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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대한 최초의 기억’에 배꼽이라고 답한 사람이 있다. 유치원에도 들어가기 전의 일이다. 이모부가 “갑자기 제 이름을 부르더니 이불 속으로 들어와보라고 하더라고요. ‘왜 이불 속으로 들어오라고 하지’라고 생각하면서 들어갔죠. 그러더니 ‘배꼽 좀 보여줘’라고 하는 거예요. 사실 이모부가 보고 싶었던 건 제 성기였을 거예요. 그걸 말하지 못하니까” 일단 배꼽을 보자며 웃옷과 바지를 벗으라고 한 것이었다. 이모부는 둘이 있을 때는 집요하게 배꼽을 보여달라고 했고, 본인도 배꼽을 보여주겠다고 하며 이불 안에서 옷을 벗었다. 그렇게 몇년이 지났다. 성인이 되고서야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이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의 이름은 ‘오드리’로 되어 있고, ‘화장품 카운슬러’로 일한다고 한다. 여성이 몸에 대한 말을 들려주는 팟캐스트 <말하는 몸>에 출연한 사람 중 88명의 말을 글로 다시 정리해 펴낸 <말하는 몸> 1, 2권을 처음 볼 때 눈길을 끄는 대목들은 누구나 이름을
씨네21 추천도서 <말하는 몸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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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고픈 푸근한 공간으로 고향을 기억하는 사람과 결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고 그럴 수도 없는 공간으로 기억하는 사람 사이에는 깊은 틈이 있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 디디에 에리봉의 <랭스로 되돌아가다>를 읽으면 복잡다단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동성애자로 살아가려는 젊은 게이에게 대도시나 수도로 탈주하는 일은 아주 흔한 고전적인 여정이다.” 미셸 푸코 전기 및 레비스트로스 회고록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프랑스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디디에 에리봉은 퀴어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고향 및 가족과 적극적으로 단절했다고 생각해왔지만 난폭했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오랜만에 어머니와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에게 질문한다. 스스로 노동자 가정 출신임을 부정한 적은 한번도 없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노동자계급과 멀어지려고 애쓴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다.
그래서 저자는 부모의 삶과 사상을 결정지은 사회·역사적 변화를 짚어나간다. 먹고살기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어려서부터 노동
씨네21 추천도서 <랭스로 되돌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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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미술 관객은 작품의 형태며 색상, 전시 공간에 관심을 기울인다. 하지만 과거 교회나 사원, 유적지 등의 미술 작품은 감상용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고, 종교적인 차원에서 믿음을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래서 조각상으로 가득한 인도 사원을 보려고 현지인도 거북해하는 불편한 길을 달리거나,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미켈란젤로와 그를 좇는 근사한 경쟁자 라파엘로의 작품들을 보러 시스티나성당으로 가는 일은 완전히 다른 목적을 품고 일종의 타임머신을 타는 행위다. 공간 이동인 동시에 수백, 수천년을 가로지르는 시간 이동. 그런데 이 여행을 통해 관객 스스로 작품에 집중하면서 변화하기 때문에 더 의미 있다고 저자 마틴 게이퍼드는 단언한다. <예술과 풍경>은 호크니와의 대담집으로 이름을 알린 미술비평가인 저자가 세계를 오가며 작품을 감상하고 작가와 대담을 나눈 경험을 담은 책이다.
화가 고(故) 질리언 에어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빌어먹은 그림은 벽에 걸 때마다 달라
씨네21 추천도서 <예술과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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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을 때마다 달력의 공휴일을 먼저 확인하는 이들에게 2021년은 가혹한 해다. 거의 모든 공휴일이 주말이라서, 설 연휴가 끝나고는 도리 없이 까만 숫자로 표기된 공부와 노동의 시간을 맞이해야 할 판. 이럴 때일수록 놀기 위해서, 공부하기 위해서 책을 가까이 두고 평정심을 찾으면 어떨까. 어느 쪽이든 유쾌한 2월의 책들.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2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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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기자 고경태가 베트남전쟁 한국군 민간인 학살을 책으로 엮었다. 취재를 시작하고 20년이 흐르는 동안 증언에 나선 이들이 한 사람씩 세상을 떠났지만 얼마나 진상규명이 이루어졌는지 갑갑한 마음 역시 든다. 하지만 그래서 여전히 이 책이 읽혀야 한다. 대한민국은 1964년부터 1972년까지 베트남에 군대를 파병했다. 최대 5만여명의 군인이 베트남에 머물렀다. 이 기간 동안 한국군은 베트남 130개 마을에서 민간인 1만여명을 학살했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국가별 참전 병력은 미국 다음으로 한국이 가장 많으며,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발자국이 찍힌 학살지가 중부 다섯개 성 130개 마을에 이른다.
그 역사를, 1968년 퐁니와 퐁넛을 중심으로 들려주는 책. 1968년 2월 12일을 중심으로 당시 베트남 상황, 베트남 사람들, 당시 파병된 한국 군인들, 여러 관련 리포트들을 재구성했다. 베트남전쟁에 대한 입체적인 시각을 갖게 하는 동시에, 한국이 국제사회의 구성원으로 인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베트남전쟁 1968년 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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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떤 일이든 정성껏 긴 시간 들여다보면 그 일의 모든 국면이 삶의 은유가 된다. 그래서 바둑은 인생과 같고, 낚시는 인생과 같고, 야구와 축구도 인생과 같으며, 요리도 인생과 같다. 김정연의 만화 <이세린 가이드>를 보면 음식 모형을 만드는 일 역시 인생과 같구나 싶어진다. 게다가 <이세린 가이드>를 읽으면, 혹시 김정연 작가가 주인공 이세린처럼 음식 모형 만드는 일을 했거나 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어쩌면 이렇게 모형을 만드는 직업에 대해서, 그 일이 불러일으키는 구체적이고 선명한 상념들에 대해 알고 있을까. 김정연 작가의 전작인 <혼자를 만드는 법> 역시 그랬다. 엄연히 픽션이지만 김정연 작가의 에세이처럼 받아들이게 만드는. 음식 모형 제작자라는 직업은 낯설어도, 혼자 일하고 살아가는 젊은 여성의머릿속 상념은 많은 이들에게 속상할 정도로 익숙하다.
목차 대신 ‘차림표’라고 적힌 페이지 안내에는 에피소드 제목이 모두 음식 제목으로 이루어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이세린 가이드>, 음식 모형을 만드니 보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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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버블에 둘러싸여 산다. 최근 ‘버블’이라는 단어는 특히나 경제적, 문화적으로 중상 정도의 위치에 있는 이들의 현실불감증을 지적하는 용어로 자주 쓰인다. <리얼리티 버블>은 제목의 번역어인 ‘현실 거품’을 이렇게 설명한다. “일상 세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형성하는 심리적 거품.” 캐나다의 과학 저널리스트인 지야 통은 우리가 통제하지 못하는 ‘저기 바깥’의 힘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도록 우리를 보호한다고 한다. 그래야 우리는 오늘 맡은 일을 해낼 수 있다. 모든 변수에 대처하지 않아도 되는 일종의 현실 왜곡. 그것이 터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우리를 보호한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문제는 “아무리 안정적인 세계 인식이라도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음을 기억하는 것”. <리얼리티 버블>은 과학적 근거를 들어 사람들의 맹점을 시야에 드러나게 한다.
1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은 인간의 맹점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동물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며 살아 있는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리얼리티 버블>, 인류의 미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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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다큐멘터리에 대한 책을 쓴다면 김옥영 작가만큼 잘 써낼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더구나 다큐멘터리 감독, PD, 작가 등 생산자를 꿈꾸는 사람에게 그만큼 다큐멘터리 제작 지식과 방법론을 실무적 예시를 들어가며 설명할 수 있는 사람도 드물다. 40년 동안 다큐멘터리 작가이자 제작자로서 활동한 김옥영 작가는 다큐멘터리의 이론을 설명하되 한국 다큐멘터리사에서 중요하다 꼽히는 작품들의 장면을 예시로 들며 ‘다큐의 기술’을 설명한다. 사람들은 극영화와 달리 다큐에는 만들어지지 않은 진짜 현실이 담겨 있다고 믿는다. 때문에 다큐 속에서 독특한 사건을 발견할 때 그것이 ‘실화’라고 여겨 더 크게 감동받는다.
이 책은 거기서 시작한다. “미디어와 테크놀로지가 발달하고 (중략) 무엇이 진짜 현실인지 구분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 것이다. (중략) 이 시대에 ‘현실’은 어디에 있는가.”(21쪽) 이 질문에 책은 ‘있는 그대로’는 없다고 단언한다. 중요한 것은 결국 감독이 본 것이 무엇인가. 감독
씨네21 추천도서 <다큐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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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쉬운 언어’로 ‘삶의 구체성’을 담은 서정시를 써서 수십년간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정호승 시인의 산문집이 나왔다.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는 시 60편 및 시의 배경이 되거나 계기가 된 이야기를 한데 모은 책이다. 시를 읽고 뒤이어 실린 산문을 읽어가다 보면 한국 현대사와 문화사의 흐름에 몸을 싣는 기분이 든다.
이동원 가수의 구슬픈 노래로도 유명한 시 <이별노래>는 1970년대 태평양화학(현재 아모레퍼시픽)의 사보 ‘향장’에 처음 발표되었다.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1987년,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생각하며 쓴 시 <부치지 않은 편지>는 고 김광석 가수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부르고 녹음한 노래의 노랫말이기도 했다.
산문집에는 정호승 초기 시의 정수로 꼽히는 <서울의 예수>도 실려 있다. “아직 악인의 등불은 꺼지지 않고, 서울의 새
씨네21 추천도서 <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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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여학교 소설들이 현대 독자의 관심을 끄는 것은 억압적인 규율의 틈새로 학생들이 자유를, 그리고 사랑을 갈망하기 때문이리라. 그 갈망에 상상을 입히면 흥미로운 시대물이 탄생한다. <1931 흡혈마전>이 그런 소설이다. 1931년의 식민지 조선, 운 좋게 학업을 지속하게 된 학생 희덕은 현모양처를 키우고자 하는 여학교의 교육 이념을 벗어날 길을 꿈꾼다. 그런 희덕 앞에 새로운 기숙사 사감 계월이 등장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에서 작은 마을에 별안간 등장한 소녀 일레븐이 초능력자였던 것처럼 <1931 흡혈마전>의 계월도 심상치 않은 존재다. 그녀는 흡혈귀이고, 사람의 피를 빨기 위해 상대를 기절시키거나 기억을 삭제하는 능력을 발휘할 줄 안다. 우연히 계월의 비밀을 알게 된 희덕은 계월을 쫓아다니고, 그렇게 모험극이 시작된다. 희덕의 모험을 따라가며 독자는 한때 국사 시간이나 혹은 책이나 다큐멘터리 등으로 접한 사료의 조각들이 오밀조
씨네21 추천도서 <1931 흡혈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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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러브리티의 전기를 읽을 때 그 시절의 기록 속에서 언급되는 영화, 음악을 찾아보며 독서를 병행하면 재미가 배가 된다. 프랑스 대중문화에서 가장 유명한 연인이었던 세르주 갱스부르와 제인 버킨의 이야기를 엮은 <두 개의 나> 역시 그렇게 읽는 것을 추천한다. 특히 세르주 갱스부르가 브리지트 바르도와 폭풍 같은 사랑에 빠져 작곡한 에로틱한 노래 <사랑해...아니, 난>(Je t’aime...Moi non plus)이 흘러나올 때 그 곡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읽는 게 너무 흥미진진해 가십의 짜릿함이 느껴졌다. 브리지트 바르도와 세르주 갱스부르가 녹음실 안에서 밀어를 나누며 환상적인 곡을 완성했지만 남녀의 신음이 4분35초 동안 들려오는 이 곡은 발표될 수 없었다. 당시 유부녀였던 바르도의 남편 군터작스가 노발대발하며 곡 발표를 막았기 때문이다. 바르도에게 버림받은 갱스부르가 그 후 만난 여성이 제인 버킨이었고, 곡은 제인 버킨의 목소리로 재녹음해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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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두 개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