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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자무시 모든 것의 절정' 기획전을 통해 만난 그의 데뷔작 <영원한 휴가>
오진우(평론가) 2021-06-02

고독감이 무뎌진 자리에

짐 자무시 영화들을 타고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다시 누군가의 무덤 앞에 도착한다. 그는 바로 오즈 야스지로. 그의 묘비에 적힌 무(無)라는 원류에서 갈라지는 두개의 지류, 빔 벤더스와 짐 자무시는 각각 <돈 컴 노킹>과 <브로큰 플라워>를 들고 2005년 칸국제영화제서 만난다. 정한석 평론가는 두 영화가 서로 반대의 결론을 내린다고 평가했다.

<돈 컴 노킹>은 자아를 찾고 의미의 길로 나아가고, <브로큰 플라워>는 “의미가 끼어들 수도 없고, 그런다고 해봤자 뭔가 바뀔 것도 없는 아무것도 아닌 미정의 길”을 택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정한석 평론가는 무의미성과 미결을 알아보기 위해 짐 자무시의 초기작으로 돌아가 글을 다시 이어나간다. 이 글은 <다운 바이 로>의 마지막 장면 속 재크처럼 반대 방향으로 가보고자 한다. 이미 있을 수도 있고 혹은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영화 속의 무의미한 것들을 엮어 의미망을 짜서 짐 자무시가 가고자 하는 영화적 도정(道程)을 살피고자 한다.

짐 자무시의 첫 장편영화 <영원한 휴가>(1980)는 색소포니스트 찰리 파커를 숭배하는 젊은 청년 알리(크리스 파커)의 걷기로 채워진 영화다. 그가 걷는 장소는 바로 뉴욕이다. 같은 장소를 공유하는 영화로 샹탈 아커만의 <집에서 온 소식>(1977)이 있다. <집에서 온 소식>은 뉴욕의 다양한 풍경을 기록하고 이 기록된 이미지 위에 아커만이 어머니로부터 받은 편지를 읽는 형식의 에세이영화다. <영원한 휴가>는 <집에서 온 소식>에 마지막 장면을 포함한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다.

두 영화가 담아낸 뉴욕이란 장소는 마크 오제의 ‘비-장소’(nonplaces) 개념을 연상시킨다. 오제는 1992년에 슈퍼 모더니티라고 규정한 현대사회의 특징을 기술하기 위해서 비-장소라는 개념을 고안했다. 인류학적 장소와 대비되는 개념인 비-장소는 관계성, 역사성, 정체성을 갖지 못하며 이러한 장소의 예로는 항공, 철도역, 도로, 호텔 등이 있다. 만남이 이루어지기보다는 스쳐가는 장소인 비-장소에선 무언가가 쌓이지 않기 때문에 결국 현재라는 시간축만 남게 되고 그 안에 고이는 감정은 고독뿐이다.

자무시와 아커만은 뉴욕을 비-장소로 사유한다. 차이가 있다면 아커만은 영화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벨기에에서 뉴욕으로 넘어온 자기 자신, 즉 이방인의 고독을 직접 반영하는 반면, 자무시는 배우의 몸짓과 이미지를 통해 고독을 전달한다. 이러한 이유로 <영원한 휴가>는 서사보다 느낌이 강한 영화라 할 수 있다.

우선 이미지부터 살펴보면 영화에 인상적인 두번의 디졸브 장면이 등장한다. 이를 통해 영화는 시간축을 이동시키려고 한다. 영화의 시작점에서 알리는 지금 말도 못 알아듣는 곳에 와 있다고 내레이션을 한다. 아마도 뉴욕에서 파리로 이동한 후에 과거를 회상하며 말하는 듯하다. 카메라는 수평이 아닌 살짝 하이 앵글로 방 안을 담아낸다.

바닥엔 거울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그러곤 디졸브를 통해서 시간을 다시 과거로 돌린다. 바닥에 있던 거울은 다시 세워지고 존재하지 않았던 여인이 등장한다. 이 프레임 안으로 알리가 들어온다. 이때의 하이 앵글 숏은 유령의 시선처럼 느껴진다. 정확하게는 땅에서 살짝 떠 있는 느낌, 즉 표류를 상징하는 숏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표류의 느낌은 알리의 몸짓, 즉 걷기를 통해서 드러난다. 그는 잠이 안 와서 걷는다고 말한다. 걷기를 통해서 도시를 자신의 방식으로 매핑하는 것이 아니다. 정처 없이 유령처럼 도시를 훑는 것에 가깝다. 어쩌면 좀비에 가깝다. 그는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지만 결국 스쳐지나간다. 그는 도시를 끊임없이 걷고 새로운 사람들과 조우하지만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이는 그가 잠시 가지고 노는 요요와도 같다. 손에서 잠시 떠나지만 이내 되돌아오는 요요는 그의 몸짓을 형상화한 오브제다. 따라서 그에게 현재는 흐르는 것 같지만 고여 있는 죽은 시간이다.

영화는 이 죽은 시간을 깨우기 위해 두 번째 디졸브를 시도한다. 알리는 대낮에 옥상에서 잠을 청한다. 이내 깨어난 그는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의 시점숏에서 차량 한대가 디졸브된다. 차량이 프레임 안으로 들어와서 주차된 것이 아니다. 첫 번째 디졸브 장면과 다르게 여기선 시간이 미래나 과거로 경과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시점숏은 알리의 욕망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욕망은 뉴욕을 떠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자금이 필요한데 그가 내린 결론은 차를 훔치는 것이다.

그는 결국 차를 훔쳐서 판 돈으로 파리로 가는 여객선을 타고 뉴욕을 떠난다. 하지만 이 과정은 또 하나의 해석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것은 알리의 상상을 전개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알리를 현재 뉴욕이라는 시공간에 붙들려 있게 만들며 좀더 깊은 고독감을 선사한다.

두번의 디졸브는 시간의 축을 변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알리를 좀더 현재 뉴욕이라는 시공간에 정박시키는 효과를 발생시킨다. 짐 자무시가 <영원한 휴가>에서 그려내는 현대인들의 고독감은 이후 <천국보다 낯선>(1984)에서도 이어진다. <영원한 휴가>가 뉴욕을 떠나면서 영화가 끝이 났다면, <천국보다 낯선>은 뉴욕에 도착하면서 시작한다. 바다와 하늘 그 사이 지상에서 인물들은 살아가지만 계속해서 표류한다. 뉴욕 공항에 도착한 에바(에스터 벌린트)의 최종 정착지는 클리블랜드다. 잠시 사촌 오빠 윌리(존 루리)의 집에 머물 뿐이다.

에바는 영화의 끝에서 자신의 고향 헝가리로 떠나려고 한다. 김호영 교수는 <아무튼, 로드무비>에서 자신의 파리 유학 시절에 느꼈던 감정을 <천국보다 낯선>에서 발견한다. 그는 이 영화에서 청춘만이 느낄 수 있는, 벼랑 끝에 매달린 어떤 고독이란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평한다. 이러한 고독을 이후 자무시의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그의 평가에 나 역시 동의한다. 이후에 등장한 <다운 바이 로>(1986)와 <미스테리 트레인>(1989)에서는 고독함보다는 영화적 형식의 새로움을 추구하는 쪽으로 짐 자무시의 관심이 쏠린다.

짐 자무시의 관심은 인물들의 이합집산으로 모인다. 그의 영화적 세계는 점차 비-장소화되지만 고독감은 점차 무뎌진다. 무뎌진 자리에 특유의 건조한 코미디가 자리 잡는다. <다운 바이 로>와 <미스테리 트레인>이 짐 자무시표 코미디의 시작점이다. <다운 바이 로>에서 연결점이 없는 3명이 감옥에서 모였다 길에서 헤어지고, <미스테리 트레인>에서는 3개의 에피소드가 멤피스의 한 모텔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인물들은 서로의 이동수단을 타고 스치듯 사라진다.

<미스테리 트레인>의 각각의 에피소드는 이어지지 않고 따로 떨어진 삽화적 형태를 띤다. 이러한 형식은 <지상의 밤>(1991), <커피와 담배>(2003)에서도 이어진다. 하지만 형식이 돋보이기 이전에 등장했던 <영원한 휴가>와 <천국보다 낯선>에서 보여준 자무시의 장점은 도시와 시대의 분위기를 담아냈다는 것이다. 점차 픽션의 세계로 나아간 그의 영화에서 현실은 갈수록 얇아지는 외피가 되어버렸다. 초기작이 계속해서 소환되는 것은 분위기 그 자체로 영화를 완성시켰기 때문이다. 설령 그 안이 텅 비어 있더라도 그것이 짐 자무시 영화에 여전히 거는 기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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