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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수사팀을 이끌게 된 카트리네는 경찰을 떠난 해리 홀레에게 조언을 구했다. “살인범을 잡아.”답은 짧았다. 팀의 신뢰가 부족하다는 문제가 사건을 해결한다고 저절로 풀리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다시 같은 질문을 하자 이번에도 비슷한 답이 돌아왔다. “다 풀려.” 카트리네는 질문을 바꾼다. “다요? 그럼 선배한테는 정확히 어떤 게 풀렸는데요? 순전히 사적인 면에서는요?” 해리의 답은, “아무것도. 하지만 방금 자네가 리더십에 관해 물었잖아”. 이 짧은 문답은 <목마름>의 주인공 해리 홀레를 잘 보여준다. 경찰(이었던) 해리 홀레. 연쇄 살인범을 잡는 데는 끝내주고 오로지 그 능력으로 동료들의 신뢰를 얻었지만 사적인 부분에서는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버린 남자. 그랬던 해리 홀레가 달라졌다. 그는 이제 오랜 연인 라켈과 결혼해 안정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다. 경찰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순조롭다. 그런데 오슬로에서 목에 이상한 상처를 입고 죽은 사람들이
씨네21 추천도서 <목마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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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두기와 함께하는 명절은 한국 사회가 맞이한 초유의 경험이다.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인 이들에게 독서를 권한다.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혼자 시간을 보내는 일이, 나 자신을 위하고 인류를 위하는 멋진 기회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자.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9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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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성 캐릭터가 주체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모든 영화의 성평등 지수가 높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야기에서 여러 삶을 다루다 보면 이런 목표를 완벽하게 달성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런 것들이 이 시대에 영화 안에서 어떤 의미로 자리 잡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저에겐 매우 중요한 일이에요.”(배우 겸 감독 문소리)
여성영화인모임이 기획한 인터뷰집 <영화하는 여자들>은 2020년 현역으로 활동하는 여성 영화인들을 고루 인터뷰한 책이다.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로 나누어 인터뷰이를 배분해 1990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 영화산업이 숨가쁘게 성장한 시간을 중계한다. <씨네21> 독자들에게는 수많은 인터뷰 기사들로 친숙할 얼굴을 ‘여성 영화인’이라는 키워드로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1990년대 인터뷰이로는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로 시작해, <씨네21> 전 편집장 안정숙, 영화감독 임순례, 편집감독 박곡지, 영화 마케터 채윤희, 배우 전도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영화하는 여자들>, 한국영화계의 능력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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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근화의 산문집 <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할 때>는 읽기와 삶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이다. 그의 시 <창백한 푸른 점>의 “날 좀 사랑해줄래/ 드문드문 어두운 것도 같지만/ 크게 웃었다가 긴 침묵에 쌓이는 사람들과 함께/ 내가 먼저 아침을 맞이할게/ 널 위해 긴 문장을 썼다가 지웠지만/ 지구의 아들딸들을 위해/ 오늘은 시금치를 삶을게” 같은 언어의 살뜰함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혹은 아직 이근화를 모르는 이들에게도 유혹적인 책이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쓴 글을 묶었다는데, 여러 작가들의 글을 읽어가는 구성이다. 필연적으로, 책과 읽는 행위에 대한 이근화식 주석이 된다. 이근화가 한나 아렌트를 인용하는 방식은 이렇다. “정치적 인간으로서 이해관계가 연관된 세계에 대해 논할 때 ‘협상 테이블에 사랑을 가져온다면, 직설적으로 말해 나는 그런 행동은 치명적인 짓이라고 생각’한다고 말이다.” 시인이 생각하는 비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일종의 자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할 때>, 삶을 구제하는 대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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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 <치즈와 구더기>를 잇는 <밤의 역사>는 미시사 저작물을 꾸준히 발표해온 카를로 긴츠부르그의 책으로, 유럽 전 지역에 퍼져 있던 민간신앙의 양상을 분석하고 그 민속적 기원을 들여다본다. 카를로 긴츠부르그의 다른 책들처럼 오랫동안 붙들고 끝나지 않기를 바랄 정도로 재미있는 <밤의 역사>는 코로나19의 세계에서 읽으며 더 눈길을 끄는 부분들이 있다. 재앙의 시대, 14세기 나병 환자와 관련한 음모론이 나도는 풍경을 보면 특히 그렇다. 나병, 흑사병은 타자를 배척하는 음모론으로 쉽게 진행되곤 했는데, 십자가 모독, 식인 행위, 동물로의 변신, 난교 파티, 주술 비행을 비한 ‘악마의 잔치’라는 음모 이미지는 마녀사냥으로 이어지는 발판이 된다. <밤의 역사>에서는 인간이 공동체에 포함시키지 않은 인간을 벌해 공동체를 보호하겠다는 신념에 가득 찬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 결과 끔찍하게 죽음을 맞는 무수한 여자들
씨네21 추천도서 <밤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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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에 관련된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차례로 전달하며 마지막 순간에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게 하는 방법은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에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영화로도 만들어지며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소설 <고백>은 여러 목소리를 통해 사건의 진실을 쌓아가며 마지막 반전까지 독자들을 집중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조각들>은 한 소녀의 죽음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다. 시골 마을에 사는 여자애가 대량의 도넛에 둘러싸여 자살했다는 이야기가 퍼진다. 누구는 죽은 사람이 모델 같은 미소녀라고 하고, 누구는 학교에서 제일 뚱뚱한 학생이라고 한다. 미용외과 다치바나 뷰티클리닉의 원장 히사노는 비만 상담을 위해 병원을 찾아 오랜만에 만나는 옛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다. 외모에 대한 스트레스로 시작된 이야기는 초등학교 동창의 딸이 죽었다는 화제로 이어진다. 히사노는 옛 동창의 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주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다.
사람들의 말은 제각각이고, 저마다 가
씨네21 추천도서 <조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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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년에 한번 있는 가족 모임에 참석한 것만으로도 성공한 이민자들인 거예요. 오지 못한 가족들에 비하면 말이죠. 살던 나라에서 다시 청소부, 택시기사, 가정부로 돌아간다 해도 할머니의 식탁에 앉아 있는 이 순간에는 성공한 인생입니다. 자화자찬이 끝나자 비밀들이 불려나왔습니다.” <레오니>의 화자는 칠레 산티아고에서 필리핀 마닐라까지 서른 일곱 시간을 비행해 떠나는 레오니다. 오년에 한번, 증조할머니가 소집하는 가족 모임을 위해 부모님과 쌍둥이인 뻬드로까지 네 가족이 여행을 떠났다. 어딘가의 이주노동자로 살아가는 친척들은 모처럼 집을 찾아 으스대기도 하고, 근심을 늘어놓기도 한다. 소설을 읽다 보면 레오니는 이미 성인이 된 지 오래고, 이날 밤의 기억을 수없이 되새김질하며 살아왔음을 알게 된다. <에디 혹은 애슐리>는 기상이변으로 시작해 노화도, 죽음도, 성장도 없는 세계에 인류가 갑자기 들어선 뒤의 상황을 그린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실험이 가능해지고 젠더는
씨네21 추천도서 <에디 혹은 애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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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졸업한 지 까마득한 나이지만, 여전히 제도권 교육을 뛰쳐나간 삶이 어떤지 잘 모른다. 아마도 그 삶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 학교는 단순한 교육을 넘어서서 개인의 정체성에서 큰 몫을 담당한다. 뒤집어보면, 학교를 떠난다는 것 또한 큰 정체성이 된다는 말이리라. 이길보라 감독의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는 말그대로 학교를 떠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배움의 궤적을 몸으로 그려나가며 제 삶을 만드는 용기 있는 여정을 담았다. 어려서부터 ‘꼬맹이 통역사’로 청각장애인 부모님의 의사소통을 담당하여 일찍부터 사회생활을 겪은 이길보라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는 꿈을 품고 학교를 나가 동남아시아로 배낭여행을 떠난다. 이후 작업자로서의 경험을 계속 쌓아가는 한편 한국의 예술대학을 다녔지만 새롭고 자유로운 사유,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경험은 네덜란드 필름아카데미에서 얻게 된다. 형편이 넉넉지 않은 가운데 예술을 꿈꾸며 고민하는 독자라면 이길보라 감
씨네21 추천도서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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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최선을 다해 최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힘이 난다. 젊은 시절 작품을 보관할 공간이 여의치 않자 포장도 풀지 않은 작품 13점을 그러모아 “창고 피스”로 명명하여 정체성을 드러낸 미술가 양혜규는 다음 세대에 관심을 받을 작가는 얼마 되지 않는다고, 작가의 화두가 미래에도 유효할지 생명력을 언제나 따져봐야 한다고 냉철하게 말한다. 고통스럽고 불편하면서도 도전적인 여성 캐릭터를 평생 연기해온 배우 이자벨 위페르는 자신이 연기한 역할에서 “작은 불꽃을 봤고, 이를 이야기의 중심에 세우고 싶었”다고 말한다.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은 예술가 19인의 인터뷰를 담았다. 분량은 만만치 않으나 예술문화계의 슈퍼스타들이 포진해 있고 질문과 대답의 흐름이 자연스러워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심슨 가족>에서 골프공으로 건물 하나를 찌그러뜨린 역할로 등장한 바 있는 유명 해체주의 건축가 프랭크 게리. “언젠가 영화 투자를 받지 못하면 사진
씨네21 추천도서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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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장마뿐인 여름의 한복판을 지나는 중이다. 2020년의 남은 시간을 차분하게 책과 함께 정리하고 싶은 당신을 위해 책 목록을 꾸렸다.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는 학교를 떠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배움의 궤적을 그리는 이길보라 감독의 에세이.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은 예술가 19인의 인터뷰를 담은 책으로, 예술가의 작품 이면의 생각을 읽게 해준다. 미나토 가나에의 <조각들>은 외모 콤플렉스와 그에 따른 편견이 망가뜨리는 것들을 바라보고, 김성중의 단편집 <에디 혹은 애슐리>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아주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사라지는 여러 채널을 관람한 기분이 들게 한다. 마지막으로 미시사 연구 방법의 개척자로 꼽히는 역사학계의 거장 카를로 긴츠부르그의 <밤의 역사>는 묵직한 즐거움을 안긴다.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8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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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은 종종 근심 어린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건넨다. “너도 이제 슬슬 제대로 된 일을 시작해야지.” 영화에 대해 쓰고 말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지도 이제 10년이 넘어가는데 어르신들은 여전히 내가 하는 일의 쓸모를 궁금해한다. 매번 되돌아오는 질문을 마주하며 시간이 갈수록 곱씹게 된다. 영화비평을 ‘제대로’ 한다는 건 어떤 걸까.
이건 정답을 찾는 작업이 아니라는 걸 진즉에 간파한 사람이 있다. 1980년 롤랑 바르트는 <밝은 방>을 통해 체험으로서의 영화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밝은 방>은 영화의 형식과 이론 바깥에서 영화를 사유한다. 당연히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영화와 자신의 관계에 대한 감상들이 주를 이뤘다. 장 루이 셰페르의 <영화를 보러 다니는 평범한 남자>는 그 기획의 두 번째 결과물이자 마지막 책이다(롤랑 바르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이 프로젝트는 중단되었다). 1970년대 프랑스영화계는 비평가들의 각축장이었다.
[BOOK] <영화를 보러 다니는 평범한 남자>, 평범에 저항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