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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 라이트’(Half Light)는 어슴푸레한 빛이라는 뜻이다. 빛과 어둠이 반반씩 섞여 있는 혼돈된 상태를 의미하는 이 제목은 한편으론 진실이라 확신할 수 없는, 정확하지 않은 기억이나 쉬이 밝혀지지 않는 진실 따위를 의미하기도 한다. 인간은 자신이 직접 목격한 광경, 혹은 몸소 체험한 상황을 실제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크레이그 로젠버그 감독이 연출한 <하프 라이트>는 경험론에 입각한 인간의 믿음에 돌을 던져 파문을 일으키고자 한다. 일상적인 삶의 기억을 의혹으로 빠뜨리려는 이러한 시도는 스릴러물 <하프 라이트>가 제공하는 서스펜스의 심장이다.
레이첼 칼슨(데미 무어)은 문학상을 여러 차례 수상한, 명망있는 미스터리스릴러 작가다. 성공한 여성의 전형으로 여겨지던 그녀의 삶은 어느 날 아들이 익사하면서 부서지기 시작한다. 아들의 죽음 이후 그녀는 정신과 치료를 받을 정도로 힘겨운 시간을 보낸다. 작품 활동에도 진전이 없다. 그녀는 자신을 추스르기 위해 영
트릭을 요령있게 사용하는 스릴러물, <하프 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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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똥이 자원이다>라는 인류학 책이 있었다. 장편애니메이션 <아치와 씨팍>의 배경은 그야말로 똥이 자원인 시대다. 자원이 고갈된 미래의 언젠가, 인간의 대변만이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국가는 에너지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모든 시민들의 항문 안에 ‘아이디 칩’을 삽입해 철저히 통제하면서, ‘우수 배변자’에겐 ‘하드’라는 마약성분을 지급한다. 그 결과 마약중독자가 양산됐고, 돌연변이가 속출했으며, 하드를 둘러싼 강탈전이 횡행하게 된다. 돌연변이가 주축이 된 대규모 하드 강탈조직 ‘보자기 갱단’과 정부가 만들어낸 강화인간 게코가 살벌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는 와중, 뒷골목 양아치 아치(류승범)와 씨팍(임창정)도 화장실에서 애써 힘쓰고 있는 사람들의 뒤통수를 후려쳐 사람들로부터 하드를 빼앗는다. 이 좀스러운 듀오에게 찬란한 빛이 다가오니, 그건 똥 한방에 수백개의 하드를 얻어낼 수 있는 이쁜이(현영)가 나타난 것이다. 이제 ‘걸어다니는 하드 공장’ 이
액션과 폭력의 향연, <아치와 씨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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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싱어가 슈퍼히어로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슈퍼맨 때문이었다. 태생부터 인간을 넘어서는 존재, 완전한 절대 선의 현현. 그리고 그의 대척점에 서 있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악의 심연.
<수퍼맨 리턴즈>는 <슈퍼맨2>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이다. 슈퍼맨의 정체를 알게 된 로이스는 그와 함께 단란한 시간을 보냈지만, 슈퍼맨은 초능력을 사용해 그녀가 클라크와 슈퍼맨이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했다. <수퍼맨 리턴즈>는 슈퍼맨(브랜든 라우스)이 고향 크립톤 행성에 다녀왔다고 설명한다. 크립톤 행성은 황폐해졌고, 아무도, 아무것도 없었다. 슈퍼맨은 클라크가 되어 신문사에 복귀하지만 사랑했던 여인 로이스(케이트 보스워스)가 다른 남자와 함께 살고 있으며 아이까지 낳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게다가 악당 렉스 루더(케빈 스페이시)마저 감옥에서 나와 활개를 치고 있다.
<수퍼맨 리턴즈>는 영리한 블록버스터다. 볼거리와 생각할 거리를 능숙하
영리한 블록버스터, <수퍼맨 리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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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가 정전으로 멈추면 어떻게 해야 할까. 놀라거나 두려워 하는 대신, 춤을 추고 발을 구르고 주문을 외우면 된다. 문제가 해결되어 함께 있는 사람들이 기뻐하면, 차를 대접하거나 명함을 건네 친구로 사귀라고 도리스 되리 감독은 <파니 핑크>(1994)에서 말한다. 흔한 상황을 예외적으로 바라보는 그답게 <내 남자의 유통기한>도 예사롭지는 않다.
‘연애의 유통기한은 잘해봐야 3년’이라는 이제는 뻔해진 얘기도 되리 감독의 손에 잡히면 놀라운 주술과 리듬 속에서 탈바꿈한다. 낡고 칙칙한 연애담이 선도 높은 이야기로 요리되는 비결엔 <파니 핑크>식 점성술, 판타지, 엉뚱한 등장인물과 대사들이 있다. 무엇보다 남녀의 만남을 풍요롭게 하는 건 ‘말하는 잉어 부부’의 플롯이다. 한때 인간이었던 잉어 부부는, 3년 동안 변치 않고 사랑할 연인을 만나면 다시 인간으로 환생할 수 있게 된다. 과연 잉어 부부는 환생하고, 연인은 3년 넘게 사랑할 수 있을까. 이
사랑과 현실의 관계맺기, <내 남자의 유통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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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울 루이즈는 ‘가설의 명수’다. 그의 가설은 근거라 할 만한 것에 얽매이지 않는다. 또한 출구만 있지, 출구 안과 바깥의 구분이 없는 경우가 다수다. 때문에 그 출구는 또 다른 출구와 붙어 있는 사이의 연장일 뿐이지 말 그대로 나가는 곳이 아니다. 한마디로 거대하게 연장되는 문짝 또는 문턱들의 세계일 뿐이다. 그 문짝과 문턱 위에 현실과 환상이, 실재하는 것과 조작된 것이 서로 뒤엉켜 환영의 재로 쌓인다. 루이즈가 상상의 미로를 짓는 영화의 주술사라면 그 미로는 바로 거대한 그 문짝과 문턱의 연쇄로 지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구불구불하게 접힌 루이즈식의 바로크적 꿈꾸기다. 비록 과거의 작품들에 비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현저히 떨어지는 수준이지만, 라울 루이즈가 이 영화를 만들면서 염두에 둔 것 역시 그런 점일 것이다. <클림트>는 클림트에 관한 전기라기보다 클림트에 관한 루이즈의 독단적 가설이다.
그 가설은 어떻게 시작하는가? 이미 몸의 기동성을 잃고 정신을 놓
클림트에 관한 루이즈의 독단적 가설, <클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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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액션물 <이온 플럭스>의 모태는 한국계 피터 정이 만든 MTV 애니메이션 시리즈다. 애니메이션과 카린 쿠사마가 재창조한 실사영화의 기본적인 배경설정은 같다. 2011년 바이러스로 인류의 99%가 죽고, 트레버 굿차일드(마튼 크소카스)의 백신 덕에 살아남은 500만명만 완벽한 인공도시 브레그나에서 삶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카린 쿠사마의 <이온 플럭스>는 철학적이고 모호한 피터 정의 에피소드들을 단일하고 명료한 스토리라인으로 가지런히 정리했다. 가령 애니메이션의 이온은 “넌 누구 편이냐?”는 트레버의 질문에 “난 내 편이다”라고 대답하는 아리송한 정체성을 갖고 있지만, 영화의 이온(샤를리즈 테론)은 처음부터 트레버 체제에 저항하는 반란군 모나칸의 요원으로 등장한다.
인류 최고의 문명을 자랑하는 브레그나는 평화롭게 보이는 외양과 달리 어두운 비밀과 음모가 숨겨져 있다. 쥐도 새도 모르게 발생하는 실종사건은 함구되고 정권 핵심부에서는 권력 투쟁이 일어나고
유한한 삶의 조건과 영생에 대한 욕망, <이온 플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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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3각 게임에선 ‘언제나 함께’여야 한다. 사람은 둘인데, 발은 셋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한데 묶은 발을 맞춰 움직이지 않으면 둘 다 고꾸라지게 돼 있다. 누군가 앞설 때 또 다른 누군가도 앞서야 한다. 누군가 지칠 때 누군가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2인3각 게임의 진짜 재미는 두 사람의 의지와 행동이 뒤엉키는 상황이 아닐까. 따지고 보면 버디무비를 보는 쾌감도 다르지 않다. 한시라도 빨리 뭔가를 해결해야 하고, 한시라도 빨리 어딘가에 당도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두 인물은 싸우고 또 싸운다. 그렇게 애간장을 태우다 보면 두 인물은 엔딩 라인에 닿아 있다. 경찰과 조폭이 인질과 인질범으로 만나 벌이는 요상한 추격전 <강적>은 어떨까.
먼저 인질범 수현(천정명)의 신상명세. 과거 조폭이었던 수현은 맘먹고 새 삶을 차린 젊은이다. 여전히 그의 손목에는 문신이 새겨져 있지만, 그가 들고 있는 칼은 이제 야채를 다듬는 데 쓰인다. 여자친구 미래(유인영)
동상이몽에서 이심전심으로, <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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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는 뜻의 <착신아리> 시리즈는 휴대폰을 통해 죽음이 전달된다는 것을 공포의 기본 토대로 삼는다. 첫편이 등장했을 당시 신세대의 필수품 휴대폰을 죽음의 매개체로 삼은 점은 주관객층을 매혹시키는 참신한 아이디어로 평가받았다. 시리즈 3편인 <착신아리 파이널>은 이 설정 위에 친구를 죽여야 네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배틀로얄>식 공포를 첨가했다. ‘전송하면 넌 죽지 않아’라는 문자메시지는 죽음의 저주를 남에게 떠넘겨 네 목숨을 건지라고 부추기고 있다.
세 번째 휴대폰의 저주를 부르는 인물은 교내에서 이지메를 당하는 아스카(호리키타 마키)다. 수학여행을 포기할 만큼 심하게 왕따를 당하던 아스카는 같은 반 친구들에게 이상한 문자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전송하면 넌 죽지 않아’라는 메시지의 내용을 믿지 않다가, 당사자들이 하나둘 죽어나가는 광경을 목격한다. 한가롭게 수학여행을 즐기던 아이들은 그때부터 아비규환에 빠진다. 광
휴대폰을 빌미로 삼은 호러물 3대손, <착신아리 파이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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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즘’ 영화미학의 상이한 측면들을 대변하는 세명의 감독이 모여 만든 <티켓>은 참여한 감독의 이름만으로도 직접 작품에 대면하기에 앞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포스트 네오리얼리즘 미학의 진수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되는 <우든 크로그>(1977) 정도를 제외하곤 안타깝게도 한국에 정식으로 소개된 바가 없었던 이탈리아 영화감독 에르마노 올미, <ABC 아프리카>(2001)에서 <키아로스타미의 길>(2005)에 이르는 실험적 디지털 작업 이후 오랜만에 35mm영화로 복귀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그리고 고집스레 영화를 통한 사회적 발언을 계속해온 켄 로치가 공동으로 참여한 <티켓>은 분명 각각의 이름에 합당한 주목과 정당한 평가를 요구하는 영화다.
키아로스타미의 제안으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이 프로젝트는 원래 3부작짜리 장편다큐멘터리로 기획되었다(참여할 감독으로 올미와 로치를 추천한 이도 바로 키아로
‘쳐다봄’과 ‘다가감’ 그리고 ‘지나침’, <티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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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전>은 늙은 호박처럼 오랜 세월을 곰살궂게 기다린 독립애니메이션이다. 2002년 문화콘텐츠진흥원에 의해 우수 파일럿으로 지정된 <호박전>은 3분짜리 파일럿으로 시작했다. 열악한 투자환경 탓에 3년을 기다린 <호박전>을 제작지원한 곳은 서울애니메이션센터와 EBS였다. 원래는 연작물로 계획된 <호박전>은 1년 반이라는 짧은 제작기간을 감안해 명절용 40분 특집애니메이션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유진희 감독을 비롯해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11명, 프로덕션에는 20명의 애니메이터들이 심혈을 기울인 결과 1년 만에 제작을 거의 완료했고 유 감독이 리테이크(실패한 그림이나 촬영된 필름을 다시 고치는 작업)에 다시 6개월을 투자했다. 그 결과 서울애니시네마에서 단독 개봉을 앞두고 있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강이네 가족은 충청도 할머니댁으로 향한다. 그들이 도착한 호박마을의 할머니댁은 호박전으로 마을사람들에게 유명하다. 한창 호박전을 부치던 할머니
오랜 세월을 곰살궂게 기다린 독립애니메이션, <호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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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 이렇게 불운할 수가 없다. 회사에서 실직하고, 위로받으러 여자친구에게 갔더니 어떤 놈팡이와 뒹굴고 있다. 뉴욕의 친구 집으로 탈출을 도모하는데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강도를 만나고 코가 부러진다. 여기까진 그나마 ‘일상적’이다. 사라진 친구 피셔를 대신하여 아파트를 지키고 있는데 뉴욕 양대 마피아 조직의 보스와 차례로 강제 면담하게 된다. 흑인 보스(모건 프리먼)와 라비 보스(벤 킹슬리)가 이 남자에게 살인청부를 하달한다.
이 남자, 이렇게 낙천적일 수가 없다. 슬레븐(조시 하트넷)은 폭풍처럼 들이닥친 불행의 연쇄에도 초조한 기색이 없다. 그 끝에 목숨까지 담보잡혔는데도 나사풀린 듯 미소까지 잃지 않는다. 지적 쾌감을 부르는 추리의 묘미가 스릴러의 기본이겠지만, 미소와 살인청부와 마피아 사이에 담긴 첫 번째 미스터리에 긴장의 에스컬레이터는 작동하지 않는다. 차라리 그 역할은 ‘캔자스 시티 셔플’이란 옛날이야기에 떨어진다. 한적한 터미널 대합실의 한 청년 앞에 휠체어를 탄
반전을 위한 이야기, <럭키 넘버 슬레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