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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아이들의 파워, 페미니즘의 메시지매크라켄의 여자친구이자 <파워퍼프 걸> 스토리보드 작가인 로라 포스트는 가끔 애인에게 불평을 했다. "당신은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고 있어요. <파워퍼프 걸>의 메시지는 정말 놀랍다구요!"라고. 매크라켄은 "여자아이들이 이런 일을?"이 아니라 "아이들이 이런 일을?"이라는 전제로 성(性)의 구분을 없앴다고 강변하지만, 많은 미국 언론은 <파워퍼프 걸>이 페미니즘을 담고 있다고 해석한다.박사님은 그 가장 강력한 증거다. 세 여자가 자신을 숭배한다는 점에서, 박사님은 <미녀 삼총사>의 숨겨진 보스 찰리와 비슷하다. 그러나 박사님은 파워퍼프 걸이 오늘은 어떤 임무를 수행하는지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는 새로운 무기를 주지도 않고, 작전 지시를 내리지도 않는다. 다만 착한 아이답게 행동하라고 충고하거나 아이들 잘 시간에 구조전화가 울린다고 불평할 뿐이다. 박사님은 남성적인 지도자라기보다 걱정 많은 엄
어른들까지 사로잡아버린 아동용 애니메이션,<파워퍼프 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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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좋아>의 제한상영 결정은, 잡지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도 참 갑갑하다.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이, 논리와 국면을 달리하면서 전개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출범한 99년부터 지금까지, 싸움의 내용이 똑같다. "체모와 성기 노출 때문에 못 튼다", "전체 맥락을 봐야 한다"는 이 지겨운 공박이 4년째 이어지고 있다. 얘길 조금 달리 풀어보자는 취지로, 영화감독 가운데 독설이 심하다고 알려진 임상수 감독과 지금까지 영화계의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소송에 쉬지 않고 관여해온 조광희 변호사의 대담을 마련했다. 임 감독의 다음 영화 <바람난 가족>(가제)의 시나리오 작업을 '관리'하고 있는 명필름 심보경 이사가 대담 도중에 자리에 동참했다. 대담 기사에는 포함시키지 말라며 개인 의견을 개진했지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돼 함께 넣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대담인 만큼, 남녀 성기에 대한 표현을 살리되 '♂지', '♀지'로 '모자이크 처리'했음을
<죽어도 좋아> Free Talking, 조광희 vs 임상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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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 :: :: 그러니까. 단 몇년 안에. 그런데 자료는 하나도 안 남아 있어. <처녀들의…> 비디오랑 케이블TV 방영본이 잘린 채 나와서 소송했잖아. 그때 조 변호사가 맡았고. 재판에서 자르라고 한 사람이 누구냐를 찾는데 안 나와. 아무도 책임 안 지는 거지. 비디오회사, 케이블회사가 자진해서 잘랐겠어? 그런데 안 나오니까 케이블회사는 배상을 하고 비디오는 다시 출시됐지. 지금 <처녀들의…>가 무슨 윤리적 논란이 되냐고. 그런데 왜 돈 들여서 재판했고, 국가기관도 판사도 시간낭비하고, 비디오회사는 재출시하고, 케이블회사는 돈 물고 그러냐고. 이득 본 사람은 딱 두 사람이야. 하나는 조광희 변호사고(웃음), 하나는 그때 거마비 받았던 심의했던 사람들이지. 등급위도 세금으로 운영하는 기관인데 돈을 과외로 지불하게 하는 일만 하고. 영화라는 게 길게 보면 역사책일 수가 있어요. 수십 수백년 뒤에 되게 중요한 사료가 될 걸 계속 누군가가 훼손하고 있는 거라고.
<죽어도 좋아> Free Talking, 조광희 vs 임상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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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 :: :: 제한상영관이라는 게 외국의 포르노영화 틀어주는 곳이잖아. <거짓말> <죽어도 좋아> 다 어떤 예술적 성취를 한 영화인데, 그걸 포르노 극장에 보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뭐지. 그게 한국의 문화적 자산인 건데…. 복잡한 것 같지만, 이 싸움에서 쟁점은 ♂지, ♀지, 털이 안 된다는 것 외에 하나도 없어. 그런데 왜 ♂지, ♀지 보기를 두려워하지? 나는 내 ♂지는 매일 보고, 내 마누라 ♀지는 가끔 보지만. (웃음) 여자 입장에서는 반대일 거고. 내것 아닌 그걸 못 볼 때 또 너무너무 그리워하는 건데. 그걸 보기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심리상태는 도대체 뭐지. 섹스하는 건 되는데 ♂지, ♀지는 안 된다, 그게 뭔가. 혼자서는 보면서 극장에 모여서 보는 것에 대해 대단히 두려워하는 것 같은데. 그건 정신병리학적으로 설명이 필요한 것 같아.■■■ 조 :: :: 법률적으로도 전체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는 거거든요. 뭐가 보이면 안 되고, 안 보이면
<죽어도 좋아> Free Talking, 조광희 vs 임상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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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장선우 감독은 인터뷰에서 선문답처럼 답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게 말장난처럼 들리지 않는 건, 실제로 세계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의 변화가 동반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쁜 영화>(1997)와 <거짓말>(1999)의 중간에 그는 “세상이 지겹게 안 변하는 건 이유가 있을 거다, 변해야 하는 건 나구나”라는 말을 했다. ‘지겹게’라는 흔한 부사에 예사롭지 않은 무게감이 실려 있었다. 그 직후 볼품없고 퇴행적인 불륜행각에서, 한 애잔한 사랑의 풍경을 건져낸 <거짓말>은 미추, 선악을 구분하기에 급급해하지 말고 세상 보는 눈을 한번 바꿔보자는 제안이기도 했다.3년 만에 장 감독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하 <성소>)을 들고 다시 나타났다. 온갖 경계와 차별을 넘어 행복의 나라로 가자는 순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이제껏 보지 못한 새로운 형식을 동반하고 있어 영화가 간단하지 않다. 또 불교 경전과 노장철학을 끌어들이는 메시지
장선우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_ STAGE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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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2 - “현실 대 가상현실, 이원론을 탈출해 카오스에 빠져라”<성소>는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허물라고 선동하는 영화다. 그래서 다른 가상현실영화와 게임의 규칙이 다르다. 아니, <성소>는 그 규칙이 아예 없는 거처럼 보이기도 한다. 납득할 만한 설명없이 그 경계를 슬쩍, 어떨 때는 당당하게 내놓고 넘어가버린다.가상현실에 주목한 이유는.→ 가상현실이 삶에 있어서 뭔가. 가상현실과 현실은 정말 다른 가치를 가진 건가. 가상현실이 가치없다면 현실도 가치없다. 가상현실이 가치있다면 현실도 가치있다. 현실이 가치없다면 가상현실도 가치없다. 이런 지점에 대한 답을 <금강경>에서 구하고 그걸 운반하는 거. 거기서 말한 건 가치있다, 없다가 아니거든. 다 쓸데없다, 그러면서도 유익하다. 얼마나 잘 운반했는지는 나도 모르지. 그 얘기를 어떻게 들을지, 나는 어떻게 그 얘기를 갖고 갔는지 열어봐야지. 관객이 돼서 봐야지. 아직 같이 볼 기회가 없었
장선우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_ STAGE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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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3 - “연꽃처럼 향기로운 영화가 돼야 하는데 STAGE3 - "왜 액션영화가 됐겠는가”<성소> 시나리오 앞부분은 이 영화의 액션을 설명하면서 마지막에 ‘plastic & poetic’라는 수사를 달아놓았다. ‘유연하고(쉽게 형질을 변경할 수 있고) 시적인’ 액션을 찾느라, 홍콩 무술감독 세명이 뛰어들었고 영화의 제작비는 급상승했다. 왜 그런 액션이 이 영화에 필요했는지에 대한 장 감독의 자못 난해한 대답은 이 영화를 읽는 또 하나의 단서가 될지 모른다.가상현실과 도, 이런 것과 액션이 어떤 관계를 갖는지.→ 현실과 가상현실이 다를 바 없다는 것. 거기서 액션을 할 근거를 난 찾은 거거든.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이 화려한 액션이 왜 현실감을 가져야 하느냐. 난 실감이 나야 된다는 거였지. 액션 자체로 끝나면 난 그런 거 잘 못하지. 난 철저히 리얼리스트니까. 그게 리얼한 느낌을 줘야, 판타지도 만들어보고, 시공을 넘나드는 액션을 하는 거지. 왜냐면 차별이
장선우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_ STAGE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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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4 - “최고 winner는 영화 보고나서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야보고나서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영화는, 이제까지 장 감독 영화 중에는 없었다. 거꾸로 슬퍼지는 게 대다수였다. <성소>에서 행복을 느꼈으면 한다고 하지만, ‘영화 보고 슬픈 관객도 위너’라는 단서를 붙인다. 그 행복과 슬픔의 관계가 미묘하다.전에 <성냥팔이 소녀>에 담긴 기독교적 구원의 정서가 싫어서, 그걸 깨고 싶다고 했다.→ 그걸 깨고 싶다는 거는 그냥 단순한 거지. 성냥팔이 소녀가 우울하게 죽지 않으면 안 될까. 좀 행복함을 찾아주면 안 될까. 불쌍하잖아. 내가 사디스트도 아니고. 불쌍한 걸 즐기는 게 아니지. 성소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시작한 거지. 그런데 그 생각만으로 발칙할 수 있지. 전복적일 수 있지. 순수한 동기라 해도.성소를 행복하게 해주려면 살려서 돈, 명예, 사랑 그런 거 주면 되는데, 왜 나비는 죽이고.→ 행복하려면, 독을 독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했잖아. 그런
장선우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_ STAGE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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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 STAGE시스템은 안 변하다, 변해야 하는 건 나다라는 생각을 했다면 영화도 바뀔 것 같다.→ 달라지고 있잖아. 이 영화 굉장히 달라지고 있어. <거짓말> 때도 달라진 거라고. 그때 내가 왜 <거짓말>을 자신있게 했냐. 비난을 무릅쓰고. 전에도 차별을 넘어서, 선악의 분별을 버리고, 그런 얘기 했잖아. 어떻게 보면 지금 영화는 확장이지. 그때도 섹스라는 걸 통해 놀면서 한 거고, 이건 액션을 통해서. 같은 얘기를 수없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지도 모르지. 왜 영화를 하느냐, 그건 어떻게 세상을 보느냐에서 시작해야 하거든. 이렇게 해서 돈 번다, 예술한다, 이건 사실 아무 관계가 없다고.그러면 <거짓말>부터 시작한, 영화를 통한 싸움, 전선이 있다면.→ 일종의 편견에 대한 싸움이지. 죽어 있는 사고방식에 대한 싸움. 남을 고통스럽게 하는 사고방식에 대한 싸움. 편견이 주는 고통이 엄청 크잖아. <죽어도 좋아>가 검열 때문에 개봉 못하고
장선우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_ OFF STAGE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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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매뉴얼 Version 1.0 : 가상현실부터 흥행까지, <성소> 사전* 스포일러 워닝 : 이 글을 읽음으로써 영화의 내용을 미리 알게 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가상현실<성소>의 주된 공간은 가상현실이다. 하지만 이 가상현실이라는 공간은 현실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으며 거의 구분조차 가능하지 않다. 특히 ‘성소 재림’이라는 게임의 공간에서는 현실과 가상현실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여 보는 이에게 혼란을 자아낸다. 장선우 감독이 이 문제에 천착하게 된 것은 90년대 중반 버추얼 리얼리티에 관한 논의가 전개되던 때였다. 여기에 그를 사로잡아왔던 불교와 장자의 무애(無碍)한 세계를 읽어낸 장 감독은 이를 영화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 장 감독은 “가상현실이 현실의 연장이라고 보려는 최근의 가상현실 이론을 넘어서 여기서는 아예 실재 현실과 가상현실은 결코 둘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게임장 감독은 애초부터 <성소>를 청소년들이
장선우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_ 게임 메뉴얼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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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레이<성소>의 공간은 게임 속 가상현실이다. 때문에 설사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해도 게이머는 ‘인서트 코인’해서 ‘게임을 계속 진행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예’를 클릭하기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3단계의 후반부, 주는 잘못된 선택으로 시스템에 의해 개죽음당한다. 주는 게임을 이어 진행하지 않고, 다시 자장면 배달부의 자리로 돌아온다. 주가 단란주점에 철가방을 들고 가는 장면이 나오고 검은 화면에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이때 영화는 잠깐 멈추고, PC방으로 돌아와 주로 하여금 다시 선택하게 한다. 주는 게임을 이어나가기로 하고, 영화는 새로운 국면으로 돌입한다. <성소>에서 ‘리플레이’라는 요소는 단순히 영화적 재미를 주기 위해 도입된 게 아니다. 게이머들의 끝없는 ‘리플레이’를 유도해 이득을 취하려는 시스템의 계략, 또는 끝없이 순환하는 윤회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장선우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_ 게임 메뉴얼 1.0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