옳으니 당연히 2차 판권만 따로 계약이 가능한 줄 알았는데 막상 그렇지 않더라.

-출판사들은 2차 판권을 자신들을 통해 계약하기를 원한다.

=그런 이유로 처음에는 2차 판권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다가 책 출간이 어려워졌다. 게다가 양우석 감독은 <변호인>이 잘되어 바로 <강철비>(2017)를 하며 이 작품에는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고. 영화화 될 때까지 출간은 포기해야 하나 하던 중에 편집자와 출간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셈이다.

-양우석 감독도 책을 봤나. 어떤 이야기를 하던가.

=<강철비>가 극장에서 상영을 마칠 즈음에 책을 보냈다. <누군가 이름을 부른다면>을 웹툰으로 만드는 작업부터 한다고는 들었는데 시기는 아직 모르겠다.

-전업으로 작가 생활을 하는 셈인가.

=콘텐츠진흥원의 도움을 많이 받은 셈이다. 양우석 감독이 <변호인> 제작에 들어가면서 막판 두세달 정도는 <가족의 탄생> <도리화가>를 만든 백연자 영화사담담 대표와 함께 작품을 논의하게 됐고. <올빼미 소년>이 우수상을 받아서 또 한동안 먹고살고. 거기서 드라마작가를 만나 일을 배우고. 콘텐츠진흥원에 원작 소설 창작과정이라는 게 있다. 영화 원작이 될 콘텐츠를 쓰는 사업에 뽑혀서 스릴러 소설을 썼다. 요즘은 드라마 대본을 쓰고 있다.

-스릴러는 현대물이었나.

=여성이 주인공인 스릴러다. 나는 문단에서 보면 영화한다고 돌아다니는 이상한 애다. (웃음) 듣게 되는 조언 중에는 “너 진지하게 문학을 해야 하지 않겠니?” 같은 말이 많았다. 나는 본격적으로 돈 얘기 하면서 비즈니스를 하는 편이 먹고사는 데 도움도 되고 더 편했다. 그런데 영화쪽에서 보기에도 소설 쓰던 사람이라는 생각이 강해서, 양우석 감독이나 백연자 대표는 계속 쉽게 써야 한다는 말을 하더라. 이거 소설 아니라고. 어느 쪽에서도 성공적으로 안주하지 못한 느낌이 있었다.

-그런 게 더 강점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장르‘풍’으로 쓰인 작품 중 본격적이지 않고 분위기만 차용하는 경우가 꽤 있는데 <누군가 이름을 부른다면>은 그렇지 않더라. 원래 좀비물을 좋아했나.

=양우석 감독이 장르물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좀비물인데 소녀를 주인공으로. 재미있었다. 좀비보다는 디스토피아가 재미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초반 양우석 감독이 생각한 그림은 뚱뚱해서 왕따를 당하던 소녀가 좀비 세상에서 살아야 하니까 열심히 돌아다니다 점점 살이 빠져서 예뻐진다는 식이었다. 나는 그런 방식 말고 성장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 얼굴에 큰 점이 있었다. 게다가 키가 너무 커서 소심했고 낯도 가렸다. 어려서 시골에 살 때, 중학교에 펜싱부가 있었다. 남자애들만 했지만 그때 나도 펜싱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것들을 섞어서 써보고 싶었다. 양우석 감독은 내가 가지지 못한 걸 많이 갖고 있어서, 의견을 전부 받아들이진 않았다 해도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쓰는 작업은 혼자 한다 해도 누군가가 읽어주고 코멘트를 해줬으니까.

-주인공 남녀의 설정이 재미있다. 좀비물은 완력을 써서 상황을 돌파해야 하기 때문에 남자가 주인공인 경우가 많고, 여자가 등장하면 그 여자는 좀비 아닌 살아있는 남자들에 의해 강간 위협에 놓이며 주인공이 구해주는 패턴이 종종 등장하는데 <누군가 이름을 부른다면>에서는 주인공 원나를 가장 먼저 도와주는 사람들이 마을 노인들이다. 남자주인공이랄 수 있는 영군은 아이돌 연습생 출신이다.

=남자는 미남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웃음) 망해버린 세상에서 노인들을 봉양하며 산 뒤 만나게 되는, 시골에서 절대 볼 수 없는 비주얼의.

-농촌을 배경으로 한 이유가 있나.

=양우석 감독의 제안이었다. 강원도인가 경상도 어딘가에 촬영지를 알아보러 갔는데 사람이 하나도 없더란다. 대낮에. 이게 뭐지, 하고 약간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더라.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나오는데 그것도 약간 무섭고. 그래서 이런 곳을 배경으로 좀비물을 하면 재미있지 않을까 했다고.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중학생 때까지 시골에 살던 기억이 있어서 도움이 됐다. 처음엔 강원도로 설정했는데, 사투리를 못하겠어서 익숙한 청주쪽으로 바꿨다.

-펜싱이라는 스포츠 자체가 시골에서 하기 쉽지 않은 스포츠 아닌가. 규칙이나 용어 설명도 필요하고. 원나는 왜 펜싱을 하게 된 건가.

=나는 운동을 하는 주인공이라면 그 운동은 펜싱이라고 생각했다. 시골은 오히려 정부 지원이 있어서 펜싱부가 있다. 내가 다닌 학교도 그랬고. 펜싱복도 얼굴과 몸을 가리는 형태인데, 그게 멋있어 보이고. 수업시간에는 뒤에서 졸기만 하던 남자애들이 펜싱복 입고 운동하는 걸 보면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펜싱 룰도 원나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항상 일정 거리를 유지하지 않으면 벨이 울린다는 것부터가.

-<누군가 이름을 부른다면>은 스물 문턱에 선 주인공의 성장물이다. 원나는 펜싱에서 만년 4등에 자족하고 학교 아이들에게는 사다코라고 불린다. 영군은 아이돌 연습생이다. 이 둘을 만나게 한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

=데뷔를 앞둔 아이돌 연습생은 희망에 찬 상태에서 세상이 망해버린 상황이다. 원나는 희망이 없는 상태에서 세상이 망해버렸다. 이 둘을 대비시키고 싶었다.

-결말에 대해 고민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누군가 이름을 부른다면>이 좋은 점 중 하나는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하는 좀비물에서 살아남는 캐릭터는 주인공과 사랑하는 사람 한명, 가족 중 누군가, 아니면 아이… 이런 경우가 많은데, 원나는 자기가 속한 커뮤니티를 구해낸다. 같이 살아남는다는 것, 공동체가 생존한다는 것을 작가가 중요하게 생각하나보다 하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너무 갑자기 모든 상황이 해소되고 종료된다. 초반에는 속도가 빨라 좋지만, 마지막 부분은 갑작스럽다는 인상이 들어, 출간된 책에 쓰지 않은 엔딩이 따로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엔딩은 고민을 많이 했다. 뒷부분을 더 써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스릴러 소설을 쓰면서도 느꼈는데, 내가 클라이맥스를 못 견디는 편이다. 기계적인 클라이맥스라고 해야 하나 - 모든 게 동시에 터지는 상황에서 시간을 질질 끄는 - 그걸 못 견디겠더라. 내가 잘 쓰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써놓고 보면 오글거린다는 생각이 들어서, 차라리 빨리 끝내버리자고 생각했다. 그렇긴 해도 엔딩은 아쉬운 면이 있다. 편집자도 같은 말을 했는데, 초반은 기존의 좀비 소설과 다른 전개로 가다가 엔딩은 전형적으로 가버리는 게 아쉽다고. 앞부분이 신선하게 ‘쿵’ 하는 느낌이라면 마지막도 새롭게 ‘쿵’ 하는 엔딩이어야 하지 않나 싶어서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사이즈를 이렇게 만들었다. <누군가 이름을 부른다면>은 원나가 소설 시작할 때와는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 펜싱 피스트에 다시 서는 이야기로 생각했던 소설이었다. 딱 이 정도로 끝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소설에서 여자들의 역할이 중요하게 그려진다. 원나를 움직이는 동인은 엄마고, 원나를 도와주는 마을 사람 마리아는 동네 어르신들 심부름을 너무 많이 해서 다들 좀비가 된 뒤에도 필요한 물건이 어느 집 어디에 있는지를 척척 찾아낼 수 있다. 원나가 희망을 잃지 않게 북돋우기도 하고. 남자 캐릭터 중에서는 영군이 가장 중요하고 눈에 띄는데 아이돌 연습생으로 설정하면서 실제 염두에 둔 아이돌이나 배우가 있었나. 양우석 감독과 같이 진행하면서 <누군가 이름을 부른다면>이 영화화되면 촬영은 어디서 한다든가, 원나는 어떤 배우가 하면 좋겠다든가, 영군은 누구 아닐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는지.

=영군은 0, 제로라는 느낌으로 만든 캐릭터이고 이름이다. 아무도 참고하지 않은 미남이다. 영순위에 올 수 있는 미남. (웃음) 원나도 딱히 염두에 둔 배우가 있지는 않다. 캐스팅은 영화하는 분들이 알아서 하시리라 생각했다. 촬영지라고 하면, 이 소설을 쓰다가 평창에 놀러간 적이 있다. 경사로 몇백 미터를 올라가야 하는 마을이 있었는데 여기서 찍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은 한 적 있다.

<누군가 이름을 부른다면>

산골에 사는 19살 원나는 펜싱을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원인이기도 한 화재 사건으로 인해 얼굴에 난 흉터를 가릴 수 있어 펜싱을 배웠지만, 3등 안에 들면 시상대에서야 하기 때문에 늘 4등을 한다.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어느 날, 좀비 바이러스가 세상을 휩쓴다. 홀로 남은 원나를 돌봐주던 마을 어른들이 좀비가 된 뒤 그들을 차마 죽이거나 버리지 못하는 원나는 생존자 영군을 만나게 된다. 아이돌 연습생이었던 영군은 원나와 마을에 오게 되고, 좀비들을 사냥하는 정은 함정을 놓는다.

좋아하는 여성 작가_ 글로리아 네일러

“<브루스터플레이스의 여자들>의 글로리아 네일러를 좋아한다.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계층의 흑인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연작 단편을 모은 장편이다. 주기적으로 계속 읽고 아주 좋아한다. 다양한 계층과 나이의 여성들이 싸우고 연대하는 모습, 서로를 위로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흑인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다.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배우면서도 퍼트리샤 힐 콜린스의 <흑인 페미니즘 사상>이라는 책을 좋아했다. <나를 찾아줘>의 길리언 플린은 소설도 시나리오도 잘 써서 부러운 마음으로 좋아한다. 김혜진 작가의 <딸에 대하여>도 최근 한국 작가 책 중에 가장 좋게 읽었다.”

내 인생의 영화_ <나를 찾아줘>(2014)

<나를 찾아줘>

“내 인생의 영화랄 건 따로 없지만, <리플리> <파이트 클럽> <무간도> 같은 작품들을 좋아한다. ‘내가 아닌 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 거기에 더해 아주 어두운, 질투의 감정 같은 것을 잘 다룬 영화들. 내 인생의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장 최근에 본 그런 작품으로는 <나를 찾아줘>가 있다. <나를 찾아줘>에서 에이미가 잠적한 뒤 외모를 바꾸고 운전하면서 미친 듯이 빵을 먹는데, 그 장면이 너무 좋았다. 머리도 대충 하고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이전의 나와 다른 내가 되어가는 모습. 내가 죽어서라도 복수를 하겠다는 미친 감정을 끝까지 가지고 가는 것.”

원고 마감의 친구_ 맛있는 빵

“빵을, 맛있는 빵을 먹는다. 소설이 너무 안 풀린다고 우울하다는 말을 하면 친구들도 맛있는 빵을 사먹으라고 하는 정도다. 빵을 좋아한다. 어딜 가든 맛있는 빵집이 어딘지를 찾고. 여행 가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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