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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민정은 <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들은 헤어지는 중입니다>라는 알쏭달쏭 묘한 웃음을 자아내는 제목의 네 번째 시집으로 돌아왔다. 시마다 넘치는 현란한 말장난이 압도적이다. 삽 사는 얘기는 삽질로 넘어가고 엄살은 몸살과 나란히, 미국에서 온 시인 제이크가 감삼역은 감을 산다는 뜻이냐 묻자 이어지는 말은 달 감 단 감. 마는 “잘린 마 아니고 흰색 깐 마 아니고 안 잘린 마 맞고 흙색 마 맞는 다섯개의 장마”가 되니 그야말로 이런 시를 “마, 들어는 봤나 마”라고 묻는 것 같다.
기쁨 혹은 쓸쓸함과 고단함이 깃든 일상이 언어유희를 통해 혼잣말하듯, 대화하듯 술술 풀린다. 동료들이 나눠준 감자와 양파는 너무 반갑고 바지락 까서 파는 단골 할머니 가게가 문을 닫으니 줄자가 돌돌 풀리듯 과거의 진득한 상념들이 술술 풀려나 “삶에 더 삶아져봐야” 하나 생각한다. “유치원 아이”만 한 강아지를 간절히 찾는 전단지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나를 못 쓰게 하는
씨네21 추천도서 <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들은 헤어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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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이하며 갖고 싶은 마음. 단단하면서도 둔감하지 않은 마음. 간호사 이라윤의 <무너지지 말고 무뎌지지도 말고>는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경험을 담은 에세이다. 중환자실은 사경을 헤매거나 인공호흡기를 달고 진정제를 투여한 사람, 알코올중독으로 환각에 시달리는 사람 등 의식이 명료하지 못한 환자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위독한 환자들의 바이탈 사인을 확인해서 승압제며 강심제 같은 약을 쓰고 피검사를 하고 대변 기저귀를 갈아주는 한편 이들이 침대를 뛰쳐나가거나 폭력을 휘두르지 않나 주의하며 말상대가 되어주고 식사를 챙겨주니 근무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간다. 마음 급한 보호자들이 퍼붓는 질문세례를 처리하면서 혹여 민원이 들어오지는 않을까도 신경 써야한다. 그러다 위급한 상황, 예를 들어 환자에게 심정지가 닥치면 동료 간호사와 함께 다급히 흉부 압박에 기관 내삽관 준비를 하고 코드블루 방송을 내보내며 주치의에게 전화로 보고를 하는데, 이 처치를 거의 1분 내에 끝내야 한다.
씨네21 추천도서 <무너지지 말고 무뎌지지도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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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사나이가 크리스마스를 위한 음악을 작곡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은 아직 여름이 한창일 때였다. 양 사나이도, 일을 맡기러 온 사내도 여름용 양털 옷 속에서 땀을 흠뻑 흘렸다. 한더위에 양 사나이로 살아가기란 매우 괴로운 노릇이다.” 에어컨을 살 형편도 되지 않는 양 사나이. 그에게 의뢰가 하나 들어온다. 크리스마스를 위해 성(聖) 양 어르신님을 추모하는 음악을 작곡해달라고. 심지어 양 어르신님이 돌아가신 지 2500년이 되는 해라는 것이다. 크리스마스까지는 넉달 반이 남았다. 양 사나이는 자신만만하게 의뢰에 응했다. 가난한 작곡가 양 사나이는 낮에 근처 도넛 가게에서 일하느라 바빴다. 밤에 피아노를 두드려보려고 하면 일층에 사는 하숙집 주인아주머니가 쫓아와 문을 콩콩콩 두들겼다. 그리고 어느덧 크리스마스가 나흘 뒤로 다가왔다. 약속한 음악은 한 소절도 만들지 못했다. 양 사나이를 도와주겠다고 나선 사람은 양 박사였다. 그는 양 사나이가 작곡을 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고 있다고 한다
씨네21 추천도서 <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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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이 끝나면 죽음이 온다. 곡이 다시 시작되면 다시 살아나는가. 그저 곡이 끝날 때마다 한번의 죽음이 온다. 곡이 연주되는 동안에는 살아 있다. 복잡하기 짝이 없어 보이지만, 침묵을 견디기 어려운 사람들이 시간을 분절해 감각하는 방법으로 음악을 택했을 때 벌어지는 일이다. 천희란의 소설 <자동 피아노>는 20여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챕터는 숫자로만 명명되어 있지만, 챕터마다 피아노곡이 한곡식 매칭되었다. 여기에는 줄거리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으며, 다만 곡이 하나 시작되면 생각이 데굴데굴 굴러간다. 생각이 어디로 굴러가는지를, 이야기를 적어내려가는 쪽은 완전히 통제하고 있는 듯 보이지 않는다. 다만 곡이 끝나면 (아마도) 한번 죽는 것이다. “여기에서 내가 죽일 수 있는 대상이라고는 나밖에 없으니까.” “휴식이란 겨우, 불안한 나의 뒷모습에 액자를 씌우고 잠시 바라보는 일.”
챕터별로 매칭된 피아노곡을 듣는 것은 <자동 피아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씨네21 추천도서 <자동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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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겨울, 아직은 기나긴 밤. 설 연휴 기간 중 당신에게 기나긴 겨울밤을 채워줄 이야기를 선물한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는 묵직하면서도 의미 있는 선택이 될 테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되살려주리라. 제목부터 인상적인 김민정 시인의 <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들은 헤어지는 중입니다>, 그리고 천희란의 소설 <자동 피아노>는 당신에게 불안이 될까 위안이 될까 궁금하다. 중 환자실 간호사 이라윤의 <무너지지 말고 무뎌지지도 말고>는 어쩌면 당신의 고민에 함께하리라.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1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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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슨 커리의 <리추얼>이라는 책이 있다. 소설가, 시인, 화가, 작곡가, 철학자들의 창작 관련 생활습관을 다루었다. 메이슨 커리는 <리추얼>의 후속작으로 <예술하는 습관>을 발표했는데, 그 이유가 흥미롭다. <리추얼>에서 소개했던 161명 가운데 여성은 단 27명뿐이었다고. 커리가 이번에는 여성 예술가들의 창작 리추얼을 다루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도리스 레싱이 아이를 키우며 글을 쓴 비결은 아이를 키우며 글을 쓰는 내 친구와 비슷해 보인다. 레싱은 아이가 없었다면 1950년대 소호의 유혹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으리라고 했다. 술을 마시며 예술을 논하는 대신 레싱은 아들을 돌보면서 글 쓸 시간을 낼 수 있게 삶을 조율했다. 조율이라면 쉽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아이가 일어나는 새벽 5시에 시작하는 일과다. 진짜 자신의 하루가 시작하려면 아이가 학교에 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하루 종일 레싱은 일하다 말다를 반복한다. <킨>을 쓴 옥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예술하는 습관>, 창작의 비결을 물으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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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이러고 있을까?” 십몇년 전에 야구장에서 친구가 물었다. 그러면 좋겠다고 답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회사 동료들과는 30년 뒤에 만나도 영화 이야기를 나누리라. 나는, 바라기는, 시력이 허용하는 한 좋은 책에 대해 세상에 말하며 살고 싶다. “이제 철들어야지”라는 말을 들을 법한 일만 바라고 있다. 쓰루타니 가오리의 <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는 나이 차가 많이 나는, 같은 취미를 공유하게 된 두 사람의 일을 그린다. 75살 이치노이 유키 할머니는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그림체에 홀려 집어든 BL만화에 홀딱 빠진다. 할머니의 BL 생활에 도움을 주는 사람은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고등학생 사야마 우라라. 이 두 사람의 우정을 그린 <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는 2019년 ‘이 만화가 대단하다!’ 여성 만화 부문 1위를 했다.
BL이라는 말이 낯선 분들을 위해 부연하면 보이스 러브(Boys Love)의 줄임말로, 남성간의 사랑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3>, 좋아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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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잘하는 방법은? 사실과 허구를 섞을 것. 흥미진진한 ‘썰’ 속에서 아는 사실을 발견하면 홀딱 넘어가기 쉽다. ‘팩션’이라 불리는 장르의 힘이기도 하고. 그런 면에서 흥미진진한 두권의 책이 나란히 출간되었다.
마가파이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홍콩>은 1936년부터 7년여 동안의 홍콩을 배경으로 한 소설. 홍콩 완차이에서 나고 자란 작가가 51살에 쓴 첫 장편인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홍콩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식민과 전쟁의 역사, 흑사회 뒷이야기를 남자와 남자 사이의 섹스와 상승욕구를 중심으로 그려냈다. “남의 고통과 쾌락 사이에서 살 길”을 찾는 사람들, “돈을 잃는 고통은 또 다른 이름의 쾌락”임을 발견한 사람들, 매춘과 마약, 쌀이 함께 밀거래되던 시기의 이야기. 어디에서나 그렇듯 그 시기의 홍콩에서도 여자들의 비명은 남자들의 돈이 되었다. 지금의 홍콩을 읽을 수 있는 단초를 제시함은 물론이다. 2017년 타이베이국제도서전 대상과 홍콩도서상을 수상했으며,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홍콩> <모나미 153 연대기>, 진짜 같은 가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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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시네필이자 영화비평가, 앙드레 바쟁의 작업을 그의 삶과 연관지어 풀어낸 더들리 앤드루의 1978년작 <앙드레 바쟁>의 2013년 개정판이 번역되었다. 새로운 영화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어떻게 누벨바그의 등장과 연결되는지를 알 수 있는 책인 동시에, 나치 점령기에 쓴 글 등 앙드레 바쟁 개인의 투쟁을 살필 수 있게 해준다. 두번의 세계대전의 연장선에서 정치적 해석과 비평이 주류이던 시기에 미학적 가치를 앞세우는 비평을 통해 새로운 영화작가(비평가이면서 영화작가였던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자크 리베트)들의 탄생을 이끌어낸 앙드레 바쟁의 공로를 담았다. 그가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때가 1958년이니, 이 책이 다루는 논의는 반세기도 더 전의 것들이다. 비평이 창작에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시네마란 무엇인가’라는 논의가 새삼스럽게 다시 극장가에 도착한 시기에 읽어볼 만한 저작이다. 이 책을 쓴 더들리 앤드루는 미국 영화학자로, 그는 개정판을 출간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앙드레 바쟁> <환멸의 밤과 인간의 새벽>, 영화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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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K.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가 처음 나왔을 때, 점점 책을 읽지 않는 아동, 청소년이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뉴스가 전세계를 뒤덮었다. 10대를 주 독자층으로 하는 판타지 시리즈가 다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해리 포터> 신간은 출간일이 정해지면 뉴스로 보도되었다.
그 <해리 포터> 시리즈가 끝났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다. 일러스트 에디션으로 <해리 포터> 시리즈 전권이 다시 출간되고 있는데, 일러스트를 맡은 짐 케이는 영국에서 가장 뛰어난 그림책에 수여하는 ‘케이트 그리너웨이 메달’의 수상자. 케이는 누구에게나 이름만으로 떠올릴 수 있는 영화 속 배역들의 이미지와 일러스트 에디션의 차별화를 위해 자신이 머릿속으로 떠올린 세 주인공 해리, 론, 헤르미온느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어린이들을 찾았다고 한다. 판타지의 무대가 되는 주요 건물들 역시 현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결과적으로는 책을 읽으며 크게 삽입된 일러스트를 함께
씨네21 추천도서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일러스트 에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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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최제훈이 첫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 이후 9년 만에 단편소설 여덟편을 한데 묶었다. 그사이 장편소설 <나비잠> <천사의 사슬> 등을 발표해왔지만 최제훈의 <위험한 비유>는 <퀴르발 남작의 성>으로 주목받은 그의 새로운 단편집이라 눈길을 끌었다. <철수와 영희와 바다> <2054년, 교통사고> <마네킹> <미루의 초상화> <유령들> <마계 터널> <현장부재증명> 등 총 8편의 이야기가 실렸다.
<철수와 영희와 바다>. 이름 때문인지, 그 이름에도 불구하고인지는 알 수 없으나 철수와 영희는 연인 사이다. 둘은 바다에 있다. 바닷속 해조류를 보며 매생이굴국밥을 떠올리는 보통의 상상력을 가진 두 사람은 함께 있으나 생각은 제각각이다. 영희는 아니나 다를까 제대로 다이어트를 하지 못한 데 대한 생각을 하고 있으며, ‘철수와 헤어지지 않는
씨네21 추천도서 <위험한 비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