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를린은 중국 영화인들의 희망”
50주년을 맞은 베를린영화제가 심사위원장 자리에 공리를 앉힌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88년 <붉은 수수밭>에 금곰상을 안기면서, 겨우 데뷔작을 내놓은 장이모와 공리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선사했으니, 베를린영화제로서는 ‘우리가 발굴하고 키웠다’는 자부심이 과하지 않은 것이다. 이제 중국영화계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 명성을 쌓은 공리는 12년 전의 감회를 되살려, 모리츠 드 하델른 집행위원장의 제안을 수락했다. 안제이 바이다, 마리아 파레데스, 월터 살레스 등 8명의 쟁쟁한 다국적 심사위원단을 이끄는 중책을 맡아, 상당한 리더십을 발휘했다고. 영어와 독어를 못한다는 것이 장애가 되지는 않았다. 공리는 중국 전통의상을 응용한 화려한 의상과 기품있는 언행으로 영화제 내내 ‘페스티벌 레이디’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공리가 출연하고 선 자오 감독이 연출한 <브레이킹 더 사일런스>는 ‘공리에 대한 오마주’의 의미로 공식 프로
제50회 베를린영화제 결산 [2] - 공리 인터뷰
-
할리우드의 패기, 유럽과 교감하다
공공장소에도 영어 표지판 하나 없는 이곳 독일에서, 수천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나 영어할 줄 알아”하고 외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2월20일 밤, 열이틀의 행사를 마감하는 폐막식 자리에서 금곰상 수상자 폴 토머스 앤더슨이 독일어를 모른다고 사과하자, 관객이 보인 반응이다. “정말?” “예스!” 마치 록 공연을 방불케 하는 열기로 유럽 관객과 교감한 할리우드의 젊은 감독은 그제야 “이건 정말 환상적인 일이다. 심사위원 모두에게, 그리고 베를린에 감사한다”고 달뜬 얼굴로 소감을 전했다. <매그놀리아>의 감독 폴 토머스 앤더슨은 수상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스타였다. 그는 이미 관객이 가장 많은 찬사를 보낸 작품을 만든 감독, 배우를 제치고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거의 유일한 할리우드 감독이었다.
“오스카가 저버린 영화, 우리가 살렸다”
금곰상 이외의 관심거리도 있었다. 심사위원장 공리가 본선에 진출한 장이모에게 과연 상을 주겠
제50회 베를린영화제 결산 [1] - 수상작 리스트
-
케빈 코스트너와 케빈 레이놀즈, 이 두 케빈은 서로 제법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던 스타와 감독 사이로 알려져 있었다. 최소한 <워터 월드>(1995)를 제작할 당시 편집과 내용에 대한 의견 차이로 인해 영화의 개봉을 불과 석달 남짓 남겨두고 레이놀즈가 메가폰을 손에서 놓기 전까지는. 90년 로빈 후드의 모험담을 다룬 영화를 만들겠다는 여러 영화사들로부터 제의를 받은 코스트너가 굳이 모건 크리크사의 <의적 로빈 후드>(1991)에 출연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이 프로젝트에 레이놀즈가 감독으로 내정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코스트너는 레이놀즈의 액션 시대극 <라파 누이>(1994)에 제작 총지휘(executive producer)로 참여하기도 했다. 레이놀즈의 감독 데뷔작인 <판당고>는 바로 이 두 케빈의 이 같은 ‘우정’의 출발점이라고 보아도 좋을 그런 작품이다.
<판당고>는 정치 연설 작가로 일하다가 뒤늦게 영화에 눈을 돌린 레
청춘은 전쟁을 잠식한다, 케빈 코스트너의 <판당고>
-
‘내 인생의 영화’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어떤 영화로 정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그리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제의를 받는 순간부터 한 영화에 대한 이미지가 쫙 펼쳐졌기 때문이다. 바로 주윤발의 <첩혈쌍웅>이다. 수백편의 영화 가운데 내 인생의 영화를 주저없이 꼽을 수 있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영화감독으로서 나는 행운아가 아닐까 싶다. 게다가 그것이 내가 영화를 업으로 삼은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주인공의 인생을 끊임없이 동경해왔다면 말이다.
지금부터 나는 어쩌면 개인적인 고백을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입만 다물고 있으면 평범한 대학 시절을 보냈다고 오해(?) 받을 수 있을 텐데 괜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80년대 중반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심에 들어간 연극영화과. 그곳의 강의실에서는 어렵고 지루한 영화 이야기만 반복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교수님과 선배들이 훌륭하다고 칭송하는 <시민케인>을 보고, 불행
한달 용돈을 털어 바바리를 사입고, <첩혈쌍웅>
-
-
<종합병원 The Movie 천일동안>은 제목대로다. 90년대 중반의 인기 TV드라마 <종합병원>을 영화화했으며, “천일 동안 지속된 사랑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라는 주인공 시완의 대사처럼 두 남녀의 눈물나는 사랑을 그린 멜로다. 드라마 <종합병원> <우리들의 천국>을 연출했던 최윤석 감독이 사랑의 삼각대를 세울 공간으로 종합병원을 택한 건 “기존 멜로 영화들은 주인공의 직업을 낭만적으로 포장하고 그가 속한 공간에 충실하지 못했다”라는 반성 때문이다. 또한 은수와 승현이라는 대조적인 캐릭터를 빌려 한국 멜로 영화가 소홀히 해온 여성성에 대한 통찰을 시도한다.
<…천일동안>의 두 여주인공 승현과 은수는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다. 승현은 완벽한 의사로 성공하기 위해 여성성을 포기한 인물이다. ‘명예남성’이고 싶어하는 승현은 여성을 마치 콤플렉스처럼 여기며, 후배 은수에게도 같은 길을 요구한다. 작은 실수를 저지른 은수에게 승현은
여성성에 대한 통찰, <종합병원 The Movie 천일동안>
-
‘그 푸른 바다를 헤엄치던 고등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들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현재를 회한하는지도 모른다. 옛 사랑이라는 과거에 발목잡혀 사는 영훈과 딸만을 바라보고 사는 진영을 비롯해 네 남자의 삶에는 결핍의 공간이 들어앉아 있다. 옛 감정을 들춰내게 하는 조동진의 노래처럼, <산책>에는 젊은 날에 대한 향수가 은근하게 펴져 있다. 눈물젖은 <편지>로 전국 200만 관객을 울렸던 이정국 감독은 <산책>에서 중년의 고개를 넘는 남자들의 일상을 묽고 엷게 담는다. 화인(火印)의 역사와 희화화한 현실비판, 인공의 사랑이 빠진 자리에 남은 건 볼품없는 일상뿐이다. 이 남자들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에 연민이 어려있는 건, 그들 어디엔가 그가 숨어 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감독은 소재의 일상성을 지나치리만치 평이한 영화언어로 담아냈다. 평범한 인물, 평범한 이야기가 곧장 영화 전체를 장악해버린 것이다. 등장인물을 비롯해 현실의 일상성을 영화로 재현함에
중년의 고개를 넘는 남자들의 일상, <산책>
-
“복수는 달콤하다.” <필름 코멘트>의 평론가 데이브 커가 말한 스티븐 킹 작품세계의 모토를 프랭크 다라본트만큼 충실히 실천한 감독도 드물다.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 앤디가 파렴치한 교도소장을 감쪽같이 속이고 탈옥하는 대목에서 느낄 수 있는 환희는 어렵게 자유를 얻은 기쁨만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여배우 포스터 뒤에 뚫린 터널과 텅 빈 금고를 확인하는 교도소장의 허탈한 표정은 복수가 왜 달콤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96년 6권 연작으로 발표된 스티븐 킹의 소설을 영화화한 <그린 마일>에서도 악당을 벌주는 대목은 흐뭇한 미소를 머금케 한다. 하지만 대공황기에 사형수 감옥 ‘그린 마일’에서 일어났다는 이번 이야기는 앤디의 탈옥처럼 희망적인 쪽은 아니다. 오히려, 나쁜 짓 한 사람 한둘 지옥에 보낸다고 원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비극적 정서를 깔고 있다. 똑같이 감옥을 배경으로 삼고도 <그린 마일>이 <쇼생크 탈출>과 달리 탈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이야기, <그린 마일>
-
이 도시는 이처럼 황량하고 음울한 것인가. 우리는 ‘교통 사고처럼’ 이렇게 느닷없이 만나고 헤어지는가. 어차피 우리네 삶이 근원적으로 외롭고 불안정한 것이라지만 광기로 버텨내야 할 만큼 공포스럽단 말인가. 사는 것이 때로는 익숙하게, 때로는 낯설게 거듭되는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기억의 착각으로 끊임없이 빨려들어가는 ‘구멍’ 속 같은 것일까. 이곳은, 사랑이란 어디에도 없는 마음의 연옥인가.
‘나’라는 중년 남자, 직업은 외과의사, 평온하게 살 것 같은 인텔리다. 하지만 ‘나’는 매일 술을 마시고 밤거리를 배회하다 난잡한 파티에도 따라간다. 끝을 알 수 없는 쾌락에 탐닉하며 고립 무원의 소외감을 이겨보려 한다. 존재의 불안에서 비롯된 공포는 미치지 않고는 견딜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수술을 하다가 메스를 떨어뜨릴 정도로 손을 떤다. 외과의사에게 손떨림 증세가 있다는 것은 치명적인 일이다. 알코올 중독 탓인가, 위기의식이 들지만 이혼소송 때문에 법정에 나가야 한다.
‘
낯설고 폭력적인 도시 공간과 현대인들의 음울한 정서, <구멍>
-
할리우드의 스타중엔 영화와 현실을 구별 못하는 악동도 많다. 한 때 배드 보이로 유명했던 크리스천 슬레이터가 발렌타인 데이를 앞둔 지난 2월 12일 베버리힐스의 한 호텔에서 라이언 해든과 결혼식을 올렸다. 전에 TV 프로듀서로 활동했던 신부 해든은 1997년 폭행과 마약복용으로 감옥에 다녀온 슬레이터를 조용히 지내도록 만든 일등공신. 아버지가 탈선하지 않게끔 미리 태어난 아이 제이든을 대동하고 둘은 하와이에서 신혼여행 중.
크리스천 슬레이터, 라이언 해든과 결혼
-
이란영화는 말 그대로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고 있는 중이다. 키아로스타미와 마흐말바프로 대변되는 20세기 말의 이란영화가 올해를 기점으로 또 한번의 엄청난 변신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변화의 현장을 테헤란에서 지난 2월2일부터 11일까지 열린 파지르국제영화제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파지르영화제는 지난 1979년의 이슬람혁명을 기념해 만들어진 영화제로, 국제경쟁 부문과 국내경쟁 부문이 있지만 해외 게스트들에게는 단연 국내경쟁 부문이 관심의 대상이다. 조직위쪽도 이러한 관심을 반영, 해외의 게스트들만 따로 모아 이란영화를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새 천년 이란영화의 새로운 도약을 예고하는 징후는 자파르 파나히가 도발적으로 제기한 사회·정치적 영화의 문제, 놀라운 신인감독들의 등장, 그리고 단편 영화의 눈부신 성장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금기에의 도전: 자파르 파나히의 <순환>
이번 영화제 국내경쟁 부문에서 자파르 파나히의 <순환>은 애초에 포
테헤란 파지르국제영화제, 이슬람 금기에 도전하는 영화들 봇물
-
[정훈이 만화] <포켓 몬스터> 정치 포켓몬은 싫다더니…
[정훈이 만화] <포켓 몬스터> 정치 포켓몬은 싫다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