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고발한다,일본사회를
청춘잔혹이야기
중년 남자의 차를 얻어탄 여학생 마코토가 이 남자로부터 겁탈을 당하려는 찰나 기요시라는 젊은이가 나타나 마코토를 구해준다. 기요시와 마코토는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하고 마코토는 집을 나와 기요시와 동거를 시작한다. 돈이 필요한 두 사람은 함께 거리로 나가 마코토가 중년 남자의 차를 얻어타면 뒤이어 기요시가 나타나 남자의 돈을 갈취하는 식의 사기 행각을 벌인다. 쇼치쿠 누벨바그의 만개를 알린 <청춘잔혹이야기>는 당시 유행했던 청춘영화인 ‘태양족 영화’의 틀을 빌려 만든 오시마의 두 번째 영화다. 말 그대로 청춘의 잔혹한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에다가 오시마는 섹스, 폭력, 범죄와 같은 대중영화적 요소를 이용하면서도 당시 사회에 대해 젊은 세대가 느끼는 지독한 환멸감을 잘 불어넣었다. 꿈이 없어 비참하게 끝나지 않을 거라 소리치는 기요시와 학생운동의 패배로 인해 절망한 그 윗세대 사이의 갈등이 일종의 정치적 사상 투쟁에 근접하게 그려
오시마 나기사(大島渚) 회고전 [3] - 상영작 12편 가이드 ①
-
백주의 살인마
다케다 다이준의 단편을 각색한 작품으로 여자들을 강간하고 살해하는 남자 에이스케를 중심에 놓고 스토리가 펼쳐진다. 영화는 그와 관련된 두 여자, 즉 죽음 직전에 에이스케로부터 구출된 다음 그에게 강간당한 시노와 에이스케의 부인인 교사 마츠코가 그들의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을 통해 그들 사이에 감춰진 비밀을 풀어낸다. <백주의 살인마>는 우선 범죄적 성향, 시체를 둘러싼 섹슈얼리티, 죽음의 에로티시즘 등을 탐구하는 부조리극으로 비치지만 그와 함께 다른 한편으로는 한 이상적인 공동체를 건설하려는 시도의 붕괴와 폭력의 문제를 연계시키는 영화로도 읽힐 수 있다. 형식적으로 이 영화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전부 2천개가 넘는 숏들을 가지고 격한 몽타주를 구사했다는 점이다. 노엘 버치는 <백주의 살인마>를 가리켜 에이젠슈테인의 이래 가장 창조적인 몽타주영화라고 극찬한 바 있다.
교사형
1958년 9월 한 재일한국인 소년이 여고생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
오시마 나기사(大島渚) 회고전 [4] - 상영작 12편 가이드 ②
-
의식
<의식>은 오시마의 이름을 서구에 널리 알리게 된 계기를 마련해준 영화다. 영화는 사쿠라다가(家) 지역의 한 부유한 가족의 전쟁 시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연대기를 주인공 마스오가 회상하는 형식을 통해 들려준다. 마스오의 회상은 주로 결혼식이나 장례식 같은 ‘의식’이 벌어지는 때를 중심으로 펼쳐지는데 그럼으로써 영화는 사쿠라다가의 가족 성원들을 불러모아 그들 내부의 붕괴되는 모습을 그려간다. 또 다른 한편으로 눈여겨볼 것은 마스오의 회상이 시작되는 지점들이 하나같이 일본의 현대사에서 중요한 지점들이라는 것. 여기서 오시마가 한 가족의 연대기를 일본의 역사와 맞물리게 하는 원대한 프로젝트를 감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감각의 제국
오시마의 영화세계에서 한 정점을 차지하기 때문에,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오시마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영화. 군국주의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던 30년대 중반에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외부와는 완전히 격리되어 오
오시마 나기사(大島渚) 회고전 [5] - 상영작 12편 가이드 ③
-
누군가 한탄했다. 음악을 글로 분석하는 일은 건축물에서 얻은 감상을 춤으로 표현하는 것만큼이나 가망없는 짓이라고. 이 말에 서린 깊은 고심을 이해하고 영화를 돌아본다면, 영화야말로 영화를 논하는 가장 유력한 수단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근사한 요리를 대접받은 감격을 다시 스스로 정성들인 요리로 표현하고 사례하듯이, 김홍준 감독과 김소영 영상원 교수는 한국영화에 관한 그들의 기억을 아담한 다큐멘터리영화로 만들었다. ‘나의 한국영화’라고 이름 붙인 열린 프로젝트의 ‘에피소드1’에 해당하는 김홍준 감독의 <My 충무로>는 6mm카메라를 들고 예전 극장과 영화사가 사라진 충무로를 소요하며, 그에게 영화의 날카로운 첫 키스를 남긴 과거 한국영화의 장면을 통해 필름 속 정지된 삶을 추억한다. 김소영 교수의 <황홀경>은 좀더 확대된 1인칭을 구사한다. 여성들이 한국영화를 창조하고 소비하며 경험해온 다양한 황홀경들이 과거 영화의 한 장면, 여자들의 인터뷰를 빌려 다물었던 입술
한국영화에 바치는 두편의 필름 에세이 [1]
-
-
“<서편제>는 나에게 또 다른 각별한 의미가 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송화가 아이의 인도로 눈 내리는 길을 떠나는)에 나오는 아이는 내 딸 수연이다. 그때 초등학교 1학년이었고 겨울방학 중이었다. 영화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이런 질문들을 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그 아이는 누구인지. 주인공 송화의 딸인지 아니면 그냥 동네 아이인지. 내가 할 수 있는 답변은 그 아이는 조감독의 딸이라는 것이었다.”
임권택 감독은 시나리오를 100% 완성하지 않고 계속 토론을 해가며 <서편제>를 찍었다. 촬영이 중반을 넘긴 1월. 영광에서 겨울장면을 찍는데 70년 만에 폭설이 온다는 일기예보가 나왔다. 회의 자리에서 임 감독은 평소 당신 스타일대로 “앞 못 보는 송화가, 그래도 자리잡고 살던 마을을 떠나는데… 그, 인심이 그런 게 아니잖아 하다못해 버스 정류장까지라도 누가 바래다줘야…” 하고 느릿느릿 말을 꺼내셨고 연출부는 <넘버.3>의 충성스런 불사파
한국영화에 바치는 두편의 필름 에세이 [2]
-
여인들의 황홀한 초상, 우리들의 기쁜 연대기
김소영의 <황홀경>
모던한 머리 매무새와 양장을 한 부인이 거리를 배회한다. 서울역 지하도를 내려가고 서대문 건널목에 서서 기차를 지나 보낸다. 전차에 오르더니 자리에 앉을 염도 내지 않고 선 채로 손잡이를 의지 삼아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인다. 마치 머릿속에 괸 상념을 흘려 보내기라도 하듯이. 갈 곳이나 있는 걸까. 아니, 혹시 목적지에 도착하기를 일부러 미루고 있는 것일까. 허술한 난간이 세워진 길을 터벅터벅 걷던 그녀가 소스라치듯 뒤를 돌아보는 순간, 화면이 멈춘다. <귀로>(1967)에서 서울을 배회하던 문정숙. 그녀의 시선이 꽂힌 자리에 극장이 서고 은막 위에 <자유부인>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미워도 다시 한번>의 세 여인이 나타나 그녀를 말끄러미 응시한다. 김소영 영상원 교수의 새로운 다큐멘터리 <황홀경>의 시작이다.
이애림 감독이 제작한 <황홀경
한국영화에 바치는 두편의 필름 에세이 [3]
-
“이왕 촌을 쫓겨난 이상 남자 털어먹는 직업을 가질래. 다방, 바, 돈벌이라면 뭐든지 할래.” “난 올케 사는 집 식모살이 할 테야. 잘사는 법을 지켜보고 배운단 말이야.” “서울에는 31층 빌딩이 있대. 우리 헤어져도 그걸 쳐다보고 살자.” “31층 떨어져 죽기 편리하겠다.” (<화녀> 중 두 이농처녀의 대화)
<황홀경>의 손거울에 비친 1970년대와 1980년대는 ‘그들만의 전성시대’다. <가시를 삼킨 장미> <꽃순이를 아시나요> <겨울여자>. 근대화의 썰물이 밀려나간 사금파리 투성이의 개펄에서 여공, 차장, 매춘부의 옷을 입은 무수한 영자들이 울고 있다. 그리고는 한국형 블록버스터와 멀티플렉스의 시대. 새로운 한국영화의 황금기는 이상한 망설임으로 남한 여성을 초대하기를 주저했다.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파이란> <서편제> <오아시스> 같은 성공적인 영화에서 남
한국영화에 바치는 두편의 필름 에세이 [4]
-
<찰리의 진실>은 박중훈의 할리우드 메이저영화 데뷔작이다. 지난해 12월27일 명보극장에서 열린 이 영화 시사회장에, 많은 충무로 제작자와 배우들이 참석했다. 그중 박중훈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마음을 졸였던 이들을 순서대로 꼽는다면 안성기는 최소한 세 손가락 안에는 들어갈 것 같다.
둘은 이틀에 한번꼴로 통화하고, 못해도 일주일에 한번은 만난다. 수시로 함께 골프치러 가고, 영화계 안팎의 경조사나 각종 영화제에 함께 참석한다. 집이 가까워 박중훈이 가는 길에 안성기를 ‘모시고’ 간다. 연말연시에도 두집 식구가 용평에서 만나 와인을 한잔 했다. 50대 초반과 30대 후반의 둘은 14살 터울이지만 연기생활이 각각 45년, 18년에 이르다보니 더 감출 것도 없는 친구 같은 사이가 됐다.
누구다 알다시피 안성기는 80년대 내내 독보적인 한국영화의 주연배우였고, 그뒤 5년 남짓 같은 자리를 박중훈이 이어받았다. 그러나 영예의 부침을 피하기란 힘들었다. 90년대 후반 안성기에게
박중훈이 안성기에게 털어놓은 할리우드의 진실 [1]
-
안 | 그러면 배우나 스탭들이 그렇지 않다는 걸 안 게 언제쯤이야?
박 | 좀 걸렸어요. 탱고 삼개월 동안 매일 연습하고, 매일 영어대사 연습하고. 일주일 동안 지나가는 거 한번 찍고 가고. 카메라를 거울처럼 보다가 도대체 카메라 구경을 못하겠는 거야. (웃음) 또 팀 로빈스, 댄디 뉴튼, 마크 월버그에 프러듀서까지 불러놓고 대사를 내가 할 부분만 시켜요. 안 떨려요 한국 돌아가기도 그렇고. 뛰어내려야 하나 어쩌나. 삼개월 지나서 대사하는 장면을 찍었죠. 처음으로 바스트숏을 받아본 거죠. 그날 촬영 뒤 드미가 날 꽉 껴안는 거예요. “지구 반 바퀴를 날아와서 나를 도와줘서 너무 고맙다”면서. 그리고 마크 월버그하고 뛰는 신, 격투신, 찍고 나니까 이제 ‘아, 이놈이 노는구나’ 하는 거죠. 편집 때 잘렸지만 내가 공동묘지에서 우는 장면이 원래 없었는데 추가됐어요. 없던 게 생겼으니,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래서 내가 드미에게 “나는 너를 참 위대한 감독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판단력이
박중훈이 안성기에게 털어놓은 할리우드의 진실 [2]
-
안 | 예전에 말론 브랜도 흉내 참 잘냈다고. 그렇게 흉내낼 사람도 별로 없다고. 그런 캐릭터에 유머까지 있으면 난 너무 좋을 것 같아.
박 | 제가 형님 말씀하신 선을 놓고보면 등락차가 큰 배우이고 거기서 얻은 불이익도 상당히 많아요. 그런데 요즘에 케이블TV에서 <할렐루야>를 가끔 보면 저한테 어떤 훈장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먼 훗날 내 영화를 다시 볼 때, 물론 <인정사정 볼 것 없다>처럼 내 개성도 살리고 작품도 살면 좋은 거지만, 나이 들어서 보면 원없이 한번 해봤다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하면 내가 뱀탕을 먼저 먹어버린 거예요. 뱀을 너무 많이 먹어서 약효가 그 다음부터 잘 안 난다는 거죠.(웃음) 그런데 형님은 뱀은 안 잡수시고, 비타민만 먹어서 관리는 잘되시는데,(웃음) 확 피지 못한다는 거예요.
안 | 그러니까 가늘게 길게 간다
박 | 아니, 형님은 가늘진 않죠. 사실 예전에는 목소리만 빼고 모든 걸 다 형님
박중훈이 안성기에게 털어놓은 할리우드의 진실 [3]
-
새해 벽두, 충무로는 폭풍전야다. 시네마서비스의 최대주주인 플레너스엔터테인먼트가 CJ엔터테인먼트에 지분을 매각할 가능성이 있다는 소문 때문이다. 이른바 ‘CJS(CJ+시네마서비스)연합’. 최근 아이엠픽처스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2년 시네마서비스의 관객점유율은 22.2%로 5개 직배사를 포함해 국내 배급사 가운데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했고, CJ는 18%로 2위를 차지했다. 두 회사가 합치면 관객점유율 40.2%, 이중 한국영화만 떼서 계산한다면 시장점유율 70%를 넘는 거대 배급사가 탄생한다는 얘기다. 과연 한국영화는 이제 짧은 양대 메이저 시대의 막을 고하고 유일 메이저 체제로 접어들게 되는 것일까?적과의 동침, 미션 임파서블혹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무시할 수도 있다. 그간 시네마서비스와 CJ가 한국영화 투자, 배급의 라이벌로 적지 않은 신경전을 벌였던 사실을 기억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적과의 동침’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닌 것도 틀림없다. 하지만 최근
충무로,지각변동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