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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를 ‘위대한 소설의 시대’라고 일컫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가 아는 모든 위대한 소설적 창작이 19세기의 산물이었으며, 소설이 진정한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뜻에서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생각도 비슷했던 듯하다. 그는 러시아의 위대한 산문 작가들의 순위를 1위 톨스토이, 2위 고골, 3위 체호프, 4위 투르게네프로 매긴 뒤 말하기를, “소위 ‘메시지’가 19세기 중반부터 러시아의 소설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20세기 중반 즈음에는 러시아 소설을 말살시켰다”.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는 <롤리타>의 성공 이후 강의를 접고 소설 집필에 몰두했던 나보코프가 유럽 전체를 뒤흔들던 나치의 망령을 피해 1940년 5월 미국으로 이주한 뒤 웰즐리, 코넬 등 미국 대학에서 강의하기 위해 작성한 강의록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작가별로 대표작 하나를 선정해 강의했기 때문에 해당 작품을 읽고 이 책을 읽으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나
씨네21 추천도서 -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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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공처럼 빠르게 오가는 잡담, 시시한 듯 재미있는 농담. 잡담과 농담이 의미 있게 다가오는 순간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상황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단편집 <스마일>을 읽으면 떠오른다. <스마일>에서 주인공 데이브는 비행기를 타는데, 느닷없이 승객 한명이 죽는다. 정체불명의 옆자리 사람 잭은 그 사망자가 헤로인을 먹어서 운반하는 밀수꾼 ‘스왈로워’라서 헤로인에 중독되어 죽었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푼다. 사실 데이브는 스왈로워였기에, 헤로인 펠릿을 삼키고 아랫배의 통증을 느끼며 이미 죽음을 겪은 듯한 기분이었기에, 승객의 죽음이 자신의 가까운 미래 같아 쉽사리 잭의 잡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심심풀이로 앨버트로스>는 플라스틱섬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 조이의 사연을 소설로 써보려는 이야기다. 추락하는 경비행기에서 탈출한 조이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모여 거대한 섬을 형성한 곳에 간신히 도착한다. “조이가 플라스틱 가득한 해변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발견한 문
씨네21 추천도서 - <스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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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하루 속에 미래를 계획하는 일상다운 일상, 그런 일상 속으로 원인불명으로 죽어가는 환자들이 등장한다. 처음에는 다들 별일 아니라고 여기고 전염병이 돈다는 응급실 의사의 신고를 무시했으나, 곧 사망자가 폭증하고 바이러스는 스코틀랜드에서 시작하여 유럽으로, 미국으로, 전세계로 퍼져나간다. 사람들은 출근을 피하고 집에 숨어 지내거나 인구밀도가 낮은 동네로 피난을 떠난다. 가족을 잃은 이들은 철저하게 격리를 하지 못해 그렇게 되었다고 자책하며 슬퍼한다. 도시 기능은 마비되고 세상은 문명의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것 같다. 그렇지만 역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0호 환자’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용감한 의사가 있고 또 백신 개발에 매진하는 학자들이 있다.
<엔드 오브 맨>은 세계적 유행병을 지나온 사람들에게 익숙한 풍경이 압축적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전염병의 발생으로 모두가 공포와 절망에 빠지나 생존자는 회복하여 힘을 내고 현실에 적응한다. 그런데 코로나19에서 아이디어를 얻긴
씨네21 추천도서 - <엔드 오브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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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가 재미가 없을 수 있을까? 피부색이 밝은 유색인 쌍둥이 자매가 있다. 이중 한명이 자신을 백인이라 속이고 새 삶을 살게 된다. 여자는 남편과 아이에게조차 가짜 과거를 지어낸다. 쌍둥이 중 한명은 백인으로, 한명은 흑인으로 살게 된다. 이 소설이 재미가 없을 리가. 1950년대, 인종차별이 심하던 미국 남부에는 피부색이 밝은 유색인들만 사는 마을이 있다. 마을 사람들은 오랫동안 결혼을 통해 자기보다 더 밝은 피부색의 자식을 낳는 것을 목표로 해왔고 덕분에 아이들은 ‘거의 젖지 않은 모래색’의 밝은 피부로 태어난다. 백인들의 린치로 아버지를 잃은 쌍둥이 자매 스텔라와 데지레 역시 백인만큼 밝은 피부색을 지녔다. 답답한 현실을 도망쳐 자매는 대도시로 떠난다. 거기서 스텔라는 ‘백인만 지원 가능’한 회사에 거짓말로 취직하게 되고 갑자기 자취를 감춘다. 데지레는 자기보다 피부색이 어두운 남자와 결혼하고 딸 주드를 낳는다. 사실 스텔라는 백인 상사와 결혼해 유복한 백인 사모님으로
씨네21 추천도서 - <사라진 반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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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희의 소설집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을 읽으면서 <파친코>의 선자가 자꾸 연상됐다. 디아스포라 문학이라는 범주 안에서 재일 동포와 조선족, 탈북자의 삶은 자주 포개졌다가 흩어진다. 이들은 타민족에게 차별당할 뿐 아니라 같은 동포에게도 ‘너는 우리와 다르다’고 선 그어진다.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의 ‘나’는 중국 대학교에서 한국어 강사로 일하는 조선족이다. “한국인이냐”고 묻는 닝에게 나는 “아니죠. 중국이에요. 조선족”이라고 답한다. 앞은 국적, 뒤는 자신이 속한 민족이다. 나는 중국인 닝과 사귀고, 한국인 연주와 교류하면서 자신이 연주보다는 닝과 더 닮았다고 여긴다. 닝은 “넌 두 나라 말을 다 잘해서 좋겠다”고 하지만 나는 두 나라 언어 중 무엇 하나라도 제대로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같은 소설 안에서 한국 독자들이 피식할 장면이 있다. 인물들은 자주 마라탕을 먹으러 가는데, 마라탕을 ‘얼얼할 정도로 매운 쓰촨성 유명 탕 요리’라고 설명한다.
씨네21 추천도서 - <세상에 없는 나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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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오브 맨_크리스티나 스위니베어드 지음
스마일_김중혁 지음
세상에 없는 나의 집_금희 지음
사라진 반쪽_브릿 베넷 지음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 개정판_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5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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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대한 생각>의 대니얼 카너먼이 공동 저자로 참여한 <노이즈: 생각의 잡음>은 부제 그대로 ‘판단을 조종하는 생각의 함정’을 이야기한다. <선택 설계자들>의 올리비에 시보니, <넛지>의 캐스 R. 선스타인이 공동 저자로 참여했다. 이 책은 우리가 판단을 내릴 때 오류가 발생하는 원인을 크게 편향과 잡음으로 이야기한다. 편향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논의가 존재한다. 선거철이 되면 누구나 자신만의 정치적 편향과 타인의 그것에 대해 할 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잡음은 거의 논의되지 않고 있으며, 건강한 논의를 오염시키는 주범이라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같은 사안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이 극과 극으로 갈릴 때, 갑론을박의 이유가 잡음일 때 생길 수 있는 문제와 그 예측 방법은 무엇일까. 형사사법제도부터 과학수사, 의료 가이드라인과 채용 시스템 등 중요한 판단이 내려지는 여러 사례가 언급된다. 단 한번의 결정 기회만이 주어지는 중요한 판
<노이즈: 생각의 잡음-판단을 조종하는 생각의 함정>, 더 잘 판단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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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식당에서 주방보조원으로 일하다 병원 급식조리원으로 직장을 옮겼다. 병원은 급식사업이 외주업체로 넘어가며 비정규직 조리원들이 농성 중이다. 요리하기를 즐겼던 여자는 이제 요리 과정만 떠올려도 구역질이 난다. 치매 시어머니에게서 자신의 미래를 본 50대 여자에게 남은 삶은 그저 주어졌기에 버텨야만 하는 것이다. 남자는 사업 실패 후 건설 현장 교통 관리원으로 일한다. 주머니 사정은 갈수록 힘들어지고 아내와는 대화조차 끊겼다. 여동생이 돈을 꾸러왔지만 도와줄 수 없다. 늙다 못해 삭아버린 동생의 얼굴에서는 비애가 느껴진다.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잘못됐다. 2018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손홍규 소설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는 주인공 부부의 고단한 삶을 각자의 시선으로 비추다가 평행선 같은 두 사람이 어쩌다 사랑에 빠졌는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쁘지도 다정하지도, 이상형도 아닌 여자와 평생 해로할 수밖에 없겠다고 마음먹은 찰나의 문장은 손홍규 소설의 전반적인
씨네21 추천도서 - <당신은 지나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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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단어의 성공 스토리는 분명 출판되어야 한다.” 서문에 언급된 문장은 아마도 이 책 자체에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말하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저작이 바로 프레드릭 제임슨의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자본주의 문화 논리>일 것이다. (미주와 찾아보기를 포함해) 800쪽에 육박하는 이 책이 술술 읽힌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시간을 들여 독파할 가치가 있는 문화비평서다.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자본주의 문화 논리>는 문화, 이데올로기, 비디오, 건축, 문장, 공간, 이론, 경제, 영화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는데, 어느 한 파트만 읽기보다는 순서대로의 독서를 권한다. 이 모든 논의가 종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것이 포스트모더니즘적 세계의 특수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모더니즘이 끝나서 포스트모더니즘이 시작된 게 아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명명되었기 때문에 비로소 모더니즘은 막을 내렸다. 그렇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무엇인가. “포스트
씨네21 추천도서 -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자본주의 문화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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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김헌 교수의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 오랜 시간 그리스 로마 신화 강의를 이어오며 학생들 사이에서 호평받았다는 김헌 교수의 이번 책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여러 순간들을 철학, 문학, 언어(그리스어를 차용한 브랜드 이름이 얼마나 많던가) 등과 연결하며 현대적 해석을 덧붙인 결과물이다. 1부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로, 2부 신들의 영광, 3부 영웅의 투쟁, 4부 불멸과 필멸의 큰 챕터 안에 신과 영웅들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짧지만 밀도 높게 실려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와 관련된,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같다고 할까.
예를 들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일화는 ‘프로’(pro)가 ‘앞으로’라는 뜻이며, ‘크루오’(krouo- )는 대장장이가 불에 달군 금속을 모루 위에 올려놓고 망치로 쳐서 길게 늘이는 행위를 가리킨다고 한다. 즉 ‘망치로 두드려 앞으로 쭈욱 길게 늘어나게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되는데, 잠든 손님을 침대에 묶어놓고 침대 길이에 맞춰
씨네21 추천도서 - <김헌의 그리스 로마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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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시 자유롭게 갈 수 있게 되면, 많은 관광객이 뉴욕을 찾을 것이고 뉴욕 현대 미술관 모마(MoMA)를 방문할 것이다. 모마는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과 파블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같은 작품들을 소장한 미술관으로 유명하다. <그림들: 모마 미술관 도슨트북>은 ‘모마 미술관 도슨트북’이라는 부제에 어울리게, 실제로 작품을 보고 해설을 듣는 듯한 경험을 주고자 의도한 책이다. 그래서 그림이 걸린 미술관 풍경이 큼직한 사진으로 담겨 있다. 예를 들어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 <풀랑-창과 나>는 칼로가 원숭이 ‘풀랑-창’과 함께한 모습을 그린 자화상인데, 모마에는 이 작품이 거울과 나란히 걸려 있다. 칼로가 집안 곳곳에 거울을 둔 점을 고려한 배치다. 책에는 작품과 그 작품을 보는 관람객의 모습이 비친 거울까지 담은 큰 사진을 실어놓았다. 현장감을 최대한 살린 것이다. 만화를 캔버스에 옮기는 팝아트 작업으로 유명한 로이 리
씨네21 추천도서 - <그림들: 모마 미술관 도슨트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