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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살려. 사람 살려요.” 고립무원 무인도에서 외롭지만 꿋꿋이 살아온 팀 로빈슨 크루소. 무인도 생활 7주년을 기념한 자축 파티를 벌이던 중, 모닥불의 불티가 야자수에 옮겨 붙으면서 섬 전체를 태워버릴 만큼의 엄청난 화재를 일으키고 만다. 불을 피해 바닷가로 도망 나온 로빈슨은 때마침 이 불기둥을 보고 찾아온 선박에 의해 구조를 받게 된다. 허겁지겁 배에 오르기는 했지만, 멀리 사라져 가는 붉은 섬을 바라보는 로빈슨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그동안 살고 있던 이층집은 물론이고, 힘겹게 가꾸어놓은 논과 밭도 송두리째 날아가버렸다. 품종 개량으로 일곱 가지 맛을 내는 야자수도 이제 생산 단계에 이르렀는데. 그리고 무엇보다도 절벽 위에 설치한 전용 번지 점프대는 어떻게 하나?
“그래 그 섬에서 혼자 살았다고?” 뱃사람들에 이끌려 선실로 내려간 로빈슨은 외눈박이에 외다리에 갈고리 손을 가진 선장을 만나게 된다. “네, 육지에서 살았는데. 집 사서 대출금 갚고 나니까 마누라가 이혼하
[이명석의 씨네콜라주] 노땡큐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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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동>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만큼 김원두 사장의 간섭 또한 지나쳤다. 각색에서 특히 심했는데 많이 다투기도 했지만 우선은 그가 원하는 대로 끌려갔다. 그 대신 나는 과거의 사극과 달리 근래에 들어와 복식사 연구가 활발해진 만큼 소도구와 의상에 대해선 새로운 고증을 하고 싶었다. 전통복식 연구가인 석주선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다. 단국대학교 석주선 박물관엔 아주 예쁜 기생전모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아직까지 사극에서 기생전모는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어서 빨리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나는 기생전모가 깜찍하게 어울리는 신인을 찾아 <어우동>의 역할을 맡기고 싶었다. 여러 차례의 카메라 테스트를 하던 중, 어느 날 여배우 김보연에게서 한복이 아주 잘 어울리는 후배가 있으니 한번 만나보라는 전갈이 왔다. 탤런트 조진원이라고 했고 본명은 조영숙이었다. 그녀를 만나던 날 우연히 쌍무지개가 뜨는 것을 보았다. 강북강변대로 위에서였다. 나는 말만 들었던 쌍무
이장호 [43] - 아, 끔직한 대작영화여, <어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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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죽은 놈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통통하고 싱싱한 뺨을 가진 놈을 가장 좋아하지요. 송장이 찾아올라치면 난 대문을 걸어버리지요. 고양이가 죽은 쥐를 싫어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슬리피 할로우>를 보던 중에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를 놓고 주님하고 내기를 하면서 했던 말이 뜬금없이 떠올랐는데, 악마조차 이런 실정인 걸 사람들은 왜 귀신이야기를 좋아할까 싶어서였다. 귀신 입장에선 자존심 상할 얘기지만, 심지어 무서워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대체 왜 무서워하겠나.
그들이 더이상 우리 삶에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뻔히 아는데. 누가 저승 문턱을 넘으면 이젠 관계의 안전거리가 충분히 확보됐다 싶어, 비로소 긴장 풀고 덕담을 베풀기 시작하는 게 사람인데. 죽은 이들이 무서워지는 순간은, 산 사람들이 욕심탱천한 저의로 그들을 불러냈을 때뿐인데.
예를 들어 박정희의 유령이 무서운 건, 그를 무덤에서 불러일으킨 살아 있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고, <슬리피
[아줌마, 극장가다] 진짜는 따로 있어, <슬리피 할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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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은 도입부가 매우 겸손하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는 명창 조상현의 <사랑가> 대목이 깔리는 크레딧 시퀀스가 끝난 뒤 화면은 조상현의 판소리 완창 공연이 열리는 어느 극장을 찾아 들어가고 조상현이 소리 공연을 시작하면 영화 <춘향뎐>의 이야기도 펼쳐진다. 조상현의 소리 가락에 따라 판소리 리듬을 온전하게 화면으로 번역해 보여주려는 극중극 구조로, 임권택판 <춘향뎐>의 소박하지만 야심에 찬 미학의 서두가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소박하지만 야심에 찬 시도라는 것은 말장난이 아니다. <춘향뎐>은 드라마보다는 조상현의 판소리를 화면전개의 동력으로 삼는 파격을 취했다. 장르개념으로 붙잡기에는 좀 멋쩍은 감이 있지만 판소리판 뮤직비디오로 부를 만한 <춘향뎐>의 신종 장르 형식은 고금을 통틀어 유례가 없다. 임권택 감독은 조상현의 판소리를 화면으로 옮겨내면서 조심스럽게 소리와 화면의 이음새를 찾는다. 그
고운 그 자태, 놀 줄은 모르는구나, <춘향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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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어, 미드나이트-신진들의 학예회?
굳이 디카프리오 해프닝 때문만이 아니어도, 원작소설 자체가 일으킨 커다란 반향만으로도 모두가 기다려마지 않았던, 게다가 <나는 앤디 워홀을 쏘았다> 한편으로 선댄스의 개국공신 중 하나로 추앙받는 매리 해론의 신작이기에, <아메리칸 사이코>에 걸린 기대는 올해 프리미어 프로그램 전체를 대표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가는 다소 갈리는 듯. 그러나 대체로 <나는 앤디워홀…> 이후 오랜 공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감독은 여전히 강한 카리스마와 인간성 파괴에 대한 심도있는 통찰력으로 여피문화의 세기말적 극단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크리스천 베일의 선한 얼굴 뒤에 숨은 섬뜩한 연기는 압권. 이미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라 있다. 그외 작품들은 굵직한 작가들이 보따리를 풀어놓았던 예년보다는 최근 몇년간 선댄스를 디디고 막 일어선 감독들의 학예회를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사실 많이 알려진 배우들의 등장 외에는 별로 건
[현지보고] 선댄스 200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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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스키휴양지답지 않게 눈이 시원스럽게 내리지 않은 채 2000년 벽두의 선댄스영화제를 맞이한 파크시티. 그러나 올해 선댄스에 모인 모두는 폭설을 맞은 듯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디지털 함박눈이 내린 것이다. 애당초 올해 디지털 상영프로그램이 본격화하고 관련행사들도 많이 마련돼 어느 정도 대세의 흐름이 파악되리라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빠른 속도로 구체화한 것은 다소 의외였다.
이름하여 ‘닷컴딜’(.com DEAL). 바로 인터넷 판권 구매를 일컫는 신조어. 이 새로운 형태의 거래 덕분에 단편영화작가들이 디지털붐의 1차 수혜자로 지목됨에 따라 올해 선댄스에서는 맘껏 기를 펴고 다닐 수 있었고, 단편상영장마다 포진된 각 배급사 관계자들이 서로 탐나는 영화를 선점하려고 영화도 끝나기 전에 부지런히 휴대폰을 들고 다급한 통화를 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선댄스에 디지털 폭설, 단편도 돈이 된다
과연 영화제 중반부터 각종 구매소식이
[현지보고] 선댄스 200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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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츠담 광장, 감회가 새롭다"
<밀리언달러 호텔>에 베를린영화제의 초청장이 도착한 것은 지난 11월이었다. 독일 전후 세대를 대표하는 감독 빔 벤더스가 미국으로 건너가 할리우드의 큰손 멜 깁슨과 손을 잡았다는데, 도대체 어떤 물건이 나올지, 베를린에서 일찍부터 눈독을 들일 만도 했다. 게다가 영화음악은 물론 스토리 원안을 U2의 보노가 내놓았다고 하니, 50주년 행사용으로 이 이상의 화제작은 있을 수 없었다. 2월9일 개막식 본 상영에 앞서 베를리날레 팔라스트에서 열린 <밀리언달러 호텔>의 첫 시사는, 과연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취재진으로 북새통을 이뤘지만, 빔 벤더스는 그 모든 기대와 관심에 일일이 부응하진 못했다. 도시인의 황량한 내면을 투사하는 솜씨는 녹슬지 않았지만, 수다와 유머가 늘어버린 대신 그만의 개성이 빛바랜 것이나, 할리우드에 다가서는 행보를 우려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한편 시사에 이어 진행된 기자회견은 “베를린영화제 50년 사상
제50회 베를린영화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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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은 지금 공사중이다. 걸음을 떼기 무섭게 오렌지색 철구조물들과 계속 마주치는데, 영화제의 새로운 중심이 된 포츠담이 특히 그렇다. 드릴 굉음과 용접 불꽃이 반겨주는 포츠담 광장을 지나 마를렌 디트리히 광장쪽으로 걸어들어가야, 그제야 마음에 평화가 깃든다. 여기부턴 문화의 거리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영화제 개막 며칠 전까지도 이곳 포츠담 일대에선 축제의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행사장 주변에 ‘금곰’의 빨간 깃발이 내걸린 것은 개막 전야. 몇주일 전부터 포스터와 플래카드로 온 동네를 도배하거나, 노랫가락에 들썩거리는 잔치 분위기가 아니었다. 날씨 탓일까. 비바람이 몰아치던 2월9일 저녁, 베를린은 너무도 차분하고 덤덤하게 50주년을 맞이하고 있었다.
베를리날레 팔라스트 앞으로 붉은 주단이 깔리고, 취재진과 시민들은 비를 맞고 추위에 떨어가며 한참 기다린 다음, 그 보람을 잠깐 맛봤다. 심사위원장 공리를 비롯, 안제이 바이다 월터 살레스 마리아 슈라이더 마리사 파라
제50회 베를린영화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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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바쁜 사람하고만 영화할꺼야
장진 | 그럼 형이 생각하는 좋은 배우는 그런 감이 있는 배우인가? 어떤 배우가 좋은 배우라고 생각해요?
김지운 | 좋은 배우라기보다, 그런 감으로 다가오고 느낌이 나오는 배우가 나한테 ‘맞는’ 배우 같아. <실크 우드>를 보면 메릴 스트립이 완벽히 계산된, 잘 짜여진 연기를 보여주는데, 느낌으로 연기하는 셰어에 상대가 안 돼. 또 <줄리아>에서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와 제인 폰다가 붙는데, 폰다는 감정 하나 틀린 데 없이, <실크우드>의 메릴 스트립처럼 빈틈없이 연기하고 레드그레이브는 연기를 안 하더라고. 턱 버티고 있다가 물어보면 대답만 짧게 하고. 내가 선호하는 연기는 셰어나 레드그레이브 같은 거지. 그런 의미에서 느낌을 전달하는, 인간성을 보여주는 배우가 좋은 배우라고 생각하지.
장진 | 감독들의 성향을 보면 나는 이런 배우와만 한다, 이런 배우와는 절대 안 한다. 모든 배우들과 다해도 이런 배우와는 안
김지운식 코미디 [3] - 김지운·장진 인터뷰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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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연극무대에서 만나 평소 호형호제 하는 사이로 친분을 나누고 있는 김지운 감독과 장진 감독. 지난해 6월 <간첩 리철진> 개봉을 앞두고 <씨네21>의 요청으로 김지운 감독이 장진 감독을 인터뷰한 바 있다. 이번에는 장진 감독이 <반칙왕>을 만든 김지운 감독을 인터뷰 했다. 장진 감독은 “할말이 많다”며 ‘전의’를 불태웠지만, 두 사람은 오랜 ‘영화동지’답게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의미있는 질문과 대답을 이어갔다.
복면을 쓴 구애, 그게 모티브야
장진 | 축하드려요, 안전사고 없이 영화가 끝나서. 저도 극장에서 관객과 같이 영화를 봤어요. 증거까지 보여드렸죠? 예매 티켓.
김지운 | 주운 거 아냐? 다른 영화 보고 나오다가.
장진 | <반칙왕>은 일단 기획부터가 좀 위험한 영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대로 밀어붙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궁금했어요. 형 생각에는 <반칙왕>이 갖는 의미, 미덕이 뭐예요?
김지
김지운식 코미디 [2] - 김지운·장진 인터뷰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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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적인 세상을 간지럼 태우자
여기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광대가 있다. 직장에선 게으르고 무능하다는 이유로 궁지에 몰리고, 아버지에겐 “언제 철들래”라고 구박받으며, 마음에 둔 여자한텐 기껏 큰 맘 먹고 사랑을 고백했다가 “술 드셨어요?”라는 대답을 듣고, 여자에게 상처 받은채 광화문 앞을 가면에 넥타이 차림으로 질주하는 남자. 그는 우리를 대신해 고통받고 상처받으며, 피흘리고 핍박받으며, 난처해지고 좌충우돌하며, 바보짓을 하고 설움을 당한다. 이를테면 그는 태어날 때 불운이라는 탯줄을 끊지 못한 채 위험천만한 세상의 공기를 들이마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며 손뼉 치며 목젖 울리게 웃어제껴도 죄책감이 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 자신의 불행과 낭패를 대행해주는 2000년의 채플린이며, 우리 자신의 신경증과 콤플렉스를 떠안은 서울의 우디 앨런이기 때문이다.
<반칙왕>의 주인공 대호는 “배, 배, 배신이야. 배반, 배신”을 연발하던 <넘버.3&g
김지운식 코미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