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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 발견! 그래도 우아하도다
글씨체의 디자인과 크기의 배열이 낳는 스펙터클한 타이틀 시퀀스 BEST
영화 제목과 대사, 제작진의 이름을 종이카드 위에 손으로 써서 집어넣었던 초기 영화에서도, 지극히 궁한 예산으로 살림을 꾸려야 하는 현대 독립영화에서도, 글자는 모든 프릴과 장식을 떼어낸 타이틀 시퀀스가 버릴 수 없는 마지막 기본사양이다. 그러나 오늘날 타이틀 시퀀스 디자인의 세계에서는 더이상 글자가 정보를, 비주얼이 스타일을 분담하지 않는다. 글씨체의 디자인과 폰트의 배열만으로도 엄연히 지향하는 스타일을 선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핀처의 <패닉 룸>은 맨해튼의 거대한 빌딩 입면과 같은 앵글의 평면을 가정하고 공중의 가상 평면에 금속성의 글자들을 공중에 띄워 크레딧 하나하나가 권위있는 구조물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를 얻었다. 유리와 철골 구조의 건물에 크레딧을 박은 솔 바스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오프닝 시퀀스를 상기시키는 아이디어. 폴 버호
타이틀 시퀀스의 세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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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위가 왔다. <영웅>과 함께. 양조위는 20년 연기인생 동안 홍콩의 장르영화와 <비정성시> <화양연화> 등 걸작들을 오가며 영화사에 남을 배우로 우뚝 섰다. 할리우드를 경유하지 않고도, 또 특정 장르에 묶이지 않고도, 세계 영화인들의 별이 된 중국권 배우는 아마 그가 처음일 것이다. 이 남자는, 그래서 특별하다.
저기, 소리없는 한 자락 비애
매니저와 영화사 관계자들에 둘러싸인 양조위는 한눈에 뜨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165cm를 안 넘기는 작은 체구에 웬만한 여배우 못지않게 소담스런 어깨, 그리고 가무잡잡한 얼굴. 1997년 10월 <해피 투게더>의 상영에 맞춰 부산영화제를 방문한 양조위를 처음 대면했을 때, 그 왜소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근사한 미모라기보다는 아담하고 친근한 인상에, 사춘기 소년마냥 수줍은 눈인사를 건네던 모습이 너무 소박해서 오히려 기억에 남았다. 3년 뒤 <화양연화>로 다시 부산영화제에 왔
아름다운 배우, 양조위와 장만옥 [1] - 양조위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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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치는 늘 난 배우가 될 거야, 스타가 될 거야, 하는 꿈을 자주 이야기하곤 했다. 아무래도 날마다 듣다 보니 세뇌가 됐는지 나도 모르게 그래 그게 좋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스무살 즈음의 두 친구는 TV에서 TVB 배우스쿨 모집광고를 봤고, “주성치가 가자, 가자, 하기에 아직 젊으니까 이것저것 해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같이 원서를 냈다. “어차피 1년 과정이니까 싫으면 끝나고 나서 더 안 하면 된다”는 심정으로 그냥 한번 내 봤다는 원서는, 뜻밖에 평생의 길을 열어주는 열쇠가 됐다.
1년간의 연기 수업이 끝나고도 그만두지 않았던 이유는, 새로운 소통 방식에 매료된 탓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힘들거나 열받는 일이 있어도 속으로 꾹꾹 눌렀다. 겉으로 표현하지 못했고, 사람들 앞에서 폭발시키지 못했는데 연기를 하면서 아 이런 방법이 있구나 했다. 그동안 꾹 눌러왔던 정서들을 연기를 통해서 하나씩 표출할 수 있었다. 나처럼 자폐증이라고 생각해온 사람한테는 아주 좋은
아름다운 배우, 양조위와 장만옥 [2] - 양조위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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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만옥이 왔다. <영웅>과 함께, 좁다란 홍콩의 골목에서 빠져나와 중국의 산하를 비상하며 ‘날으는 눈’(飛雪)이 되어. 1984년 데뷔한 뒤 20년간 스쳐간 수많은 영화 속 편린에 비쳐진 장만옥에 대하여, 뜨거운 완탕국수를, 기름묻은 닭고기를, 파인애플이 끼워진 소시지 꼬치를, 무언가를 오물거리며 먹을 때 가장 사랑스럽던 그녀의 입술에 대하여. 그 치명적인 매혹에 대한 보고서.
순수의 수동, 거부할 수 없는 몸짓
주성치가 한 영화에서 “내 소원이 장만옥의 가슴을 보는 것”이라고 농담을 했을 만큼, 영화 속의 장만옥은 늘 아슬아슬하게 가려진 존재다. 마른 편이지만 나약해 보이지도 여성적인 선을 잃지도 않는 그녀의 육체는 주물처럼 부어넣은 듯 온몸에 착 달라붙는 검은 라텍스 의상을 입고 파리의 지붕 위를 달리는 <장만옥의 이마베프>에서 그 ‘고혹한 보석’(慢玉)의 진가를 발휘하지만 좀처럼 검은 코스튬은 그녀의 살갗을 떠나지 않는다. <영웅>에서
아름다운 배우, 양조위와 장만옥 [3] - 장만옥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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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물간 프랑스 감독이 <동방삼협>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였던 장만옥을 캐스팅해 뱀파이어영화를 리메이크하려고 하지만 결국 무산되고 만다는 해프닝을 통해 프랑스 영화판을 풍자한 ‘영화에 대한 영화’,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장만옥의 이마베프>에서 ‘한때는 휼륭했지만 더이상 휼륭하지 않은’ 극중 감독 르네 비달에 대해 장만옥은 그를 부정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리 끝까지 감독을 옹호하고 그에 대한 믿음을 철회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이 ‘선택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물론 작품과 관련된 의견을 많이 내는 편이긴 하지만 내가 그 영화를 선택한 이상 결국 배우로서 가장 중요한 건 감독의 의도를 최대한 가깝게 표현해내는 것 이라고 생각해요. 영화가 상영될 때, ‘내가 저렇게 하자고 해서 저런 식으로 표현된 게 좋았어’라고 스스로 만족하기보다는 감독이 ‘연기를 참 잘했어’ 하고 인정해주는 편이 훨씬 좋다는 거죠.” 그렇게 장만옥은 철저히 감독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려는 배
아름다운 배우, 양조위와 장만옥 [4] - 장만옥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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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부 막내라면 영화팀의 최전방 심부름꾼이다. 스탭들이 타 마실 커피믹스 사놓는 일에서부터 걸레가 필요하다면 걸레, 수건이 필요하다면 수건을 척척 내놓고 세트 벽을 바꿔 낄 때면 한명의 힘쓰는 일꾼으로 봉사하기까지. 제작부 막내의 일은 촬영부나 조명부처럼 뚜렷한 전문 분야가 없는 대신 스탭들의 주문을 제일 밑바닥에서 신속정확하게 들어주는 ‘만능’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 일들은 물 끓이는 통에 하루 네댓번씩 물을 채워넣는 일처럼 안 하면 티나고 해도 별 칭찬받지 못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마치 살림살이를 하는 가정주부의 일처럼. 다른 스탭 중 ‘막내’도 다 그럴 테지만, 제일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제작부 막내는 그래서 더욱 힘들다. 프로듀서를 꿈꾸는 <귀여워> 제작부 막내 박재영의 일거수 일투족을 따라가며 제작부 막내의 희로애락을 가까이서 들여다보았다. - 편집자“재영아, 마스크 없냐?” 세트 작업하던 스탭이 일하다가 갑자기 박재영을 찾는다. 스튜디오 안은 먼지로 자욱하다.
제작부 막내 박재영의 좌충우돌 시련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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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양수리 숙소냉기가 뼛속을 후비는 겨울, <귀여워> 영화팀이 묵고 있는 양수리의 ‘엘리제궁’ 모텔. 7시가 기상시간이라 했건만 모텔 안에는 누구 한명 일어난 기척이 없다. 그때, 카운터에 써붙여놓은 종이 한장이 눈에 들어온다. ‘11시에 전체 깨워주세요.’ 지난 밤 촬영이 지연된 모양이다. “귀여워 바로 한 시간 전까지 여기서 야식 먹고 술 먹다 갔어.” 기다리는 동안 아침을 먹으러 들어간 동네 어귀 식당 아주머니의 증언이 짐작을 굳혀준다. 터미널 근처 아침 일찍 유일하게 문을 연 다방에서 말 그대로 다방커피를 마시며 몇 시간을 보내고는 10시 반쯤 숙소로 다시 갔는데, 웬일인지 시간이 다 되어도 사람들이 별로 내려오지 않는다. 알고보니 모텔 아주머니가 주무시느라 ‘모닝콜’을 깜빡 한 것. 시계바늘이 11시를 넘은 지도 꽤 지난 뒤, 모텔 아주머니가 부스스한 채로 일어나 “11시가 넘었나 깨워주는 걸 깜빡 했네”며 서둘러 방마다 전화를 한다. 잠시 뒤 박재영씨
제작부 막내 박재영의 좌충우돌 시련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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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 장수로(장선우)와 순이(예지원) 배우 도착, 분장팀 분장 시작. 아침에 들렀던 마트에 다시 들러 종이컵 한 박스 사옴.2시. 티테이블에 담배 동남. 매점에서 담배 사온 뒤 티테이블 다시 정리. 굿당 세팅 완료. 배우분장 완료.몇 가지 보충 장을 보고나니 다른 팀도 촬영준비를 마치고 촬영을 시작한다. 제작부 막내에게 제일 바쁜 시간은 한풀 지난 셈. 일단 촬영이 시작되면 제작부 막내는 대기상태로 있다가 중간중간 세트 바꿔 끼는 걸 돕거나 스튜디오에 불을 켰다 꺼는 일 등을 빼면 ‘공식적으로’ 크게 할 일은 없다. 다른 스탭들과 모니터를 지켜보며 쉴 수도 있고 그러면서 배우랑 몇 마디 나눌 수도 있는 시간이 이때다. 하지만 돌발상황이 생겨 소소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여기저기 다니다보면 촬영이 얼마만큼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모르기도 일쑤다.대개의 제작부원들이 그렇듯 박재영씨의 꿈도 프로듀서다. 보통 제작부 막내 한두 작품 하고, 제작부장 한두 작품 하고 그리고 좋은 평가를 받으면
제작부 막내 박재영의 좌충우돌 시련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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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영화촬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체력’이다.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를 시켜보고 연출부로 쓸 것인지 결정하는 김성수 감독에게 물어보면 당연히 그렇게 말할 것이다. 영화는 말이나 글로 찍는 게 아니라 몸의 피로와 다리의 수고로움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흔히 영화는 정신노동의 산물로 받아들여진다. ‘영혼이 담긴’, ‘정밀하게 계산된’, ‘지성이 번뜩이는’, ‘상상력이 뛰어난’ 등 온갖 수사들이 영화의 정신적 측면을 강조하는 데 동원된다. 하지만 그렇게 믿고 영화 찍는 현장에 도착한 이들은 한결같이 당황할 것이다. 그곳에서 영화가 정신적 노동의 산물이라 말하는 자는 야유를 받기 알맞다. 막상 현장에서 영화를 찍는 사람들은 배우건 스탭이건 기꺼이 스스로를 일용직 노동자, 속칭 ‘노가다’라고 부른다. 건설현장의 인부처럼 촬영현장에서 그들의 정신은 오직 육체의 한계와 싸우는 데 집중한다. 벽돌을 나르고 시멘트를 부어 집을 짓는 것처럼 조명기를 설치하고 카메라를 옮기는 동안 생필름은
추위 속 강행군,겨울 촬영현장 풍경 스케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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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적인 빗줄기, 체감온도 영하 30도“춥죠?”꼭 답을 듣겠다는 질문은 아니었다. 그저 애처로운 마음에 말이 절로 튀어나간 거다. 한겨울날 물벼락을 맞은 송강호, 김상경, 박해일이 일제히 답한다. “… (덜덜덜덜)….”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송강호가 예의 그 말투로 입을 연다. “아~ 머리가 막 쪼개지는 것 같애. 으~ 머리가 짧아서 그런가. 우후~ 장난이 아니야.”1월8일 경남 사천의 한 철길 옆에 차려진 <살인의 추억> 촬영장에는 비가 내렸다. 기상청 레이더망에도 잡히지 않은 이날의 차디찬 겨울비는 살수차가 만들어낸 인공강우. 배우들은 이 비를 쫄딱 맞아가며 몇 시간째 연기를 하고 있다. 전날까지 영하 10도를 오르락내리락하던 수은주가 다소 올라갔다곤 하나, 어둑하게 그늘진 곳에 자리잡은 촬영장은 최소 영하 5도권이니 찬물을 뒤집어쓰면 어떤 결과가 빚어질지 불을 보듯, 아니 얼음을 보듯 뻔한 일이다. 김상경은 “한기가 뼛속 깊숙이 스며든다”고 말한다. 옷 안에 스쿠버다
추위 속 강행군,겨울 촬영현장 풍경 스케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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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에서 새벽까지 칼바람 뚫고 달린다“춥죠?”“그러네.” “감기 들었어요” “응, 어제 방바닥을 너무 뜨겁게 하고 자다가 이불을 걷어차가지고.”(김유진 감독)“춥죠?” “예, 감기 걸렸어요. 오늘은 좀 나은데 그저께 촬영 때는 목소리가 이상하게 나와서 혼났어요.”(배우 한채영)명약관화하게 누가 봐도 추운데 춥냐고 묻는 건 썰렁한 일이다. 대한(大寒)이 놀러왔다가 얼어죽었다는 소한(小寒) 다음날인 1월7일의 서울 기온은 최저 -10도, 최고 0도였다.몇 시간씩 야외촬영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훌륭한 인터뷰어가 할 질문이 아님을 알지만, 이번 특집기사의 공통된 첫 질문으로 정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 조금 더 묻고 다녔더니 은근히 짜증섞인 반응도 나온다. 양동근은 “춥죠” 하고 물으니 “그런데요”라며 느리게 되묻는다. 억양없이 졸린 듯한 목소리, 좀처럼 눈을 맞추지 않고 취조당하는 피의자처럼 시선을 자기 신발께로 내리까는 표정이 <네 멋대로 해라>의 고복수다. 복수처럼 슬금슬
추위 속 강행군,겨울 촬영현장 풍경 스케치 [3]