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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욕망 3부작 중 마지막 영화
장영엽 2018-03-21

그 해 여름, 사로잡히다

이탈리아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의 신작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3월 22일 개봉한다. 90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색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영화가 원작을 넘어서는 보기 드문 사례이자, 당대 이탈리안 시네마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의 존재를 전세계 관객에게 입증하는 영화가 될 것이다. <아이 엠 러브> <비거 스플래쉬>를 잇는 ‘욕망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이 영화가 다루고자 하는 욕망에 대해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찬탈자가 왔네.” 1983년 이탈리아 근교의 어느 여름 별장, 소년이 나지막이 속삭인다. 그의 이름은 엘리오(티모시 샬라메). 고고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엘리오의 아버지 펄먼 교수(마이클 스털버그)는 매년 여름 한명의 젊은 학자를 별장으로 초대해 그들의 책 출간 준비를 돕는다. 그해 여름 손님은 24살의 미국 청년 올리버(아미 해머). 엘리오는 늘 그랬듯 자신의 방을 올리버에게 내어준다. 하지만 그는 아직 알지 못한다. 올리버가 찬탈할 대상은 엘리오의 방만이 아니라는 점을. 그해 여름, 불현듯 나타난 손님 올리버는 17살 소년 엘리오의 몸과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는다.

이탈리아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의 영화에서 이방인은 무기력한 주인공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거나 긴장감을 자아내는 존재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들의 역할이 중요한 까닭은 등장인물이 미처 알지 못했던, 혹은 애써 억누르고 있었던 자신의 욕망과 마주하도록 돕기 때문이다. 구아다니노의 신작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엘리오에게 올리버 또한 그런 존재다. 올리버를 만나기 이전까지, 엘리오는 이탈리아 부르주아 가정의 유복한 환경 속에서 안온하게 자라났다. 문학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별장을 찾는 손님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으며 식탁 위에서 이탈리아어, 영어, 프랑스어가 유창하게 오가는 풍경. 올리버를 만난 이후 엘리오는 더이상 이 풍경 속에만 머물 수 없다. 자신의 마음을 감추고 올리버의 마음을 탐색하기 위해, 엘리오는 평화로운 여름 별장을 떠나 시내로, 마을 근교로, 고대 유적지로 발걸음을 옮긴다. 익숙한 장소에서 멀어질수록 엘리오의 마음은 열리고 올리버에 대한 감정은 깊어져만 간다. 하지만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의 격랑을 경험하는 엘리오는 올리버가 은근하게 보내는 애정의 신호를 감지하지 못한다. 올리버의 사소한 행동과 말투 하나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소년이 할 수 있는 건,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노트에 휘갈기는 것이다.

원작에서 달라진 시점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루카 구아다니노의 ‘욕망 3부작’ 중 마지막 영화다. <아이 엠 러브>와 <비거 스플래쉬>, 그리고 이 작품을 경유해 “인간의 깨어난 욕망”을 탐구해보고 싶었다는 구아다니노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사랑이라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을 탐구한다. 등장인물간의 욕망과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던 두편의 전작과 달리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엘리오와 올리버라는 두 남자의 관계, 그중에서도 올리버에 대한 엘리오의 심리묘사에 초점을 둔다. <아이 엠 러브>와 <비거 스플래쉬>의 경우 현상을 거스르는 등장인물의 욕망은 종종 누군가의 희생이라는 비극을 유발했지만 이 영화엔 그와 같은 드라마틱한 사건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전의 두 영화가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사건으로 혼란을 야기한 다음, 등장인물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좇는 스릴러의 문법을 구사했다면, 엘리오 이외에 모든 등장인물들(관객도 마찬가지다)이 올리버에 대한 그의 감정을 알고 있는 듯 보이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중요한 건 서스펜스다. 이 영화에서 가장 궁금한 건 두 사람의 사랑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인가이며 대부분의 장면은 가까워질 듯 가까워지지 않는, 이루어질 듯 이루어지지 않는 엘리오와 올리버의 아슬아슬한 관계를 보여주는 데 일조하고 있다.

이러한 서스펜스를 살리기 위한 루카 구아다니노의 선택은 3인칭 시점을 취하는 것이었다. 안드레 애치먼의 소설 <그해, 여름 손님>을 원작으로 하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가장 성공적인 각색으로 생각되는 지점은 시점의 전환에 있다. 애치먼의 소설은 어른이 된 엘리오가 17살 무렵의 여름을 회상하는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된다. 지난날에 대해 엘리오가 풀어놓는 애상적인 소회와 올리버에 대한 절절한 마음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구체적이기에 읽는 이의 상상을 제한한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루카 구아다니노 이전에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유력한 연출자로 거론되었으나 결국 각본가로 합류한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은 1인칭 내레이션을 배제하고 관찰자의 시점으로 사랑에 빠진 두 남자를 조명해 행간의 의미를 넓힌다. 특히 그들의 욕망을 은밀하고도 우아한 방식으로 드러내는 제임스 아이보리의 대사는 종종 수수께끼 퍼즐을 푸는 듯한 묘미를 선사한다. 엘리오는 “마음을 드러내느니 차라리 죽고 말겠다”는 프랑스 로맨스 소설의 한 구절을 인용해 우회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알리고, 올리버는 ‘숨김’에 대한 하이데거의 말을 엘리오에게 전함으로써 자신의 감춰진 속마음을 암시한다. 이처럼 뉘앙스와 숨겨진 의미로 가득한 제임스 아이보리의 각본은 제90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색상을 수상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오랫동안 잊혀진 이름이었던 제임스 아이보리는 그 옛날 자신이 만들었던 <전망좋은 방>과 <하워즈 엔드>를 떠올리게 하는, 인간 군상에 대한 예리하면서도 위트 있는 각본을 들고 다시 한번 할리우드를 놀라게 했다. 그러므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제임스 아이보리의 화려한 재기를 알리는 작품이라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부드러운 공간감

원작과 차별화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지점은 공간이다. 루카 구아다니노는 애치먼의 소설 속 배경인 이탈리아 해안가 마을 리구리아 대신 자신이 살고 있는 이탈리아 북부 지방 크레마를 촬영지로 정했다. “이탈리아 북부 지역의 자연은 거의 평야라고 할 만큼 평평한 대지와 나무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강은 굉장히 부드럽고 섬세하다. 거친 면이 단 하나도 없다. 꼭 담요처럼 부드러운데 나는 이 영화가 그런 부드러운 느낌이길 바랐다”는 것이 구아다니노의 의도였다. 그의 말대로 영화 속 크레마의 자연은 유럽 시골 마을의 풍요로움과 여유, 여름이라는 계절 특유의 나른함을 안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크레마의 끝없는 평원을 달리는 엘리오와 올리버의 그림 같은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정서적 만족감이 충만한 영화다.

현존하는 유럽 감독 중 풍경과 사람을 가장 관능적으로 담아낼 줄 아는 루카 구아다니노의 감각은 이 영화에 촬영감독으로 합류한 사욤브 묵딥롬과의 협업으로 극대화된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엉클 분미>를 촬영한 묵딥롬은 등장인물과 자연에 온전히 포커스를 맞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도구로 “사람의 눈과 가장 흡사하다는 35mm 렌즈”를 선택했다. 물 흐르듯 유려한 동선과 두 남자의 심리를 반영한 듯한 묵딥롬의 아웃포커싱은 제임스 아이보리가 비워놓은 대사의 행간을 채우는 데 일조한다. 특히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묵딥롬의 탁월한 조명이 인상적인 영화다. 그는 엘리오와 올리버가 마주하는 순간에 언제나 빛을 비춘다. 마침내 두 사람이 이어지는 순간, 달빛에 비친 서로를 바라보는 엘리오와 올리버의 실루엣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극중 엘리오가 올리버의 질투를 유발하기 위해 여자친구 마르치아(에스더 가렐)를 만나는 장소는 거의 대부분 사람의 형상조차 잘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둡다는 점과 대조적이다.

로맨틱한 사랑의 밀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라는 제목처럼, 무엇을 어떻게 부를 것인지는 이 영화에서 중요한 문제다. 아니 그보다도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누구냐가 이 영화에서는 더 중요해 보인다. 영화의 초반부, 역사학자인 엘리오의 아버지 펄먼 교수와 올리버는 ‘살구’라는 단어의 기원에 대해 격렬한 토론을 벌이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살구’라는 단어가 그리스와 비잔틴, 아랍 문화권의 영향을 받으며 지금의 모습으로 변형되어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살구라는 ‘존재’는 같지만 그 존재가 언제, 어떤 환경에서 누구에게 불리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 에피소드로 미루어볼 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던 하이데거의 말에 대한 로맨틱한 구현처럼 보인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건 존재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인정한다는 것이고, 대상을 자신의 이름으로 부르고자 하는 것은 가장 강력한 합일의 욕망이다.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줘. 내 이름으로 너를 부를게”라는 올리버의 말은 그런 맥락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마음이 통하는 것을 넘어 상대방 그 자신이 되고 싶은 욕망.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란 문장은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도 간절한 사랑의 주문이다.

“사업적인 측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영화를 만드는 즐거움 하나만을 위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만들었다는 루카 구아다니노는 예기치 못하게 이 영화로 가장 큰 흥행 수익을 벌어들였다. 나이와 성정체성을 뛰어넘은 두 남자의 사랑 이야기가 전세계 관객의 마음을 뒤흔들 만큼 보편적이었고, 특히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로 노미네이트된 티모시 샬라메와 아미 해머의 호연이 깊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대체적이다. 하지만 현실과 완전히 괴리되어 있는 듯한 이 영화의 안온함에 불편함을 토로하는 시선도 있다. 일례로 미국 평론가 조너선 롬니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을 남겼다. “나에게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미학적인 완벽함이 감정의 축적을 방해한다는 점이다. 이 영화에서 묘사되는 세계는 너무나 빛나고 완벽해서, 이건 인생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영화처럼 보인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스틸링 뷰티>처럼 말이다. 구아다니노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건 완벽하게 황홀한 세계다. 하지만 인물들의 아름다움과 지적 완벽함이 너무 유려한 나머지 나는 이들이 실제로 성기를 가지고 있기는 한 건지 믿지 못하겠다. 혹은 그들이 우리처럼 땀을 흘리거나 햇볕에 그을리기는 하는지도.” 정치와 사회의 관계망 속에서 같은 성을 사랑하는 이들이 겪을 법할 모든 폭력과 차별을 뒤로한 채 유토피아에서 사랑을 나누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부르주아들을 지적하는 조너선 롬니의 말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인물들에 대한 루카 구아다니노의 애정은 대단한 것 같다. 그는 얼마 전 엘리오와 올리버의 후일담을 다룬 속편 제작의 계획을 밝혔다. “이들에게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 너무나 궁금하다”는 말과 함께. 어쩌면 엘리오와 올리버의 성장담을 다룬 자기만의 <보이후드>를 루카 구아다니노는 꿈꾸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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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소니픽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