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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하나. 아시아영화에 관한 최근 소식을 확인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일까. <씨네21> 홈페이지에 접속하라, 고 말하고 싶지만 정답이 아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알아보라는 조언은 꽤 그럴듯한데 특효를 발휘하진 못한다. 무엇이든 물어보면 답을 일러준다는 한 포털 사이트의 지식 검색, 무용지물이다. 알 만한 사람 다 알지만, 지름길은 부산국제영화제 홈페이지다. 뉴스를 놓치는 경우, 기자들은 ‘물먹었다’고 한다. 솔직히 아시아영화에 관한 뉴스 전달에 있어 <씨네21>은 여러 번 물먹었다. 부산국제영화제 홈페이지에 개설되어 있는 ‘핫 영화 소식’ 때문이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나 그렇다고 분노할 필요까진 없다. ‘핫 영화 소식’에는 현지언론보다 발빠른 짭짤한 정보들이 매일 오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대만 뉴웨이브의 산실이었던 중앙전영이 재정난으로 언론그룹인 중국 시보그룹에 매각됐다는 소식이 대표적이다. 아시아 영화계 현황에 관한 기사를 인터넷에서 한번 찾아보라. ‘
아시아영화 전문가, 김지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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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일드>는 벨기에의 형제 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 장 뤽 다르덴의 여섯 번째 장편 극영화다. 2005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그들의 영화 <로제타> 이후 두 번째 수상이다. 다르덴 형제는 같은 동심원 안을 서성거리며 세계를 관찰하고 또 완성하는 연작형의 감독이다. 국내에서 개봉했던 <아들>을 비롯하여, <로제타> <약속>은 그들의 관심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를 보여준다. 거기에는 ‘직전’의 인간들이 있다. 사건이 있는데, 그 사건의 전모가 있기보다 어쩌다보니 이미 휘말려들어가 있는 절박한 상황의 인간이 있고, 그 인간이 앞으로 나아갈 예측불가능한 상황의 직전만이 있다. 그 순간 그들을 구제할 수는 없을까 하는 것이 이들의 관심이다. 단, 신의 손에 기대지 않고, 사회의 철저한 구호에 묶이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선까지만 그렇게 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하늘이 열릴 만한 신의 은총도, 얼음장같이 냉철한 사유의
시선의 팽팽함으로 생기는 긴장, <더 차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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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비에스 주말드라마 <백만장자와 결혼하기>가 22일 16부작으로 막을 내렸다. 신데렐라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 때문이든, 시청률에 대한 강박 탓이든 이야기 흐름을 자연스럽게 마무리하는 결말이기보다는 ‘용두사미’ 식의 아쉬운 뒤끝이었다.
가짜 백만장자 영훈(고수)은 가까스로 영화배우로 성공한 뒤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공무원 채용 시험에 도전한 은영(김현주)과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면서 끝났다. “세상인심이 참 훈훈한” 덕분에 “영훈씨처럼 착하게 살아야 복을 받는다”는 해피엔딩이 진부하지 않을 수 없는 법이다.
여느 드라마와 달리 아쉬움이 더욱 큰 까닭은 <백만장자와 결혼하기>가 남다른 길을 가려 했기 때문이다. 신데렐라와 재벌 2세, 출생의 비밀, 불치병 등 싸구려 드라마 공식을 차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는 힘있었다. 이런 고민으로부터 신데렐라 비틀기를 시도하겠다는 것은 드라마 소재 덕에 믿음직했다. <백만장자와 결혼하기>는 같은 이름의 리얼리티 쇼를 차
22일 막내린 SBS ‘백만장자와 결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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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금자씨>에 대한 한 가지 의문. 교도소 안에서 금자는 마녀를 죽인다. 그런데 금자는 딱히 마녀를 죽일 이유는 없다. 마녀도 금자만큼은 괴롭히지 않았다. 금자가 마녀를 죽이는 건 오히려 교도소 사람들이 마녀를 죽이고 싶어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영화는 교도소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만한 근거를 ‘섹스’로 제시한다. 마녀가 같은 재소자에게 폭압적으로 섹스를 요구하는 장면은 그 구체적인 장면이 잘 묘사되지 않거나, 폭력성이 강조되지 않는다. 반면 마녀가 재소자에게 섹스를 요구하는 장면은 꽤 긴 시간동안 자극적으로 묘사된다. 이 씬의 불쾌함으로 인해 마녀는 죽어 마땅한 존재가 된다.
이는 백선생을 묘사하는 방식에서도 마찬가지다. 백선생이 등장한 직후, 영화는 그가 아침을 먹다가 금자의 교도소 동료였던 박이정을 거의 강간하듯 섹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장면을 통해 백선생이 얼마나 악한 캐릭터인지 그대로 드러난다. 즉, <친절한 금자씨>에서 유괴와
강명석의 Shuffle! <친절한 금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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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것은 운명이 지배하고, 확실한 것은 인간의 재주로 다스린다”는 라틴 경구가 있다. 누군가 운명을 넘어서고자 한다면 불확실성을 확실성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숲에서 맥베스를 홀리던 세 마녀처럼 <무극>에서도 강가에 여신(첸홍)이 등장해서 어린 칭청(장백지)에게 슬픈 미래를 예언한다. 칭청의 운명은 부귀영화를 누리지만 “시간을 되돌리거나 죽은 사람이 살아나지 않는 한 평생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한다”고 그녀는 말한다. 불운한 칭청을 사랑하는 세 남자의 운명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들의 가장 큰 불행은 ‘마음은 털어놓지 않으면 통하지 않는다’는 평범한 연애의 상식을 망각한 점이다.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대장군, 쿤룬, 북공작은 무작정 기다리고 그녀를 가둬두거나 시키는 일만 수행할 뿐이다. 그런 몸짓을 사랑이나 의지라고 칭하기는 어렵다. 쿤룬의 빛보다 빠른 발놀림으로 뒤쫓아도 따라잡기 힘든 운명의 여신을 소극적으로 기다리기만 한다면 기적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중국 시장에 고정된 시선, <무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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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때 시골 역장을 꿈꾼다, 라고 하면 거짓말일까. 아니 그것보다는 잠깐 그들의 운명을 부러워하는 때가 있다, 가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기차엔 어떤 서정이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기찻길은 인생의 시적인 비유처럼 보인다. 정말 그런 때 없는가. 철길을 한없이 걷고 싶은 때. 롭 라이너 감독의 <스탠 바이 미>에 나오는 장면처럼, 친구들과 철길을 따라 가는 여행을 하고 싶은 때. 또는 기차 맨 뒤칸에서 <박하사탕>처럼 지난 세월을 철길처럼 굽어보고 싶은 때. 아마 이 거부하기 어려운 철길의 매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할 것 같다. <스테이션 에이전트>라는 영화 덕분이다.
핀이라는 사람이 있다. 사색적이며 책을 보기를 좋아하고 눈이 맑고 목소리가 굵은 남자다. 장난감 기차를 수리하는 것으로 봐서 손기술이 뛰어나다고 볼 수 있고, 술과 담배와 산책을 즐긴다는 점에서 조용한 쾌락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카페 뤼미에르>에 캐스팅
우정의 발생학, <스테이션 에이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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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는 펜 아닌 컴퓨터만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든 적이 없다. 폭스가 <아이스 에이지>를, 드림웍스가 <슈렉>을 만들어 디지털 장편애니메이션 시장 공략에 나설 때 디즈니한테는 존 래세터가 이끄는 아이디어 집단 픽사 스튜디오가 있었다. 그러나 픽사가 느끼는 디즈니와의 계약 내용은 불합리했고, 마침 애플사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가 픽사 스튜디오의 CEO 자리에 앉으면서 적극적인 투자 전략으로 사세 확장에 성공하자 픽사는 완전하게 디즈니와 이별을 고한다. 스티브 잡스는 올 여름 존 래세터의 <자동차>가 디즈니를 통해 배급되는 픽사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고 한 바 있다.
<치킨 리틀>은 디즈니 최초의 자체 제작 CG 장편애니메이션(혹은 흔히 말하는 3D 장편애니메이션)이다. 전통적인 방식이 아닌 순수 디지털 영화를 디즈니가 드디어 내놓는 까닭은, 픽사와의 협업으로 갱신할 수 있었던 애니메이션 왕국의 이미지를 지속, 발전시키려는 뜻과 무관하지 않
픽사 없는 디즈니의 잠재력, <치킨 리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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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감독 이누도 잇신과 각본가 와타나베 아야는 참 영리하다. 매번 정치적으로 중요한 이슈들을 건드리면서도 ‘정치적 올바름’과 동화적인 낭만성을 적절하게 버무릴 줄 알기 때문이다. 전작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장애인 소녀와 미남 청년의 러브스토리로 심금을 울렸던 그들이 게이 실버타운에 관한 영화 <메종 드 히미코>로 돌아왔다. 그들은 전작에서 장애인을 다루면서도 사회적 불평등을 교조적으로 설파하거나 동정심에 호소하여 눈물샘을 자극하지 않고, 단순히 소년 소녀의 미묘한 감정선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깊은 정서적 울림을 만들어냈다. 이번 작품에서 그들은 ‘메종 드 히미코’라는, 황혼기에 접어든 게이들의 정서적·육체적 보금자리를 통해 동성애자 커뮤니티와 그들 가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중소 페인트 회사의 그렇고 그런 여직원인 사오리는 한 남자의 집요한 접촉 시도를 따돌리는 중이다. 그의 전화도, 그의 방문도 그녀는 전혀 반갑지 않다. 이쯤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의 화합과 이해, <메종 드 히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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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깨다’ 혹은 ‘사랑을 떠나보내다’ 혹은 ‘사랑을 잃다’가 아니다. ‘사랑을 놓치다’라는 문장은 결과가 비슷할지언정 원인이 많이 다름을 가리킨다. 가장 비슷한 표현인 ‘사랑을 잃다’조차 결과를 초래한 원인에 자기 판단과 의지가 얼마나 섞여 있는지 의문스럽다. ‘사랑을 (붙잡으려 했으나) 놓치다’에는 자기 탓이 명백히 내포돼 있다. <마파도>의 코미디 활극에서 아스라한 멜로로 선을 달리한 추창민 감독의 <사랑을 놓치다>는 ‘자기 탓’에 대한 탐구 로맨스다.
자기 탓인 까닭은 사랑을 놓친 원인의 절반이 망설임에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조정코치로 생계를 꾸리는 우재(설경구)는 10년 만에 만난 대학친구 연수(송윤아)에게 야릇한 감정을 느낀다. 남자의 본능과 운동선수다운 맷집으로 일단 돌격을 감행한다. 깃발은 꽂았는데 우재는 기어코 망설인다. 그녀를 사랑하는 것일까, 아닐까. 들떴던 연수가 우재의 그 틈을 보고야 만다. 더욱이 우재가 스스로에게 확신을 입히는
‘설경구스러운 이미지’의 멜로 버전, <사랑을 놓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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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둘이나 되는 아이들 치다꺼리에 한숨 쉴 시간도 없었던 부모의 좌충우돌 자녀양육기 <열두명의 웬수들>이 업그레이드 버전 <열두명의 웬수들x2>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2년 사이 훌쩍 자랐고, 베이커 부부는 잠잠할 날 없던 둥지가 점점 비어가는 게 안타깝다. 맏딸 노라(파이퍼 페라보)는 성실한 남자와 결혼해 어느새 만삭의 몸이 되어 있다. 노라 부부가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간다는 소식에 망연자실할 틈도 없이, 톰(스티브 마틴)과 케이트(보니 헌트) 부부는 갓 졸업한 딸 로레인(힐러리 더프)이 뉴욕의 잡지 사에 취직이 되어 집을 떠난다는 얘기를 듣는다. 다른 아이들마저 일을 하거나 놀기 위해 아버지 톰과 시간을 보내는 데 소홀해지자, 톰은 마지막으로 가족여행을 계획한다. 하지만 옛날 베이커 가족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호숫가에는 톰의 천적, 지미 머타(유진 레비)가 여덟명의 아이들과 포진하고 있다.
스티브 마틴과 보니 헌트는 물론, 열두명의 아이들이 전편에 이어 그
더없이 견고하고 이상적인 가족애, <열두명의 웬수들x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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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작가, 퍼포먼스 아티스트 등으로 활동해온 미란다 줄라이 감독은 그녀가 쓰고 연출한 첫 영화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에서 주인공 크리스틴을 직접 연기한다. 노인을 위한 택시 ‘엘더 캡’을 운전하는 크리스틴은 아마추어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비디오, 사진, 음악을 혼합해 세상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크리스틴의 예술. 영화의 첫 장면에서 크리스틴은 혼자 음색을 바꿔가며 사랑하는 두 남녀의 서약을 녹음한다. “나는 자유로워질 거야. 나는 용감해질 거야. 매일이 생의 마지막 날인 양 살겠어.” 감독이 이렇게 선포한 주제는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의 여러 인물을 통해 거듭 메아리치고, 부연된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화법은 일종의 복화술이다. 크리스틴의 동네 이웃인 등장인물들은 모두 삶이 그저 ‘살다’의 명사형이 아니라 예술품처럼 특별한 무엇이기를 은밀히 열망한다. 그중에는 “마냥 사는 건 싫어. 나는 마술적인 일을 맞이할 준비가 돼 있어”라고 호언하는 구둣가게
사춘기적인 어색함을 간직한 영화, <미 앤 유 앤 에브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