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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유노윤호가 말하는 미니앨범 《NOIR》와 뮤직비디오, 그리고 영화 ①
남선우 사진 최성열 2021-01-29

누아르영화의 주인공처럼, 나는 나의 길을 간다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한 한 남자의 이야기”는 뒷모습으로 끝난다. 그는 할 일을 마친 누아르영화의 주인공처럼, 다시 마주할 내일을 향해 간다. 지난 1월 18일 유노윤호가 발매한 두 번째 솔로 미니앨범 《NOIR》(이하 《누아르》)는 기획 의도를 함축한 단어이자 타이틀곡 <Thank U>(이하 <땡큐>)가 온몸으로 표현한 장르를 이름으로 삼았다. 배우 황정민이정현이 유노윤호와 함께 출연한 7분38초 분량의 뮤직비디오가 그 정수를 담고 있다. 와신상담 끝에 복수혈전에 이르는 스토리하며, 곧장 <킬 빌> <짝패> <신세계> 등의 미장센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 뮤직비디오는 인간 정윤호의 걸음을 영상으로 되새긴 비망록이자 그가 동경한 아시아 누아르영화의 음악적 재해석이다.

<씨네21>이 유노윤호를 찾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 영화를 빌려오고, “영화음악 만들듯” 앨범에 접근했다는 그의 시선에서 영화와 만나며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는 또 하나의 방법을 본다. 인터뷰 도중 그는 뮤직비디오의 장면들이 어떤 변화를 거쳐 완성됐는지 설명하기 위해 직접 동작을 해 보이기도, 휴대폰에 저장된 수많은 사진과 영상 레퍼런스들을 보여주기도 했다. 채팅창과 사진첩을 타고 뻗어가는 끝없는 스크롤을 보며 그가 《누아르》에 쏟은 진심을 엿볼 수 있었다.

-2019년 6월 발매한 첫 솔로 미니앨범은 《True Colors》였다. 두 번째 앨범의 제목이 ‘검정’(NOIR, 누아르)이라는 게 의미심장하다. 영화 장르로서의 접근이 먼저였나.

=첫 앨범은 겉으로 보이는 내 색깔에 집중했다. 그러다 한번도 내 속내를 정식으로, 음반으로 보여준 적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흔히 그런 얘기들 하지 않나. 자기 인생이 한편의 영화 같았다고. 내게도 영화 같은 이야기들이 있으니 시네마틱한 컨셉을 빌려 앨범으로 풀어보면 어떨까 싶었다.

-그 이야기를 담아낼 틀로 누아르를 택했다.

=누아르는 검은색을 뜻하기도 하지만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아내기에 좋은 틀이라고 생각했다. 그 안에는 허세도 있고, 코미디 같은 순간도 있다. 또 개인적인 생각으로 유독 누아르영화 주인공들이 사랑에 순박하다. (웃음) 그렇게 순정이 있으면서도 치열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정서가 나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를 비롯한 스탭들에게 각국 누아르영화 레퍼런스들을 보내며 이미지 작업을 해나갔다고 들었다.

=먼저 떠오른 작품은 <존 윅>이다. 처음 <존 윅>을 봤을 때 영상미와 세계관에도 반했지만 스토리가 와닿았다. 모든 걸 잃은 남자의 슬픔에 이입했다. 오래 그룹 활동을 해오다 솔로 활동도 하게 된,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지만 부정적인 이야기도 들어야 했던 나 자신을 떠올리게 된 거다. 그래서 <땡큐> 뮤직비디오에도 공포의 대상과 맞서 싸우고, 그 대상을 물리쳤음에도 해결되지 않은 혼자만의 외로움을 가지고 간다는 스토리텔링이 있다. 내 인생을 은유한 한편의 영화처럼 찍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외에 <대부> <아이리시맨> 같은 영화도 물론 참고했는데, <땡큐> 뮤직비디오에서는 비주얼적으로 한국 누아르영화를 필두로 동양적인 느낌을 더 강하게 풍기고 싶었다. 색감으로 <킬 빌>을 오마주한 부분도 있고 긴 액션 신을 <올드보이>의 장도리 신처럼 찍어보기도 했다. 새가지 비디오(SEGAJI VIDEO)의 김현수 뮤직비디오 감독이 구체적인 콘티를 짜서 나와 계속 상의했다. 지난해 추석 연휴에도 모여서 곡이 완성되기 전부터 시놉시스를 짰다. 지금 버전과 분위기가 다른 데모곡이 있긴 했는데, 시놉시스와 콘티가 마무리된 다음 유영진 이사님이 오히려 거기에 맞게, 영화음악 만들 듯 접근했다.

-‘이건 첫 번째 레슨, 이제 두 번째 레슨’ 하는 가사가 내레이션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것도 데모에선 더 밝은 느낌으로, 약간 목사님 설교처럼 하는 거였다. (웃음) 사실 나는 진지하게 얘기하는데 남들이 ‘풉’ 하고 웃는 포인트들이 있다. 그런 뉘앙스를 살리되 ‘유노윤호는 밝은데, 왜 지나온 길이 또 약간 슬프지?’ 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다. 좀더 애수가 있었으면 했다.

-뮤직비디오에 배우 황정민은 어떻게 합류했나.

=<국제시장>에 남진 선배님 역할로 특별출연한 게 인연이 되어 황정민 선배님에게 부탁드렸는데 흔쾌히 응해주셨다. 나와 호흡을 맞추는 장면은 물론 엑스트라 분들까지 코칭하며 현장 분위기를 챙기는 모습에 많이 배웠다.

진정성 있게, 정공법으로

-수위 높은 액션 신도 소화했다. 아이돌의 위치에서 쉽지 않은 장르를 재현하는 것에 대한 우려나 부담은 없었나.

=주변 스탭들은 부담을 많이 느꼈다. SM에서도 전례 없는 스타일의 뮤직비디오였다. 하지만 이왕 이런 컨셉을 할 거면 제대로 하고 싶었고, 척하고 싶지 않았다. 폭력 미화라기보단 오히려 내가 입은 상처를 나 스스로 미화해나간 과정에 대한 스토리텔링이라고 말하고 싶다.

-함께한 이정현 배우가 액션 연기를 칭찬하더라. 두 사람의 무술 합도 굉장히 좋았고, 이틀 연습 분량을 세 시간 만에 끝냈다고 하던데.

=드라마 <야경꾼 일지>에서 액션 연기를 어느 정도 경험해봤고 오래 춤을 춰와서 합은 잘 맞출 수 있는데 캐릭터에 맞게 액션을 뽐내는 게 관건이었다. <마녀>에 참여했던 액션감독님이 춤처럼 보이는 동작은 줄이고 속도감 있게 몸을 쓸 수 있도록 잘 도와주셨다. 그래서 정현이랑 합은 세 시간 정도 만에 다 맞췄고, 집에 가서도 나 혼자 카운트세가며 엄청 연습했다. 춤을 영상으로 잘 찍기로 유명한 엄상태 감독님이 촬영감독을 맡아 센스 있게 잘 찍어주셨다.

-결국 <땡큐>는 데뷔 18년차 아이돌 그룹의 멤버이자 솔로 가수, 배우, 연예인 유노윤호의 절치부심을 표현한 메타적인 곡인데, 그게 뮤직비디오에서 누아르의 문법을 만나 보다 직관적인 서사로 다가오지 않았나 싶다. 오랜 시간 한 조직의 일원으로 익숙했지만 혼자만의 길 또한 묵묵히 걸어나가고 싶은 사람의 이야기인 동시에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는 여러 풍파를 견뎌야 했지만 이 또한 성장의 촉매로 삼고 싶은 사람의 이야기로 읽힌다. 완성된 영상을 보고 기분이 어땠나.

=‘아, 편집해야 되겠다’ 하고 편집실에 갔다. (웃음) 첫 완성본은 지금보다 화려했다. 속도감이 빠른 편집이었고, 그래서 보는 재미가 있을 순 있는데 슬프지는 않았다. 더 담백하게 그릴 수 있도록 김현수 감독과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

-그 모든 과정을 거쳐서 완성된 최종본을 본 소감은 정말 남달랐을 것 같다.

=그걸 보면서는 스탭들이 고생했다는 걸 정말 알리고 싶어지더라. 영화인들은 엔딩 크레딧에 이름이 올라가는 걸 보며 성취감을 느낀다던데, 우리는 앨범에 이름이 실릴 때 그렇다. 그 마음을 기억하면서 앨범을 위해 수고한 분들의 이름을 영화의 엔딩 크레딧처럼 <땡큐> 뮤직비디오 끝에 넣었다. 뮤직비디오 마지막이 내가 혼자 묵묵히 걸어가는 장면인데, 이 모든 걸 여럿이 같이 만들어냈다는 걸 강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원래 엔딩 신은 달랐다고.

=(황)정민 선배님을 총으로 쏘고 앉아서 남은 밥을 먹는 게 엔딩 신이었다. ‘그래, 너희들이 주는 밥(비난, 관심, 사랑 등) 다 먹을게. 고마워’, 이런 의미였다. 결말은 똑같은데 더 임팩트가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님이 그런 엔딩보다 그냥 묵묵히 내 길을 가는 게 윤호스럽다고 해주셨다. 대신 그냥 걸으면 재미가 없으니 과거를 청산했다는 느낌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걷다가 괜히 뒤를 한번 돌아보고, 배지를 떨어뜨려봤다. 배지 하나에 많은 걸 담는다고 생각했다. 쉽게 말해 이 배지는 나에게 짐인데, 나에 대한 모든 걱정, 칭찬, 거품, 스포트라이트를 상관하지 않고 내 길을 갈 테니 알아서 판단하라는 메시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그렇게 걷는 마지막 신을 제일 좋아한다. 그 장면을 보는데 뿌듯하고 통쾌했다.

-여러 감정이 교차했겠다.

=나 자신이 대견스럽기도, 짠하기도 했다. 《누아르》를 준비하면서 나 자신에 대해 다시 알게 되었다. 계속 앞을 보고 걸어오다 보니 내가 받은 상처들은 기억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받은 것들에 대해서 인정하지만, 아팠던 것도 사실이다. 그걸 진정성 있게, 정공법으로 승화해 평가받자고 내놓은 게 이번 앨범이다. 그 방식이 내 다음 스텝에 무척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 같았다. 특별히 어떤 용기가 생겨서 도전한 건 아니다. 그냥 아무 생각 안 하고, 내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 하나에 집중했다.

-어떻게 보면 그게 누아르라는 장르의 핵심 정서인 것 같다.

=맞다. 그렇기 때문에 누아르라는 단어가 앨범명으로 모든 걸 정리해주는 것 같다.

*본 편은 <유노윤호가 말하는 미니앨범 《NOIR》와 뮤직비디오, 그리고 영화 ②>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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