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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독자에게] 2005년에 기억할 영화들, 이름들

2년쯤 지난 일이다. 송강호씨와 술을 마실 기회가 있었다. 술을 꽤 마신 뒤 <씨네21>의 연말 베스트 영화 선정이 도마에 올랐다. 송강호씨가 내게 물었다. 1년 전 베스트 5 목록에 <복수는 나의 것>이 빠진 이유가 뭐냐는 거였다. <복수는 나의 것> 개봉 때 특집기사를 썼고 꽤 좋게 본 걸로 알고 있는데 5위 안에 없는 건 기사를 거짓으로 썼다는 거냐고 추궁했다. 뜨끔했다. 나의 순위 선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 때문은 아니었다. 연말 특집기사 도표에 작은 글씨로 실리는 순위인데도 꼼꼼히 보고 있었구나. 혹시 내가 쓴 결과만 유심히 본 것일까 싶어 물어보니 <복수는 나의 것>에 관해서는 누가 몇위에 썼는지도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작품에 대한 송강호 특유의 애정과 집념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아무튼 대답을 해야겠는데 말할 틈이 안 생겼다. 술자리의 취기에 휩쓸려 화제가 이리저리 옮겨다녔다. 아,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말이죠, <복수는 나의 것>은 6위여서… 라는 말을 끝내 못하고 말았다.

<씨네21>은 해마다 송년호를 올해의 영화 베스트 5로 장식했다. 한해 나오는 한국영화 60여편 가운데 오직 5편만을 꼽다보면 가끔은 가혹한 처사처럼 느껴진다. 5위 밖에 꼭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영화들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 베스트 10을 선정하는 편이 낫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꾸로 10편을 채우자면 영화목록이 조금 방만해진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식이면 <씨네21>의 개성을 갖기 힘든 것이다. 그래서 아쉬운 대로 베스트 5로 한정하곤 하는데 올해는 특히 아깝게 순위 밖으로 밀려난 영화들이 많다. <극장전> <그때 그사람들> <사랑니> <용서받지 못한 자> <혈의 누>가 <씨네21> 필진이 뽑은 베스트 5인데 올해의 각종 영화상 수상 결과와 비교해보면 뚜렷한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5위권 밖에 포진한 영화들은 <친절한 금자씨> <> <여자, 정혜> <연애의 목적> <형사 Duelist> <말아톤> <웰컴 투 동막골> 등이다. 올해의 결과만 놓고보면 베스트 10을 뽑을걸 하는 생각이 든다. 2005년은 괜찮은 작품이 많았던 해였나보다.

올해의 영화인도 주목받은 인물들을 소개하고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다. 감독 순위는 홍상수와 임상수 두 감독을 지목한 사람들이 많았다. <극장전>과 <그때 그사람들>이 올해의 영화 1, 2위를 차지했으니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시나리오와 촬영 분야는 치열했다. <혈의 누>의 이원재 작가와 <사랑니>의 정지우 감독 가운데 아슬아슬하게 이원재 작가가 선정됐고 촬영에선 <그때 그사람들>의 김우형, <형사…>의 황기석, <친절한 금자씨>의 정정훈이 경합을 벌였다. 올해 특이했던 현상 하나는 제작자 부문에 아무도 꼽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던 점이다. 모험적인 기획을 성공시킨 사례가 드물다는 방증처럼 보인다. 반면 배우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입을 모아 특정 배우를 지목한 경우가 많다. 남자주연으로 황정민, 남자신인으로 하정우, 여자신인으로 김지수가 압도적인 표차로 선정됐다. 다만 여자주연 부문만은 어느 해보다 치열했다. 전도연, 이영애, 김정은, 강혜정 등 4명의 배우가 우열을 가리기 힘든 경쟁을 벌인 것이다. 언젠가 2005년을 여배우 전성시대라고 선포하고 싶다고 쓴 적 있지만 올해 설문 결과 역시 여배우들이 주목받은 한해였다는 걸 뒷받침하고 있다.

연말 베스트를 집계하고나니 정말 2005년이 지나갔다는 게 실감난다. 어느덧 새해 인사를 나눠야 할 시간이다. 독자 여러분, 새해 좋은 일 많이 생기길 바랍니다.

P.S. 에∼ 설날은 월요일인 1월30일이 아니라 일요일인 1월29일이랍니다. 지난주 독자선물로 마련한 달력에 실수가 있었네요(이마에 땀 한 방울이 흘러내리는 거 보이시나요?). 설날이 월요일이었으면 좋겠다는 <씨네21> 제작진의 포스가 너무 강했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